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성 유람 5 -- 장족가무단 공연관람 후기
저녁식사 후 구채구 최고의 호텔이라는 국제호텔로 장족가무단 공연을 보러갔다.
원래 장족 주거지에서 캠프화이어를 하고 고기를 구워먹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기에 그건가 했더니 환경오염과 산불 위험 때문에 작년을 마지막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꿩 대신 닭이라고, 150元이면 꽤 비싼 축이지만 모두들 가는 분위기이고 다른 저녁 프로그램도 딱히 없기에 큰 기대 없이 갔다.
첫순서는 대형 동물가면을 쓴 무당들과 화려한 경통, 黃帽派 승려 등등이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굿이다. 소수민족 공연은 이미 볼만큼 보았지만 상업화된 공연 치고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무언가가 있는 특이한 공연이다.
연기가 무대 가득 피어오르고 여러 사람이 웅얼거리는 독경소리가 은근히 무대를 뒤흔드는, 신비하다면 신비하고 기괴하다면 기괴한 분위기가 심장을 써늘하게 휘감는다. 과연 듣던 대로 종교적 성향이 강한 민족이다.
이어지는 순서는 장족 전통복장을 입은 잘 생기고 건장한 청년과 맹랑해 보이는 아가씨들의 활기찬 가무.
소수민족 공연시 흔히 보던 춤과 장족의 이야기를 담은 가사에 한족의 곡조를 붙인 노래가 그다지 특이할 것은 없으나 일정 수준에 오른 작품(?)들이라 즐길 만했다. 듣기로 여기서 공연하는 팀들은 현지팀이 아니라 중앙민족대학 출신 장족들이라고 한다.
이어지는 순서는 관중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그램. 씁쓸한 苦丁차와 훈제 양고기 조각을 돌리고 ?하다?(손님에게 환영의 표시로 둘러주는 흰 수건)를 목에 걸어주는 손님환영의식, 전통놀이 사타구니 줄다리기, 전통혼례(신랑은 당연히 관중 속에서 나온다), 요즘 TV에도 나오는 ○×퀴즈(맞는 쪽으로 옮겨다니는 게임) 등이 열렬한 관중의 호응 속에서 진행된다.
마지막 프로그램은 장족 전통의상 패션쇼. 정말 고증이 된 복장일까, 혹시 윤색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이국적인 멋이 풍긴다. 여강에서 보았던 나시족의 인디언풍 칼라다. 앙드레 김의 고갈된 아이디어에 영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자유분방한 색깔과 디자인.
돌아오는 길에 아직 가라앉지 않은 흥분 사이로 슬며시 씁쓸한 감상이 배어든다.
독특한 자기 문화를 갖고 있으나 지키지 못하고 한족과 이방인들에게 자기문화를 팔아 연명하는 장족들... 어쨌든 우리 조상들은 한족에게 먹히지 않았기에 한족의 후손들과 함께 피지배민족들의 문화를 감상하고 있다. 손바닥만한 땅이나마 조상들이 피를 흘려 우리 것을 지켜주었기에, 이제 힘이 아닌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나마 경제성장을 위해 허리 부러지게 일한 선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닌가.
이제야 중국이 거대하다는 표현에 진심으로 동의한다.
어느 책에선가 중국을 한 달 정도 여행한 사람은 중국에 대해 뭐든지 아는 것처럼 떠들어대고, 1년 산 사람은 "보기와는 달라"라고 하며, 5년 된 사람은 "정말 모르겠어" 한다고 쓴 것을 보았다. 5년 반이면 나름대로 중국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중국의 한꺼풀 벗은 모습을 다시 발견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일례로, 중국 사람들은 힘든 거 싫어해서 버스로 산 속까지 들어가고 그것도 모자라 에스컬레이터까지 만들어놓았다고 치부해왔는데, 일면 도리 있어 보이는 이 견해는 5년을 살았어도 중국 산간지역이 얼마나 큰지, 그런 환경으로 인해 형성된 등산문화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데서 나온 짧은 결론이었던 것 같다.
강소, 절강 일대의 산을 돌아보고 역시 산은 우리 산이 최고라고 내렸던 결론 역시.
중국 자연풍광에 대한 찬사의 반은 허풍이고 그저 규모가 클 뿐이라고 여겨왔는데 사천 땅을 밟으며 그런 생각은 쏙 들어가 버렸다. 설악산도 단풍이 화려하고 준수한 산봉우리의 자태가 늘 우리를 감동시키지만 구채구의 가을 경치 역시 설악산의 아름다움에서 조금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해자의 신비함과 설악산 열 개 합친 정도의 규모를 더하면 관광자원으로서 구채구가 갖는 가치가 설악산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자연조건만 해도 미국을 능가할 충분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자연 자체가 재산일 뿐만 아니라 수천 년 역사까지 더해져 관광의 수준과 품위를 높여준다. 게다가 오지의 소수민족들까지 옵션 아이템으로 끼워 팔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금상첨화 아닌가.
중국, 너 정말 대단한 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