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절 초입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과는 거리가 먼 남자애들 이야기
(양념을 쳐야 할 것 같아서 도입하기는 했으나 별맛은 없으니 안 읽고 넘어가셔도 됩니다)
3학년 때 같은반에서 내 밑에 있던(ㅎㅎ 여자인 내가 회장, 걔가 부회장이었다) K. 5학년 때 전교어린이회 부회장과 서기로 다시 자주 마주치게 되었는데, 회의 할 때 나랑 늘 언쟁을 벌였다.
평소에는 눈만 똑바로 마주쳐도 얼굴이 빨개지는 수줍음 많은 아이지만 한번 토론이 붙었다 하면 제법 정연한 논리로 끝까지 한치의 양보도 안 하던 곱슬머리 고집쟁이... 늘 말다툼을 일삼으면서도 내심 ‘쟤랑은 얘기가 통해’ 하고 인정하던 애였다.
사적으로 친하던 아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졸업하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30년도 더 지난 후에 모 방송국 사회부 기자로 TV 화면에 나타난 그애 얼굴을 보았다. 짜아슥!! 옛날의 그 수줍은 모습이 조금은 남아 있지만 세월을 겪으며 굳센 표정이 자리를 잡아 완전히 딴 얼굴이 되었다.
전교회장이었던 P
큰 여관집 아들인데 소아마비로, 힘겹게 쌍목발을 짚고 다니면서도 가끔 날 바래다준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왔다. 집을 가르쳐달라고 해서 산동네 초입이 시작되는 동사무소 근처까지만 데리고 와 큰 느티나무 아래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생각이 난다. 졸업을 앞둔 몇 달 전이었다. 중학교 가서도 연락하고 지내자.. 뭐 그런 얘길 했던가?
치근덕거렸다거나 그런 인상은 전혀 없고 나도 그 애 생각에 따로 시간을 내본 것 같지 않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불편한 몸으로 체육 시간에도 안 빠지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려고 욕심 부리던 아이였기 때문에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던 정도...
나중에 바람결에 들으니 물리치료로 다리가 많이 회복되어 체력장까지 하고 명문대학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여자친구들
웅변을 잘 하던 권모양...
학교 다닐 땐 별로 마주칠 일이 없고 그저 웅변대회 때마다 상을 휩쓰는 애로만 알고 있었는데(이 연사는 힘차게 힘차게 외칩니다... 할 때 힘차게! 라고 할 때마다 양손을 하나씩 들고 공중에서 손을 모으며 외칩니다!로 마무리짓던 그 모션..하하..그땐 왠 웅변대회가 그리 많았는지) 이 아이를 전혀 뜻밖의 장소 뜻밖의 상황에서 다시 만났다. 1981년 가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악명을 날린 바 있는 남영동 대공분실 조사실에서...(이 일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없을지도...)
그 후 한번 연락을 했던가? 그러나 그 친구의 이름은 내가 중국에 오기 전까지 여성단체 쪽에서 간간이 들을 수 있었다.
검은고양이 같은 기집애(이 표현 말고는 안된다) A.
4학년 때와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4학년 때 반장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상가 딸린 한옥에 사는 부유한 집 아이였다. 늘 진한 향수냄새를 풍겼고 의상도 검은 벨벳 자켓이나 알록달록한 반스타킹, 가끔은 귀걸이까지 달고 나타나는 ‘튀는’ 아이였다.
어린 나이에 화류계(?) 소식에 밝았고 가끔 심한 쌍소리나 음담패설로 나를 놀라게 했다. 혀짧은 소리로 팝송도 잘 불렀다. 사촌인가 누군가가 미8군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수라던가?
걔에 대한 기억이 이리도 또렷한 것은 웬지 걔가 나의 ‘가난’이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나를 ‘꼬붕’ 삼으려고 했다는 혐의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초등학교 시절 나는 반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무지 좋았다. 그런 나를 독차지하려고 그랬는지 가끔 미제 색연필이나 초콜렛을 가져와서 애들 보는 앞에서 나만 주기도 하고 자기 집에 가자고 해서 자기 맘대로 스웨터도 입으라고 주고... 아무튼 나에 대한 제스처가 여간 요란스럽지 않았다. 그래놓고는 땡깡이다. 학교 끝나면 나는 무조건 자기 집에 들렀다 가야 했다. 한 몇 달간은 그랬던 것 같다. 재밌고도 싫은 애였다.
사춘기 초입, 성에 눈뜨다
6학년이 끝나갈 즈음 옆 반의 S라는 아이를 알게 되었다.
검고 윤기있는 긴 머리채가 눈길을 끄는 날씬하고 웬지 모르게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던 아이... 같은 반도 아닌 데다 공부도 그저그랬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아이였는데 늘 주변에 애들이 들끓고 시끄럽기만 한 내가 어떻게 그 애와 친하게 되었는지는 잘 생각나지는 않는다. 아무튼 영천시장통에 있는 걔네 집에 자주 놀러갔다.
걔네 집은 늘 비어 있었고 다락방에는 선데이서울이 켜켜로 쌓여 있어 우린 다락방에 죽치고 앉아 바깥이 깜깜해질 때까지 ‘불량잡지’를 탐독했다.
남녀상열지사의 전말을 정확히 몰랐지만 그저 황홀하고 뜨겁고 어쩌고 하는 표현에 홀려 어린애들에게 숨기고 있는 그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화려한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열심히 탐독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연애를 하다 보면 껴안고 뒹군다는 건 잘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겠다는 건지, 그게 아기가 생기는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심지어 아기가 어떻게 세상에 태어나는지에 대해서조차도)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어린 미혼모가 생겨나는가 보다)
그 비밀을 알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말경.
같은 반 맨 뒷줄에 앉는 ‘춘희’라는 아이가 남자애들이랑 놀다가 임신을 하여 퇴학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을 둘러싸고 조숙한 몇몇 아이들의 입방아를 통해 ‘남녀상열지사’의 적나라한 비밀이 반 전체에 퍼지게 되었다.
그때의 느낌은... 한마디로 끔찍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도 멋져 보이던 연애요 꿀맛 같다던 키스가 그런 추잡한 행동과 연결이 된다니... (엄마에게 어떤 사전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다름아닌 ‘공포’와 ‘추잡’이었다)
아무튼 S와는 중1이 끝나가던 겨울무렵까지 어울렸고 걔네 집에서 놀다가 초경을 맞았던 것 같다. 그 애는 당황하는 내게 당시로서는 신제품이었던 코텍스라는 생리대를 내주었다. (나도 언니가 있어서 생리현상을 알고 있었고 광목천을 사용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신식 생리대는 처음 보았다) 생리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양 끝의 부직포 끼우는 고리가 달려 있는 세련된 허리끈도 빌려주고... 내 아마 그 아이 이름까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사건 때문일 것이다. 참 대단해 보였다.
그 애를 생각하면 늘 플라스틱 바구니 끼고 목욕 다니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그 나이가 되도록 목욕탕에 가본 게 손으로 꼽을 정도였는데 그 애는 일요일마다 혼자(!) 목욕탕을 드나들었다. 겨우 열 세살이었는데도 성숙한 여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그 아이...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소위 결손가정의 아이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