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아이테크의 특허품인 조이칩은 여러분 자녀의 두뇌에 이식되어
살면서 겪는 모든 기억을 빠짐없이 기록하게 됩니다.
이제 아름다운 기억들은 영원 속에 간직 될 것입니다.
조이칩은 영원, 바로 그것입니다.
‘조이칩’은 한 인간의 삶을 기록하는 일종의 기억장치이다. 이식된 조이칩에 기록된 영상은 그 사람이 죽은 후 편집하여 장례식 때 상영하게 되는데, 이를 ‘리메모리’라고 일컫는다. 일부 특권계층의 장난감으로 여겨지는 조이칩은 ‘인간의 기억’에 대한 혁명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억의 소멸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조이칩의 폐기를 주장하는 반대파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커터’의 편집은 곧 구원이다!
앨런 해크먼(로빈 윌리엄스)는 리메모리 분야에서 가장 촉망받는 편집자, 즉 ‘커터’. 사람들의 부도덕한 과거마저도 아름답게 포장해내는 그의 편집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타인의 삶을 아무런 감흥없이 취급해야 하는 그는 점점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그는 스스로 ‘죄를 사하는 존재’ 로 일컬으며 사자(死者)들의 죄를 용서한다고 자부한다. 타인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자신 역시 구원 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억에 진실은 있는가?
어느날 아이테크 사(社) 임원의 ‘리메모리’를 편집하던 주인공은 잊으려 애썼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치게 되고, 혼란에 휩싸인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비친 자신의 과거와 자신의 기억속에 남겨진 과거, 어느쪽이 진실인가?
<http://movie.daum.net/movieInfo?mkey=42421&mode=1
에서 펌>
엊저녁 뉴스가 끝나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중간부터 본 영화다.
로빈 윌리엄스가 나오길래 또 무슨 메시지를 주려고 이러시나, 하며 채널을 고정했는데
처음엔 영화 앞부분을 놓쳐 설정을 이해하느라고 헤맸고, 뒤로 가면서는 포커스가 미국영화의 상투적인 관심(주인공의 지난 시절과 상처) 쪽으로 옮겨지는 바람에 살짝 김 새버리고.... 그리하여 영화 자체는 그저그랬다.
헌데 잠자리에 든 뒤에도 그 영화에의 중심 아이디어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밤드리 노닐고 말았다.
선택적 知覺, 선택적 記憶
이 영화에서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테마 -- 인간의 '기억에 대한 집착', '아픈 기억에 대한 심리적 방어기제의 발동'--는 또다른 영화 '메멘토'를 떠올리게 한다. 무지하게 헷갈리게 만드는 영화였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부정하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 부끄러운 기억은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아무리 강하고 자신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본인도 모르는 어느 구석인가에는) 면대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의 그것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비교적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다 까발리면서 산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그것은 내 머리속의 검열관을 피해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꼭꼭 숨어버린 게 틀림없다.
파보긴 뭘 파봐? 사는 데 지장 없으면 그렇게 묻어두고 사는 거지. 중요한 건 자신이 포함된 장면을 바라볼 때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웬만하면 그것이 주는 충격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렷다. 이미 유아독존 착각 속에 사는 어린애가 아니잖은가. 별로 잘난 것도 없으면서 시기하고 욕심 부리고 속 좁아 잘 삐지고 교활하게 뒷다마 굴리는.... 나 역시 그렇고 그런 '張三李四' 중 하나라는 걸 인정한다면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싶다.
블러그질, 조이 칩과 닮았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는 어떤지 몰라도 내게 있어서 블러그란 조이 칩과 같은 존재. 내 몸 속에 있지는 않지만 어언 3년간의 세월을 내 눈과 대뇌, 내 손끝에 들러붙어 나와 함께 자라왔다.
조이칩과 다른 점이 있다면 조이 칩은 모든 장면을 객관적으로 기록하지만 블러그는 이미 '편집자'의 역할까지 해가며 주관적, 선택적으로 기록했다는 한계가 있다. 조이 칩에 기록된 바이오그래피는 그 주인의 사후에 확인할 수 있지만 블러그는 외로울 때, 그리울 때, 반추가 필요할 때 주인이 언제라도 뒤져볼 수 있다. 편집자 역할을 겸하고 있다는 점은 객관적이기 어렵다는 단점이지만 오히려 스스로에게 만족을 준다는 점에서 살아있을 땐 아무 좋은일도 못해주는 조이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장점도 된다.
이런 뻘짓.... 다 살아있는 나를 고무하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지. ㅎㅎㅎ
조이 칩은 근미래에 실현 가능한 컨셉 아닐까?
이미 우리 몸 속에는 많은 기계들이 들어와 일하고 있다. 몸 속을 스캐닝하는 건 이미 의학적인 상식이 되었고 콘택트렌즈, 인공관절, 인공와우, 치아 임플란트......앞으로는 (마치 SF영화에 등장하는 사이보그나 안드로이드처럼) 더 많은 신체기관이 생물학적 결함을 능가하는 기계부품으로 대치될 것이다.
기능이 망가진 소뇌나 대뇌를 부품으로 대체하지 말란 법이 있는가? 종잇장이나 실오라기 크기의 카메라를 개발해내는 놀라운 전자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신경세포와 연결된 어딘가에 좁쌀알만한 메모리 칩 하나 이식하지 못하란 법도 없지. 기계의 도움을 받아 思考하는 인간이라....웬지 인간답지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또 모른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하는 시대가 정말 올지 누가 알겠나.
천 년 후에 우리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가치관도 달라지고 라이프스타일도 달라지고 길게는 심지어 외양까지 달라지고 있는데
천년 후(너무 길게 잡았나?)에 이 지구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과연 어떤자들일까? SF 소설 속에 나오는 인간들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생물체가 되는 건 아닐까? 천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우리의 자손들은 무엇을 '인간답다'고 할 것이며 '인간의 미덕'을 두고 어떤 점을 운위할지.
이 블러그는 언제쯤 사라질지...
혹 나의 후손들이 나를 추모하기 위해 좁쌀만한 칩 속에 넣어 쌀항아리에 보관하고 있을지.. ^^
뒷소리
지극히 현실적인 데다 상상력도 과학지식도 빈곤한 내게 SF 소설이나 영화 쪽은 관심 밖이지만 이십몇년 전 출판사 다닐 때 SF소설 매니아였던 사장님 취향에 따라 SF소설을 기획한 적이 있었다. 파이널 컷을 본 뒤에 잡생각으로 잠이 천리만리 달아나고 있을 때 갑자기 그시절에 만들어 지금도 소장하고 있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와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생각나 꺼내봤더니 얼마나 재밌던지.... 밤을 하얗게 밝히고 말았다.
그 소설 속에 묘사되는 신인류들의 단초는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상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바보야, 소설가가 우리 시대 속에서 그런 단초를 보았기 때문에 그런 소설을 쓴 거지..ㅎㅎ). 예를 들면 세균의 감염이 두려워 인간들이 직접 접촉을 피하는 사회, 성행위의 번거로움을 혐오한 나머지 양성을 한 몸에 모두 갖고 자기생식을 하는 인간들 등등....그런 거 보면 프라이버시가 절대가치로 추구되는 사회가 과연 행복할지 잘 모르겠다.
가치관이 배제된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줄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지만
미래를 반기기보다 걱정되는 대목이 더 많은 나는 확실히 수구세력의 일원임이 틀림없나보다. ㅡ.ㅡ
정작 본 영화랑은 크게 상관없는 얘기로 빠졌다. 이런 게 장만옥표 영화감상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