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2 : 쿵쿵따 청소 얘기
체중 계량 : 누계 2.3kg(200g 감량)
참 신기하다. 운동 효과든 과식이든 하루쯤 묵혀둬야 나는 것일까?
어제 빡세게 한 신체활동이라고는 청소 밖에 없는데 오히려 몸무게가 내려갔다.
그동안 별로 느끼지 못했던 헛헛함이 어제는 짬짬이 엄습, 날 심란케 하더니(물론 식사는 평소대로 했지)
그게 바로 체지방의 항복신호였나? 어쨌든지 냉수 먹고 속차린 보람이 느껴져 기분 짱이다.
오늘은 아침 수영을 마치고 서둘러야 한다. 점심 약속이 있지만 내가 다이어트중임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니 큰 부담이 없다. 남들 식사 시킬 때 나는... 식사꺼리는 안 되지만 남들이 맛보고 싶어하는 것을 시켜서 나눠먹자고 하고 남의 식사꺼리에서 한수저씩 구걸(?)하는 게 내 회식 다이어트 전략. (뭐라? 재섭써? ^^ )
약속장소가 강변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약속 마치고 여건이 괜찮으면 오늘도 강변을 한 시간 정도 걸어 돌아오는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할까 한다. 안 되면 말고.... (아침에 수영했고 내일 등산을 좀 길게 하면 된다)
오늘의 체중계량 결과도 그렇고 다이어트 고수 팔찌님 조언도 그렇고, 가끔 한박자씩 쉬어주는 것도 괜찮을 듯.... 그래야 쭈욱 밀고나갈 힘도 생기겠지? 쿵쿵따 쿵쿵따!
맨날 다이어트 얘기만 하려니 연속극도 이렇게 재미없는 연속극이 다 있을까.
하여... 팬 서비스 차원에서 오늘은 청소 얘기나 해볼까?
요것두 그저그런 화제지만 운동삼아 빡세게 청소 한번 한 기념으로...
(ㅎㅎ 청소 얘길 꺼내면 나으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ㅡ.,ㅡ)
어릴 때 빈민가에서 자란 사람들이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내 '환경정리'에 대한 게으름의 원인을 거기서 찾고 있다. 신문지 바른 벽, 비 샌 자욱이 얼룩덜룩한 천장, 여기저기 테이프로 때운 비닐장판, 턱없이 부족한 수납공간.....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아무리 쓸고 닦고 정리한다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였던지라 청소와 정리는 먹고살기 바빴던 부모님들의 관심사 가운데 가장 마지막 항목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신혼부터 단칸방에서 시작했고 살림이 조금 피기 시작한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청소와 정리'는 내가 해야 하는 일꺼리 목록 중 가장 마지막에 적혀 있는 항목이었다. 시간 있으면 하고 없으면 말고... 못견디게 지저분하거나 손님이나 온다면 마지못해 하는....
그래도 모두들 새벽에 나가면 밤에나 들어오니 내가 어지르지 않는 한 집안은 일주일 내내 말짱해 보인다. 일주일에 딱 한 번, 청소기나 돌리고 바닥 얼룩만 간신히 닦는 지경인데도....
허나 늘 구석구석 주부의 사랑을 받는 집은 확실히 우리집과 때깔이 다르다. 웬지 쨍한 맛이 난다. 불량주부인 내가 가장 컴플렉스로 느끼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거다. 왜 우리집은 세수를 해도 윤기가 안 나는 걸까. 때밀이수건으로 한번 박박 밀어볼까?
어제는 운동을 대체하는 청소라 마음 먹으니 좀 특별하게 해볼까 싶었다.
일단 청소기 한번 돌려놓고 밀대걸레로 대강 한번 밀고.....
그리고 집어든 것이 가구광택제. 어느집엔가 놀러갔더니 거실바닥이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반들반들하길래 비결을 물어보니 코팅을 해줬다고 하던 생각이 나서였다. 마루바닥용 전문왁스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거면 되겠지 싶어서 착착 뿌려주고 마른걸레로 닦았더니.... 오머나! 1년간의 묵은때가 벗겨지며 노르스름한 속살이 드러난다. 중학교 때 한줄로 앉아 교실 바닥을 왁스로 광 내던 생각도 나고 나름 재미도 있어 한칸 한칸 닦다 보니 땀이 뚝뚝 떨어지고 완전히 무아지경이다. 그래, 이 맛인가봐.
아홉시 반에 시작한 바닥닦기가 열한 시나 다 되어 끝났는데.... 햇살을 따라 번득이는 광택이 장난 아니다. 정말 파리가 미끄러지겠다. 기쁜 마음으로 일어서려는데... 앗, 이번에는 거실 가구들과 부엌 싱크대들이 울상짓고 있는 게 보인다.. "엄마야, 저 로션 내 껀데 난 한번도 안 발라주고 엉뚱한 녀석한테만..."
어흑, 가구들의 항의를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아 땀을 흘린다. 점심 때도 훌쩍 지났다.
오늘은 아침 일찍 청소 끝내고 밀린 일 진도를 쑤욱 빼놓으려고 했는데 가구까지 닦고 나니 이제 현관바닥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화장실 청소도 안 했다.
어흑, 청소야, 청소야.... 왜 날 배신하니.
손도 안 댈 때는 눈에 안 띄게 얌전하더니, 하나 손 대기 시작하니까 너도 나도 덤비는구나.
팔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하여 현관과 화장실은 대애충 달래놓고...
꼬리를 물고 덤비는 베란다와 보조주방은 뒷날을 기약하고....
두 시가 다 되어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주방으로 가던 중
그만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오랜만에 맘먹고 한 청소가 끝까지 뒤통수를 때리는구나. ㅎㅎㅎ
청소는 평소에 꾸준히 합시다요.
불량주부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