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남미

Mexico6 - Oxaca

張萬玉 2008. 5. 18. 06:34

나 없는 사이에 침대가 다 찼다니... 나 오늘 돌아온다고 했잖아!!

알베르토에게 눈 한번 흘겨주고 인근 호스텔 소개시켜달랬더니 길 건너 20여분 거리에 있는 Hostel Home 약도를 그려준다. 함께 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래도 한솥라면 나눠먹던 사이인지라 한국사람들끼리 저녁이라도 함께 먹고 싶었는데 Y군은 스테판과 저녁 먹으러 나가 얼굴도 못봤고 피고씨는 배탈이 더 심해져 아무것도 못먹겠단다. 몸도 시원찮으면서 밤거리 위험하다고 굳이 Hostel Home까지 데려다주는데 어찌나 황송하던지.

남자로 태어난 게 무슨 죄여...

 

  

(좌) 설겆이는 했슈? (자기가 쓴 조리기구와 식기를 씻는 것은 공동부엌 사용의 기본)

(우) 까사 비에하보다 더 시스템화되어 있고 free internet... 흠이라면 지하철에서 멀다는 것.

sevilla역과 Insurgentes역 중간쯤에 있다. (Av.Tabisco + calle Roma 구역).

 

하룻밤 잘 자고 일어나 짐을 챙기는데 헉! 어제 미리 끊어놓은 와하까행 버스표가 안 보인다.

어디 흘렸나보다. 클났네...

사정사정할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출발시간보다 한 시간 앞당겨 터미널로 갔는데 매표상황이 전산화되어 있으니 의외로 순조롭다. 난 괜히 중국살이 초기 상황을 떠올리고 걱정했잖아.

와하까까지는 6시간 거리다. 버스표를 잃어버려 정확한 요금은 모르겠지만 360페소 가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버스는 떼오띠우아깐 갈 때 탔던 버스 수준이다. (세미까마 2등석)

 

와하까 가는 길

지대가 차츰 높아지는 게 실감난다. 멕시코 시티 역시 해발 2200미터가 넘는 산악지대에 있지만 고원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산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는데 도시를 벗어나니 우락부락한 산봉우리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산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파슬파슬 마른 흙, 벌거벗은 바위들, 마치 공사하다 만 듯한 가파른 경사면들만 눈에 띈다. 사람들의 발길을 듬뿍 받는 한국의 산들은 행복한 산이다(아니, 고달픈 산인가?) 이곳 산에는 도무지 사람이 접근한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는 왕복 2차선. 와하까가 멕시코 제2의 도시라던데 차량통행도 별로 없다.

 

황량하고 심심한 길을 공상과 라디오를 벗삼아 네 시간 정도 달리니 그제서야 이국적인 멕시코를 느낄 만한 그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노랗게 말라들어가 꽃이 핀 것처럼 보이는 나무, 2미터가 넘는 선인장들, 파인애플처럼 생긴 나무와 산 전체를 덮고 있는 가시덤들불들..... 달리며 찍는 사진이 잘 안 나오기도 하지만 그보다 유리창이 너무 더러워 이 신기한 광경을 그냥 지나친다. 베라크루즈로 가는 갈림길 직전에 보이던 5미터 높이의 검은 소, 몸판에 Magno라고 씌어 있던데 무슨 광고물이었을까?

 

이제 길은 위로 위로 마구 치닫고 산과 도로 사이의 높이 차이도 확연해진다. 꼭 중국 청뚜에서 얼링산 넘어가는 구간 같다. 산꼭대기에 붙은 집을 보며 돌고도는 길.... 퍽 길기도 하다. 발 아래 펼쳐진 산자락도 주름치마 펼친 것처럼 풍성하게 360도로 돌고 있다. 어딜 가야 저 대단한 주거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을까. 저 깊은 산 주름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생각이 들자 지루했던 몇 시간이 단번에 사라지고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제서야 진짜 멕시코 여행이 시작된 기분.  

 

버스에서 재일교포 3세를 만났다. 할아버지가 만경봉호를 타고 일본에 와서 정착했단다. 아버지는 영화일을 하여 매년 부산 국제영화제에 다녀오고 자기는 '웰컴 투 동막골'을 인상깊게 보았단다. 그래도 한국말은 전혀 못 알아듣는다. 한국 사람 만나서 반갑다며 호스텔 같이 찾아보자는데 나는 그와 동행하고 있는 멕시코인이 영 맘에 안든다. 일본아이의 동행을 자청한 듯 보이는 그 녀석, 와하까 출신이라는데 나에게도 엄청 친한 척한다. 만일 일본아이를 따라가면 그 녀석이 영어를 잘 못하는 일본아이와 내 사이에 끼어들어 와하까에서의 내 일정을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나는 영어를 잘하는 현지인이 지나친 호의를 보이면 내심 경계하는 습관이 있다. 가끔은 득이 안 되는 습관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예감이 적중한다), 나는 호스텔을 예약해놓았고 거기서 친구랑 만나기로 했다고 둘러댔다.  

 

터미널에 내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찾아볼까 하다 허기지고 지친 몸이 한 시라도 배낭 내려놓고 밥 먹으라고 야단이라 그냥 택시를 탔다. 40페소. 인터넷에서 깎을 수 있다기에 한번 나도 깎아볼 요량이었지만 몽땅 짜고 치는 고스톱에는 당할 재간이 없다. 

 

Paulina Inn

과연 명성대로 호텔급 호스텔이지만 결정적으로 부엌이 없다(멕시코 시티에서 구한 신라면 끓여먹으려고 얼마나 별렀던가). 물도 사먹어야 한다. 스텝들은 일을 잘 하지만 사무적이고 호스텔이 넓다 보니 친구 사귀기도 쉽지 않다. 허나 식당 옆 정원과 전망 툭 터진 옥상은 일품이다. 숙소 바로 건너편에 한글타자 되는 피씨방도 있고...(일요일엔 문 닫는다).

 

 

이 호스텔의 베스트 아이템은 뭐니뭐니해도 푸짐한 아침식사. 씨리얼, 우유, 생과일주스, 과일 한 조각(수박, 파파야, 파인애플 중 선택하는 즐거움 ^^), 토스트, 잼과 버터,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주는 스크램블드 에그(토마토소스와 아보카도 소스 중 선택하여 얹어 먹는 즐거움 ^^ ), 커피나 차는 무제한. 10불 안팎의 숙소에서 이 정도의 공짜아침이면 분에 넘치는 호강이다.

 

몬떼 알반 유적지 

파올리나에서 소깔로 반대방향으로 세 블럭 내려오면 오른쪽에 호텔 리베라. 모퉁이를 돌면 정문이다.

가이드가 일일투어하겠냐고 묻는데 나는 미뜰란은 생략하고 몬테 알반 교통편만 예약했다(왕복 38페소, 입장료 48페소, 9시, 10시, 11시 세 번 차가 있다. 돌아올 때는 아무거나 타면 된다).

 

몬떼 알반 유적지는 이 동네로 들어올 때 나를 놀래켰던, 빙글빙글 돌아가는 산비탈 달동네 꼭대기에 있다. 와하까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이 높은 지대에 도시를 세웠던 사포떽 사람들도 나처럼 발 아래 펼쳐진 너른 땅을 바라보며 정복의 즐거움을 만끽했을까? 

 

유적지에서 바라본 와하까 시

 

몬테는 산, 알반은 꽃 이름....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흰 꽃이 산을 덮고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오래된 것으로 따지자면 띠오와떼깐 - 띠깔 - 몬떼알반, 치첸이샤, 뚤룸 순이지만 사포텍 문명의 유적지인 몬떼 알반 유적지에서는 기원전 500년부터 10세기 믹스텍인들이 이 지역을 접수하기 전까지 100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쌓아올린 오랜 문화의 흔적들이 골고루 발견되고 있다. 전체 면적이 40㎢나 되지만 아직 10%도 발굴되지 못한 실정이라고 한다.

 

유적 발굴자 알폰소. 나는 피사체로서 의미있는 것보다는 재미있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ㅎㅎ 

 

이게 스페인 정복자들이 왔을 때 온 산을 뒤덮고 있던 그 하얀 꽃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지고 없다. 

 

 

대신 만개한 자카란타가 곳곳에서 연보랏빛 꽃비를 날리고 있었다.  

 

 

사라져가는 자태마저 황홀하다 

 

그림자 놀이에 재미들린 만옥이... 자, 물병 들어 건배!

 

어린 나무도 목이 탄다. 엄마, 젖 줘... 아니 물 줘...

 

나도 목 마르다구... 목 말라!!

 

여기가 천문대?

 

아니다, 여기가 천문대? 

 

아유, 모르겠다. 기록을 안 해놨더니 거기가 거긴 것 같다. 

 

그게 어디였다 해도 상관없다. 내겐 이런 곳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다. 

 

지하세계로 가는 길

 

유적지 입구에는 사포텍 문명과 믹스텍 문명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박물관이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 시원찮아 안 올린다. 주로 토기와 석기들인데, 당시의 풍습을 새겨놓은 돌판들이 눈길을 끈다.

 

기념품 사시려우?

할아버지가 멋져서 한장 찍었더니 돈 달란다. 어흑! 

 

태양은 뜨거운데 나무그늘이 거의 없다. 좋은 데 자리잡았네... 저 사람들 좋겠다.   

 

점토인형 같은 인디언 아기. 내 엉덩이 좀 봐라. 설마 살이 저렇게나 빠진 거?

 

이 동네 사람들은 사진 찍으면 좋아한다. 인화해서 주는 것도 아닌데... 

 

우리 딸 이쁘쥬? 한장 찍어줘유. 이 아저씨는 한국 축구선수 이름을 셋이나 대더군.

 

멕시코 단체관광객들이 기념사진 찍는데... 나는 이거 왜 찍나? ㅋ 

 

박물관 보수에 열심인 직원들. 저기 세워진 석판들이 유명한 부조 '춤추는 사람들'이다. 

 

돌아갈 시간이다. 휴~ 더워!! 

 

몬테알반에서 돌아와보니 모두 놀러나가 방이 텅 비었다. 시원한 데서 좀 쉬고 내일 떠날 산끄리스또발 행 버스시간 알아보러 시내로 나갔다.

버스는 4.5페소다. 바로 앞에 서지 않기 때문에 터미널 간다고 얘기해둬야 한다. 하차지점은 터미널 조금 못 미쳐 좌회전한 지점이므로 내려서 큰 길쪽으로 돌아나오면 길 건너편 진행방향으로 있다.

 

산크리스토발행 오후 7시에 출발하는 OCC 버스와 8시에 출발하는 ADO버스가 있는데 결국 같은 시간(6 :55)에 도착한다. 가격은 비슷하니 한 시간이라도 덜 타자 싶어 ADO버스(362페소)를 예매했다. 원래 와하까는 산끄리스또발 가는 길목에 잠시 쉬어가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몬떼 알반 한 군데만 보고 가도 크게 미련 없다. 2006년도와 2007년도에 교사파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파업시위를 벌이기도 했던 만만치 않은 도시지만 관광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한 와하까시의 여러 얼굴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기엔 나의 여행일정이 너무나 짧고...

 

와하까의 볼거리 / 놀거리

터미널에서 돌아올 때는 첫날 택시로 들어오던 길을 더듬어서 소깔로까지 걸어왔다.

 

이름은 모르겠다. 작은 동네 성당. 수녀님이 바쁘시네... 

 

미사는 끝났지만... 기원은 끝이 없다 

 

수녀님, 뭐 사세요? 

 

세례식을 마치고 나온 아기. 안아보라고 해서 안았더니 아기가 나를 보고 막 울어대더군. 

 

소깔로와 함께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산토 도밍고 성당.   

 

 

 

 

 

성당 내부는 갤러리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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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디에고와 프리다를 비롯한 멕시코 국보급 화가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정작 중요한 누구의 사진전인지를 잊었다.

 

산토 도밍고 성당 앞... 메마른 그늘 

 

전형적인 와하까의 公路 

 

동양여자랑 사진 한방 찍어보려고 동료아줌마에게 휴대폰 촬영을 부탁했건만... 찍사 경험이 전무한 아줌마가 손을 몹시 떨어 원하는 사진을 얻지 못하자 화가 난 아이스크림 장사 아저씨.   

 

이게 바로 그 악기다. 멕시코 시티에서 정면으로 못 찍었다고 아까워했던...  

 

저 해골은 누가 사갈까? 

 

 모두 수작업을 거친 공예품들이다.

 

잔구슬 혹은 색실을 엮어 만든 싸구려 팔찌지만.... 결혼반지 고르는 것 만큼 진지해 보인다.

 

와하까의 먹을꺼리 / 놀꺼리

길 떠날 때 하루에 한 번은 '제대로' 식사를 하리라고 작정하고 있었다. '제대로' 식사라는 것은 소량이라도 단백질과 열기를 포함한 2달러 이상의 테이블을 말한다.

아침은 대개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혹은 가게에서 산 빵과 커피로 해결하고 점심은 돌아다니면서 길거리음식을 이용하게 될 테니 주로 저녁이 그 '제대로' 식사를 할 기회가 된다.  헌데 중남미에서의 '제대로 식사'는 양이 많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경우가 많았다. 아침을 주지 않는 호스텔에 묵고 있을 경우 남은 음식 싸달라고 해서 아침까지 해결하기도 하지만...    

 

배고픔과 목마름에 지쳐 와하까에 도착했던 날 저녁, 소깔로에 있는 그럴싸한 음식점에 들어가 샌드위치를 시키고도 성에 차지 않아 스프를 더 주문했더니 스프는 닭고기 스프(pollo라는 글씨, 분명히 없었는데... ㅜ.ㅜ), 샌드위치는 하나도 먹어치우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게 두 개나 나온다. 스프는 손도 안 대고 샌드위치 하나는 테이블 돌아다니며 동냥하러 다니는 맹인의 어린아들에게 주었다.

둘째날 역시 점심을 과일 한 컵으로 때운 끝이라 저녁은 제대로 먹겠다고 '제대로' 음식점에 들어가 따꼬스를 주문했는데 속에 고기와 치즈가 가득한 오늘의 따꼬스 역시  세 개 다 못먹고 어제에 이어 다시 구걸하는 아이를 불러야 했다. 

어제 아이는 고맙다고 몇번이나 고개를 꾸벅이던데 오늘 아이는 테이블에서 냅킨 한 장 쏙 뽑더니 인사는커녕 눈도 안 맞추고 날름 집어간다. 그래도 의기양양하게 한입 베어물고 다니는 양이 귀엽더군.

 

 

멕시코 음식의 꽃은 소스. 토마토를 잘게 썰고 고수풀과 몹시 매운 고추를 첨가한 소스... 고수풀 냄새가 아직도 거슬리기는 하지만 많이 익숙해졌다. 게다가 내 미각세계에 새롭게 등장한 아보카도 소스... 한국에 아보카도가 흔하면 저거 실컷 만들어 먹을 텐데.

시다 못해 쓴 라임 맛에도 중독되어가는 중이다. 음식이 느끼할 때 가끔 한번씩 핥아주면 입맛이 확 살아난다. 맥주 마실 때 넣어 마셔도 좋고 안주 삼아 한번씩 핥아도 좋고...

 

어느새 어둠이 깔린 광장은 놀러나온 사람들로 가득찼다. 

 

비닐기둥을 수직으로 던지면서 놀더군. 

 

인디헤나 혈통답게 얼굴에 동물 문양... 

 

광장 중앙에는 남성밴드를 앞세워 살사 춤판이 한창이다. 기타뿐 아니라 트럼펫과 바이올린까지 가세한 경쾌한 곡들이 계속 이어지고 음악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의 스텝도 능숙하게 바뀐다. 편안한 두 박자는 말할 것도 없고 탭댄스에나 어울릴 법한 빠른 연주나 트레몰로가 요란한 변형 3박자에도 끄떡없다. 눈처럼 하얀 운동화를 신고 토끼처럼 가뿐가뿐 움직이는 어린 소녀,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 배가 남산만한 아줌마... 모두들 땀을 한 바가지씩 쏟으며 춤을 추는데 배는 어떻게 저렇게 나왔을까.

음악 한 곡이 끝나면 우르르 대열이 흩어지며 춤을 청하는데 마다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혹시라도 나에게로 올까봐(외모가 눈에 띄니 표적이 되기 쉽다) 몸을 숙여 뭐 줍는 척 했지만 속으론 많이 부러웠다.

우리나라에서 살사 춘다고 하면 적어도 반짝이 달린 드레스에 하이 힐 신고 나서야 하지만 이 동네에서는 런닝에 쓰레빠 신고도 끄떡없잖아.  

광장 다른 쪽에서는 삐에로가 판을 벌렸다. 사진 한 장 찍다가 딱 걸려.. 무대로 나오라는 걸 끝까지 버텼다. 그래도 스페인어로 인사하고 손뽀뽀 한 개 날려주니 사람들이 되게 좋아하더군. 이 동네를 여행하는 한국사람들이 그렇게 없나? 

 

사는 게 뭔가.

보잘것 없어도 내 손 안에 있는 것들 쓸고 닦고 사랑하며 즐길 일이다. 저 사람들처럼.

흥겨운 기분에 맥주 한 캔 사가지고 걸으며 천천히 마셨다. 고단했던 하루 탓인지 맥주 탓인지 몰라도 숙소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다리가 완전히 풀렸다. 그래도 발길은 잠자리 아닌 옥상으로 향한다. 하늘에선 별들이 춤을 추고 있다.

 

와하까에서 만난 사람들 

내 옆 침대를 쓰던 스위스 아이. 11불짜리면 이 동네 물가에 비추어 괘안은 편인데 숙소가 너무 비싸다고 빨리 시골로 들어가야겠다고 투덜대던 이 주근깨 소녀는 특이하게도 직업이 농부고 자기는 멕시코에 놀러온 게 아니라 돈 벌러 왔단다. 워킹홀리데이 같은 거? 했더니 자기는 농업학교를 마치고 농사 경험도 있는 '농부'이기 때문에 그것과는 차원이 틀리다고 정색을 한다. 귀여운 생각에 슬며시 새어나오는 웃음을 꾹 누르며 취업비자는 받았느냐고 물어보니 와하까 외곽의 한 농장에서 1년 정도 일하기로 얘기가 되었단다. 여행은 안 할 거냐고 물으니 돈도 벌고 경험도 쌓은 뒤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이 아가씨 나이는 꽃다운 스물 둘이다.

 

산토 도밍고 성당 옆 고등학교 앞 계단에 앉아 점심 삼아 과일 한 컵 사서 먹고 있는데 머리와 수염은 백발이지만 쫄티 입은 몸매는 청년 같은 동네 할아버지가 다가와 말을 시킨다. 한국사람이라니까 박희목을 아느냐 신재화를 아냐고 묻다. 어떻게 국가대표팀 감독을 모르냐고.. 그들이 자기 친구란다. 처음엔 허풍을 떠는 줄 알았더니 이 할아버지가 멕시코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시절에 그분들이 멕시코에 와서 멕시코 국가대표팀을 지도했다는 얘기다. 그 시절 얘기를 블라블라 하는데 내 스페인어도 짧고 그보다도 이 할아버지, 얘기하면서 자꾸 바짝바짝 다가앉는 게 거북해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 마침 그 할아버지 친구가 와서 말을 걸길래 판이 더 커지기 전에 탈출. ^^

 

할아버지 관련 스캔들 하나 더.

산토 도밍고 성당 구경을 마치고 걷다가 '꼬미다 치나' (중국음식이란 뜻. 식당 이름은 따로 있는데 잊어버렸다) 간판이 보이길래 한번 들어가봤더니 진짜 중국 종업원이 맞아준다. 고향사람 만난 것도 아닌데 어찌나 반갑던지. 나도 중국에서 9년 살았다니까 자기는 북경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는 학생인데 이곳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으며, 공부가 중국처럼 빡빡하지 않아 스페인어도 늘릴 겸 일주일에 세 번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단다.

이 식당 주인은 멕시코인과 결혼한 중국여자인데 멕시코에서 산 지 20여 년이 되어가는데 딸이 다 커서 딸과 함께 이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내가 내일 저녁에 산크리스토발로 떠난다니까 자기도 거기 한 달 정도 머물렀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 나중에 돈을 벌면 그곳에서 호스텔이나 식당을 운영하며 살고 싶단다. 다음 행선지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도 싶고 더 얘기를 하고 싶지만 일이 바빠보여 이따 저녁 먹으러 다시 오마고 하니 오늘은 자기가 일이 있어 여섯 시 전에 퇴근해야 하니 괜찮으면 내일 오란다.

 

그럼 내일 점심 때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나오는데 웬 백발이 꼬불꼬불한 덥석부리 영감님이 하뽀네스? 꼬레아나? 하더니 영어로 여행자냐고 묻는다. 자기는 멕시코에서 무슨 자문역을 하느라고 일곱달째 머물고 있는 미국사람이란다. 무지 친한 척 하며 명함부터 내주는데 보니 소속이 무슨무슨 차이나 필름이고 직함이 doctor다. 바쁘지 않으면 자기랑 같이 저녁 먹잖다.

명함에 '차이나'도 있고 '필름'도 있고 '닥터'도 있어서 재밌는 사람이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당장 저녁 먹자고 나오니 약간 부담스러워, '이 식당 종업원 아가씨랑 할 얘기가 있어서 내일 여기서 점심 먹기로 했으니 당신도 중국음식 먹고 싶으면 내일 점심 때 이리로 오든지....'라고 했다.

 

이튿날 1시에 중국식당에 가니 문 앞에서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 2시에 문 연다니 기다리는 동안 음식점 앞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전직 대학교수였던 이 양반, 그 직함으로 영화제 조직하는 일에 오랫동안 관여했고 그 덕분에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고 했다. 중국에도 매년 가고 올해에는 부산 국제영화제에도 온단다. 핀란드와 중국 청뚜에서 교환교수로 지내던 얘기, 영화제 얘기 등등 블라블라 떠드는데 어찌나 수다스러운지 살짝 질리기 시작하는데.....

 

 

식당이 문을 열어 창가에 자리를 잡은 뒤에도 이 양반 수다는 끝날 줄을 모른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까지도 나는 장양과 얘기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헌데 이 양반 뜬금없이 묻는 말이...  

그렇게 오래 혼자 여행다니면 섹스는 어쩌냐고...(그게 만난 지 한 시간밖에 안 된 사람에게 물을 소리냐).

어이가 없어 가만히 있으니 자기는 와이프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세계 곳곳에 있다, 당신이 원한다면 함께 자기 숙소로 가서 시에스타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점입가경이다.

무안을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표정을 바꿔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었다. '당신 너무 무례한 거 아니냐, 내가 결혼25년째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쏘아붙이고는 '나는 남편 외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이 할아버지, 당황한 듯 미안하다고 연거푸 사과를.... 하지만 그 자리는 이미 망가졌다. 서둘러 밥값 지불하고 장양에게 눈인사만 던지고 나와버렸다. 얼굴 두꺼운 그 할아버지, 문밖까지 따라나와 이렇게 떠나면 안된다고 날 붙잡더니 떠날 거면 자길 한 번 안아달란다. 어이가 없지만 일흔 다섯이라는 나이가 불쌍해서 그냥 한번 안아줬다. 늙으면 외로워서 참 큰일이다.

 

산끄리스또발 행 버스 대합실에서 미국에서 몇 년 산 적이 있다는 유쾌한 인디헤나 할머니 자매를 만나 잡담을 즐겼다. 스페인어 반 영어 반. 옆에서 누가 엿들었다면 꽤 웃겼을 꺼다. 얼굴도 차림새도 재미있는 언니들이었는데... 사진 한 장 남겨둘껄 그랬다. 

버스 짐칸에 배낭을 싣는데 얌전해 보이는 독일 청년이 인사를 건넨다. 숙소 같이 찾자고 해서 좋다고 했다. 낯선 도시로 들어가는 출발이 괜찮다.

 

내 버스 옆자리에는 산더미 만한 멕시코 신사가 앉았다. 타자마자 코를 고는데 장난이 아니다. 천둥도 치고 기차도 지나가고 나팔까지 분다. 산끄리스또발에 도착하는 시간이 이른 아침이니 도착일 하루 제대로 쓰려면 조금이라도 자둬야 하는데.... 담요도 뒤집어써보고 몸도 반대쪽으로 돌려보고 바위같은 몸집을 은근히 밀어보기도 하고.... 꽤나 애를 썼지만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산끄리스또발에 도착하니 간밤의 불면을 씻어주기라도 하듯 차갑고 맑은 공기가 콧속으로 파고들고

세 줄 뒤에 앉아 온 독일 청년 로니가 '잠 못잤죠? 내 자리까지 들리던데요...' 하며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