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남미

Mexico10 - Palenque2

張萬玉 2008. 5. 24. 06:53

늦었나 싶어 헐레벌떡 갔는데 도착해보니 파티 준비하는 기색은 어디에도 없고 연세 지긋한 아저씨 혼자 열심히 풍선을 불고 있다. 파티 테이블 장식할 거란다. 헌데 만들어놓은 걸 보니 파티 장식과는 거리가 멀다.

멋진 스쿠버 장비를 선물받고 입을 못 다무는 이 아이는 파티 주인공의 아들 야니.

 

알고 보니 오늘의 파티는 트레이시네 파티가 아니고 이웃 텐트에 사는 야니 아빠의 생일파티다.

당신 맘대로 손님 초청한 걸 야니네 가족은 알기나 하냐고 물으니 여기선 그런 거 안 따질 뿐 아니라 내가 당신 초청할 때 야니 엄마가 함께 있었으니 염려 말란다. (비누방울 놀이 하던 여인이었다)

 

야니네는 3대가 함께 여행중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야니 할아버지가 직접 개조한 캠핑카를 타고 매년 겨울이면 멕시코로 온단다. 항공사에 근무했다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야니 아빠는 현재 직업도 여행사 운영이고 야니 엄마도 여행중에 만났단다.

캐나다엔 은퇴 후 미니밴을 개조하거나 재산을 처분하여 캠핑카를 장만하는 노인들이 퍽 많다고 한다.

큰 돈 안 들이고 고물차에서 떼어낸 부품을 이용하여 간단히 꾸민 차지만 텐트만 하나 더 실으면 일곱 식구(야니네는 아이들이 세 명이다) 여행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승합차를 캠핑카로 개조하는 기술을 전수받으러 오는 이웃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야니 할아버지, 은근히 자랑이시다.

 

 

풍선을 부는 아저씨 곁에서 그의 아내는 야니 동생 미까의 얼굴에 예쁜 나비를 그려넣는다.

원래 직업이 뭘까. 여행길에 풍선과 물감을 챙겨 가지고 다니다니... 무척 궁금했다.

야니네 텐트 옆집 산다는 그 프랑스인 내외는 파티 준비엔 열심이더니 정작 파티 때는 안 보이데... 

 

 

천사가 따로 있나.... 예쁘다는 칭찬에 신이 난 미까.  

 

파티 참석자들 전원이 하나씩 풍선액세서리를 선물받았다.

트레이시와 조카는 멋진 모자를, 나는 착용하기 불편할 정도로 화려한 팔찌를...   

 

시장에 고기 사러 간 야니 엄마 아빠가 돌아와야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데 날은 저물고...

우선 있는 재료나 다듬자고 야니 할머니가 야채 보따리를 가지고 나온다. 현미와 당근, 양파, 피망, 토마토, 마늘 등등을 건네주며 나더러 어떻게 해보라는데, 이 재료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볶음밥이지.

헌데 밥이 양도 많은 데다 생각처럼 뜸이 제대로 들지 않아 반으로 나누고 트레이시의 조카를 조수로 고용해 두 군데에서 볶았다. 트레이시는 감자 햄 계란, 피망, 양파, 바질이 든 올리브오일로 독일식 샐러드를 만들고 야니는 과자봉지를 뒤집어 얻은 은박지에 갈대잎을 붙여 왕관을 만들고 색종이로 'King of Palenque'라는 글씨를 오려붙였다. 야니 할머니도 무슨 선물인지 준비하느라고 오락가락... 모두들 분주하다. 

 

 

아이고, 다 타네!

소시지 바베큐는 야니 할아버지 담당이다.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주인공이 드디어 돌아왔다. (사진 속 인물들이 모두 웃고 있군.)

 

 

테이블 세팅 완료.... 야니 엄마 감격했다.

 

 

내가 사온 맥주로 기분좋게 건배!

 

 

키스하는 사진 찍어 보여주니 너무 좋은 생일선물이라며 기뻐한다.

야니 아빠의 노트북에 옮겨주고 내 블러그에 올려도 되느냐니까 흔쾌히 허락. ^^   

 

Let's dig in!

 

파티가 너무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축배만 들고는 난 곧 자리를 떠야 했다. 가로등도 없는 2킬로의 숲길을 혼자 가야 하니. 헌데 트레이시의 조카가 따라나선다. 가깝지도 않은 길을 나 바래다 주고 어떻게 또 돌아오느냐고 만류했더니 나 혼자 보내면 걱정되어서 자기 마음이 더 불편할 것 같다면서 막무가내다. 미안하긴 하지만 나도 혼자 갈 밤길이 걱정이었고 얜 젊으니까.....

 

헌데 돌아와서 샤워한 후 오늘의 일기를 쓰려다 보니 노트가 없다. 마야벨에 두고 온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내일은 새벽에 과테말라로 떠나야 하는데...

어쩔 수 없다. 밤중이라도 할 수 없고 2킬로라도 상관없고 위험해도 어쩔 수 없다. 어디 있는 줄도 아는데 현금카드보다 더 소중한 일기를 속수무책으로 잃을 순 없지.

택시가 없으면 걸어서라도 가겠다고 정신없이 뛰어나갔는데 마침 눈에 익은 총각이 차를 몰고 나간다. 까페에서 노래하던 가수다. 오늘 공연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란다.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더니 흔쾌히 데려다주겠단다.

 

마야벨에 도착하니 야니 할머니가 "노트 가지러 왔지요? 엇갈렸나 보네. 조금 전에 갖다준다고 나갔는데" 하신다. 흐억! 그 먼 길을.... 이 밤에.... 트레이시 조카는 이미 나 때문에 4킬로를 걸었다.

게다가 그 노트가 내게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그들에게 그건 그냥 하찮은 노트일 뿐일 텐데....    

 

차를 돌려 천천히 되집혀 오면서 어두운 길을 살피니 보인다. 트레이시와 조카, 야니 엄마 아빠가 유모차에 미까를 태우고 산책을 즐기듯 걸어가고 있다. 너무 감동 먹어 하마트면 얼싸안고 울 뻔했다.

이 일로 빨렝께는 내게 절대로 못잊을 곳이 되었다.

감동을 이기지 못해 로니랑 한잔 더 하면서 우리도 될 수 있으면 그렇게 살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