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萬玉 2005. 1. 31. 15:10
어제 오후, 볕이 좋아 산책이나 한다고 나갔는데 車溝鎭 가는 버스가 눈에 띄었다.
정거장 이름들을 봐도 영 낯설다. 도대체 저 동네는 어딜까.. 갑자기 맘이 동한다.
무작정 올라탔다. 산책나온 길이니 호주머니엔 달랑 1원짜리 동전 네 개뿐.

 

蓮花路 지나 虹梅路까지 春申路를 타고 계속 직진하다가 우회전.
남쪽으로 서너 정거장 정도 달리다 좌회전... 잠깐 소로를 지나니 龍吳路가 나온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니 상해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겨우 시내버스로 20분 정도 달렸을 뿐인데....

 

지저분한 하천, 메마른 채소밭...
길 양 옆으로는 낡은 공장들과 유리창이 다 깨져버린 폐가 같은 집들...
그래도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컴컴한 실내에는 딱딱한 나무침대와 지저분한 식탁이 버티고 서서 여기도 엄연히 주인이 있음을 주장한다.

 

어린 딸네미는 길 건너 공장으로 출근했을 것이고... 큰 공장에서 거절당한 엄마, 아빠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가는 이웃동네 아파트에 막일 하러 갔겠지. 도랑 쪽 텃밭으로 배추 뽑으러 갔을지도 모르겠다. 도로에 면한 손바닥만한 마당에는 그래도 윤기 나는 암탉 두 마리가 사뭇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저러다 버스에 치이겠다....
꼭 1981년 군포읍 당정리로 날아온 느낌이다.

 

' 예쁘게 빛나는 불빛, 공장의 불빛
  온데 간데도 없고 희뿌연 작업등만...
  이대로 못돌아가지. 그리운 고향마을...
  춥고 지친 밤 여기는 또다른 고향'

 

정말 오랜만에 이런 동네에 와본다. 화려한 국제도시 상해시가 외면한 동네들...
외곽으로 밀려나 눈에 띄이지도 않지만, 실상 상해시의 절반 이상이 이렇게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이다. 상해 호구 없는 외지인들이 이런저런 푸대접을 꾸욱 씹어삼키며 내일을 꿈꾸고 있는 곳... 처음엔 단신으로... 바람 가릴 곳이 생기면 안식구를 데려오고, 사오년쯤 지나면 아이 데려오고... 일가친척에 동네사람까지 데려온다. 이렇게 상해 인구는 늘어간다.  

 

자, 조금 더 달리자... 종점까지 가보는 거야.

곧 종점이다.
우람한 시설들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있는 레미콘 공장들이 구름같은 연기를 뿜어내며 웅자를 자랑하고 길이 끝나는 곳에는 吳涇 海事處가 있다.
鎭이라면 그래도 동네의 중심인데.... 먼지 풀풀 나는 과자 몇봉지 쌓아놓은 쓸쓸한 가게가 하나, 셔터가 굳게 닫힌 식당이 하나...

그런데 거기에 황포강 건너는 부두가 있을 줄은 몰랐다. 배 매표소가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타봐? 강 건너 동네는 포동인데... 어디쯤일꼬.

 

50전을 내니 플라스틱 토큰을 하나 내어준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들이 배를 타려고 개찰구에 도열해 있다. (마을버스에 해당하는 배군..)

양쪽 하안에는 너절한 바지선, 화물선들이 가득 정박해있고 대형 크레인을 실은 배가 왔다갔다 분주한 가운데 곧 중화인민공화국 붉은기를 날리며 배가 한 척 들어온다.

 

쇠붙이 아무렇게나 용접해서 만든 유람선이다. 바닥은 시멘트.. 의자 하나 없고 얼기설기 세운 쇠울타리뿐 창문조차 없다. 열쇠를 채운 물건궤짝이 네 개 놓여 있는데 위에 노약자 보호석이라고 써있다. 멀쩡한 사람들은 서서 가는 배다. ㅎㅎ

승객 대부분이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 금세 배가 꽉 찬다. 퇴근시간이군.

 

강바람이 얼굴을 금세 얼려버린다. 다행히 배타는 시간은 5분 정도밖에 안 된다.

겨울바람이 쌩쌩 몰아치는 강을 거지배 타고 건너는게 웬 취미냐 할지 모르지만

오랜만에 대하는 가난한 동네가 가슴 저리게 친근하고 푸근하다.

 

가까운 동네에 이런 별천지가 있었다니...

 

가끔 나는 낯선 동네에 가면 꼭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예상치 못한 풍경이 나타나면... 흥분한다.

동네 뒷산으로 여기고 올라갔다가 뜻밖에 만난 북한산의 불광동쪽 정상 비봉... 그곳에서 바라본 북쪽 능선은 정말 꿈 속에서 보는 풍경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처음 중국으로 이사 와서 사람들 북적거리는 水淸路 앞길에서 벗어나 우연히 아파트 뒤쪽으로 갔을 때... 꼭 길이 있을 것 같은 장소에 길이 없고 뜻밖에 황무지가 펼쳐져 있었지...

급속한 변화 일로에 있는 중국에는 이런 의외의 풍경이 자주 연출되곤 한다.

 

풍광 좋은 곳도 좋고 유서 깊은 곳도 좋지만

사실 나는 방랑 그 자체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새로운 버스노선을 보면 그냥 올라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모르는 동네는 지도 보면서, 아니면 물어물어서... 해저무는 줄을 모른다.

백말띠이신 아버지 피를 물려받아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제 지도 들고 떠날 때가 됐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