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는 중년(책 소개)
이 블러그의 예전 버전에는 '다시 태어나는 중년'이란 카테고리가 있었다.
이 카테고리의 이름은 한문화출판사에서 나온 "다시 태어나는 중년"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빌어왔다. 1년 전 한국에 갔을 때 서점 매대에서 처음 대한 책이다.
방대한 분량에 차마 집어들지 못하고 선 채로 앞부분만 읽으며 ‘이거 소장본 깜인데... ’ 하고 아쉬워하던 크리스티안 노스럽 박사의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그 역작의 번역자 이상춘씨가 자신의 경험까지 녹여낸 저서라고 했다. 목차를 훑어보니 꽤 영양가 있는 내용 같았다. 추천사와 서문 역시 충격적으로 신선했고...
그러나 나는 서서 읽던 이 책을 매대에 두고 나왔다.
이 책을 구매하기에는 나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몇 개월 전... 다시 한국에 들어갔을 때 이 책을 사고 말았다.
8700원짜리 책 하나 구입하는 과정을 뭘 그리 지루하게 떠들고 있냐고?
바로 이 과정이 ‘갱년기’라는 단어를 차마 입에 올리기 두려워하는 40대 후반 여성의 심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보아야 하지만 외면하고 싶고 배워야 하지만 무시하고 싶은... 나이들어감을 직시하고 그 나이에 어울리는 미덕을 떠들다보면 그냥 완전히 젊음의 강을 건너가버릴 듯한 두려움... 그런 거 말이다.
어제와 그제 이틀에 걸쳐 이 책을 정독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우째?
요즘 내가 바로 이 갱년기병을 심하게 앓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외향적이고 현실적인 감각을 가진 나는 이런 병과 상관이 없을 줄 알았다.
물론 환경의 변화도 크게 작용했겠지. 하필 ‘빈둥지 증후군’의 공습을 받는다는 그 나이에 맞춰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많은 시간을 혼자 지내고 있으며, 하필 때맞춰 개인적으로 상당히 힘겨운 문제에 봉착해 있다.
건강할 때 같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씩씩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나서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전망을 잡을 수 있을 텐데...
지금 내게 그것은 헤어날 수 없게 나를 짓누르고 있는 바윗돌이다. 내 주변엔 아무도 없다(츠암 나... 없긴 왜 없냐... 기분이 좀 나아졌을 때 멀쩡해진 나는 이 근거없는 고독과 절망에 혀를 찬다. )
외로움에 간절히 벗을 갈구하나 참으로 이상한 것이 마음의 눈은 어두워져 아무도 보이지 않고, 냉랭해진 마음의 감각은 그 누구의 따스함도 느끼지 못한다. 이래서 병이라고 하는가보다.
두 주일 가까이 헤매다가 겨우 털고 일어났을 때 내 시야에 잡힌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자, 책소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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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소개는 저자의 주요 키워드를 review하는 방식이 가장 적합할 듯하다.
(파란 글씨가 나의 review)
中年
글자 그대로 인생의 중간이라는 뜻이다. 젊음에서 늙음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는 지난시절에 못다한 일에 대한 회한을 다가올 시기에 풀어볼 기회가 있는 시기이자 젊은시절에 익힌 살아가는 기술, 젊은시절에 이루어놓은 성과들을 본인과 후배들과 이웃들과 함께 향수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한 마디로 중간결산을 할 만한 여유가 있는 시기라는 뜻이다.
更年期
글자 그대로 다시 태어나는 시기다.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운영해나갈 시기라는 뜻이다. 이 새로운 삶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의 신체도 사춘기만큼이나 새로운 변화를 겪는다. 사춘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듯이 갱년기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폐경기
여성에게 있어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신체증상인 폐경은 확실하게 새로운 탄생을 지시한다.
“폐경이란 단어는 무엇이 끝나고 닫힌 것 같은 이미지를 주지만 실제로 닫히는 건 남을 위해 흘려보내던 에너지의 문으로서, 여성의 몸이 더 이상 가족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고 자신을 위한 에너지를 축적하도록 지혜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즉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묶여 있던 여성의 에너지가 그 소임을 다한 후 완전하게 해방될 기회를 맞게 되었다는 뜻이다.
에너지
그렇다면 어떻게 그 에너지를 키울 것인가.
자신의 안과 밖의 에너지를 키우는 것은 중년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필수과정이다.
안이라 함은 자신의 내면의 욕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요, 밖이라 함은 자신이 처한 조건을 자신의 욕구에 맞게 바꿔나가는 일이다.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 작은 만족감도 내면의 에너지를 고취한다.
중년 이후의 삶을 이끄는 것은 이 내면의 에너지이다. 그 에너지가 고갈되면 우리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거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내면의 에너지는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지 않고 충족시킬 때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며, 그 자부심에 의해 에너지는 고취된다. 그것은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에너지가 넘치게 되면 우리는 그 에너지를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나 사회적인 발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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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의 내용은 갱년기 여성 건강에 대한 각론이다. 처방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러한 신체적 변화에 대한 관점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왜 다시 태어나는 중년여성을 이야기하면서 건강 문제를 중심축으로 삼았는가에 대해 사실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불만이기도 했고... (인터넷 검색창에서 ‘중년 여성’을 치면 건강 관련 키워드가 대부분이라 매우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나의 신체가 서서히 갱년기 현상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이제야 그 이유를 납득하려 한다. 인간의 신체와 정신은 하나이며 그 상호작용은 매우 긴밀하다. 갱년기의 현저한 신체적 변화를 배제하고 중년여성을 얘기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현재 중년여성의 주체적 역량이 부족하여 그저 거기에 그쳐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확실히 신체의 노화는 일종의 핸디캡이다. 인정하기 싫어도 어쩔수없다.
물론 나보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에 참가하는 언니도 있고 40대 초반의 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탤런트들도 있지만 그것을 위하여 상당히 많은 시간과 정력을 투자할 그들의 젊음을 표준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현실이 그러할진대 핸디캡을 아니 받을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천박한 경쟁이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분위기 속에서 핸디캡을 받는다는 것은 꽤나 치욕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어쩌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핸디캡을 당당히 받아야 한다. 핸디캡을 인정하지 않고 사력을 다해 '젊은오빠언니'를 외치는 것도 때로는 감동적이지만 자칫 '푼수'나 '폭탄'이 될 수도 있다.
비기너가 핸디 없이 10년 경력 골퍼와 게임을 할 수 있는가? 골프 룰이 인정하는 핸디캡을 당당한 권리로 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즐겁고 자신있는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신체의 핸디캡을 대하는 철학을 논하고 있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중점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소개가 길어졌다.
이 책의 내용은 후속으로 올릴 나의 review를 통해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많다.
결론적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책의 관점이 페미니즘 편향으로 비칠 수 있으나, 결국은 여성과 남성, 젊음과 늙음, 강함과 약함을 화해시키는 ‘인간해방’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약자인 ‘중년’ ‘여성’의 ‘깨달음’을 통해 결국은 ‘젊음’과 ‘강함’과 ‘남성과 자식들’을 다함께 살아가는 성숙한 사회로 이끌어주는....
P.S. : 그래서 일독을 권합니다. 30~50대 남녀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