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花樣年華

자서전이나 써볼까 합니다

張萬玉 2004. 10. 29. 12:37

백수생활이 일정 기간 경과하면 자서전 쓰기 단계로 돌입한다면서요? ㅎㅎ

저도 갑자기 자서전 쓰기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공주/왕자의 럭셔리버전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나 이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평범할 뿐만 아니라 꼬질꼬질하기까지 한 사람이 어째서 자서전을... 누구 보라고..


아마 저는 제 지난 시절에 대해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나 봅니다.

비록 잡동사니지만 잘 헤쳐보면 뭔가가 좀 나올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사실 인간사가 그렇지 않은가요? 수많은 연속극들.. 요약해보면 뻔할 뻔자 사연들이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푹 빠져버리지 않던가요?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치스러워봐야 얼마나 수치스러울 것이며 자랑을 한댔자 얼마나 오만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라는 보편성, 더군다나 475세대, 한국이라는 장소, 여성이라는 특성이 갖는 보편성 속에서 볼 때 나 역시 張三李四의 하나일 뿐...

익명(사실은 반익명)이라는 보호막을 사용해서 한번 시작해보렵니다.

언제 또 변덕이 나면 삭제해버릴지 모르지만... ㅎㅎ 


읽다가 짜증나면 악담해주십시오.

타당하면 삭제하겠습니다.

그럼 맛뵈기로 1회분 나갑니다...

 


1958~1961년


이 시기는 당연히 기억에 없다.

당시 가세가 한참 기울었을 때라 먹는 것도 시원찮았을 엄마의 부족한 젖을 미음으로 보태면서 컸다는 얘길 들었지만, 그래도 부모님께는 소중한 딸이었을 테지. 아기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돌사진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으니 안타깝지만 알 길이 없다.


내 출생지는 대전시 선화동으로 되어 있는데, 아버지가 하시던 자동차 부속가게가 망해서 셋째오빠 낳은 지 100일 만에 대전 집을 처분하고 서울로 와 며칠간 여인숙 등지를 전전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그럼 그때 우리 가족이 서울에 정착한 게 아니었나? 어째서 내 고향이 대전시 선화동이 되었는지 궁금하군. 이번에 한국 가면 잊어버리지 말고 오빠들에게 좀 물어봐야겠다.


아무튼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최초의 풍경은 낡은 목조건물이 좁은 진창길을 사이에 두고 죽 늘어선 서울 서대문구 순화동(이화여고 뒤쪽) 골목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언니가 국어교과서(나이팅게일이 강아지 다리를 붕대로 싸매주는 이야기)를 읽어주던 기억이 난다. 그 때가 한국 나이로 네 살, 갓 세 돌이 지났을 적인데 기억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아마 아이들이 말귀 알아들을 정도로 언어학습이 되었을 때부터 기억이 남는 모양이다.


1962년

순화동 다음 장면은 청파동이다. 큰 한옥집의 곁방살이를 했던 것 같다.

 

그때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셨었는지는 몰라도 늘 집에 양식이 없어서 구호품으로 받아온 강냉이가루로 찐 빵이 자주 저녁상에 오르곤 했는데, 노랗게 찐 그 빵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던지 주인집 어린 딸네미가 저녁 먹기 전에 한 개씩 얻어먹고 정작 자기 집 저녁을 먹지 않아 주인집 아주머니가 성화를 대곤 했다.

 

입장이 난처해진 엄마가 그 집 저녁상 물린 뒤에나 빵을 찌기 시작하니 우리 형제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고픈 배를 움켜쥐고 기다려야 했지. 어려서 그런 내막은 몰랐지만 아무튼 주인집이 얼른 밥상 물리기를 기다렸던 기억만은 생생하다.

 

나와 또래였던 그 계집애는 텃세도 심해서 나랑 잘 놀다가도 내가 ‘만리동에 말야’  하면 ‘안 돼, 우리 만리동이야’ 하면서 입도 뻥끗 못하게 했다. 내가 질소냐 하고 만리동 얘기를 계속하면 울고 불고 난리가 난다. 그러면 엄마가 뛰어나와 나만 야단을 치면서 얼른 방으로 데려가고...

어린 마음에 얼마나 분통이 터졌으면 지금까지도 그놈의 “만리동”을 잊지 않고 있을꼬. (만리동에 무슨 연고가 있어서 당시에 만리동 얘길 했는지 지금도 모른다.)


그 집의 추억과 묶여 있는 노래 두 곡

‘청춘목장’(그집 아주머니가 전축에 판 걸고 맨날 틀어놓던 곡) ... ㅎㅎ

‘찬서리 지붕 위에 하얗게 내린밤 가랑잎 오들오들 떨면서 어디 가나’

(제목은 모르나 중학교 음악교과서에 있던 노래로 나중에 알고 보니 모차르트 곡에 가사를 붙인 노래... 울 언니가 늘 이 곡을 입에 달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