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남미

<동행 구함> 에피소드

張萬玉 2008. 1. 28. 11:13

동행자를 찾기 위해 오불당 까페에 글들 올린 뒤 몇 통의 이메일을 받았는데

그 중 일정을 맞춰볼 만한 메일은 다섯 통이었다.

 

미국에서 인턴십을 하고 난 뒤 남미여행을 하고 싶어 했던 여대생 L양,

내가 원했던 건 무엇보다도 인천부터 멕시코시티의 첫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의 동행이었지만 인턴 기간 끝나고 안티구아로 오겠다니 거기서 만나도 반갑겠다 싶어 도착하면 누들코리아 메모판에 숙소 알려놓기로 약속해두었다.

헌데 며칠 후 부모님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겠다는 연락이 왔다. 달포 전에 참가했던 오불당 번개에서 '동행 없으면 못보낸다'는 남편 때문에 동행 구하러 나왔다는 새댁을 만나기도 했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여자는 성인 취급 받기 힘들구나 싶어 씁쓸했다.

어쩌겠나, 여행도 좋지만 가족간에 불화를 조성하면서까지 갈 수야 없지.

 

2번타자 U양.

예전에 멕시코에 한 번 다녀온 이 아가씨는 나이도 좀 되고 활달한 듯하여 살짝 푼수끼 있는 이 아지매가 크게 눈치볼 것 없겠다 싶은 게 썩 마음에 들었다. 내 블러그로 초청했더니 나도 블러그 하나 만들어야지 하면서 뚝딱뚝딱 재기 넘치는 블러그를 만들어서 가이드북 없이 떠나는 나의 멕시코 여행길에 자신감을 주기도 했다.

헌데....

처음부터 U양이 한번 갔던 멕시코부터 동행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그녀가 여행계획을 짜기 시작하고부터 우리의 인연은 멀어져버렸다. 그녀의 친구가 그녀를 필리핀으로 땡겨버린 거다.

한 달 후에나 남미로 날아온다니....내 짐작에 아마도 필리핀이 그녀의 취향에 딱 맞을 터, 어쩌면 한 달이 두 달, 석 달이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

 

3번타자 S씨.

오래 전부터 꿈꿔오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일주의 첫 여정으로 남미를 생각하고 있다는 이 아저씨의 메일을 받고 살짝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구닥다리라 조카뻘밖에 안 되는 인생후배라지만 '낯도 모르는 남자'라는 사실이 먼저 의식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일단 멕시코로 같이 들어가서 낯선 환경에 적응을 할 때까지만이라도?.... 영 불편하면 그때 찢어지더라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일단 부딪쳐보자 싶어 메신저를 알려주었다.

헌데 메신저를 하다 보니 이 아저씨는 도무지 계획이란 게 없는 것 같다. 이성이라서 부담스러운 것보다 더 부담스러운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겠다는 염려가 앞섰다. 그래서 계획 짜셨느냐, 일단 계획부터 짜시고 우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함께할지 얘기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며칠 후 다른 동행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내가 너무 까칠했던 걸까?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 후련하기도 했다. 낯모르는 이성이라는 부담이 더 컸는지, 여행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을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이 더 컸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어쨌거나 서로 어느 정도 알기만 했어도 불필요한 부담은 덜 수 있었을 텐데.... 이성과 연결되기 전까지는 전혀 문제로 느끼지 못했던 '남녀노소 불문'이라는 전제는 생각 속에서만 타당한 것이었을까?  

          

4번타자, 동행이 생겨서 너무 마음 든든하다고 들뜬 어조를 감추지 못했던 M여사.

무슨 사연인지 이틀만에 사정이 생겼다고 통보를 보냈다. 여행 준비가 다 된 거 아니었나? 내 블러그를 보고 연락을 했을 텐데 갑자기 내가 맘에 안 들어졌나?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 양.

오불당 까페에서 취업준비생인데 취업이 맘대로 안 되어 여행이나 다녀오겠다고 동행자를 구했던 그녀의 글이 유독 눈에 들어왔던 건 여행시기나 코스도 비슷했지만 무엇보다도 **에 해당하는 닉네임이 나의 실명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확실히 남자 이름에 속하는 이름이기에, 그녀의 남자친구 이름이 **라서 그렇게 지었거나 같은 이름을 가진 가수의 팬클럽 멤버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절 그렇게 사랑하시다니요... ’라는 장난기 어린 인삿말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내어 동행의향을 물었고, 바로 놀라움과 반가움이 묻어나는 답장을 받았다. 예상과 달리 그녀의 이름 역시 여자이름으로는 거의 드문 **이란다. 

이 기묘한 인연이 신기했던 나는 호스텔에 체크인 할 때 "Yo soy ***, ella es *** tambien." (내 이름은  ***이고 저 아가씨 이름도 ***이에요)라고 해놓고 리셉션 아가씨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면 "Hay muchas ***s en Corea."(한국에는 ***라는 이름이 아주 많아요) 하면서 깔깔깔 웃는 장면을 상상해보기도 했다(물론 적기만 하면 되고 말로 할 필요도, 게다가 숙박부에 두 사람 이름을 다 적을 필요도 없지만...^^)

 

헌데 잠깐 나를 즐거운 상상에 빠지게 했던 이 인연은 조금 야속하게 끝나버렸다. 얼마 후 오불당 게시판에서 그녀가 올린 글을 본 것이다. '열흘 동안의 여행지로 적당한 곳 추천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그녀의 글에는 기대도 안 했던 회사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아 계획중인 남미여행을 취소하게 되었다, 너무 아쉬워서 취업 전에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취업이 된 것은 매우 기쁜 일이지만 항공편까지 맞춰보기로 약속했던 내게는 따로 연락 한 마디 없이 까페에서 이런 글을 읽게 하다니...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다)

 

그 사이에 튼튼하고 충직한 머슴(ㅎㅎ 이 글 보면 노하지 마시오)의 에스코트를 받을 뻔한 기회가 있었다. 우리 집안사람이나 다름없는 이 싸나이는 작년말로 하던 일을 접고 2년 반 가량 세계를 주유하겠다고 마음먹고(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눌러앉으려고) 인터넷에서 첫 기착지인 필리핀 정보를 뒤지다 내 블러그를 발견했다고 연락을 해왔다. 

한 덩치 하는 이 친구랑 다니면 안전할 확률이 90% 이상일 테고 혼자서도 잘 노는 타입이니 따로 또 같이 노는 데 지장도 없을 테고... 동성이 아니라서 더블룸을 나눠쓰는 장점이 없다는 것 빼고는 내가 바라던 동행에 거의 근접한 인물 아니던가. 얼마나 반갑던지.... 남편도 훨씬 마음 놓인다면서 함께 기뻐해주었다.

헌데....

내가 남미 가는 줄 알았으면 자기도 그쪽으로 우선 방향을 잡았을 텐데 이미 1월초에 서쪽으로 날아가는 티켓은 끊어놓은 상태고 두번째 기착지에 있는 친구와도 스케줄을 맞춰놓은 상태란다. 아까비~ 를 부르짖으며 그 양반도 나도 일정을 맞춰보려고 이리저리 궁리를 아끼지 않았지만, '리마의 아르마스 광장 대성당 정문에서 3월 1일 저녁 여섯시에 만나자'는 약속은 암만해도 무리... 

결국 우린 감질나는 007작전을 포기하고 제갈길 가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미모로애국'하는 girl... 나의 여행짝 JM을 만나러 나가니 곧 멕시코로 들어간다는 아가씨를 데리고 나왔다. 좋아라 물어보니 멕시코로 들어가는 건 맞는데 역시 일정이 안 맞는다. 이 아가씨는 내가 멕시코를 헤맬 때 페루를 헤맬 예정이고, 일정을 바꿀 수 없을까 꼬드기려 했더니 내가 중미를 벗어나는 시점부터 3주간 멕시코에서 워크캠프에 참가할 예정이란다.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워크캠프와 여행을 병행하는 게 새로운 여행 노하우로 부각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 2월 11일 멕시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만나는 우연이 아니라면

용감한 성공이 될 수도 있었던 '익명적 동행 구하기'는 물건너간 것 같다.

홀로라도 지구촌 어디에서나 꿋꿋해보라는 하늘의 뜻인가보다.

가보는 거야. 기죽지 말고 지치지 말고.... 마음 비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