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buhay! 3 : 바기오의 휴일 풍경
"꼬끼오~~~!"
필리핀의 아침을 여는 것은 우렁찬 장닭의 울음소리다.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조차도.
지난밤에 언니랑 이런저런 얘기로 새벽 2시를 넘겼는데도 집에 돌아온 것처럼 안전한 잠자리 뽀송뽀송한 이불에 안겨 마음놓고 푹 잤더니 지난 이틀간의 긴장과 피로는 싹 가시고 날아갈 것처럼 개운하다.
그런데 언니는 지난밤 잠을 한숨도 못 주무셨단다. 나랑 놀려고 커피를 다섯 잔이나 마셔둔 데다 평소 주무셔야 할 시간을 놓치신 거다. 이를 어쩌나.... 내가 봐도 눈이 퀭한게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신다.
나 혼자서도 잘 다니니까 (내일 같이 떠나기로 한 바나우에 여행에 대비해서) 오늘 하루 언니는 푹 쉬시라고 해도 나의 중요한 업무(현금인출)에는 동행을 해줘야 마음이 놓인다고 서둘러 채비를 하신다.
고갱이배추로 끓인 된장국에 꿀맛같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니
마닐라와는 확연히 다른 고산마을 특유의 깨끗한 공기, 파란 하늘, 예쁜 화분들... 낯선 사람에게도 공연히 "굳모닝!"을 외치게 만드는 아름다운 아침이다. 집앞에서 지프니를 타고, ATM뿐만 아니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언니의 단골 환전소도 있는 public market(재래시장) 쪽으로 출발.
전철, 시내버스 및 트리시클과 함께 필리핀 서민의 발 노릇을 하는 지프니.
미군이 버리고 간 지프차를 18명 정도가 탈 수 있게 개조한 차로, 알록달록 개성있게 꾸민 모습이 필리핀 시내를 활기차게 만들어준다. 다만 워낙 고물이고 연료의 질조차 좋지 않아 배기가스가 거의 죽음이다.
혹자는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필리핀 사람들의 낙천성을 얘기하면서 이 화려한 외양의 지프니를 예로 들기도 한다.
내부는 요렇게 생겼다. 맨 끝 사람의 차비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거쳐 기사에게 전달된다.
바기오 중심가(재래시장 부근)
재래시장 안
요것이 무엇인지 몰라 하나만 맛보자고 해서 먹어봤더니 무척 쓰다. 하얗게 얹힌 것은 소금..
그런데 신기한 것이... 다 먹고 나니까 입안이 달다. 이거 10여년 전에 리지앙에서 먹어본 것 같은데
이름이 도통~
여행자들에게 바기오 여행정보를 제공하는 자원봉사 청소년들.
뭐게~?
(비얌 기름과 껍질이다. 따갈로그어로 쓰여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약용으로 파는 것 같다.)
요녀석들 내가 거리 사진을 찍고 있으니 쫓아와 자기들도 한장 찍고 싶다고 해서리...
재래시장에 있는 ATM 기계가 내 신용카드를 거부하여... 결국 웬만한 은행의 ATM 기계들이 다 모여 있다는 바기오 최대의 쇼핑몰 SM으로 갔다. SM은 필리핀 전국 웬만한 대도시에 분점을 갖고 있는데 오너는 화교라고 한다.
아이고, 신기해라...
두번째로 시도한 단말기에서 페소가 직접 빠져나온다.
내일부터는 단말기 없는 시골로 가야 하니 2500페소씩 두 번, 좀 넉넉이 뽑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이제 난 살았네! 언니, 뭐 드시고 싶으세요? 말씀만 하세요. ㅎㅎㅎ
부활절 휴가를 맞아 놀러온 사람들이 많으니 더 붐비기 전에 바기오 최대의 관광지인 Mines View부터 가보자고 하셔서 지프니를 타고 올라가는데...
왕복 2차선 도로를 승용차와 지프니가 점거한 채 요지부동이다. 지프니의 배기가스는 그 좋은 바기오 공기를 압도하고... 바기오가 아무리 좋다 해도 휴가철의 바기오는 No Thank You!
30분쯤 걸려 드디어 정상에 도착하니 즐비하게 늘어선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이 먼저 인사를 한다.
바기오가 있는 코딜레라 산맥 일대에 살고 있는 이고롯족의 전통모자를 쓰고 기념사진촬영을 하는 곳.
요금은 맘대로 내시란다.
요렇게 찍는 거다.
뷰포인트로 가는 길목에 늘어선 기념품 가게들
골라보셈. 오른편 아래쪽 물건에 꽂힌다고라고라? ^^ ;;
요렇게 바라보면
이런 풍경이 보인다.
나도 남부럽지 않게 한컷...(사람 죽이고 배경 키우랬더니...ㅜ.ㅜ)
출출한데 군것질이나... 마른생선포, 탕수바나나... 아님 옥수수 버터구이?
이런 간식은 어때? 어묵구이나 소시지구이... 특별한 걸 찾는다면 태어난 지 하루 된 통오리 꼬치구이...
30분 올라와서 20분 구경하고 우리는 서둘러 택시를 잡아탄다. 밀리는 인파에 지레 지쳤기 때문에..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캠프 존헤이(예전에 미군들이 사용하던 골프장과 리조트가 있는 널찍한 녹지대)에 잠시 들러 한바퀴 비잉 돌고 우리는 다시 SM 근처로 간다. 내일 떠날 바나우에행 버스시간도 알아보고 점심도 먹을 겸.
필리핀 전통음식을 하는 식당(SM mall 3층).
SM에서 만난 인형같은 아기. 아빠를 꼭 닮았다.
SM 3층 식당가 바깥쪽에는 바기오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테라스가 있다.
점심을 먹고 언니와 헤어져 나는 바기오 시티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번햄파크로 내려간다.
공원에 가까이 가자 내 귀를 사로잡는 우렁찬 가스펠.
신자들 대부분이 흰예복을 입고 두 손을 쳐들고 있어 혹 무슨 사이비종교집단인가 잠깐 의심.
부흥강사의 열변이나 신자들의 호응, 기적을 강조하는 설교, 집회 후의 노방전도... 등등으로 미루어보아
이 교파는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순복음교회파 정도 되는 것 같다.
어, 이건 힌두교 전파자들이네 그려.
이들은 무슬림 전파자들이다.
무료로 나눠주는 전도책자 제목이 재밌어서(Christ in Islam, The True Massage of Jesus Christ 등) 유심히 보고 있다가 30분간 이들의 전도를 받았다. 민다나오에서 선교를 위해 이곳에 왔다는 이 세 청년들은 영어도 아주 유창하고 매너도 좋았다. 한국에서는 무슬림 만날 기회가 흔치 않다고 하니까 책도 세 권 챙겨주고 자기네 교회당에 와보라고 하루에 다섯 차례 진행되는 기도시간까지 꼼꼼히 적어준다.
집회를 하든 전도를 하든... 오랜만에 놀러나온 바기오 시민들은 각자 놀기 바쁘다.
배도 타고
3인승 자전거마차도 타고
헤나(그리는 문신)도 하고
공원 테이블(타일을 박아 만들었다) 체스 판에서 돌맹이와 나뭇가지로 말을 만들어 체스도 두고
돈 내고 개랑 사진도 찍고...
모두모두 행복한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바기오 시민들의 행복한 순간을 탐색하느라 세 시간 가까이 다리품을 팔던 나....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다시 SM으로 돌아간다. 진즉부터 짬나면 극장에 한번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터였기에 좀 쉬기도 할겸ㅡ 영화나 한편 볼 참이다.
못알아듣더라도 재미삼아 따갈로그어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애석하게도 따갈로그어 영화는 내일부터 상영한단다. 할수없이 아무거나 고른다고 골라 들어갔는데.... 어흐흐...Epic Movie였다.
이 영화가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한 영화가 맞는가?
아무리 패러디 영화라지만... 보다 보다 지겨워서 한숨 푹 잤다.
필리핀 영화관의 특징?
안내원이 플래시를 들고 들어오는 사람의 자리를 일일이 찾아준다는 것.
상영이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계속 사람들이 들어와 화면을 가린다는 것.
영어로 제작된 영화는 자막이 없다는 것.(놀라웠음)
내일부터 상영된다는 타갈로그어 영화 포스터. 하춘화씨가 여기 와서 영화 찍었나 했다. ㅎㅎ
영화관을 나오니 완전히 날이 저물었다. 저녁 7시.
언니 걱정하실까봐 전화를 하려다가 내일 또 먼길을 떠나야 하니 그만 놀고 들어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