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萬玉 2004. 10. 26. 18:24

울 아들넘 초등학교 입학하고 몇 달 지나 공개수업을 한다고 해서 한번 보러 갔다.

선생님이 물으시면 아이들이 저요! 저요! 앞다투어 손을 드는데

울 아들넘 영감탱이처럼 몸을 앞뒤로 흔들흔들 하며 구경만 하고 있다.

교실 뒷쪽 발표할 때마다 하나씩 붙여준 스티커 그래프.... 울 아들넘 자리에는 겨우 두 개가 붙어 있더라.

 

집에 와서 왜 너는 손을 안 드느냐, 몰라서 그런 거냐 물어보니

"대답할 애들 많은데 뭐~ " 한다.

(아 글씨 이게 일곱살짜리 애녀석이 할 말이냐 말이지...)

나도 잠깐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쳐본 적이 있지만 그 나이에 애들이란 대부분 스티커 내지는 참잘했어요 도장에 목숨을 거는 것이 정상인데... 이녀석 벌써부터 그 보상의 별거아님을 하찮게 여겼단 말이더냐.

 

이녀석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외적인 보상에는 꿈쩍도 안 한다. 외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그닥 마음을 안 쓴다.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내적 동기가 강하며 자족할 줄 아는 것이고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외적인 세계에 대한 반응에 성의가 없는 것이다.

내적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다면 객관적으로 퇴보하기 딱 좋은 마음가짐이다.

 

가끔 이 녀석의 그런 점이 나를 닮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나름대로 무엇엔가 미쳐 있었다.

내 안의 엔진이 거세게 이끄는 대로...  적어도 중국에 오기 전까지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성취(재력 포함)"는 안중에도 없었고)....

 

중국에 온 뒤에도 개척자적인(?) 치기에 이끌려 4년을 살았고

그리고 남편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그리 나답지 않은 일을 했던 3년간...

그나마 내적 동기가 있었다면 몸에 배인 "선도자", "범생이"의 습관과 자존심....

 

이끌려가는 기분을 떨치지 못하여 과감하게 탈선(?)을 한 지 이제 석 달..

남들은 이제 좀 럭셔리(+.+)하게 살겠구나... 하는데...

나는 이제서야 내 인생과의 면대가 불가피함을 느끼며... 백지 같은 막막함 앞에서

...

 

(음, 나 떨고 있냐? )   

 

뭔가를 하고 싶어서 탈선을 한 게 맞는 것 같은데

사실 뭔가를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이걸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 살펴보면 그야말로 (연변말로) "맛 같지가 않다"

 

탈선할 때 마음은 그동안 접어뒀던 많은 짓들을 질리도록 해보겠다는 것이었고

내 시간을 내가 지배하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일을 하게 되더라도 완전히 "내" 페이스로 하리라는...)

  

일과로만 보면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인 것 같긴 하다.

아침 일찍 남편 출근시켜놓고 집 뒤 공원에 나가 7000보 걷고 샤워하고

집에 있으면 더 망가질까봐 회사 출근할 때는 하지도 않던 화장에 세트까지 말고

까페랑 칼럼이랑 메일 훑어보고 (글이라도 하나 올리기 시작하면 어느새 점심 때)

자주 가는 사이트 몇개 돌다가(중국 사이트 검색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점심 때)

 

점심 먹고는 일단 온라인에서 내려온다.

혼자 있으니 굳이 인터넷을 제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일부러 외출할 껀수를 만든다.

일부러 안 하던 갖가지 연습들을 꺼내어 건드려본다.

식구가 없어 대충 한끼 지나가던 저녁식사도 제대로 한번 챙겨보자고 장 잔뜩 봐가지고 와서 손 많이 가는 요리도 해보고... ㅎㅎ

.

.

.

 

근데 왜 이것도 한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 걸까?

왜 몰입이 되지 않는 건가 말이다.

사실 심신의 컨디션이 특별히 좋은 날은 하루해도 짧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은 휭 뚫린 마음의 구멍을 막을 길이 없군. 

 

아침에 허둥지둥 출근하면 밤 여덟시 넘게 들어와 저녁해먹기 바빴을 때는 

나에게 또 남에게나 정성을 다할 "여유"를 그렇게 그리워했는데

막상 "여유"가 생겨버리니 그 하고 싶던 일들이 귀찮다는 생각을 떨쳐내질 못한다.

몸은 부지런하게 움직이지만.. 언젠가는 걷어치울 소꿉장 하는 아이처럼... 막이 내리면 지워버릴 질펀한 화장을 하고 있는 연극배우처럼 느껴지는 것을 어이하랴.

 

그렇다고 중국생활 8년차에 사회생활 짬밥이 이 정도 되는 아줌마...

이 동네 상식에 따라 이제 독자적으로 "능력"을 발휘하랴? 

 

내가 논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뭐할건데?" 물어보고

"놀꺼야 실컷" 하면 다들 "설마..." 하는 표정들이다.  

열심히 오를 가능성 있는 아파트 정보 수집해가지고 상하이 부동산 통이 되라고?

한국 드나들 때 재주껏 짝퉁이 한보따리씩 챙겨가지고 들어가고?  

아님, 사립학교가 세 개나 모여 있는 이 동네에 팬시점이나 차려서 소일을?

(하면 또 못할 건 뭐람. )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나는 왜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런 말쌈이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배 부르고 등 따셔서 그런다고?

(설마... 나는 그만저만한 월급쟁이의 아내일 뿐이다)  

그럼 인도에 갈 시간이 된 건가? ㅎㅎ

 

"무엇엔가 쫓기는" 이  기분... 내려놓고 싶다.

왜 나는 마음 편하게 놀지도 못하나...

남들 목숨 거는 웰빙... 콩갈고 멸치 갈고 호두 갈고 하면서

나는 왜 자꾸 세월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지....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디자인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내놓기에 너무 늦은,

그러나 사실 그리 늦지도 않은 마흔일곱이라는 어정쩡한 나이...

그래서 이렇게 괴로운 것이냐.

 

귀하게 얻은 자유를 이렇게 어쩌지 못하고... 감당을 못하고

다시 짜여진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에 빠져 있는 나 자신... 참 딱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