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aragua - Managua
낯선 도시에서 내게 손을 흔들 사람은 C밖에 없는데.... 정말 쟤가 C 맞아?
나도 '반갑다 친구야'에 출연했으면 '미안하다 친구야!'를 외칠 뻔했다. 누가 30년이란 세월을 거스를 수 있겠나. 하지만 어릴적 친구의 백발과 주름살은 몇 마디만 오가도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리기 마련이다. 여전한 눈웃음, 무게 잡는 말투... 그래, 너 C 맞구나.
로렌을 배웅한 뒤 일단 짐부터 내려놓고 놀자고 적당한 호스텔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자기 집에 빈 방 놔두고 무슨 소리냐고 펼쩍 뛰는 C. 하긴 우리는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에 다락방 단칸방 안 가리고 몰려다니며 한 이불에 발 꽂고 놀던 사이였다. C의 스스럼없는 권유에 세월 따라 쌓아올린 체면의 벽이 단박에 무너져버린다. 좋아, 네 소원이라니 그럼 가주지 뭐.(나 낮두꺼비... ㅋㅋ)
2001년쯤 과테말라로 왔단다. 자세한 얘긴 안 하지만 IMF 시기였고 하니 모르긴 해도 사업에 굴곡이 있었던 모양이다. 남편과 함께 과테말라에서 선교를 하고 있던 동생으로부터 이곳 이야기를 익히 들어오던 터에 마침 일할 기회가 닿아 이주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과테말라 시티에서 2년...
사업은 그런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지만 치안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강도를 두 번이나 당했단다) 이주를 고려하고 있던 중 니카라구아 쪽에 일거리가 생겨 왔다갔다 하다가 아예 눌러앉기로 했다고...
7년간 땀흘려 일궈놓은 C의 보금자리. 월세가 800불이라는데 대저택이다.
뒷뜰에 있는 분수는 이곳이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곳임을 확인시켜준다.
우선 배낭을 몽땅 뒤집어 벼룩이 옮았을지도 모르는 옷들을 모조리 세탁기에 넣고 나서 간만에 뜨거운 욕조에 들어가니 천국이 따로 없다. 맛있는 거 사준다고 나가자는데 절!대!반!대! 한 달 가까이 한국음식 구경 못한 내게 그 집 냉장고 속에 있는 것들보다 더 맛있는 게 어디 있을라고... 주부가 집을 비웠어도 (M은 한국에 다니러 가 있었다) 훈련된 가정부 마리아가 따끈한 쌀밥에 된장국 끓이고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들을 죄다 꺼내 푸짐하게 한상 차렸다.
창고 속에서 잠자고 있던 옛날 앨범 다 꺼내놓고 1968년으로 돌아간 우리를 보며 우리 아들 또래의 큰딸과 연년생인 작은딸은 재밌어 죽을라칸다. C도 타향살이 7년이 많이 외로웠나보다. 니카라구아의 밤은 30년의 세월을 얘기하기엔 너무 짧았다.
이튿날 새벽에 C를 출근시키러 왔던 기사가 8시쯤 다시 왔다. 오늘 하루 내가 원하는 곳 어디라도 데려다주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한다. 두 딸들도 나를 에스코트해주겠다고 부지런을 떤다.
이 집에서 얼마나 일했는지는 안 물어봤지만 한국사람이 다 된 마리아.
마나구아에서 두 시간 떨어진 시골에 아이를 두고 온 20대 초반의 어린 엄마다.
여기가 C의 일터.
현장감독은 함께 일한 지 3년, 설계사는 4년 됐다고 한다.
건축회사를 하고 있는 C는 공사가 시작되면 사무실엔 거의 안 들어가고 현장에서 살다시피 한단다. 지금 리모델링하고 있는 공장은 대규모 공단에 입주해 있는 공장인데 이 공단 안에 있는 공장 대부분이 소모사 정권을 거치면서 망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 폐허 상태로 버려져 있었으니 말이 리모델링이지 거의 새로 짓는 거나 마찬가지겠다.
before
After
공단 뒤쪽은 바로 띠스까빠 호수. 보기는 좋은데 냄새가 장난 아니다. 대개의 경우 호수에 가까울수록 비싸지만 니카라구아의 경우는 호수에 가까이 갈수록 땅값이 싸단다. 소모사 정권 때 공장폐수를 그대로 흘려보내면서 돌이킬 수 없이 오염된 거다.
잠깐.. 읽으시는 분들의 이해를 위해 니카라구아 근대사 간단히...
1821년 스페인 지배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이래 토지와 무역정책을 둘러싸고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사이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자국의 영향력을 보장하기 위해 무력개입까지 불사했고 이러한 외세 개입에 대해 산디노 장군을 중심으로 한 게릴라 세력들이 저항했으나 실패했다.
1936년 국가방위군장관인 소모사 가르시아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약 40여 년간 족벌지배체제를 유지했는데 1961년, 산디노의 전통을 계승하여 결성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이 소모사 독재체제에 대한 무장 저항운동을 시작하였다.
결국 1979년 무장투쟁과 도시의 대중봉기를 결합한 FSLN의 주도 아래 니카라과혁명은 성공하였지만 미국은 산디니스타 좌익정부의 안정화를 방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개입해왔고 그 결과 1990년 2월 선거에서 미국의 지원을 뒤에 업은 보수세력이 승리했다.
우리도 중국살이를 하며 경험한 바지만, 맡기면 알아서 하는 한국 현장과는 달리 사장이 직접 뛰어다니며 확인해야 일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니... 얘기는 쉽게쉽게 해도 쉽지 않게 일하고 있다는 게 눈에 선하다.
그러나 힘들게 일하는 만큼 일 잘하는 회사로 정평이 나 있다니 그동안의 고생이 결실을 거두고 있나 보다.
이 나라에서 사업하는 데에 핵심은 현지인과의 관계를 통해 수주하는 것과 기간 직원들의 진용을 믿을 만한 사람들로 꾸리는 것이라는데, 내가 알고 있는 C의 인간적인 면모로 미루어보아 그는 자신이 얘기하고 있는 사업의 핵심을 이미 틀어쥔 게 분명했다.
여기서 며칠 놀 것이냐를 결정하려면 역시 항공스케줄부터 확정해야 한다.
결국 파나마 시티에서 뿌에르또 올발디아로 날아가는(이상하게 버스노선은 없다) 파나마 국내선 뱅기표는 포기했다. 늦어도 20일경에는 남미로 들어가야 하는데 24일표밖에 없으니...
거기서 콜롬비아로 들어가려면 보트도 두 번 갈아타야 하고 다시 버스로 6시간... 그러다간 3월말이 돼도 보고타에 도착하기 어렵겠다. 남미로 어렵게 넘어와서 한 달만에 돌고 가라고?
암만해도 '보트로 다이렌 갭 건너기'는 내몫이 아닌가보다.
비행기로 건너가려니 콜롬비아행은 430불, 헌데 28일까지 자리가 없다. 그럼 리마행은? (비싸다... ㅜ.ㅜ)
뒤지고 뒤지고 뒤지다 결국 찾아냈다. copa 항공 368불짜리... 18일에 출발하는...
그러면 내일 바로 떠나야 한다. 길에서 또 이틀을 보내야 하니 파나마에서 조금이라도 쉬어가려면.....
오랜만에 편한 데서 이삼일 놀다 가볼까 했는데 운이 이렇게 뚫리니 어쩌겠나.
헌데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려니 뭐가 잘 안 된다. 외국 금융기관에서 발급한 카드는 어디에 등록해야 한다는데 뭔지 알아야지... 일단 예매만 해놓고 시내 나가는 길에 항공사에 들러 직접 구매할 수밖에.
항공사 가는 길에 구시가지에 잠깐 들렀다.
1973년의 지진으로 무너진 뒤 지금도 복구공사가 끝나지 않은 마나구아 대성당.
대통령궁이라는데... 어째 경비가 하나도 안 보일까?
국회의사당
구 의사당 건물. 지금은 국립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라고 쓰려고 하다 보니 왠지 아닌 듯.
구 마나구아 성당 건물 옆쪽에서 찍은 건가? 그러면 저 광고는 뭐지?...
(너무 후다닥 보느라고 뭘 봤는지도 모르겠다.)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청년 무명용사
항공사 창구에서 사려니 세금과 수수료 포함해서 463불이나 달란다. 한국에서야 10만원 차이...? 하고 말지만 배낭여행자에게 100불은 상당한 고액으로 간주된다. 니카라구아 신용카드를 갖고 있는 C전화해서 대신 결제좀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대답은 흔쾌히 했는데 걔도 헤매는 모양이다. 딸네미랑 몇 번 통화하더니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염려마, 끝냈어!" (친구야, 정말정말 고맙데이~ ^^ )
또 할 일이 남았다. 내일 떠날 티카버스 표를 사야 한다.
터미널에 갔더니 아이고, 또 난관이다. 파나마까지 가는 표가 없다.
할수없이 내일 출발하는 코스타리카의 산호세행을 끊었다. 일단 거기 가서 찾아보면 뭐가 있어도 있겠지.
가격은 285꼬르도바, 내일 8시반 출발, 12시간 걸린단다.
늦은밤, 정보 없는 낯선 도시에서 숙소 찾을 걱정이 또 시작이군. 그땐 그때고 지금은 즐겁게 달려야지.
나는 바퀴만 보면 굴리고 싶어지는 게 아니라 길(과 구름)만 보면 찍고 싶어진다.
처음 도착한 관광지는 마사야 화산. (시내에서 30분 거리. 입장료 70꼬르도바).
한라산 백록담보다 더 큰 분화구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온다. 휴화산이라는데...
그 장관을 이렇게밖에 못 찍나그래...
C의 꽃같은 딸네미들... 딸이 없는 나는 보기만 해도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얘들이 자기들 사진 올린 것 알면 뒤집어질라나? 그래도 어쩔껴, 한국까지 쫓아올껴? ^^
분화구 주변 가장 높은 봉우리로 올라가는 길
Stairway to Heaven... ^^
꼭대기의 십자가도 인상적인데 독수리(?)꺼정....
발 아래는 넓은 넓은 평원이 좌악---
척박한 화산재 속에서도 악착같이 피어나는 푸른 생명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마사야 화산 다음 행선지는 그라나다.
니카라구아의 옛 수도였던 도시여서 스페인 정복시기에 지어진 콜로니얼 건물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며 바로 근처에 우리나라 전라도 만한 크기의 어마어마한 호수가 있어서 니카라구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히는 곳이라 한다.
제일 먼저 우리를 맞아주는 건.... 역시 소깔로.
색깔을 새로 칠해서 얼핏 보면 우리나라의 무슨무슨 랜드 같지만 엄연히 스페인 정복시절에 세워진 건물이다.
그리고 노점상들.
(이 아저씨 아줌마.... 자세히 봐둬라. 포스가 진짜 장난 아니다)
이 쏘아보는 눈매가 매서운 아줌마도 그렇지만
이 아저씨 귓불 좀 봐라.
그날은 차마 카메라를 꺼내지 못했고... 다음날 버스 터미널에서 다시 만났을 때 몰래 찍었다.
왜 저렇게 몸을 못살게굴지? 혹시 무슨 종교적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내가 귀를 뚫었다면 저 귀걸이 하나 샀을 꺼다.
저거 하나만 매달고 다녀도 고리타분한 분위기를 좀 완화시킬 수 있을 텐데.. ㅎㅎ
소깔로 한켠에 있는 저 십자가 뒤로 걸어가면....
영화 세트장 같은 마을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도 성당
저기도 성당.
건축도 건축이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내 시선을 잡아끄는 저 도도한 이끼...
멕시코 산끄리스또발 분위기
창살 좀 보시게나.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들이라 꽤 비싸지만 음식들은 그 값을 한다.
요 집에서 점심 먹었다.
셋이 맛있고 배부르게 먹고 21달러 냈다.
그게 뭐가 비싸냐고? '니카라구아 물가에 비추어' 그렇단 얘기다. 배낭 지고 다니다 보면 이렇게 된다. ^^
오, 보인다... 야자수가 그림 같은 그라나 호숫가..
호수 맞은편에는 기~~~다란 회랑. 이것도 스페인 식민시 시절에 지어진 건물이겠지?
막상 다가가보니 호숫가도 지저분하고 물도 그리 깨끗한 것 같지 않고 사람도 별로 없다.
호변엔 멋진 나무들 외엔 이렇다 할 시설이 아~무것도 없다.
있다는 게 이 정도.....가게도 없다.(좋아좋아!)
지저분한 호숫가도 멀리서 보면 근사하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행선지 까따리나 마을로 간다. (에구, 길을 또 찍고 말았군)
이렇게 예쁜 길을 어떻게 안 찍냐고....
또 찍었다.... 나는 바퀴만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
도중에 묘지가 보이길래 잠깐 세워달라고 했다.
마침 장례 행렬이 다가오길래 차 안에 숨어 몰래 한 장 찍었다.
죽어서 꽃가마 타면 뭐하나...
까따리나 마을의 유일한 볼거리 까따리나 호수.
전망대에 있는 레스토랑에는 악사들이 돌아다니며 연주를 한다.
모빌도 가지각색
선인장도 가지각색
이 작은 마을은 화원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 C로부터 언제 시내 들어오냐는 전화가 빗발치지만 마지막 코스가 한 군데 더 남았다. 한국식품점에 들러 남은 꼬르도바를 처치해야 한다. 욕심은 앞서지만 배낭에 자리가 없어 많이 사지도 못한다. 당분간 비상식품으로 남아있으면서 내게 위안을 안겨줄.... 신라면 세 개, 깻잎통조림, 김 몇 봉.
마나구아에도 한국음식점이 몇 군데 되는 모양인데 여기는 영빈관.... 졸지에 VIP가 됐다.
분명히 한국식당인데 음식을 놓지 않으면 여기가 스페인인지 니카라구안지 모르겠군.
스페인식 건축물 안으로 들어가면 빙 둘러싼 건물 중앙에 대개 정원이 있고 작은 분수가 있다.
너무 거하게 쏘는구나.. 이 신세를 어찌 다 갚으려고... 좋다고 넙죽넙죽... ^^
난 걔가 폼생폼사하는 로맨틱 가이인 줄 소싯적부터 알아봤다. 술이 얼근했던 걸까?
집에 오자마자 내게 꼭 보여줄 게 있다고 하더니...
하하하... 귀여워라. 50 넘은 중년 사내의 로망이 바로 이것이었군.
할리 데이비슨이라나 뭐라나... 오토바이 한 번 타본 적이 없지만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온 꿈이었단다.
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지금의 목표는 오직 하나, 넘어지지 말자! 라고...
그래, 열심히 일한 당신은 떠나도 된다. 연습 많이 해서 중미 산천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렴.
밤이 깊을수록 얘기는 더 흥미진진해진다. 니카라구아보다 더 위험한 과테말라 얘기는 영화 시나리오 그 자체. 중미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과테말라에 왔던 엘살바도르 의원이 살해를 당했는데 용의자가 잡혔지만 감옥에서 살해를 당했고 아직도 그 사건은 오리무중이라는 둥, 강도가 중국인을 털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중국인이 마피아 멤버... 다음날 아침 그 강도의 시신이 신호등에 널렸다는 둥....
과테말라에 그렇게 강도가 많은 이유는 총기 구입이 너무 쉽기 때문이란다. 내전 때 다 수거하지 못한 총기류도 있지만 부패한 경찰이 몰래 빼돌려 파는 총기류가 대부분인데 60불이면 권총을 살 정도니 이런 사회에서 권총강도가 활개치지 않는다면 이상한 거지.
자기네도 딸네미가 타고가던 차를 강도에게 탈취당한 적이 있단다. 딸이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긴 하지만 딸네미는 그 일의 충격으로 아직까지 현지인들을 기피한다고 한다. 큰딸은 창가에 놓아둔 노트북을 향해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손까지 봤단다.
그래, 그동안 겪은 몸고생 마음고생 이루 다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어. 그래도 이젠 다 이겨내고 옛날얘기 하면서 웃는구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