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 : 배신의 날
체중의 배신
체중 계량 : 누계 1.6kg(100g 증가)
100g이야 화장실 가기 전이냐 후냐, 일어나서 물 한컵 마셔줬느냐 아니냐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큰 의미 없는 숫자지만, 몸이 소식에 적응하게 되면 감량이 둔화되기 마련.. 지금이야말로 계속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해지는 시점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숫자이기도 하다
일기 밀려쓰기
줄 맞춰 행진을 할 때 남들과 발이 안 맞으면 같은발을 깡충깡충 두 번 내밀어 다른 사람과 발을 맞추는 것처럼 다이어트 일기도 오늘 어제 얘길 하는 게 내 생활리듬과 일치할 것 같다.
왜냐...생각 안 하고 주르륵 쓰는 글은 아침, 활동 시작하기 전에 블러그 한번 둘러볼 때 쓰는 버릇이 들었기 때문에 다이어트 일기는 주로 아침에 쓰게 될 것 같은데, 그러면 오늘의 일기는 모두 '예정'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실제로 행했는지 여부를 적어두려면 오늘 쓰는 일기는 어제 얘기가 되어야겠지?
헌데 오늘의 '예정'일기를 쓰는 것도 사실은 약간 도움이 된다. 오늘의 식단, 오늘의 활동, 오늘의 스케줄을 계획하게 도와주는 기능이 있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그래서 오늘은 어제 일기로부터 시작해보겠다.
고구마의 배신
예정대로 점심에 고구마를 쪄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에공, 마지막 남은 두 개에 곰팡이가 피었다.
이런 게으름뱅이 주부 같으니라... 진작 찌든지 굽든지 조려서 먹어치울 것이지 이게 언제적 고구마더냐.
아무리 냉장고라고 해도 시간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매일 식사준비할 때는 늘 재고조사를 거쳐서 소비대상 품목을 모조리 꺼내놓은 뒤 조리에 착수해야겠다.
아무튼...갑자기 고구마가 배신을 하니 뭘 먹을까 잠시 갈팡질팡 하다(사실은 별식 생각이 났던 거다) 하릴없이 '밥'으로 돌아와 밥 2큰술(ㅎㅎ) 멸치 1큰술, 비듬나물 3큰술(무쳐놓은 것 다 떨었음), 참치 반깡통(100g당 230 칼로리인데 한깡통은 150g이다. 그러니 75/100*230 하면 약 180칼로리다)를 섭취.
요가교실의 배신
200칼로리를 소비하기 위해 평소보다 빡빡 거실바닥을 닦고 구슬땀을 훔치며 걸레를 빨고 있는데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을 한다. 오늘부터 월 수 금 오후 두 시에 경로당에서 무료요가교실을 개최하니 운동이 부족하신 분들 많이 오셔서 참여하시기 바란단다. 사실 요가교실로 말하자면 이 동네 도처에 깔렸다. 내가 수영을 하는 난향초등학교에서도 저렴한 가격으로 요가교실을 운영하고 있고 바로 옆 동사무소 2층에서도 하고 있다. 헌데 내 스케줄과 잘 맞지도 않고, 하겠다면야 어떻게든지 조정할 수 있겠지만 수영하고 등산이면 됐지 어떻게 운동만 하고 사냐 싶어 모른척 하고 있었다.
헌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새로 시작하는 곳이라니 한번 들러볼까' 하는 생각이 들길래
행장을 갖추고(옆집 사는 앨리스--블러거 무수리양--가 나의 다이어트 일지를 읽었는지 산에 같이 다니자는 댓글을 남겼기에 매주 월 수 금 몇 시에 어느 지점으로 오면 나의 산행에 동행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더니 오늘 당장 오겠다기에 끝나면 그쪽으로 직행하려고) 경로당으로 갔다.
아, 요가교실이 경로당에서... 그것도 하루 중 가운데토막 시간에 열린다는 사실에 주목했어야 했다. 경로당에 들어서니 칠순 안팎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환영의 시선을 일제히 내게 꽂아주시는데... 이런 민망!
요가 매트도 없고 월남치마 차림으로 구부정하게 앉아 대기하고 계신 할머니들, 분주하게 노래방 기기를 끌어다놓는 할아버지들.... 운동하는 분위기와는 영 거리가 멀다. 전문요가강사라는 젊은 아가씨가 싱글싱글 웃으며 젊은 분들은 오전에 동사무소로들 많이 가시는데.... 하면서도 이왕 오셨으니 같이 하고 가시란다. 할머니들도 '그려, 그려... 젊은 사람도 같이 하면 좋지 뭐' 하고 반색을 하시는데, 붙잡는 손 뿌리치지 못하고 억지춘향으로 주저앉는 나. 그래 뭐 스트레칭이라도 하면 좋겠지....
처음에 고개와 손목, 발목관절을 이리저리 돌려주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발바닥 지압, 팔 주무르기, 손바닥 비벼 얼굴과 귀 문지르기.... 그러더니 노래방 기기 스위치를 누른다.
박수치기가 건강에 그렇게 좋다는 거다. 노래방 기기에서 뽕짝뽕짝 '신토불이'가 흥을 돋구자 할아버지 한 분에게 마이크를 쥐어주고 나머지는 손바닥에서 불이 나도록 박수를 치란다. 내가 미쵸!
이때 과감하게 빠져나왔어야 하는 건데 어쩔까 저쩔까 망설이는 사이... 그만 나에게 마이크가 돌아오고 말았다. 어디선가 들어보긴 했어도 영 낯선 노래를 나더러 신나게 부르란다. 진짜 미치겠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ㅋㅋㅋ 어르신들을 위한 재롱잔치라고 생각하지 뭐.
앞에 나가 눈도장까지 찍었으니 이제 완전히 멤버가 되어버린 나. 다음으로 실시되는 '치매예방 손가락체조'에도 열심히 참가한다. 왼손은 새끼손가락을 내고 오른쪽은 엄지손가락을 낸 뒤에 선생님 구령이 들리면 왼손은 엄지로 오른손은 새끼손가락으로 바꾼다. 다음 동작, 왼손은 검지를 오른손은 엄지를 낸 뒤 학교종이 땡땡땡을 부르며 여덟마디 마다 바꾸는 거다(한번 해보시라. 쉽지 않다.ㅋㅋㅋ)
아, 오늘의 운세 왜 이러나.... 하고 있는데 손전화가 울렸다(아, 나를 구해주는 고마운 벨소리여.... 그게 누가 됐든 많이 사랑해줄 꺼다) 전화받는 척 하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옆집 사는 앨리스가 등산코스 들머리에서 날 기다리고 있단다. 중국에 있는 동안 열심히 웨이하이 해변을 걸었다더니 정말 얼굴이 눈에 띄게 작아졌다. 그녀와 왕복 1시간 반 산행으로 300칼로리 소비.
저녁에는 울타리콩밥 반 주걱, 미역국 한 국자, 고등어 반 토막, 고사리나물 한 젓가락, 생 양배추 섭취(찜을 하려다 그냥 양념고추장에 찍어먹어봤는데 달콤아삭고소한 게 괜찮다. 앞으로 자주 먹어줘야겠다).
밤에 남편이 포도 한 송이 놓고 앉아 TV를 보는데 옆에 앉아 있다가 나도 모르게 절반 정도 먹어줬다.
다음부터는 포도 먹을 때 열 알 정도 내 몫을 떼어놓고 그것만 먹도록 해야겠다.
어제의 다이어트 실행평가 : 보통
오늘의 다이어트 계획
아침은 이미 먹었고(미역국 한 국자, 장조림 세 점, 양배추 세 잎, 멸치볶음, 우유 한 컵)
수영 다녀와서 당근 하나 먹어줘야 하고
점심은 동네 아줌마에게 점심초대를 받았는데... 뭘 줄지 모르지만 아무튼 양 조절에 유의할 것.
저녁은.... 모르겠다. 이따 생각해야지.. 수영 갈 시간 다 됐으니....
자, 오늘도 잘 해보자. 혹 나의 안팎에서 배신 때리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계속 가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