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억울하다 3
그리고 한 달이 지나니 세무서에서 증여세와 양도소득세를 자진신고/납부하라는 통지가 왔다.
지금까지 세금이라면 세무서에서 얼마 내라고 알려주는 줄만 알았던 나는, 통지서에 '국세청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세금계산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세액을 계산하시오. 국세청에서는 세금을 계산해주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걸 보고, (이미 증여와 매매에 관한 자료가 국세청에 입수되어 있어서) 상속인의 주민등록번호만 넣으면 된 세금액을 조회할 수 있다는 얘기로 알아들었다. (일련의 소동을 거치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소가 웃을 일. 이 순진한 아짐씨, 언제 월급 외에 큰 돈을 만져봤어야 말이지) 헌데 상속해주는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넣으라는데... 1961년엔가 돌아가신 분이니 어디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 말이지. 좌절.
국세청 민원실로 전화하여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니 누구의 주민번호라도 상관없으니 일단 양식이 요구하는 대로 쳐넣고, 소재지와 액수, 받은 날짜만 넣으면 프로그램이 계산을 해줄거란다. 헌데 그 양식이 요구하는 것이 그리 간단치가 않아 더 꼬치꼬치 물으니 "아줌마가 직접 하시게요? 그거 쉽지 않을 텐데 웬만하면 세무대리인에게 맡기시죠" 한다. 아니, 그렇다면 왜 직접 계산을 해보라는 안내문을 넣었단 말인가. 사람 헷갈리게.... 난 그게 가전제품 매뉴얼 처럼 보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건 줄 알았잖아.
그리하여 세무서 부근의 한 세무사 사무실을 찾아들어간 만옥이....
순창에서 만났던 고某씨와 비슷한 연령, 비슷한 인상의 할아버지가 우선 등기부등본부터 보여달라고 하더니 "아니, 이게 뭐여.... 이거 등기가 잘못됐네. 이건 증여가 아니라 상속이잖어" 한다. 만옥이, 화들짝 놀라 같이 등기부등본을 들여다본다. 분명히 처음 본 건 아닌데 이 할아버지의 지적을 받고 보니 마치 처음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상속이면 세금은 거의 안 나와. 일단 상속으로 간주하고 양도소득세만 내고... 이건 바로잡아야 혀. 나중에라도 문제 될 수 있으니까. "
"그걸 어떻게 바로잡죠?"
"그거야 내가 모르지. 군청이나 등기소나 한번 가서 얘기 잘 해봐. 명백한 사실이잖여."
"그럼 양도소득세는 얼마 정도 나올까요? 군청에서는 거의 안 나올거라고 하던데...."
"그거야 상속 받은 1967년의 토지 가액을 알아야 양도차액을 뽑을 수 있지. 얼렁 동사무소 가서 토지대장 한 부 떼어오셔. 1991년부터 고시가격이 매겨졌으니까 1967년도 토지 가격은 있지도 않을껴. 그러니까 토지등급이 매겨진 1985년 것 정도 떼어오면 얼추 비슷할껴.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최**씨가 할아버지라는 사실이 나오는 호적등본이나 제적등본 같은 거 한 부 떼어오고..."
헌데 인근 동사무소에서 1985년도 토지대장과 제적등본을 떼어 가지고 돌아오니 사무실이 난리가 났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 태양모를 쓴 아주머니가 버티고 앉아 세무사 할아버지를 향해 고함을 치며 삿대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사연은 처음부터 듣지 않아 잘 모르겠으나 아줌마는 사건을 제대로 처리 못해 세금을 옴팡 썼으니 수임료랑 손해본 거 다 물어내라 하고 할아버지는 다 끝난 일 가지고 택도 없이 트집이다, 남 일하는데 행패부리면 경찰 부르겠다고 맞선다.
밖에서 잠잠해지길 암만 기다려봐도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급기야 욕설까지 오가길래 사무실로 들어가니 할아버지가 몹시 나를 반기며 너무나 친절하고 신속하게 계산을 시작하신다. 다른 손님이 있든 말든 계속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줌마 옆에 앉아 있자니 불편하기가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어수선한 와중에 계산을 하다가 틀리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고, (누구 주장이 옳은가는 몰라도) 이렇게 사단이 난 사무실에 뭘 맡기는 게 아닌데 싶어 약간 불안하다. 허나 저렇게 열심히 계산을 하고 있는데 이 어수선한 속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까지, "세무사님, 됐거든요? 저 그냥 갈래요" 할 수가 있나. 뭐 그리 어려운 계산도 아니겠고....
사실 내 마음을 더 거북하게 하는 것은 어떻게 소유권 이전이 '상속'이 아니고 '증여'로 둔갑했는지, 과연 군청이나 등기소에서 잘못된 등기의 내용을 고치는 것을 순순히 도와줄지에 대한 염려였다. 혹시나 싶어
할아버지가 서류를 꾸미는 막간을 이용하여 나는 일단 등기소 민원실에 전화를 걸어 잘못된 등기의 내용을 정정할 수 있는 절차가 있는지 물었다. 등기소 측에서는 '자기네는 제출된 서류에 (형식상의) 오류나 누락사항이 없으면 등기를 해주니 내용의 문제는 군청과 협의를 하라고 한다.
군청측은 당시 접수된 소유권 이전신청서를 찾아보더니, "증여로 신청하셨구만요 뭐..." 하더니
"이제 등기도 넘기셨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한다.
앗, 그랬구나..... 이 대목에서 가슴이 쿵쾅쿵쾅 뛰며 고某씨 생각이 딱 떠오른다.
그랬구나, 나쁜 영감태기... 도대체 왜! 나랑 무슨 원수가 졌다고! 그래서 자기에게 돌아오는 게 뭔데!!!
당장 고某씨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을 쳤다.
"아저씨, 도대체 왜 남의 서류에 손을 대요? 왜 멀쩡한 상속을 증여라고 했어요? 아저씨 때문에 골치아프게 생겼어요. 이제 어떻게 하실 꺼예요? 책임지고 해결하세요."
"내가 왜 남으 서류에 손을 대요? 난 증여구 상속이구 그런 거 몰러요. 남들은 순순히 잘 끝내든디 유난시리 왜 그런래요? 난 몰러요. 난 손도 안 댔고 그런 거 암껏도 몰르니께 나한테 그러지 말어요." 뚝~
에구, 뒷처리 하려면 골치깨나 아프겠구나. 암만해도 다음주에 직접 내려가서 처리해야 하려나보다.
그런데.... 점입가경이다. 세무사 할아버지가 양도세를 뽑아놓고 하시는 말씀,
"이거 꼭 상속으로 고쳐놔야 해. 증여받은 날짜가 올해 4월로 되어 있는데(소유권 이전등기를 한 날짜) 이걸 1년 안에 양도하게 되면 세금이 50%거든. 그럼, 그게 얼마냐...."
할아버지가 계산 뽑아놓은 걸 보니 실질적인 상속이 이루어진 1967년 5월의 토지 추정가와 2007년 4월 순창군청에 매각하고 받은 보상가의 차액이 2000만원이나 된단다. 아니, 그 옛날 땅값도 없던 시절의 가격을 기준으로 삼아 양도세를 물린다고? 좀 억울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진신고로 10% 감면받으면 8% 정도야 감수하겠다. 헌데 50%라니....공익사업에 수용되는 토지에 대한 감면 10%를 감안한다 해도 세금이 물경 900만원이라는 얘기다.
이미 보상금도 사이좋게 다 나눠가진 이 마당에 쌩돈 천만원을 게워낸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우리가 처분하고 싶어 처분한 것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돈 벌려고 판 것도 아닌데 정부 사업에 협조한 결과가 사소한 실수(그것도 명백히 소명할 수 있는)로 인해 무자비한 중과세로 돌아온다면.....
고씨가 그랬을까? 고씨가 뭣땜에 그래?
그럼 내가 그렇게 잘못 썼을까? 아쒸~ 몰라.... 기억 안 나!
다시 군청에 전화를 한다.
"내가 혹은 고某씨가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간에 잘못된 등기는 바로잡아줘야 한다. 그걸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규정대로 하겠다고 하면 나 절대로 포기 안 한다. 아니, 포기할 수가 없다. 돈 천만원이 애들 이름도 아니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로부터 손자에게 넘어온 삼천만원짜리 땅에 천만원의 세금을 매기는 피도 눈물도 없는 행정에는 절대 굴복 못한다.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군청에서 안 도와주면 나는 이 사안을 국세청으로 청와대로 끌고가겠다. 민원, 소송.... 뭐라도 하겠다......" (거의 울먹이는 모드...)
군청 담당자도 세금 천만원 얘길 듣더니 더 뭐라고도 못하고 한숨만 푹푹 쉰다.
방법을 찾자면 군청에서 등기를 말소하고 우리가 받은 보상금 다시 회수하고 우리도 등기를 말소하고...
마을할아버지들 도장 받던 때부터 시작하여 소유권 이전등기 맨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거다. 머리가 아프기도 하겠지...그래도 내 코가 석잔데 어쩌겠나.
일단 250여만원이 매겨진 양도세 납부 고지서를 받아들고 돌아오는 발길이 천근만근이다. 당장 순창으로 내려가고 싶지만 내일은 또 시아버님 기일.... 그리고는 주말이니 천상 다음주에나 내려가야 할 텐데,
만일 얘기가 잘 되어 등기를 말소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양도소득세는 당장 낼 필요가 없다. 헌데 양도소득세에서 10%라도 감면혜택을 받으려면 6월 30일까지 납부해야 하니... 우째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헌데 집에 돌아와 세무사 사무실에 넘기고 남은 서류들을 정리하다 보니
'확인서'라는 양식이 눈에 띈다. 썼다가 뭘 잘못 써서 툇자 맞은 서류인데 살펴보니 내 자필이 선명하다. '상속'이라고 쓴....
것봐라, 난 상속이라고 썼잖냐! 도대체 이게 어쩌다 증여로 둔갑했냐 말이다....
마음이 이렇게 복잡한 상태에서 나는 그날밤 '...... 그러나 나는 억울하다 1'을 썼던 것이다. 뜻밖에 대형사고를 불러온 사소한, 게다가 순순히 인정하기 어려울 만큼 기억조차 희미한 나의 부주의(당시에는 그렇게 간주하고....)를 탓하면서.....
(에이, 줄줄 또 길어집니다. 이 얘기가 나한테나 추억담이지 남들에게 무신 그리 중요한 얘기라고...
두 번으로도 안 끝내지는 이 왕수다.. 다음회엔 기필코 막을 내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