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나들이 5--Sophal과 Achi
시엠립은 앙코르왓 관광객으로 인해 급성장한 캄보디아 제4의 도시다.
방콕-시엠립까지 비행기로 40분이면 날아올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로 올 경우 최소 4시간. 150km도 안 되는 거리인데 도로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붉은 먼지가 풀풀 날리고 곳곳에 구덩이가 파인 1.5차선 도로에서 승객들은 5분에 한번씩 천장에 머리를 찧다가 파김치가 되어 도착하게 된다. 그래서 친구도 여행사도 말렸던 것이리라...
도로 양쪽으로는 가도가도 끝없는 메마른 논과 처절한 가난이 그대로 드러나는 오두막집 몇 채뿐... 간간이 PET병에 담긴 휘발유들을 파는 민간 노점주유소(?)도 보인다. 태국에서 밀수입하여 세금이 없기 때문에 기사들은 당연히 여기서 주유를 한다. 가끔 소떼들이 길 터주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오는 차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외화벌이의 주요도로인 이 도로를 왜 포장 안 하느냐고 물으니 항공사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못하게 하고 있다나... 밀수휘발유 단속도 가난한 상인들의 푼돈조차 아쉽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란다.
<민간주유소>
시아누크, 론롤, 그리고 악명높은 크메르 루즈로 이어진 군사독재정치가 종식될 때까지 극도의 가난과 공포에 시달려온 캄보디아 국민들... 특히 20여년을 끌어온 내전은 캄보디아 국토뿐만 아니라 인민들의 마음까지 폐허로 만든 것 같다. 1996년 이래로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부정부패는 여전히 만연하고 캄보디아의 근대화는 아직도 요원한 듯...
그러나 그러한 정황 속에서도 개인들은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빛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기 두 사람을 소개한다.
Sophal, 34세. 크메르/타이 국경여행사 소속 운전기사 겸 가이드.
과묵하고 충직한 타입이라 쓸데없는 서비스로 피곤하게 하는 가이드가 딱 질색인 우리에게 알맞는 타입이다. 그러나 몇 마디 대화를 해보니 대화가 필요할 때 대화를 할 줄도 알고 스스로도 즐기는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곧 눈치챌 수 있었다. 우리팀에 대한 이 사람의 임무는 타이 국경부터 호텔까지 왕복만 해주면 되는 기사 역할이었지만 오히려 우리의 앙코르왓 관광을 맡은 전문가이드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경찰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남들이 원치않는 전쟁터에 나가야 할 때 징집을 면할 수 있었고 영어를 배울 기회도 잡을 수 있었으니 자기는 정말 운좋은 사나이라고 말하는 소탈한 사람. 유창하지도 발음이 좋지도 않은 영어지만 나의 쏟아지는 질문에 시원한 답을 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어휘로 조국 캄보디아를 조금이나마 더 알리려고 최선을 다한다. 여기에 전하는 캄보디아 사정의 대부분은 그의 입을 통해 들은 것이다.
그는 소수당인 캄보디아민주당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나름대로의 관점과 분석력을 갖추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도 현실적인 감각도 있다. 돈이 없어 대학에도 못 갔고 수도 프놈펜에조차 한번 못 가보았다지만 이 정도의 현실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캄보디아 지식층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chi, 26세. 앙코르왓 영어전문가이드. 프리랜서.
이 친구는 생김새부터가 얄상하고 생글생글 애교가 보통이 아니다. 가이드경력 4년에 영어가 아주 유창하다. 콧등에 주름을 만들며 강아지처럼 웃던 귀여븐 녀석... 이녀석과 수다떨고 장난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어를 배우기 위해 카톨릭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인이 운영하는 카톨릭계 사설학원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는데 어찌나 발음이 좋은지 동남아 사람들과 얘기할 때 느끼는 불편함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이 친구는 가이드하는 요령에도 도가 터서 우리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어떤 스타일의 가이드를 선호하는지를 재빨리 파악하고 잘 맞춰주었다. 예를 들면 한 유적지에 가면 우선 한적한 그늘에 앉혀놓고 그 유적에 관한 브리핑을(마치 옛날얘기 해주는 것처럼 자세하고 재미있게) 해준 다음 자유시간을 준다. 오래 있고 싶은 곳에 오래 있고 생략하고 싶은 곳은 생략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한 뒤 돌아오면 제대로 봤나 체크나 하려는 듯 몇 가지 질문을 하기도 하고 사진이 잘 나오는 어디어디서 찍었는지 확인도 해준다. 아주 영리한 친구다.
다섯 형제들 중 막내라 가정에 대한 책임도 무겁지 않기 때문에 프리랜서를 택해 일을 좀 줄이고 1년째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있단다. 중국어와 일어까지 마스터할 계획인데 한국어는 안 할 꺼라더니 갑자기 한국말로 "미안해요" 하고 애교를 떤다.
서양소식은 좀 아는 것 같은데 국내정세에는 통 관심이 없다. 짐짓 그러는지.... 세 아이의 아빠인 소팔은 기를 쓰고 돈을 모으는데 젊은 아키는 미래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확실히 젊음은 내일이 있어서 좋구나). 하지만 이 녀석, 가끔 친구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며 밤새 노래 부르다가 목이 잠겨 가이드를 못 나가기도 한다네.... 쯥!
앙코르 제국이 왜 멸망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이 두 친구들 대답에 차이가 있다.
아키는 몽고가 남하하여 시암왕조를 압박하고 시암왕조가 남하하면서 앙코르를 압박하고... 한마디로 외적에 의해 무너졌다고 한다. 이에 비해 소팔은 Royal Family의 내분으로 무너졌다고 대답하길래 몽고의 남침 때문이라던데? 하니까 내분된 한쪽이 다른쪽을 멸망시키려고 적에게 다른쪽 병력기밀을 넘겨주었기 때문이지 Royal Family가 싸우지 않고 *** 왕 때처럼 강한 리더십 아래 뭉쳤더라면 앙코르제국은 결코 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Sophal은 캄보디아어로 안전을, Achi는 불을 뜻한다. 불같은 아키, 믿음직한 소팔... 두 사람 모두와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는데 과연 머나먼 캄보디아 땅에서 맺은 인연이 계속 될 수 있을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