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남미

Guatemala1 - Flores, Tical

張萬玉 2008. 5. 24. 22:06

멕시코-과테말라 국경 넘기

 

5시 반 기상, 눈꼽만 떼고 배낭을 둘러멘다. 

6시 정각에 우리를 과테말라 국경까지 데려다 줄 미니버스 도착. 버스에는 보남파크 가는 사람들과 약실란 가는 사람들이 타고 있다. 국경 넘는 투어는 350페소. 국경까지 가서 보트로 강을 건네준 뒤 입국수속을 마치면 다른 버스가 와서 우리를 과테말라의 플로레스까지 데려다준다.

1시간쯤 달려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달려가는 숲길은 아침햇살 아래 곧게 뻗어 있다. 남은 여정이 저렇게 순탄하지만은 않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탄탄대로를 달려가고 있다. 

 

멕시코 출입국관리소에 도착해서 출국절차를 밟는데... 요상한 제안을 한다. 입국시 받은 여행자카드를 반납하든지 아니면 100페소를 내라는 거다. 이 여행자카드는 멕시코에 재입국할 때 제출해야 하는데(180일짜리 비자를 받았음) 여행자카드가 없으면 입국세를 두 배로 내야 한다나?

나는 '이 나라에 입국할 때 입국세를 냈던가?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명색이 공무원인데 설마...' 하며 달라는 대로 주었는데, 내 뒤에 섰던 까칠한 로베르트, 그냥 넘어갈 리 없다. 그런 게 어딨냐고 따지다 따지다... 안 되니까 씩씩거리며 입국할 때 두 배 아니라 네 배를 내더라도 이 뭔지 모를 돈은 절대 내지 않겠다고 여행자카드를 내주고 만다. 나중에 깐꾼으로 입국할 때 여행자 카드를  제출하니 그건 필요없다면서 (입국세가 어딨어..) 새로 여행자카드를 내주더군. 나쁜 넘들!

 

 

멕시코와 과테말라 사이를 흐르는 우스마센따 강에 도착한 것은 10시경. 

모두 차에서 내렸지만 약실란으로 가는 애들은 다른 배를 탄다. 

 

 

 

강을 건넌 지점은 베델이다. 버스 시골정류장 같은 출입국사무소가 바로 나타난다. 

국경은 환율이 나쁘기 때문에.(1달러 7.5께쌀인데 7로 준다)  우선 10달러만 바꿔서 입국세 40께찰 냈다.

 

폐차 직전의 승합차를 타고 플로레스까지 가는 데 세 시간 반 걸렸다. 두 시간 정도는 캄보디아의 시엠립 들어가는 길처럼 심한 비포장이라 창문을 꼭꼭 닫아도 황토먼지가 버스 안에 가득하다. 국경마을은 어느 나라든지 가난한 것일까? 움막을 간신히 면한 집들도 그렇지만 풍성해 보이는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들까지 왜 저렇게 비쩍 말랐는지....

 

2시 반 쯤 플로레스섬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산타 엘레나의 버스터미널 도착.

 

플로레스 섬에는 ATM이 없으니 여기서 현금 인출하란다. 1000께쌀을 뽑아 지갑을 꽉 채우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물가 싼 과테말라에서나 지갑 한번 맘껏 열어봐야지.

 

헌데 플로레스 섬으로 들어오니 웬지 김이 샌다. 현지인들이라곤 관광업 종사자밖에 없고 여행객들만 북적거리는... 띠깔 유적지를 찾는 여행객들을 위해 개발한 신도시인 것 같다. 하긴 나도 띠깔 유적지를 보려고 여기 들른 것이긴 하다만...  

 

'친구'들이 기다리는 '친구들' 호스텔(Los Amigos)  

로베르트의 추천으로 로스 아미고스를 찾아갔다. 

시끌벅적하고 좀 상업적인 느낌이 나지만 웬지 마음에 든다. 1박 25께쌀. 

 

 

  

 

 

 

플로레스 둘러보기

도착하던 날 '제대로' 점심 겸 저녁을 먹었던 호변 레스토랑

 

바람이 시원하고 호수가 아름다워 노을이 꼴딱 넘어갈 때까지 낮술에 취해 있었다.  

 

 

 

이튿날 띠깔 투어 다녀와서 한숨 자고 로니와 동네 구경. 일단 산타 엘레나를 둘러보기 위해 뚝뚝이를 탔다. (둘이 5께쌀, '1인당' 5께쌀이라는 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10께쌀 내게 된다)

 

교회 앞에서 예배 참석을 권하는 노방전도중.    

 

멀리서 보면 이렇게 아름다운데

 

가까이 가서 보니.... (윽, 괜히 봤다) 

 

그래도 연인들은 즐겁기만 하다 

 

호수 주변의 레스토랑 

 

시원해요, 들어오세요!! 

 

섬을 한 바퀴 돈 다음 섬 한 가운데 있는 동산으로 올라가니 역시 이 동네에도 소깔로가 있다. 소깔로에는 성당이 있고 공원이 있고... 

 

불타는 석양을 배경으로 동네 아이들이 농구를 한다 

 

 

내일 우리가 방문하려는 띠깔 주변은 어마어마한 정글지대다. 

텐트를 빌려 야영하면서 3박4일 동안 정글탐험을 했다는 애들을 만난 뒤로 거기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로니는 동행을 구하려고 안달이 났다. 내게도 같이 가자고 졸랐지만 그렇게 한 발씩 빠지다 보면 남미는 물건너가겠는걸. 저녁 내내 여행사들을 뒤지고 로비에서 이 사람 저사람 붙들고 권해보지만 여의치 않자 단단히 삐진 로니... 내일의 스케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나는 로베르트랑 내일 새벽 세 시 반에 나가는 띠깔 Sunrise 투어를 예약했다.(250께쌀. 왕복교통과 입장료 50께쌀, 가이드비가 포함된 가격이다. 25께쌀 더 내면 훌륭한 아침도시락을  준비해준다. 띠깔은 버스도 있으니 해맞이 투어가 아니라면 개별적으로 가도 된다).

 

띠깔 투어 

새벽 3시에 로니가 깨우러 왔다. 내 점심까지 챙겨들고... 어젠 삐져서 안 간다더니?

1시간 반 달려 티깔에 도착. 아직도 정글엔 밤이 가시지 않았다.

어두운 길을 더듬어 4신전까지 올라간다.

일출을 기다렸으나 언제인지 모르게 밝아버렸다.

신전들 옮겨다니며 해설을 듣다가 하늘을 보니 어느새 파란 바다에 흰 돛단배가 유유히 떠다닌다. 

마지막 신전은 거의 수직상승. 나는 안 올라가고 사진만 찍었다.  

띠깔 유적은 어느날 사라져버린 마야문명의 흔적이다. 자세한 설명은 인터넷을 뒤져보세용.

 


플로레스에서 만난 사람들

아르헨티나에서 온 마카레나와 훌리에또.

 

일행이 생기면 일행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줄어드는 법. 그래서 나도 길동무를 찾을 때는 주로 혼자 다니는 사람을 고르곤 했다. 그런 내게도 일행이 생기니 'Hola!'는 외치지만 그것으로 끝.. 사람들을 처음 만나면 대화를 트는 것은 십중팔구(까지는 아니고 십중육칠) 내 쪽이었는데....

이번엔 이 아가씨들이 먼저 대화를 청했다. 아시아 여자랑 얘기해본 적이 없어서 내가 배낭 메고 들어왔을 때부터 말을 걸려고 했단다. 내일 떠난다니까 아쉬워하며 아르헨티나에 오면 연락하라고... 꼭 가봐야 할 곳과 함께 전화번호까지 적어줬다.  

  

휴가가 일주일밖에 안 되어 하룻밤씩 찍고 다니고 있다는 캐나다 아저씨.

대개들 버스로 다니는 플로레스-과테말라 구간조차도 비행기로 날아가더군. 뺀질이처럼 보여 첫날은 말을 걸어도 시큰둥했는데 띠깔 투어를 같이 다녀보니 소탈하고 활달한 사람이었다. 만능 스포츠맨.   

    

내 아랫침대를 썼던 깜찍한 스위스 아가씨. 고등학교 졸업하고 2년째 여행중이다. 6월에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한다. 일부러 사진을 이렇게 찍고 '레몬공주'라는 제목을 달아줬다. 

 

 

로니와 로베르트와의 마지막 저녁식사. 둘 다 시무룩하다. 

로니는 내가 내일 세묵 참페이로 떠난다니까 '나도 거기나 따라갈까부다...' 하더니, 완전히 혼자 여행이었다면 그저 그러려니 할 텐데 같이 다니다 헤어지려니 너무 마음이 허전하단다. 사실 그 애가 신명을 잃은 것은 그럴 만한 때가 됐기 때문이다(홀로여행 3주 정도면 이런 고비가 온다). 게다가 그렇게 목을 매던 정글탐험이 무산되고, 다음 행선지로 예정했던 벨리즈의 스쿠버 다이빙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다음 행선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어서 다소 심란한 상태였던 거지. 로베르트 역시 계속 배탈중이라 처져 있고...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두 사람을 두고 내 길을 가려는 나 역시 뒤꼭지가 꽤나 땡겼다.

 

'친구들'의 이야기

로스 아미고스 호스텔에 딸린 레스토랑의 메뉴를 보면 앞표지에 이 호스텔의 역사(!)가 적혀 있다.

로스 아미고스의 설립자(!)는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퇴근하는 틀에박힌 생활에 진력이 나 있던 엔지니어출신의 네덜란드 청년(이름 잊어버렸다).... 2004년 휴가 때 과테말라에서 일하는 동생을 만나러 왔다가 어릴 때 자랐던 멕시코와 흡사한 과테말라에 빠져버렸단다. 빠진 김에 단골 식당의 주방장이었던  에리카에게도 푹 빠져 결국은 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집을 팔아 송금해달라고 부탁하기 이르렀다고...

둘은 결혼하여 산타 엘레나에 식당을 차렸다가 2년 만에 플로레스로 옮겨와 이 호스텔을 열었고 1년 뒤에는 '정글에서 걸어나온 푸른 손을 가진 사나이'가 합류, 로스 아미고스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멋지게 탈바꿈시켰다고 한다.  

 

로맨스 소설 같은 이들의 스토리를 읽다 보니 중국 리지앙 '사쿠라' 식당의 김명애씨 생각이 났다. 그 집에도 메뉴판 표지에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적어놓았던데.....

아직도 그런 스토리에 가슴이 뜨거워지니 이 할매 언제 철들려나 모르겄다. ^^   

 

말수는 적지만 미소가 따뜻한 에리카  

 

동물을 너무나 좋아하는 제로니모. 늘 앵무새를 어깨에 앉히고 다닌다. 

개가 두 마리인데 한 마리는 쳐다도 안 보고 이넘만 이뻐한다. 이뻐하다 못해 깨물어먹을 지경이다.

진짜 정글에서 살았느냐고 물어보니 1년 반 정도 텐트 치고 혼자 살았단다..

 

자다 보니 발치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물컹 느껴지길래 깜짝 놀라 일어났다.

이층침대까지 넘보다니... 깜찍한 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