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하까를 떠나 산크리스토발로 갑니다
안녕들 하세요. 여긴 와하까의 피씨방입니다.
제가 묵고 있는 숙소 건너편에 한글타자가 되는 피씨방이 있다는 얘길 듣고 와봤더니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더라구요. 원래 와하까는 하룻밤만 찍고 가려고 생각한 도시였는데 짧은 중학생 영어로는 불가능한 비즈니스(!) 메일이 있기에 그것도 마무리지어야겠고... 그 김에 한글타자 한번 실컷 쳐보자 하고는 일요일밤 하루 더 묵기로 했지요. 그리고 오늘 와보니 아, 정말 되는군요. 이렇게 기쁠 수가!
더욱 기쁜 일은 전공을 바꾸겠다고 편입시험을 쳐놓고 기다리던 아들넘으로부터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받은 겁니다. 내가 이 기쁜 소식을 들으려고 하루 더 묵게 된 모양입니다.
피씨방에서 이메일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꺅! 소리 지르니 모두 쳐다보는군요. 안 그래도 생긴 것도 희한하게 생긴 여자가 소리도 지르고 싱글벙글 어쩔 줄을 모르니 피씨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웃어줍니다.
간만에 한글 되는 인터넷을 만났으니 조금 더 써볼까요_(이 자판에선 물음표를 어떻게 쳐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_를 물음표로 읽어주시길)
토끼굴 같기도 하고 영화 속 세트장 같기도 한 이상한 도시 과나후아토 갔던 얘긴 제가 했던 것 같고
지금은 멕시코시티에서 남쪽으로 여섯 시간 정도 떨어진 와하까라는 도시에 와 있답니다.
이곳에 오던 날 아침에 버스 티켓을 잃어버려 돈을 또 물게 될까봐 걱정을 했지만
perdido mi boleto / Mira, este es mi pasaporte.... (표를 잃어버렸어요, 보세요, 이게 제 여권이에요 ---표 팔 때 여권번호를 입력하길래) 요 두 마디 외워가지고 시간보다 일찍 가서 사정을 했더니 생각보다 쉽게 표를 다시 끊어주더군요. 언어는 달라도 상식은 통하는 모양입니다. 진땀 좀 흘렸죠.
이 도시엔 몬테 알반이라는 유적지가 있기도 하지만 제일 즐거운 곳은 역시 밤낮없이 사람이 북적대는 소깔로 광장이지요. 관광객들도 있지만 저녁먹고 바람 쐬러 나오는 마을사람들이 대부분인 마을 정자나무 그늘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요. 숙소에서도 멀지 않기 때문에 맥주 한 캔 들고 쓰레빠 끌고 나와 앉으면 사람구경 질리게 할 수 있는, 편안하고 즐거운 장소랍니다.
어제는 와하까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트리오 반데라스라는 남성밴드가 와서 공연을 하더군요.
멕시코에선 음악이 있으면 꼭 춤이 따라다니지요. 흥겨운 밴드 연주에 맞춰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춤을 춥니다. 한국에서는 높은 구두에 반짝이 드레스를 제대로 차려입은 춤꾼 아니면 거의 춤을 안 추잖아요. 시골할배들이 막걸리 한잔 걸치고 추는 관광버스형 막춤은 살짝 무시를 당하잖아요-.
여기선 그런 거 없어요. 런닝 추리닝 바람의 아저씨들, 뚱뚱하고 시커멓게 탄 아줌마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스텝을 밟는 귀여운 손녀.... 누구나 음악만 있으면 몸을 흔들어댄답니다. 스텝들은 또 얼마나 익숙하게들 밟아대는지요... (내 이럴 줄 알고 한국에서 기본스텝이라도 좀 배워오려고 했다니까요..)
여기선 동양인이 드물기 때문에 구경꾼 속에 끼어있다가 자칫 사회자의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이면 꼼짝없이 나가서 쇼를 해야 하거든요. 망신 안 당하려면 그저 죽은듯이 숨어 있어야 한답니다.
길거리에서도 인기가 너무 좋아요. 어제 성당 앞에서 막 세례식을 마치고 나온 아기가 귀여운 드레스를 입고 있길래 사진 한장 찍고 싶다고 했더니 찍기를 허락하는 것은 물론 나에게 아기를 넘겨주며 안고 있는 걸 찍어주겠다고까지.... 아기는 이상하게 생긴 동양여자를 보고는 무섭다고 막 울어제끼고...ㅋㅋ
요란뻑적지근한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가 음료수를 팔고 있길래 슬쩍 사진 한장 찍었더니
내가 자길를 찍었으니 자기도 나를 찍어야 한다면 막 붙잡아요. 동료 여자직원에게 자기 휴대폰을 주면서 내 어깨에 척 손을 올리더니 빨리 찍으래요. 헌데 여자직원이 생전 사진이라곤 안 찍어봤는지 첫사진은 남자 목을 척 쳐냈거등요. 남자가 다시 찍어야 한다고 생난리를 치니까 이번에는 손을 떨어 사진이 완전히 뭉개졌어요. 남자가 몹시 화를 내면서 그 여자를 막 야단을 치는 사이에 난 살짝 빠져나왔죠. ㅎㅎ
아이고, 얘길 시작하니 끝이 없군요. 나중에 정리해서 더 재밌는 얘기 많이 들려드릴께요.
지금이 이곳 시간으로 저녁 다섯시 반인데 이제 저녁 먹고 일곱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겠어요. 열세시간 걸린다니 내일 아침 일곱시면 조그만 산골마을 산크리토발에 도착하겠네요.
거기서 사흘 정도 머무른 뒤에 정글 속에 있는 유적지 빨랑케에서 하루 자고 거기서 국경을 넘어 과테말라 지역인 띠깔에 갔다가 띠깔에서 안티구아로 들어갈 예정인데 아마 다음주 월요일쯤 될 것 같아요.
당분간은 좀 고되지만 흥미진진한 여정이 될 것 같고... 아마 인터넷도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여건 되는 대로 또 소식 전할께요.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댓글로 힘을 주시는 여러 벗님들께 깊이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