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국

실크로드 기행 7 -- 신강대학에 둥지를 틀다

張萬玉 2005. 1. 21. 12:23
우루무치역에 도착한 것은 베이징 시각 8시경.

굳이 베이징 시각이라고 명기하는 이유는 이곳에서는 2시간 늦은 신장 시각이 통용되기 때문이다. 열차나 비행기, 그리고 방송에 나오는 시각 외에는 모두 신장 시각을 사용한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시간약속을 한 뒤 베이징 시각 몇 시 신장시각 몇 시라는 점을 꼭 확인해야 한다.

 

우루무치에 오니 마치 집에 돌아온 양 마음이 푹 놓인다. 이곳에 안정된 숙소를 두고 며칠을 지낼 계획이며 무엇보다도 여기에는 우리를 도와줄 선한 이웃이 살고 있다.

역까지 마중 나온 선한 이웃 서 선생님은 아침이나 제대로 먹었겠느냐며 황송하옵게도 집으로 우리를 데려가신다. 세상에, 처음 만난 처지에 꼭두새벽부터 일곱 명씩이나 쳐들어가 밥을 축내는 무례를 범하다니... 그러나 우리는 일주일만에 보는 김치와 된장국에 대한 감격으로 염치고 뭐고 다 잊어버리고 그냥 친정에 온 심정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사정없이 마구 뭉치는 게 한국 사람들의 힘일까?

 

숙소에 체크인 할 시간이 멀었기 때문에 일단 서선생님 집에 짐을 두고 신강위구르자치구박물관으로 갔다.

우루무치 시내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번화가를 약간 벗어난 상해 정도로 발전되고 매우 깔끔한 모습이다. 거기다가 하늘이 찢어질 듯 파랗고 모든 도로변에 예외 없이 설치된 수로에는 천산에서 눈 녹아 내려온 물이 시원스럽게 흘러가니 전형적인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낭만적인 느낌도 살아 있다. 불볕이 쏟아지지만 대기가 건조한 데다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어 거리를 걷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 된다.

 

 

땅덩이가 큰 중국에서는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 또 다른 역사와 풍물들이 기다리고 있는 박물관 구경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모스크 건축외관이 특이한 신강위구르자치구 박물관에는 동서교류의 역사와 한족 문화에 미친 영향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독특한 유물들과 소수민족들의 풍습을 보여주는 풍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바로 미라 진열실이다.

투루판의 아스타나고묘에서 나왔다는 미라들이 10구 가량 진열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는 유명한 누란 미녀와 놀이갯감까지 가지고 묻힌 8개월 된 아기도 있다. 사체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라 약간 충격을 받았지만 나도 나중에 저렇게 될 건데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예정했던 홍산공원은 생략하고 일단 박물관에서 돌아와 짐을 숙소로 옮긴 우리는 잠시 밀린 빨래와 밀린 잠을 해결하면서 내일부터 시작될 행군에 대비했다.

 

저녁에는 서 선생님 집에 정식으로 초대를 받아 저녁을 먹으면서 신강 지역 상황에 관해 소상한 설명을 들었다. 이곳에 정착한 지 4년차 되는 서 선생님은 중국어만큼이나 유창한 위구르어를 구사하시며 각계 각층의 친구들도 많아 한국인으로서는 매우 드문 우루무치통()이다.

이 지역 소수민족 특히 위구르족과 한족이 갈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 보니,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일제하의 우리 민족 감정이 어떠했던 가를 조금이나마 느낄 것 같았다.

 

중국에 적극적으로 "투항"하는 길 외에 살 길이 없고 "투항"할 의지가 있다 해도 성공할 기회가 너무나 제한되어 있는 현실 앞에서 위구르족 지식청년들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지도 모른다. 신강성 최고의 대학인 신강대학 구내 곳곳에 붙어 있는 "마약 하지 맙시다"라는 계몽 캠페인이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집 건너 둘째집의 사정이라 해도 잠시 다녀가는 나그네의 가슴이 찡했던 것은 우리 모두 한 세대를 살아가는 지구촌 가족이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