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성 유람 4 -- 童話世界 속으로
여섯 시 삼십분에 이른 아침을 먹고 7시에 구채구로 출발.
그 이른 아침인데도 관광버스가 즐비하다. 구채구 내에서 담배 피우면 벌금 오백 원이라는 주의사항이 무시무시하게 번쩍거리는 전광판 밑에서 우리 팀 내 골초 3인방은 마지막 한 대를 필사적으로 빨아댄다.
구채구 안에서는 천연가스로 움직이는 대형버스만 운행된다. 서울랜드 도는 코끼리차 정도 생각하고 올라탔는데... 잘 다듬어진 숲 속으로 한 시간 가량이나 달린다.
드디어 푸른 물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해자"(海子). 바다라고는 구경 못해본 이곳 사람들이 바다의 아들이라고 붙인 이름이다. 진초록색, 군청색, 옥색, 에머랄드색까지.... 색상도 다양한 호수들이 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곳의 별명은 중국인들에게 "동화세계"로 알려져 있다. 정말 동화 속에 나오는 풍경이다. 때맞춰 단풍으로 곱게 물든 숲과 원시림, 안개, 비... 물에 빠져 썩어가는 나무뿌리까지 완벽한 그림이다.
왠만한 풍경에는 끄떡도 안 하는 남편까지 입가에 저절로 떠오르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사실 늘 시간에 쫓기고 성격마저 급한 남편을 머나먼 사천성 성도 하고도 버스로 하루길인 이곳까지 끌고 오며 자못 초조했는데 그런 걱정은 말끔히 가셔버리고 오랜만에 같은 마음으로 자연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
원래 계획은 구채구의 Y자 계곡을 상행은 버스를 타고 하행은 도보로 누비는 것이었는데 계곡의 총길이가 20킬로라는 말에 꼬리를 내리고(구채구의 총면적은 620제곱킬로미터라고 한다) 부분보행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상행버스 종점은 오른쪽 계곡인 르저거우(日測溝)의 꼭대기 원시삼림. 스위스 어느 산봉우리처럼 침엽수가 쭉쭉 뻗어 있는 원시삼림에서 사진 몇 방 찍고 다시 하행 버스에 올라 다음 정거장인 쓩마오하이쯔(팬더해자)에서 내린 다음 일행과 헤어졌다. 버스가 다니는 길을 버리고 물 건너 안쪽 계곡에 걸친 길을 따라 걷는데 상쾌한 숲 냄새에 마음이 저절로 들뜬다.
햇볕이 비치면 아름다운 단풍 숲의 모습을 거울처럼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해자, 이름 그대로 진주 같은 모래밭(사실은 석회암반)을 넓게 펼친 珍珠灘, 공작해자 등등 이름도 다 기억할 수 없는 해자, 해자들.... 그 모두는 하나같이 아름다운 숲에 둘러싸여 영롱한 물빛을 뽐내고 있다. 수심 몇 미터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바닥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풍경이다.
해자 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후배와 나는 감격에 겨워 합창을 한다. "찍어야 돼! 찍어야 돼!"
폭포도 일품이다.
진주탄에서 흘러내린 물이 똬리 튼 누런 용(암반)을 싸고 돌다 절벽에 도달하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직으로 떨어진다. 진주탄폭포.... 여기서 저기서 동시다발로 세찬 물줄기가 곤두박질친다. 이어지는 수정(樹正)폭포... 성난 물줄기는 어느새 거짓말처럼 땅속으로 숨어들었다가 다시 나타나고 또 사라지면서 어찌어찌 민강으로 흘러든다.
지금 기억으로는 일측구가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다. Y자 왼쪽계곡인 저자와거우(測渣蛙溝)의 해자들은 여느 해자나 비슷했고(중국사람들은 오채해[五彩海]가 멋있다고들 하는데, 색깔이 요란스러워 신기하기는 해도 단아한 맛은 덜하다) 수정구 쪽으로는 흰 천을 너줄너줄 걸어둔 장족들의 절(신당이라고나 할까)만 기억이 난다.
수정구에서 거우코우(溝口)로 오는 길 4킬로를 걸었는데 그 풍경이 또한 자못 이국적이다. 특히 버스정류장 못 미쳐 건너편으로 보이던 설산과 넓은 산자락, 그리고 그림처럼 자리잡은 장족 집들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마음에 들어와 박힌다.
구채구는 장족들이 살던 9개 마을 계곡. 그러나 지금 장족들은 자기 땅을 지키지 못한 결과 자기 땅에서 피고용인으로 생존하고 있다. 미화원으로, 매점직원으로,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노래와 춤을 팔면서...
우리나라가 중국에게 먹혔으면 나는 아마 조선족 가이드를 하고 있을까? 나의 이런 생각을 읽기나 한 것처럼 후배가 때맞춰 한마디 던진다. .... "그러고 보면 우리도 참 별난 민족이야. 중국지도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면서도 먹히기는 커녕 오히려 이 큰 땅에 와서 큰소리치고 다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