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제삿상...
祭儀라는 게 과연 무얼까.
영혼이 있다 해도 몸이 없으니 음식은 드시지도 못할 텐데 무엇 때문에 어떤 음식은 되고 어떤 음식은 안 된다는 것인지.... 평소에 격식을 차리지 않으셨던 부모님들이셨는데 설마 동에 놓을 음식을 서에 놓았다고 과연 노하실지....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제사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 나로서는 시부모님의 제사, 그리고 명절 때가 되면 가끔 이런 어린애같은 질문을 곱씹곤 한다. 제의를 갖추기 싫다거나 무슨 딴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사실은 우리 가족이 갖추는 제의의 모양새가 하도 이상하다보니 내가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이다. ^^
우리집의 제사 모양새를 볼작시면~~~
시아버님이 맏이는 아니었지만 형님 내외가 일찍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제사를 물려받아 여섯분의 제위를 열심히 모셨다고 한다. 그런데 말년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셔서 모든 제사를 추모예배로 바꾸었고, 돌아가실 때도 내 앞에 상 차려놓고 절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한다. 덕분에 장손에 외며느리의 신분이지만 나는 제사라는 의식에서 한동안 자유로웠다.
증조부모님과 조부모님 기일은 그저 날짜 챙겨서 우리 세 식구 저녁식사 하기 전에 잠깐 묵념을 할 뿐이고, 부모님 기일에는 결혼한 시누이들이 모이기는 하지만 가족들이 모인다는 데 의미가 있지 제사라는 것과는 영 거리가 멀다.
음식도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준비하고(그것도 시누이들이 직장 다니는 올케 생각해서 한 가지씩 준비해온다)... 대신 성경 찬송가 너댓벌과 예배순서를 준비해둔다.
그런데 문제는 예배를 보는 구성원 중에 기독교 신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예배는 형식적으로 진행되니 10분이면 족하다. 왠지 민망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예배 후에 제사상을 차리고 절을 하는 형식이었다.
‘그래도 제사가 한국인의 전통인데 이 조상을 기리는 미풍양속을 아이에게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이것도 몇 번 하다 보니 모양이 우스웠다.
결국 부모님 기일에는 추모예배를 보고 추석과 설에는 차례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전통양식을 따르기로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제사의 신비(?)은 다 벗겨져버려서 상차림이나 의식은 점점 준비하는 사람의 편의에 따르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나물 세 가지, 과일 세 가지, 전 세 가지, 산적, 생선구이를 기본으로 하는 제사상 패턴이기는 하지만 사정에 따라 생략도 되고 덧붙여지기도 하는 엉터리 제사상이 나올 때도 있다. 특히 중국에 온 뒤로는 그 망가지는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
정종이 없으니 백주, 어떤 때는 포도주가 되기도 하고 송편 대신 월병이, 감 대신 파인애플이 올라가기도 한다. 이사온 첫 해에는 낮은 상이 없어 식탁에 높이높이 차렸다가 식탁 다리 보고 절하기가 민망하여 바닥에 천을 깔고 음식을 차리기도 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해야 하는 기일이나 추석에는 세 가지가 한 가지로 줄고 그야말로 이름뿐인 제사상으로 변한다. 3년 전 아들네미까지 떠나고 난 뒤에는 내외 단둘이 차례상을 준비하다 보면 꼭 소꼽장난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역시 제사는 일가들이 모여 북적여야 제맛이다.
일주일 이상씩 쉬는 설에는 이런 제사를 지내자고 평소에 못 다니는 중국여행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이곳은 교통사정 때문에 출발날짜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낯선 동네 호텔 화장대에 과일상을 차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럴 때 우리 내외는 “어머님이 여기까지 찾아오실 수 있을까?” “요즘은 웰빙시대니까 부모님도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되겠지?” 요따위 뻔뻔스런 대화로 민망스러움을 감추곤 한다. (음~ 어쩌면 부모님이 정말 노여워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올해 설은 정말 오랜만에 상해 우리집에서 지낸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왠지 간만에 차례상 한번 제대로 차려보고 싶다.
전통을 익혀줄 아이도 옆에 없고, 음식을 나눠먹을 친지도 없고, 조상님을 위해서인지도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명절에 집안 가득한 지지고 볶는 냄새가 풍겨야 쓸쓸하지 않다는 남편의 행복을 위해 오늘은 기꺼이 손고생을 자청해볼까 한다.
벌써 시장이 철시모드에 들어가니 얼른 장보기부터...
남들은 명절 준비로 스트레스 받는다고 아우성인데... 너무 적적하다 보니 나는 거꾸로 가는 모양이다. 아침부터 녹두를 불리고 수정과에 쓸 계피와 생강 다릴 물을 올리면서 혹시 부모님의 영혼이 정말 이곳 중국땅까지 찾아와 한끼 드셔주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