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xico7 - San Cristobal de Las Casas1
동 터오는 새벽의 신선함은 사소한 광경에조차 감격하게 만든다. 작은 터미널 작은 마을 작은 도로...
아주 오래 전에 자갈을 깔아 만든 좁은 길들이 사방팔방 미로처럼 깔려 있고 촌색시처럼 멋을 부린 단층건물들이 어깨를 비비대며 늘어서 있는 정다운 마을.... 이거다 하는 볼거리를 꼽기는 어려워도 그곳에 있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해지는 마을... 그곳이 바로 산끄리스또발이다.
산끄리스또발의 이른 아침. 동네 골목 같지만 이런 길들이 산끄리스또발의 간선도로다.
산끄리스또발에서는 자동차들도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린다.
산끄리스또발의 명소, 포사다 멕시코 호스텔
새벽공기가 너무 차가워 방풍자켓을 입었는데도 벌벌 떨린다. 로니는 여전히 반바지에 반팔 차림으로 아래위 턱 딱딱 부딪쳐가면서도 마을 지도부터 좀 봐야겠다고 론리 플래닛에 코를 박고 있다. 위치 좋은 곳을 고르는 모양인데 나같으면 직접 돌아다니면서 보고 고르겠다.
나는 일단 옷부터 꺼내입으라고 채근을 하고 로니는 좀 가만히 있어보라고 짜증을 내고...
그러고 있는데 아침산책중인 듯한 서양여자 하나가 다가오며 숙소 찾느냐고 묻는다. 자기가 묵고 있는 데가 최고일 꺼라며 소개시켜준 곳이 Posada Mexico(일명 Hi Hostel).
호스텔을 관광명소로 꼽을 수 있을까? ^^
포사다 메히코는 그럴 수 있다. 적어도 배낭여행자들에게는....
내가 산 끄리스또발을 잊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메히코 호스텔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아기자기한 정원, 흰 빨래가 펄펄 날리는 볕 좋은 베란다, 정다운 식당과 편안한 라운지, 새벽에 도착한 투숙객들에게도 공짜로 아침을 주는 인심....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울리기 편했던 곳, 그래서 기억에 남는 친구들도 많았던 곳.
자투리 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리던... 지금도 그리운 옥상 혹은 계단참.
바람은 이리저리 불어가고 파란 하늘, 풍성한 구름, 풍부한 일조량....
밀린 빨래 해널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었을 뿐인데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산끄리스또발 여기저기
빨래 해널고 그렇게도 별렀던 신라면 끓여먹고 나니 어느 새 오후. 슬슬 마을구경을 나가본다.
중미에서 방향을 잡으려면 우선 '소깔로'를 찾으면 된다. 사전에 안 나와 있는 걸 보니 고유명사인 모양인데 웬만한 도시에는 이 '소깔로'란 장소가 다 있다. 성당이 있고 광장이 있고 숲이 무성하고 큰 행사나 잔치가 자주 열리고 그러다 보니 심심한 사람들로 늘 북적이는 마을의 중심이다.
오늘 소깔로에서 무슨 큰 행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전통 복장을 차려입은 인디헤나들이 광장 여기저기 눈에 띄길래 신난다고 뛰어가 셔터를 눌러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오쯤에 성당에서 인디헤나들만의 행사가 있었더란다. 천 명도 넘게 모였다던데 나는 겨우 뒤꼭지만 찍은 셈이다. 근사한 사진 잔뜩 건졌다고 신이 나서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로니를 보니 얼마나 배가 아프던지...
가슴에 소속을 밝히는 명찰을 단 거 보니 단체로 행사에 참석했나보다.
인디헤나들의 파워를 과시하기 위해 인근 마을에서까지 모여들었다.
다행히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 건졌다.
읍내 나온 김에 좀 놀다 가시려고?
오른쪽 주목! 이곳 사람들은 한쪽 발이 번쩍 들릴 정도로 힘껏 포옹하며 정을 나눈다.
성당 색깔... 정말 발랄하지 않우?
무엇을 빌고 있는 것일까. 저 아저씨가 걸친 판초는 이들에게 매우 귀한 복장이란다.
남의 가게 옆에 좌판을 벌인 할머니. 팔고 계신 건 치아파스州 인디헤나들의 영웅 사파티스타 인형이다.
인디헤나들이 싸들고 온 도시락. 옥수수 전병인 또르띠야와 콩을 으깬 콩인 후리홀레스가 전부다.
동네 부자들과 관광객들은 버거킹에서 점심을 먹는다.
여고생들인가보다. 체육복을 입고 손에 대형 나초를 들고 있다. 보행식사중?
소깔로 한 바퀴 돌고 나서 재래시장 쪽으로 올라가니 꽃보다 더 아름다운 과일과 야채들이 활짝 피었다.
부엌이 있으니 오늘 저녁을 위해 뭘 좀 사볼까 했지만 곧 길 떠날 사람은 장 보기도 쉽지 않다. 호스텔 잔치를 하든지 한두번 볶아먹고 보따리에 싸갈 거 아니면....
몇 번이나 야채전 앞을 오락가락 하다가 아기 주먹 만한 호박 하나 당근 두 개 양파 한 개 토마토 한 개 골라들고 10페소짜리 지폐를 내밀었더니 웃으며 동전 몇 개 거슬러준다. 내친김에 수퍼에 들러 쌀 300g짜리 한 봉지와 소세지, 샐러드 소스 작은병, 할라삐뇨깡통을 샀다.
오늘 저녁은 로니와 옆 침대의 크리스티나에게 한턱 내야지.
곱기도 해라... 이런 가게들은 멕시코와 과테말라, 페루, 볼리비아에 쌔고 쌨다.
여행 내내 이 싸고도 예쁜것들의 구매유혹을 애써 뿌리쳐야 했다(배낭 무거워질까봐).
이건 염색한 가죽제품들. 멕시코 특유의 공예품인 듯하다.
나도 저거 한번 해볼까... 하는 유혹에 몹시 시달렸다는... ㅋㅋㅋ
터미널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홍콩반점 옆)에 있는 가게.
주인은 한국인이지만 가게에는 한국물건이 없는 평범한 멕시코 잡화점이다.
창살과 굴뚝이 아니라면 한국집이라고 해도 되겠다
소깔로 한 가운데 있는 정자 겸 레스토랑
산끄리스또발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메모를 뒤져보니 산끄리스또발에선 별로 적어둔 게 없다. 친구들과 수다떨고 놀다 보니 일기가 밀렸던 거다. 부엌에서 함께 저녁 지어먹으며 수다, 베란다에서 맥주 마시며 수다, 아침 오래오래 먹으면서 수다, 공짜인터넷 기다리면서 수다, 마야 마을 투어 다니며 수다, 마을구경 다니면서 수다....
로니
산끄리스또발로 오는 밤버스에서 만난 로니.
베를린 동독 지역에 살고 있는데 중학교 들어갈 무렵에 독일 통일이 되었다고 한다. (그럼 몇 살인가?) 함께 산끄리스또발에 들어올 때부터 나를 자기 일행으로 간주했는지 시시때때로 챙기고 자꾸 나랑 일정을 맞추려 들어 살짝 답답하기도 했지만 (성격도 꼼꼼하고 신중해서 준비 대충 하고 주로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나와는 잘 맞지 않을 텐데) 그래도 확실한 내 편이 생겼다는 기분은 과히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독일인 로베르토가 합류, 빨렝께와 플로레스까지 좋은 팀웍을 이루었다.
로니랑 크리스티나랑...
크리스티나는 내 옆 침대에 있던 캐나다 아가씨.
말수도 적고 혼자 있는 걸 즐기는 타입이라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지만 사진 보니 엄청 친한 것 같네. ^^
로베르토
체격도 왜소하고 말수도 적은 데다 내쏘는 눈빛이 꽤나 까칠해 보이던 서른여덟살의 독일 세무공무원.
사귀어보니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독일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마을 이름을 대도 모를 꺼라며 뮌헨 부근 인구 60명의 작은 시골에서 왔다고 대답한다(인구 60명짜리 마을이라니.... 처음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일관된 주장으로 결국 그 말을 믿게 만들었다). 콧등에 상처가 났길래 여행하다 다쳤냐고 물어보니 여자친구가 물어뜯었다고 한다(이것도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잊어버릴 만하면 여자친구가 콧등을 물어뜯었던 사건들을 하나씩 꺼내놓아 결국 그 말을 믿게 만들었다). 암만 봐도 괴짜에 속하는 사람이다.
이름이 뭐였더라... 덩치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토론하기 좋아하던, 독일인 같지 않은 달변가도 있었다.
로니, 로베르토랑 같이 밥 먹다 보니 이 숙소의 독일 사람들이 다 우리 테이블로 모인다. 이 아저씨는 나랑 마주칠 때마다 대단하다 용감하다 입에 발린 칭찬을 늘어놓으면서 나더러 Amazing Race에 한번 나가보란다. '자꾸 놀리지 마라, 나는 간이 좀 클 뿐'이라고 했더니 독일에서는 간이 큰 사람이라면 술고래를 가리킨다고 나더러 술을 많이 마시나보다고 또 놀려댄다.
2004년 월드컵 때 시청앞 응원장면 봤다면서 한국사람들도 축구에 미쳤지만 독일사람들도 못지 않다, 자기도 그때 조카가 태어나 때 병원으로 보러 갔더니 아기 침대에 작은 깃발 꽂아놓고 갓 태어난 영아 얼굴에도 국기를 그려놓았더란 얘기도 하고, "한국사람과 독일사람의 유사점은 뭉치기 좋아하고 소속사회에 충성하고 조직적이고 부지런하고 검소하고......"(진짜 그런가?) 이렇게 정리해주기도 하고...
잠깐 스쳐갔을 뿐이지만 한국인에 대한 호감을 호들갑스럽게 표시하던 사람이라 지금까지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난 아리안족들이 동양인을 진심으로 좋아할 꺼라고는 믿지 않았다.
산끄리스또발 도착하던 날 아침에 만나 숙소를 소개시켜줬던 캐나다 여인.
5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활기가 넘친다. 세계적인 유통업체에서 재정전문가로 일하다 작년말에 은퇴한 뒤 여행을 시작했단다.
그녀에겐 이미 한국인 이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한국과 한국인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캘거리에는 조기유학을 온 한국학생들과 어머니들이 많단다. 동양 사람들의 교육열을 높이 사기는 하지만 그런 높은 기대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있고 그 도피처로 갱 조직에 빠져드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고 걱정도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문조차 안 잠그고 다니던 캘거리였는데 요즘은 패싸움을 벌이는 아시아계 청소년 갱들이 부쩍 늘어(주로 베트남과 파키스탄 갱들) 치안이 불안해졌고 그래서 캘거리 사람들이 아시아 사람들 이민 오는 거 안 반긴다나.
나이 먹은 사람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마련, 그녀와 나는 자연히 아침산책 친구가 됐다.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커피숍은 딱 한 군데. 아침잠 없는 시니어 그룹들은 여기서 다 만나네그려.
67세의 미국 아줌마(노란자켓)는 작년에 5박6일 잉카트레일과 죽음의 레이스라고 불리는 볼리비아 코로이코 계곡의 자전거 투어도 했단다. 내가 놀라 자빠지려고 하니까 자기는 전직 테니스 선수였고 지금도 하루 서너시간은 꾸준히 운동에 투자하고 있다면서 신체나이는 아마 나보다 젊을 거라고 뽐낸다.
내가 '늙어서 여행다니려니까.... ' 어쩌구 했더니 자기에 비하면 엘시는 소녀고 당신은 베이비라면서 당장 그말 취소하라고 펄쩍 뛴다. '알았다. 이제 다신 그런 소리 안 하겠다. 당신들은 내가 5년 후 10년 후에 본받고 싶은 나의 히로인'이라고 하니까 매우 기뻐하며 나의 실언을 용서해주었다. ^^
엘시는 지금쯤 벨리즈에서 산소통 메고 물속을 헤집고 있을 것이다. 스쿠바가 너무 좋아 벨리즈에 작은 아파트라도 한 채 사두고 싶다고 했을 정도니...
볶음밥 한 냄비면 여섯 사람이 행복하다
수퍼에서 사온 쌀이 3인분쯤 되어 보이지만 이거 아꼈다가 언제 또 해먹겠나 누가 먹어도 먹겠지 싶어서 다 털어넣고 밥을 지었다. 높은 지대라 밥이 잘 안 될까봐 물을 넉넉히 부어 오래오래 지었다. 사온 야채가 얼마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 썰어넣으니 큰 프라이팬으로 가득이다.
밥 앉치고 야채를 볶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냄새 맡고 다 들여다본다. 원래는 크리스티나와 로니랑만 먹기로 했는데 독일애 프랑스애 에콰도르 애까지 몰려왔다. 일본 컵라면도 내놓고 맥주도 내놓으며 한 자리 끼겠단다. 약간 싱겁게 해서 로니의 케찹병을 다 털어넣고 할라삐뇨를 곁들이니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볶음밥이 또 있을라고... 양도 충분해서 여섯 사람이 배부르게 먹고 실컷 행복해 했다.
산끄리스또발에서 놀기
첫날 저녁엔 마을 DVD관으로 영화를 보러갔다(25페소). 사람들이 몰려가는 분위기라 별 생각 없이 묻어갔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방문한 지역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키워드를 얻게 된.. 탁월한 선택이었다.
1992~2003년에 걸친 Zapatista들의 반정부투쟁을 그린 다큐멘터리였는데 화면도 구성도 단조롭고 지루한 데다 영어자막이 빠르고 건너뛴 설명이 많아 웬만하면 졸기 십상이지만, 내용 자체가 우리나라 광주항쟁 못지 않은 묵직한 기록들이라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화면에 이 동네 마을회관 베란다 장면도 나와 더 실감이 났다. 복면 한 사파티스타들이 총격전을 벌이던 장면이었던가? 마지막으로 정부군에 투항하던 장면이었던가?
생존을 위해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던 행렬들, 여자들의 저항 장면 등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약자들의 권익을 위한 투쟁은 박물관에나 들어가야 하는 유물이 된 것인가?
자신의 분신, 자신의 희망들을 산속으로 떠나보내고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이 영화로 산끄리스또발은 또 다른 얼굴을 내게 보여주었고 다음날 마야 마을을 방문했을 때 나는 그 얼굴의 표정까지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둘째날 저녁에는 '빨렝께 로호'(붉은 빨렝께)라는 공연을 보러 갔다.
엘시가 하도 근사하다고 해서 갔는데 비싼 표값(100페소)에 비해 좀 실망스러웠다. 의상과 무대가 호화찬란한 판토마임이라고나 할까.
동작들은 훌륭했다. 유적지 벽화들을 재현한 춤, 미끄럽게 기어가는 악어. 날쎈 치타 같은 동물들의 몸짓 등.
압권은 해골춤이었다. 3미터에 가까운 해골이 건들건들 춤추며 인간을 위협하는 장면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신체 각 부분에 줄을 이어 사람들이 죽어라고 뛰어다니며 조종을 하고 있더군.
사진을 못찍게 해서....피날레에 인사할 때 몰래 한 장.
몹시 추웠던 산끄리스또발의 밤
첫날밤은 이틀간 못 잤던 피로가 몰려와 추운줄도 모르고 쓰러졌는데 너무 추워서 한밤중에 깼다.
덜덜 떨며 내복 꺼내 입고 양말 신고 비어 있는 침대에서 담요 하나 더 가져다 덮었는데도 새벽녘에 추워서 또 깼다. 둘째날은 빈 침대가 많이 생겼기에 담요를 욕심스럽게 세 장이나 더 가져다가 묵직하게 덮었더니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잘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