1.
김치냉장고가 없던 시절에야 시어터진 김치 나눠받는 게 그리 황송한 일은 아니었지만
넉넉하게 담가도 육 개월이든 일 년이든 뒀다 먹을 수 있게 된 요즘은 그 공들여 담은 김치 나눠준다는 얘길 들으면 민망함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옛날처럼 많이 담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1박2일은 쏟아부어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공들인 것을 선선하게 나눠주는 마음씀씀이라니....
명색이 전업주부라면서 최대한 가사를 축소해보려고 기를 쓰며 사는 이 얍삽한 아지매, 그 부지런하고 인정 넘치는 마음들을 만나면 '나도 내년에는.....' 하고 다짐 또 다짐 해보지만... ㅜ.ㅜ
집에서 밥 먹는 사람이 없던 재작년에 막내시누이와 공동으로 김장 한번 했다가 두 해 가까이 진저리를 댄 후 이젠 절대 김장 안 하리라, 사먹거나 얻어먹으리라고 다짐했기에 작년에는 이리저리 얻은 김치로 겨울을 났다. 이후로도 5kg짜리 한 봉 사면 한 달 넘도록 먹으니 그때그때 열무김치나 겉절이 등이나 무쳐 간간이 보충을 해가며 한 해를 보내고... 올해는 나도 김장이란 걸 해볼까 하는 차에...
김장을 안 할 핑게가 생겨버렸다.
아랫동네 사는 K http://blog.daum.net/corrymagic/8289160 이 젓국과 해물을 듬뿍 넣은 오리지날 남도 김치를 큼직한 통에 넣어 보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미싱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딸네미를 위해 전남 영암에 홀로 사시는 친정어머니가 김치고 밑반찬이고 해나르신다더니 올해는 농사지은 배추로 70포기나 담아 보내셨다는 거다. 말이야 김치냉장고에 다 들어가지도 않아서라고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노인이 고생한 걸 이렇게 날름 얻어먹어도 되는 거니?" 하며 민망해하는 내게 이 친구 하는 말,
'언니... 이건 언니가 얻어먹는 게 아녀. 언니도 내게 많이 줬잖여. 포도도 많이 땄다고 나눠주고(올 여름 포도농사 짓는 상순씨네 간 김에 포도를 넉넉하게 실어와 나눠먹은 얘길 하고 있는 거다) 해고자 명예회복신청할 때도 많이 도와줬잖여. 언니가 김치 얻어먹는다고 말하면 나도 언니한테 맨날 얻어먹는 셈인데 이왕이면 나눠먹는다고 해야 나도 기분이 좋재." 한다. 아유, 똘똘한 녀석.
어쨌든 김치통이 꽤나 큼직하여 '에라, 그럼 올해도 김장 패스다. 김치 떨어져갈 때쯤 넉넉하게 담았을 성 싶은 집에 가서 김치 한사발 달게 먹어주면 한통 생길지도 모르니...' 요따위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친정 신년모임에 가서 김치폭탄을 맞았다.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뒤 텃밭에서 거둔 배추로 동네김장을 한 넷째올케가 한 통. 언니가 강원도 고냉지 배추로 담은 김치와 알타리김치를 한 통, 둘째올케가 시원한 왁지를 깔아서 한 통.... 나의 불량주부됨을 잘 알고 있는 언니들이 그 정성어린 귀물을 나를 위해 아낌없이 퍼온 것이다.
게다가 둘째올케는 마늘장아찌, 매실장아찌, 양파장아찌를 가져와 다섯 형제들에게 골고루 나눠준다. 담을 때 나눠먹으려고 아예 넉넉하게 담았나보다. 난 아마 죽을 때까지 저런 철 못 들 꺼다.
그럼 나는 뭘 나누지? (나는 우리 가족의 영원한 기쁨조.... 기쁨이나 많이 나눠드려야지. ^^)
2.
이 글을 써놓고 그새 하루가 지났다. 새해의 둘째날이다.
둘째날은 가을바람 언니가 나눠주셨다.
작년 4월 필리핀 여행을 할 때 바기오에서 신세를 졌던 가을바람 언니가 한국으로 들어온 지도 벌써 반 년인데 언니도 들락날락, 나도 들락날락.... 한번 찾아뵙는 게 무에 그리 어려운지 차일피일하던 중에...
어제 아침에 드디어 전화를 받고 말았다. 외로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를 들으니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아침설겆이만 대강 끝낸 채 강화도로 달려갔다.
블러그만 보고 http://blog.daum.net/muntugol/11896867 전화 목소리만 들으면 식사도 제대로 안 챙겨드시고 집안도 엉망, 두문불출이실 듯한데(적어도 나라면 분명히 그랬을 것인데) 언니의 城은 변함없이 우아하고 정갈하고 포근하다. 내가 저 연세가 되고 저렇게 홀로 된다면 과연 저런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을까? 내가 언니에게 감동 먹는 부분은 바로 그것이다.
끓여주시는 떡국 맛나게 먹고 수다 좀 떨다가... 교통편이 쉽지 않아 갈 기회를 찾고 계셨다는 황련사에 가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언니가 안방에서 뭘 꺼내오신다. "만옥씨, 이거 여행갈 때 신고 가."
엇, 밑창 둥그런 운동화다. 이게 그 운동효과 좋고 가격 비싸기로 이름난 마사이 워킹화 아니더냐.
얼마 전 언니 블로그에서 지인이 마사이 워킹화를 보내줬는데 사이즈가 작아 바꿔야 할 것 같단 얘기를 봤는데 바로 이게 그건가보다.
"언니, 우리 동네에 이 가게 있어요. 제가 바꿔다 드릴께요."
"아냐 아냐, 내가 작다고 하니까 그이가 또 보내줬어. 이건 내가 만옥씨 줄려고 간수해놓은 거야."
"아이, 못 믿겠어요. 어디 언니 것 보여주세요."
옆에 놓인 귀여운 모자는 추우니 쓰고 나가라고 하시고서는 너무 잘 어울린다고 가지라고 하신다.
아줌마가 아니라 노처녀처럼 보인다는 말씀에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
진짜 언니 것이 또 하나 있긴 했다. 하지만 언니 주변에 발 작은 여자가 어디 한 둘이겠는가.
나를 생각하는 언니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히 받긴 했지만 난 언니와 뭘 나눌 수 있을지...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나눔... 언니에게 필요한 것은 가까이에서 가랑비처럼 내리는 情일 텐데 그러기에 나는 너무 번잡스러운 인간이다. ㅡ,.ㅡ
언니, 뭔가 제게도 언니와 나눌 만한 게 있을 꺼예요. 연구 좀 해볼께요.
3.
작은 사찰 황련사에 갔더니 대웅전 현판에 한자 대신 한글로 '큰 법당'이라고 쓰여 있다.
주련에 쓰인 글자도 한글이다.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과도 부처님의 큰뜻을 나누려는 배려인 듯하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준다는 그런 내용이었는데(수첩에 적어뒀는데 수첩이 안보인다)
어쨌든 그 말씀도 오늘의 주제에 딱 맞아떨어지네... ^^
해맑은 얼굴의 스님이 차를 권하신다. 다시금 나눔의 현장이다.
즉석에서 갈아 내려주시는 향긋한 원두커피(사찰에서 커피 대접을 받을 줄은 몰랐다. ^^),
그윽한 뒷맛을 남기는 우롱차, 발효향이 진한 보이차...
소꿉장만한 찻잔을 수도 없이 채워가며 좋은 말씀 많이 들었다.
이렇게 나눠주신 것들을 나는 행동으로 바꾸어서 내 이웃들과 나눠야지.
저녁을 먹으러 들른 곳은 밥뿐만 아니라 음악을 나누는 곳이었다.
두 개의 턴테이블과 몇백장은 족히 넘을 LP판들, 예전에 방송일을 하셨다는 이장희 닮은 주인아저씨....
마침 해질녘이었다. 싼타나 음악이 멋지게 어울리는....
------------------------------------------------------------
살면서 맺는 인연만큼 우리들의 나눔도 도처에 깔려 있다.
유형의 나눔만 눈에 띄는 물질만능 시대이긴 하지만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무형의 나눔은 더 많으리라.
당장은 아니지만 내일을 기약하는 속깊은 나눔도 있고,
옆집에서 받고 뒷집에 베푸는 근사한 나눔도 있고...
나눔이 있기에... 그리고 나눔에 대한 깨달음이 있기에 삶은 따뜻하다.
우리는 나눔을, 나눔의 의미를 얼마나 발견하며 살고 있을까.
'그 시절에(~2011) > 陽光燦爛的日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법도 면역이 될까 - 황열병 예방접종記 (0) | 2008.01.08 |
---|---|
노약쟈의 자상한 트레이너 - 광교산 (0) | 2008.01.07 |
새해 첫날 - 오르기 (0) | 2008.01.01 |
送舊迎新 (0) | 2007.12.31 |
대통령 선거 연보 (0) | 2007.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