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이야기
깐돌이님 블러그의 개 사육일지를 보니 저도 제 인생에 끼어든 개 얘기 한번 해보고 싶어서...^^
제가요, 개띠거든요.
그 유명한 58년 개띠.... (왜 '58년'과 '개띠'가 세트로 인구에 회자되는지... 저는 아직도 모릅니다. 혹 그 유래를 아시는 분 계시면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꼭 꼬리 달아 알려주시길...)
그래서 그런지 개만 보면 그냥 못 지나갑니다. 젊었을 때는 바쁘다고 안 키웠지만 꽤 한가해진 지금도 개는 안 키우고 있습니다. 매일 이 닦아주고 귀 후벼주고 발톱깎아줄 생각 하니 엄두가 안 나요. 남편 하나 키우기도 바쁘거든요.
안 키우지만 좋아한다... 꼭 바람끼 많은 남정네들 얘기 같지 않나요? 바로 그 심뽀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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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처음 저희 집에 온 개는 순종 셰파트였습니다. 제가 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나 봐요.
윤기 자르르한 검은 털에 뾰쪽 선 귀, 눈빛도 아주 영리해보이는....태어난 지 석달 정도 된 이놈에게 오빠는 ‘캐리’라는 이름을 붙여줬죠. 왜 하필 ‘캐리’였는지는 묻지 마세요. 당시에는 그냥 멋있게 들리는 서양이름이면 최고였거든요. ^^
돈벌이가 없던 아버지에게 키워서 부수입이라도 올려보라고 누군가 준 것 같은데... 그 소박한 계획조차도 우리집은 너무 가난해서 실현시키기 힘들었죠. 혈통에 걸맞게 입이 까다로우니 사람 먹을 것도 없는 집에서 어떻게 성골 개의 진수성찬을 감당하겠습니까.
나름대로 잘 먹여보려고 수제비(쌀이 없어 늘 배급 타온 밀가루로 빵이나 수제비를 해먹고 살았거든요) 국물에 넣었던 멸치 일일이 골라주고 옆집 쓰레기통에서 생선가시나 뼈다귀를 발견하면 잽싸게 챙겨오는 등 최대한 누린내, 비린내를 풍겨주려고 온가족이 무진 애를 썼지만 입이 짧아서 나날이 여위어가던 이넘.... 결국 두 달을 못 버티고 우리집을 떠났죠.
아랫집 덩치 큰 변견 ‘둥글이’(알든 모르든 그저 사람만 보면 헬렐레... 무조건 땅에 뒹군다고 붙여준 이름)와는 비교할 수 없이 영리하여 오빠와 나의 큰 자랑거리였던 캐리가 떠나가던 날, 우리는 펑펑 울면서 나중에 부자되면 캐리를 다시 데려오자, 캐리가 죽고 없으면 손자라도 찾아서 데리고 오자고 다짐했죠.
두 번째로 우리집에 들어온 개...
우리 아이 2학년일 때, 직장 다니랴 살림하랴 정신없는 제 엄마 사정 몰라라 제 친구가 주더라고 좋아라 안고 온 쫄랑이였습니다.
스피츠 잡종인데 덩치가 작고 매끈한 흰털 속에 콩자반 같이 눈동자가 또렷하여 사랑을 독차지할 만한 미모를 갖췄죠. 그러나 이녀석.... 애정결핍증이 너무 지나쳐 잠시도 사람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게 문제였습니다.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러면 사납지나 말아야지, 얼마나 신경질적이고 잔망스러운지 자기에게서 눈을 떼면 귀청이 떨어져라고 짖어대고 물건을 씹어대고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발정기였는지 아무거나 붙들고 발칙하게 흔들어대는 엉덩이짓까지... 얼마나 밉상이던지. 아마 그 집에서도 버르장머리가 나빠 쫓겨났는지도 모르죠.
일주일 정도 데리고 있다가 아들을 설득했죠. 아들도 이 강짜 심한 강아지가 감당이 안 되었던지 쉽사리 처분에 동의하더군요. 그래서 벼룩시장에 ‘강아지 사랑하시는 분께 드린다’는 광고를 냈는데.... 흐미~ 강아지 좋아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 줄은 정말 몰랐어요.
우리는 처음 전화하신 분에게 바로 넘겨드렸는데(이분은 우리를 설득하려고 자기 다섯 살박이 아들 사진까지 준비해오셨더군요. ^^) 그 후로도 우리는 한동안 폭주하는 전화에 시달려야 했답니다. 공짜라면 냉수도 마신다지만... 세상에... 밤 열두시에 전화하는 양반이 없나, 이미 줘버렸다고 하는데도 ‘무슨 종이었냐, 색깔이 무엇이었냐’ 묻는 분도 게시고... ㅎㅎ 암튼 인간의 무지무지한 개사랑을 뼈저리게 느꼈던 일주일이었죠.
그 무렵이 우리와 개와의 인연이 꽃피었던 때였나봐요.
쫄랑이를 보내놓고 허전해하는 아들놈이 안쓰럽던 차에, 단독주택 살다 아파트로 이사가게 된 집에서 키우던 개를 우리더러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덩치가 웬만한 변견이었는데 외모는 볼품이 없어도 온순하고 충직하고 먹성 좋은... 개로서 갖춰야 할 미덕을 다 갖추고 있는 녀석이라 흔쾌히 오케이 했죠. 사용하던 집은 깨끗이 수리하여 장독대 아래 놓아주고 이름도 새로 지어줬죠. ‘德拘’라고.... 그 후 2년 정도 덕구는 우리 가족의 적당한 사랑을 받으며 개답게 잘 살았답니다.
그런데 덕구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를 떠나서야 입증되었죠.
다시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어 덕구를 어떻게 할까 궁리하던 중, 월악산자락에 임야를 사가지고 낙향하신 분이 그 넓은 집을 지킬 개를 여러 마리 구하신다는 얘길 듣고 그분께 드리기로 했죠. 그분은 당시에 제가 다니던 출판사에서 장편소설을 출간하고 계시던 분인데 마침 저희에게 엠티 겸 한번 놀러오라고 초청하셔서 가는 길에 덕구를 데리고 가기로 했어요.
근데 참 이상도 하지요? 평소 아침운동 시킨다고 대문을 열어주면 쏜살같이 뛰어나오던 녀석이 떠나던 날은 웬일인지 집에서 나오려고 하지를 않네요. 목줄을 당겨도 네 발로 버티면서... 이런 얘기는 소설에서나 나오는 얘긴 줄 알았는데.... 이넘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건지...
아무튼 간신히 녀석을 싣고 월악산으로 달려갔는데... 차 안에서도 내내 내 발 위에 앉아 몸을 떨던 이 녀석, 그 푸른 초원 신천지에 내려놓아도 힘차게 뛰놀기는커녕 오나가나 저만 졸졸 따라다니네요. 심지어 본채가 너무 멀어 야외에 얼기설기 임시로 설치한 화장실까지도 쫓아들어와 화장실 한번 가려면 옆사람에게 개 목줄을 맡겨놓고 가야 할 정도였죠. 이튿날 아침 떠나는 차를 한참이나 쫓아 달려오며 짖어대던 그녀석... 정말 개란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애달픈 운명을 타고났다는 걸 실감했죠.
그 후 덕구는 새로운 주인과 드넓은 산야에 곧 적응하여 잘 지내고 있다고 해요. 잘 지낼 뿐만 아니라 산으로 약초 캐러왔다 길 잃고 쓰러진 있는 동네 노인을 구하기도 했다죠. 불속에 갇힌 주인을 구하기 위해 몸에 물을 적셔 불속을 뒹굴었다는 전설 속의 삽살개 같은 훌륭한 개가 제 인생에도 잠깐 다녀갔던 거죠. ^^
여기까지가 저와 인연을 맺었던 개 이야기 끝이에요.
생각나는 대로 두들겨댔더니 꼭 초등학생 작문 같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