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萬玉 2004. 12. 28. 13:18

강풀만화였던가? 땅콩이라는 만화를 본 적이 있다.

 

내성적이고 소심하여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행동도 어리버리라 같은반 아이들에게 종종 이지메까지 당하는 아이, 땅콩이...

그 아이와 어쩌다가 같이 공부하게 된 ‘나’에게 그 아이는 새 문제집 하나를 선물하고, ‘나’가 아주 좋아하자 그 아이는 일주일이 멀다고 새 문제집을 계속 갖다준다. 문제집 공세에 익숙해진 내 옆에는 들춰보지도 않은 문제집들이 쌓여만 가고....

 

본 지 오래 되어 중간의 소소한 줄거리는 잊었는데.. 아무튼 땅콩이가 자살을 했던지, 아니면 무슨 사건이 있었던 듯하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땅콩이가 준 문제집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 문제집이 새것들이 아니라 ‘나’에게 주기 위해 자기가 연필로 풀어놓은 답들을 밤새워 지우개로 몽땅 지워낸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이 만화를 떠올리게 된 것은 어제 절친한 친구와 나누었던 얘기 때문이다.

이 친구의 5학년짜리 딸네미 반에 늘 혼자인 한 남자아이가 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러나 어울리는 방법을 모른단다.

어울려서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다른 아이들이 하는 얘기 속에 껴들든지 아이들의 주의를 끈 다음에 시작하면 좋으련만 전혀 아닌 상황에서 전혀 아닌 화제로... 그것도 혼잣말처럼 하니 하는 말마다 무시당하기 십상..


그 때문에 늘 상처받는 이 아이의 화제는 점점 엉뚱해지고 엽기적인 양상을 띄어가고...

상황은 점점 나빠져 이 아이는 지금 왕따당하는 것에 완전히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혼자 쉴 새 없이 중얼중얼한단다. 그런 행동이 또 놀림거리가 되고...


체육시간에 짝을 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서는 아이 하나 없는 것이 안 되었던지 내 친구 딸네미가 짝을 한번 해주고 말도 가끔 걸어주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그 남자아이가 내 친구 딸아이 가는 데마다 졸졸 따라다녀 딸아이가 곤란한 처지가 되었다. 이제는 자기까지 싸잡아 아이들이 놀린다고 집에 와서 울더란다.

공교롭게도 그 남자아이의 엄마는 내 친구와도 가끔 만나 차를 마시는 사이인데, 그 엄마도 아들이 친구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문제에 대해 늘 마음이 불안한 상태지만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정시하지 못하는 것 같단다.


그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문제 같다고 한번 상담을 권해보라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는 펄쩍 뛴다. 어떻게 남의 아이를 문제 있다고 하겠느냐, 그애 엄마는 분명히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것이고 나와의 관계도 나빠질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자기 딸네미까지 힘들게 하는 그 아이가 자기로서는 원망스러운 생각까지 든다고 한다.


참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자기 아이에게 영향이 오는 걸 반길 엄마가 어디 있겠나.

그 아이를 생각해서 느네 딸네미가 좀 참아줄 순 없겠냐는 얘기.. 나로서도 차마 못한다. 아직 내 친구 딸네미도 어린아이 아닌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아이 엄마에게 쓴소리가 될지라도... 관계가 쪽이 나더라도... 그래도 권해야 하는 것은 내 친구의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엄마가 문제의 해결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다면, 그리고 그로써 좀더 좋아질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아이의 행복한 유년기를 되찾아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건 네 의무야. 선택의 여지가 없어“

나의 강짜에 내 친구는 자못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