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시아(중국 외)

태국나들이 7--시엠립에서 만난 사람들

張萬玉 2005. 3. 7. 08:26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도착하던 날 저녁 먹을 때까지 짬이 나길래 뒷편 마을로  정탐을 나갔다.
다운타운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그쪽 동네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가로등 없는 것은 시엠립 어디나 마찬가지 사정이지만, 바닥에 보자기 펴놓고 앉은  가난한 장터와 더러운 하천변 슬럼가, 길 중간에 어지럽게 세워놓은 트럭들 사이로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오토바이, 그 속에서 매연과 먼지를 마시며 못생긴 개(이 동네 개들은 유난히 멋대가리 없이 생겼다)와 아이들이 뛰논다.

 

낡은 다리를 건너가니 초등학교가 나온다. 어디 가나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불단 아래서 한떼의 여자아이들이 재깔거리며 놀고 있다. 하도 예쁘길래 사진 한장 찍자고 했더니(카메라 보여주며 신체언어로) 어디서 또 한떼의 아이들이 몰려온다. 기분좋게 한장 찍었는데....
이런, 이런! 아이들이 손을 내밀며 "쏨..." 뭐라고 한다. '돈 달라구?' 정말 예상 밖이다. 양갓집 규수로 보이는 아가씨들이 이러면 쓰나... 외국인에게 돈 달라는 것이 이 동네 상식?

 

가난한 나라이니 물가가 비싸거나 사람들이 팁을 요구하더라도 이해하라던 소팔의 조언을 이미 받아들여, 구걸하는 아이에게는 안 줄 것이고, 하다못해 조잡한 팔찌를 팔거나 작은 서비스라도 하는 아이에게는 주겠다고(아주 자본주의적인 원칙을 정해) 10밧짜리와 1달러짜리를 준비해놓긴 했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사진을 함께 찍는다는 것을 우의(개인적으로는 아니라도, 적어도 캄보디아 국민들에 대한)의 표시로 여기고 있는 나의 순진한 마음이 모욕당하는 순간.... 못 알아들은 척하면서 비실비실 그 자리를 떠나는데 기분이 더러웠다.

 

몇 걸음 안 가 누가 또 "Hello!" 한다. 돌아보니 주황색 장삼을 걸친 청소년 스님들이다. 제일 나이도 많아 보이고 인물도 수려한 스님이 어디서 묵고 있느냐고 묻는다. 아키 못지 않은 유창하고 멋진 발음이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또 주저앉는다. 왜 이 나라에는 스님이 이렇게 많으냐, 수행생활이 힘들지 않느냐, 이 나라에는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있느냐....

승려가 된다는 것은 공부할 기회를 잡는 것이고 또 영어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부모님들도 본인들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단다. 나중에 소팔 얘기로는, 청소년기에 금욕생활을 하면 머리가 맑아지기 때문에 공부에 정진할 수 있어서 일부러 승려가 되어 공부를 한 뒤에 성인이 되어 환속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한국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날은 어두워지는데 이야기 끝을 잡고 늘어지려는 것이 아마 영어회화 연습을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다. 가이드가 기다리니 가봐야겠다고 하니 내일 저녁에 또 만나잔다. 이들하고야말로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었지만 차마 승려들이 돈을 요구하는 장면(설마~)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아 참았다.

 

관광업 종사자들

 

시엠립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들은 두말할 것 없이 호텔, 대형 레스토랑, 기념품점 오너들이겠지만(이곳에 한국음식점 간판을 두 개, 북한음식점 간판 하나, 그리고 한글로 쓴 가라오께와 여행사도 두어 개 보았다) 그 다음으로 잘나가는  사람들은 아마 가이드가 아닐까 한다.

시엠립에는 사립대학? 사설학원?이 하나 있다는데 그곳 졸업자들 중 가이드 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영어와 교양과 매너가 모두 수준급이다. 프리랜서인 아키의 경우 앙코르지역 하루 도는데 기사와 함께 50$ 정도 받는다. 50불이면 2000밧, 1밧이 몇 리엘(캄보디아 돈 단위)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상당한 고소득임에 틀림없다.

호텔이나 레스토랑, 기념품점에서 일하는 종업원들도 고등학교 정도는 졸업해야 한다. 매너 좋고 인물 좋고 영어도 꽤 된다. 내가 보기에는 태국쪽보다 훨씬 자질이 뛰어나고 잘 훈련되어 있다.

 

 

캄보디아 국경에서 제일 가까운 마을의 휴게소 아주머니도 기억에 남는다.
차량이 들어오면 얼른 뛰어나가 활짝 웃는 얼굴로 화장실을 가리키며 "토일렛?, 토일렛?"(20밧이다) 외치거나 아이스박스를 열어 료수를 권한다(무조건 1달러다). 거절해도 생글생글.... 한국사람이 내리면 귀신같이 알아보고 남자에게는 "오빠, 물?" 하고  여자에게는 "언니, 물?" 한다. 열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네미도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세차를 하거나 과열된 엔진에 물을 뿌려주고 팁을 챙긴다. 그집은 곧 잘 살게 될 꺼다.

 

외국의 투자와 지원이 절실한 캄보디아

 

호텔 복도에 시엠립 어린이들을 위한 기금(무슨 기금이었더라)모금 자선 콘서트가 매주 토요일 열린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길래 아키에게 물어보니 시엠립에서 활동하는 한 외국인 봉사단체가 주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앙코르 가는 길목에 스위스인 청년의사 모모씨가 열었다는 병원도 보았고 프놈펜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한국청년도 한 사람 만났다.

6.25전쟁 후 서방세계에 비친 우리나라의 모습이 저렇지 않았을까... 수많은 선교사들과 미군들이 영어 잘하고 똘똘하게 구는 하우스보이를 기특하게 여겨 미국유학의 길의 열어주지 않았던가... 가슴 한켠이 싸아~ 해진다.    

 

국가가 움직여야 한다.

지금은 관광업을 중시하여 외화를 벌고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 이 나라의 황무지를 갈아엎고 튼튼한 산업의 대들보를 세우고 사회간접자본이라는 대로를 닦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외자유치에 나서야 한다(중국에게서 배워야 한다). 

 

국경에서 시엠립에 이르는 길 양편으로 펼쳐진 끝없는 평야를 보았다. 강수량도 풍부한 이 나라의 논에 수로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 건기를 맞은 벼들이 타들어가고, 농민들이 이 철에 한다는 일이 고작 웅덩이에 오리나 몇 마리 띄우는 것이다.  수로를 우물정자로 가지런히 정비해놓은 상해 근교의 넓고 기름진 평야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캄보디아에 와보니 캄보디아보다 더 못산다는 우리의 반토막 북한땅 생각도 난다.

기업은 이윤을 내는 조직이지만 아울러 사람을 훈련시키고 수입을 발생하게 하고 문화를 일구어가는 중차대한 위력을 가진 조직이기도 하다. 현재의 투자조건은 열악하지만 경쟁은 상대적으로 적고 가능성은 크게 열려있는 메마른 황무지를 누가 개척할 것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현대 아산의 과감한 행보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