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남미

Guatemala9 - Chichi

張萬玉 2008. 5. 29. 14:01

일요일에는 인디헤나들의 시장으로 유명한 치치카스떼낭고에 갔다.

치치까지는 여행사 버스가 다닌다(왕복 40께쌀) 8시 출발이고 도착하면 자유로 돌아다니다가

2시에 버스 내린 지점으로 돌아오면 된다.

이 버스는 안띠구아행 버스와는 달리 중턱으로 난 길을 따라 산타 끌라라 마을을 지난 뒤에서야 산 꼭대기로 올라간다. 현지인들도 여행사 버스를 많이 이용하는 모양이다. 

예의 공사구간 지나면 안띠구아와 치치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치치로 가는 왼쪽길이 품고 있는 산촌마을은 꼭 우리 나라 강원도 같다. 아담한 텃밭에 배추도 보이고, 닭도 목에 털 있는 닭이고... ㅎㅎㅎ

관광지 느낌이 전혀 없는 소박한 마을들을 몇 개 지나 읍내로 들어가나 했더니 다 왔단다.

버스 주차장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가니 바로 시장이다.

 

이 동네 사람들도 사진 찍히기를 꺼려 카메라를 들이대면 고개를 돌려버린다.

게다가 햇빛은 쨍쨍한데 카메라를 제대로 다룰 줄 몰라 좋은 사진 몇 장 못 건졌다.

 

예쁘게 수를 놓은 허리띠 가게 

 

손으로 짠 스커트라 현지인끼리 거래하는 건데도 가격이 꽤 비싸다. 주로 결혼할 때 장만한다고 한다.

 

이 아주머니는 웃어주시네... 고맙습니다!

 

흘러넘치는 원색의 향연..

 

고단해, 사는 게 고단해....

 

꽃처럼 피어난 색실들.

 

그 색실로 열심히 수를 놓는다.

 

우리는 자랑스런 쿠쿨칸의 자손들...

 

아기자기 수를 놓은 식탁보. 마야달력을 수놓은 것도 있었는데... 실수로 지웠나보다.

마야달력... 아시죠? 인류의 마지막날을 예고하고 있는...(요즘 대지진과 홍수를 보니 좀 무섭습디다)

 

멋진 대형 보자기가 있는 이들에게는 가방도 포대기도 따로 필요없다.  

 

찍지 말라구요...

 

아, 찍지 말라니까? 

 

찍든지 말든지... 

 

전 찍어주세요. 

 

이 시장엔 팔찌나 손가락인형 등 작은 기념품을 들고 관광객을 따라다니는 꼬마들이 어찌나 많은지....

어디 가나 이런 애들은 많지만 이 시장 애들은 유난히 끈질기다. 동생 업고 다니는 꼬마에게 졸리다 못해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인형 한쌍 샀는데 그만 다른 아이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진땀을 빼다가 문득 방법을 찾아냈다. 카메라를 꺼내드는 것이다.  

예상대로.... 한순간에 사라져주었다.

아띠뜰란 호수변 마을에서는 서로들 찍어달라고 야단인데... 부족이 달라서 그런가?

 

아, 재섭써!! 자꾸 찍으면 이 닭 던질꺼야!

 

난 신경 안 쓸 테니 쌀이나 좀 사가슈! 

 

시장 안에 있는 식당  

 

젊은 새댁들의 수다가 늘어졌다. 멀리서 땡겨 찍었더니 덜 똑똑하다. 

 

또르띠야도 같이 구으면 즐겁다. 

 

마을회관 복도 

 

마을의 중심인 성당 앞.

무슨 향을 저렇게 피워대나... 시야가 뽀얗다. 

 

높은 곳에 계시는 천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돌아오는 길. 옆자리에 잘생긴 청년이 앉았다. 입이 저절로 찢어질 것 같아 표정관리에 신경쓰고 있는데 혼자 다니는 거 좋아 보인다고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건다.

이스라엘에서 왔단다. 바로 뒷자리에서 다섯 명의 이스라엘 지지배들이 지지배배 떠들고 있지만 Mori는 점잖고 매너도 퍽 세련됐다. 어느 나라 사람들은 어떻다고 단정하면 안 되겠다.

6개월 동안 남미를 돌고 오는 길이란다. 나도 곧 남미로 넘어갈 거라고 했더니 페루는 어디가 좋았고 볼리비아는 어디가 좋았고 숙소는 어디가 좋고 투어는 어디서 하는 게 좋고.... 하면서 일일이 메모까지 해준다.

 

궁금했던 키부츠에 관해서 물어보니 자기도 키부츠에 살고 있는데 요즘은 40년 전 키부츠와는 많이 다르단다. 키부츠마다 사정이 다르고 키부츠 내에서도 차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형편이 빠듯한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집단주의적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단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키부츠는 네슬레 제품 생산으로 다른 키부츠에 비해 부유한 편이라나.   

 

그의 한국에 대한 궁금증은 통일문제였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고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빨리' 통일되기를 원하느냐고 물어보는데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북한이 가난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붕괴되지는 않을 것 같고, 만일 붕괴된다 해도 양쪽 모두 힘들 것 같은데 평화롭게 공존해도 좋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북한과 대한민국은 엄존하는 두 개의 국가일 테지만 유태인들에게와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에게도 민족이라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라고만 대답했다. 상당히 깊이 들어오는 질문을 보면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는 수준인 듯.... 

(대화중에 내 머리에도 관념적인 도식이 하나 떠올랐던 모양이다. 당시 메모를 보니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의 통일문제가 간단치 않은 이유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두 개념이 상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개념을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고양시킬 것이냐'에 한반도 통일의 해법이 들어 있을 것이다.

하나마나 한 얘길 이렇게 소중히 모셔둔 걸 보니 대화를 하며 나도 상당히 고양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ㅎㅎ ) 

 

한국 사람들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을 원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는 종교도 종족도 다르기 때문에 현상태로 평화만 정착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기 숙모가 테러로 무고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여자들을 평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이슬람 문화 얘기를 하면서... 하마스의 근본주의를 격렬하게 공격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이스라엘 사람 맞다.

 

수다 떨다 보니 세 시간이 넘는 길을 오는 줄도 모르고 왔다. 모리가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붙들지만 나는 마음이 바쁘다. 월요일까지 학교 수업 보충이 있어서 그날 저녁까지는 산 뻬드로에 머물러야 하는데 지금 묵고 있는 알레한드라네 집의 내 침대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일요일 저녁까지 새로운 학생을 위해 비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배낭을 싸서 맡겨놓고 까사 엘레나를 비롯해서 몇 군데 호스텔을 돌아봤지만 빈 침대가 없었다. 얼른 적당한 호스텔을 골라 체크인 하고 배낭을 찾아와야 한다.

모리가 묵고 있는 호스텔도 꽉 찼다면서 윗골목에 있는 산프란시스코로 가보라고 한다.

 

산프란시스코에도 방이 딱 하나 남았다. 거의 창고 수준이지만 그래도 방도 욕실도 혼자 쓸 수 있는데 25께쌀, 그것도 이틀이라고 40께쌀에 쓰란다. (호스텔 관리인은 어디로 갔는지 열 살 정도밖에 안 되는 마리아라는 어린 소녀가 능숙하게 흥정까지 한다) 딱 이틀밤인데 좀 후지면 어떠랴. 

배낭 가지러 알레한드라의 집에 갔더니 교회에 갔는지 집이 텅 비었다. 엊저녁에 가족들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해두긴 했지만 텅 빈 집에서 나오려니까 좀 섭섭하다.

 

체크인은 했지만 이 호스텔에 잘 들어온 건지... 미심쩍은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내 방문이 잘 안 열린다. 열쇠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요지부동.... 결국 마리아를 불러서 여는 법을 배워야 했다(열쇠로 돌린 상태에서 문을 살짝 들어올려야 한다.. ㅜ.ㅜ)

 

앞에 서있는 녀석이 마리아 

 

단독으로 방을 쓰니 하룻밤에 40께쌀은 받아야 한다고 어린 마리아에게 훈수 두던 동네 아줌마와 할배.

 

방문 열쇠만 이상한 게 아니다. 대문도 따로 열쇠가 있는 게 아니라 닫으면 잠기는 식인데 들어갈 때는 문의 한가운데에 좁쌀 만하게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보일듯 말듯 빠져나오는 실을 잡아당겨서 문을 열게 해놓았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와 들어가려는데 아무리 더듬어보고 들여다봐도 이 실이 보이지 않아 마침 함께 들어가려던 다른 방 애가 옆집을 통해 담을 넘어들어가서 문을 열어줬다.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는데....

 

결정적으로 이 호스텔에서 벼룩이 옮았다. 

당시에는 좀 가렵군, 그러다 말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 호텔에서 벗어날 때부터 본격적으로 가렵기 시작하여 온몸 전체가, 그것도 남들 앞에서라도 몰래 긁적긁적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번졌고 물린 자리도 부어오르다 못해 진물까지 난다. (이 상처는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처음 들어와 먹다 남은 또르띠야가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걸 발견했을 때 이 호스텔의 청결상태를 알아봤어야 했는데... 후회를 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