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에는 신선이 산다--장가계 1
국경절에 장가계를 가다니... 한 마디로 사람구경을 하러 가는 거죠. 그래도 가자네요. 최근 마음고생이 많았던 남편이 잠시라도 상해를 떠나고 싶다네요. 휴가 때가 되면 운동화끈 못 매어 안절부절하는 건 내 쪽이고, 나 혼자 나서서 교통 숙박 다 예약해놔도 떠나는 순간까지 방구들에 늘어붙은 껌처럼 뜸을 들이는 쪽이 남편인데... 이 무슨 횡재랍니까. 국경절에는 아시다시피 개인적으로 여행을 다니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에 서둘러 (남편 맘 변하기 전에) 여행상품을 뒤졌는데 그리 눈에 들어오는 게 없데요. 결국 장가계로 낙점... 2000년에 손님을 모시고 한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남편과 함께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다시 가도 좋을 것 같았거든요. 역시 좋았습니다. 첫째, 남편이 놀 자세가 되어 있어서 좋았고 둘째, 날씨가 아주 좋았고(드문 편인데) 셋째, 같이 간 사람들이 좋았고(무릇 여행 재미의 절반은 이거죠) 넷째, 경치도 여전히 좋았고(한국 사람처럼 산의 품에 안겨 노는 것이라면 몰라도 중국식으로 보고 지나가는 관광형식이라 똑같은 형태로 한번 더 간다면 그땐 좀 질릴지도...) 다섯째, 두 번째 간 곳이라 좀더 여유있게 깊이 여행지를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고... 줄서기? 설 만큼 섰죠. 첫날 黃石寨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1시간 40분을 기다려서 탔답니다. 매표소 앞에 새치기 하지 말라고 쳐놓은 쇠울타리를 따라 형성된 줄이 15개, 1줄에 어림잡아 30명씩 섰으니 450명, 그래도 우리는 빨리 도착한 편이어서 그리 오래 기다린 건 아니라고 하네요. 그런데 줄서기 막바지에 드디어 케이블카 정거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서서 굽어보니 쇠울타리 밖으로도 200미터 이상 줄을 섰더라구요.
그래도 지루하진 않았답니다. 이 수다쟁이 아줌마, 계속 파트너 바꿔가며 수다를 떨어댔으니까요. 우리 팀 어린이들로부터 시작해서 산터우에서 온 아저씨, 란저우에서 온 아줌마(이 아줌마는 이틀 전 저녁에 잉워를 타고 30시간을 달려 오늘 아침에 도착했으며, 모레 저녁에 다시 기차를 탄다고 합니다) 등등 전국 각지의 펑여우(?)들과 중국천하(!)를 논하고 오늘의 요리를 논하고 교육문제를 논하고... 밤도 까먹고 삥홍차 마셔가며 놀멘놀멘 하다 보니 금새 차례가 되더군요. 지루해서 열받게 만드는 건 환경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더라구요. 몇 년만에 등산 둘째날 天子山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타야 하는데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번에는 세 시간 줄을 서야 한다고 하네요. 걸어올라가면 두 시간 걸린대요. 남편이 걷기 싫어하는 중국사람들 선동에 나서는군요. “두 시간을 걸어올라갈래, 세 시간을 땡볕에서 기다리다 80원 내고 올라갈래?”.... “5上5下라고는 하지만 처음 올라갈 때만 힘들지 일단 올라가고 나면 능선이기 때문에 나머지 네 봉우리는 식은죽 먹기다.” “난 걸어올라갈 껀데... 누가 먼저 도착하나 시합할까?”.... 젊은부부팀들의 지지를 받아 결국 팀 전부 걸어올라가는 쪽으로 노선을 돌리기는 했는데... 해발 1000미터 봉우리에 이리저리 돌리지도 않고 직접 올려버린 40도~60도 급경사진 계단이 장난은 아니더군요. 그래도 선동한 죄가 있어 팀을 선도하느라고 힘든 내색 안 하고 올라가느라 오랜만에 이 할미 무릎이 고생 좀 했습니다. 다리쉼 할 때도 엉덩이 붙이면 다시 못 일어날까봐 선 채로 쉬면서 간신히 정상에 오른 뒤에 이 지방 특산 갈근가루로 만든 涼粉 한그릇을 먹는데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금방 터져버릴 지경이군요. 그래도 오랜만에 폭탄노릇 안 하고 산에 오른 내가 얼마나 대견하던지! (천자산 정상입니다)
(내려가는 길은 모두들 죽겠다고 하여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두 시간 기다렸음)
天子山을 직접 걸어올라간다는 데 지레 겁을 먹은 일행들이 힘을 저축하기 위해 十里畵廊은 꼬마기차를 타고가자고 하여, 그 좋은 풍광 그 편한 길을 어린애들처럼 꼬마기차 타고 휘익 지나갔지요. 하지만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시절에는 십리화랑을 걸어가며 감상하고, 천자산에 올라갈 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며 전망을 감상하는 것이 정답인 것 같아요. 고개 꺾어가며 팍팍한 계단 힘들게 오르는게 그리 재밌지는 않거든요. 아무튼 휴가기간 중 이틀은 원없이 운동을 했네요. 첫날 오후에도 金鞭寨 계곡을 걸을 때는 관광객 행렬이 걸거치는 게 싫어서 사진기는 남편에게 맡기고 가마꾼 뒤를 따라 뛰다시피 걸었거든요. 그랬더니 흐미, 7.5km 정도 되는 길을 1시간 20분에 주파했네요. 나의 걷기 최고기록입니다. 2편에서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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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중국에는 삼대 휴가가 있습니다. 5월1일 노동절, 10월 1일 국경절(중국인민공화국 건립기념일) 춘절(구정)... 이 휴가 기간은 기본이 3일이요 짠 곳은 5일... 보통은 7일입니다. 중국정부가 소비를 진작시키고자 여행을 장려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주말이 끼면 앞으로 뒤로 당겨서 놀아제끼고 그다음주 일요일에는 출근하는 게 보통입니다. 이 휴가기간에 여행길에 나섰다가 운이 나쁘면 압사하는 수가 있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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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패키지여행상품 가격은 거리와 교통편에 따라 工人들 한달 월급이냐, 대졸자 초임 한달 월급이냐, 경력5년차 이상 중견간부 한달 월급이냐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흠.. 이건 상해 기준이군요) 따라서 계산상으로 보자면 평범한 월급장이들이 여행 떠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실제로 중국여행사 패키지에 참가해보면 주머니 사정들이 다들 왠만한 것 같더라구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에요. 벽지 속에 돈을 넣고 도배를 한다는 농담도 있지만 정말 그런 건지...
이번 여행에서도 아주 평범한 젊은 샐러리맨들이 대부분인 팀에 끼어 보통 중국 젊은이들의 생활에 빠져볼 수 있었답니다.
주3) 기차의 딱딱한 침대칸. 한 칸에 3층 침대가 두 줄씩 놓여있습니다. 1층은 편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꼬여들고 3층은 호젓하지만 에어컨의 온난풍이 직접 닿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물렁한 침대칸(軟臥)은 硬臥의 2배 요금이며 4인1실로 문을 닫게 되어 있습니다. 땅 넓은 중국 기차여행에서는 침대가 기본입니다. 물론 3박4일을 꼿꼿이 앉아서 다니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주4) 중국사람들 대부분이 등산보다는 쉽게 산정상에 올라 천하를 굽어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산에 케이블카는 기본, 에스칼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도 하고 없는 곳에는 버스, 혹은 가마가 등장하여 산 정상까지 데려다줍니다.
우리 정서로는 같은 인간으로서 땀이 비오듯 하는 어깨에 얹혀 가기가 쉽지 않지만 가마꾼들은 하나라도 더 태우기 위해 끈질기게 달라붙습니다. 한국사람으로 보이면 무조건 "카마, 카마" 외칩니다. 처음엔 저 그 말이 come on! come on! 인 줄 알았답니다. 근데 이 가마 무쟈게 비쌉니다. 한시간 거리에 300원(우리 돈으로 5만원) 정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