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성 유람 2 --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
잠 없는 할머니는 다섯시에 기상하여 샤워하고 땡볕에 대비하여 자외선 크림도 단단히 바르고 커피 마시고 Tv를 본다. 긴 기다림 끝에 울리는 모닝콜.
自助餐(buffet)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초라한 아침을 먹고 23인승 승합차에 올라 드디어 대장정의 깃발을 올린다.
길이 험하니 좋은 자리를 택하라는 조언을 들은 바 있어 일행보다 한발 앞서 차로 갔지만 더 날쌘 장씨일가에게 전망 좋은 앞자리를 뺏겼다.
최대한 짐을 줄이면서도 굳이 들고 온 MP3플레이어는 기사석 옆에 붙은 비디오가 홍콩액션과 코미디, 고성방가를 쉬지 않고 틀어대어는 바람에 약간의 구실도 못해보고 4박5일간 가방에 쳐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면양을 떠난 승합차는 구채구로 가는 東線을 택해 달리다가, 차는 기름을 보충하고 사람은 음료수와 간식을 확보하기 위해 平原縣에서 잠시 멈춘다. 이곳은 이태백의 고향이자 삼국지에 나오는 명의 화타의 고향이다.
두 시간 정도 더 달려 산간지역 입구 마을쯤 되는 平武현에서 다시 차가 선다. 여기서 바오인쓰(報恩寺)를 둘러보고 점심을 먹은 뒤에 본격적으로 산행이라고 한다(버스산행?)
보은사는 황제가 되고 싶었던 王某씨가 북경의 고궁을 본떠 궁을 짓던 중 반역의 혐의를 받게 되자 절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그가 황궁을 지으려 한다는 소문이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 북경으로 붙들려가게 되었는데 황제가 조사단을 성도로 파견하자(도착하는 데 2년 반이 걸렸다고 함) 왕씨는 조사단에 앞서 재빨리 아내에게 전갈을 보내어 절 모양으로 바꾸라고 했단다.
(보은사 대웅전)
졸지에 황궁에서 절로 변해 황제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이름까지 달았지만 본래의 설계는 바꿀 수 없었기에 자금성의 축소판으로 남게 된 이 절은, 그 덕분에 후대까지도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대웅전 부처님 중 한 분은 왕관을 쓰고 있는데, 조사단에게 추궁을 받은 부인은 "이곳은 장족이 많은 지역이라 장족이 모시는 부처님의 모습은 저렇사옵니다" 하고 둘러댔다나.
이 절의 한켠에는 백마장족 박물관이 있는데, 백마장족은 장족의 일부로 알려져 오다 1977년 백마장족의 청원에 의해 그들의 언어, 문화, 문자 등이 장족과는 완전히 다른 독자적인 민족임을 인정 받아서 중국 56개 소수민족 안에 당당하게 하나의 민족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구채구에 있는 백마장족 박물관)
내 눈에도 복장이나 주거환경 등 다른 점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워낙 무슨 족 무슨 족(특히 고산지역 거주 민족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같다고 보면 같은 것 같기도 하고.... 아마 우리가 중국의 지배하에 있어 우리는 다른 민족이라고 외친다면 서양 사람 눈에는 그것도 그렇게 비칠 것이다.
근처 백마장족이 한다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사실은 백마장족 음식이 아니고 사천식이다. 이날의 식사가 사천여행 통틀어 가장 맛있는 식사였음을 이때는 몰랐기 때문에 음식에 약간 불만을 품었지만 그런 대로 먹었다. 따끈한 맑은 국물에 실파와 가는 국수를 만 담담면이 고기를 무서워하는 나의 위안이 되어주었다(큰 그릇에 담겨나온 여럿용 국수를 내가 거의 다 먹었다).
식사 중에 백마장족 아가씨가 시원한 목청을 뽑는다. 운남성 麗江 나시족 음악회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산중 고성방가로, 얼핏 들으면 영락없는 우리나라 트롯 '개나리처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