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동국대 앞
지하철역 커피숍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이 여인과 나는 천리안에서 실시하는 인터넷 교육에 참가하여 길에서 고개를 꺾어야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지대에 올라앉은 동국대... 하고도 거기서 언덕 두 개를 더 올라가야 하는 학생회관 건물... 하고도 엘리베이터도 없는 그
건물의 제일 꼭대기, 5층에서 교육을 받고 나온 길이었습니다.
교육은 생각보다 쉬운 내용이어서 (이미 검색 정도는 할 수 있던
수준이라) 조금 심심해진 이 여인은 딴짓을 했더랬습니다. 그 여인은 당시 매일 정보를 업그레이드 해주는 야간작업을 하고
있던 터라 '오늘은 낮에 일을 하고 밤에 인간답게 자보자'는 각오로 교육을 받는 틈틈이 열심히 자료를 다운받고 정리한 결과 서너
시간분의 수면을 확보할 만큼의 작업결과를 디스켓에 저장했더랬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우리는 5층건물에서 내려와 급경사진 교정을 거쳐
가파른 교문을 빠져나와 길을 건너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걸어내려갔죠.. 잠시 다리를 쉰다고 커피를 마시던 이 여인 갑자기 고개를
쳐들며 담담하게 말합니다.
'아, 두고 왔네... 잠깐만...'
두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여인... 나는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갔던 길을 다시 밟고 돌아온 여인에게 어떻게 그렇게 열도 안 받고 망설임도 없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 여인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그냥 갔다오는 게 젤 나은 방법이거든...'
훗날 내가 이 굳센 여인에게 그때 내가 감동 먹었다는 얘기를 하니 이 여인 말, 자기는 이 후배를 따라 한 거래요. 타자기에서
워드로, 거기서 286PC로 넘어가고 얼마 안된 시대의 이야기. "일하면서 자료 엄청 날렸지. 저장 안하고 작업하다가.한번은 밤새고 작업을
했는데, 저장을 안한 거야. 우리는 다 기겁하고, 맥없이 손놓고 늘어져 있는데, 그때 대단한(?) 후배가 PC 앞에 앉더라고. '뭐
할라고??' '다시 칠 거면 빨리 시작하는 편이 낫지'---"
그 여인도 그 후배도 아직까지 이 스타일을
고수하며 살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