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남미

Pan America Highway 2

張萬玉 2008. 6. 9. 11:15

6시에 일어나 아직 다들 자는 줄 알고 도둑고양이처럼 조용조용 샤워하고 짐 싸들고 나왔더니 웬걸, 모두 일어나 아침상을 차리고 있다. 살뜰한 큰딸은 점심값 아끼라고 도시락까지 싸놓았다. 계란도 두 알 삶고 물도 얼려놓고.... 어쩌면 딸들을 저리도 엽렵하게 잘 키웠는지..

C야, 네게 받은 가장 요긴한 도움이 뭐였는지 아니? 재워주고 밥 사주고 구경시켜준 것도 고마웠지만...

그보다도 벼룩이 성하기 전에 빨래하게 해준 것, 그리고 번거로운 티켓구매를 대행해준 거란다. 

절대 잊지 않을 꺼야.

 

다시 혼자가 됐다.

8시 20분경 출발. 출발하자마자 차장이 3달라와 여권 걷어간다. 출경할 때 돈 내는 거 첨 봤다.

어제 왔던 그라나다를 다시 지난다. 얼마 안 가 또 나타나는 호수. 라구나 네그로(검은 호수)란다. 이 호수 역시 엄청나게 크고 파도까지 친다.

어젯밤에 몇 시간 못 잤더니 졸음을 참을 수가 없다. 니카라구아 국경 지날 때 잠깐 깼다가 오후 2시 코스타리카 출입국관리소에 도착할 때까지 또 잤다. 버스에서 그렇게 오래 혼수상태로 자보긴 처음이다. 

 

 

코스타리카에서는 버스에서 내려 개별로 입국신고를 하란다. 그리고 짐 검사.

몇백 명의 입국자들이 쨍쨍 내리쬐는 햇볕 아래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짐 검사를 까다롭게 하느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 짐 검사하는 관리가 자리를 비워서...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항의하자 그냥 가란다. 어이상실.

 

같은 버스에 탔던 천방지축 막스. 붙임성이 좋아 많은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어이, 기다리기 지루한데 오렌지나 하나 드셔.

 

중미 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식꺼리. 궁금해도 참으시는 게 좋을 꺼다. 대부분 소스라칠 정도로 달다.

 

앞자리에 앉았던 스웨덴 커플이 자기네 나라에서 특별히 챙겨온 거라며 작은 스낵 한 봉지를 준다.

우웩!!

짜다 못해 쓰디쓴.... 뭐 이런 과자가 다 있어! (그런데 희한하게도 끝맛은 달작지근하다.)

이런 게 팔리냐고 했더니 재미로 먹는 애들이 꽤 있단다. 우리 아들 어렸을 때 재미로 가끔 사먹던 과립형 사탕이 생각났다. 톡톡 터지며 무자비하게 입안을 찔러대던.... 이름이 뭐였다라?

내가 오만상 찡그리며 출입국관리소 짐 검사 담당 직원에게나 갖다주랬더니 떼굴떼굴 구르며 웃어죽는다. 

 

국경에서 환전을 해야 하지만 달러가 통용되고 코스타리카에선 단 하룻밤만 머무를 테니 환전 안 하고 버텨볼 셈이었다. 코스타리카 화폐인 코로나 대 달러의 환율은 500 :1.... 화폐단위가 커서 계산하려면 복잡하다. 마침 점심도시락도 챙겨왔겠다, 웬만하면 코로나 거스름돈 만들 일 하지 말아야지.

 

버스가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반.

짐 검사와 시내 교통체증으로 예상보다 두 시간이나 늦었다. 

내리자마자 내일 파나마 가는 버스 티켓부터 물어보니 티까버스는 좌석이 없고 센트로에 있는 트랜스니카 터미널에 가서 알아보란다. 어차피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겠다.

날은 저물었고 또 어디서 자야 하나.

지나치기만 할 거니까 대충 묻고 다녀도 될 꺼라는 턱없는 자신감은 부활절 휴가에 딱 걸려버렸다. 띠까부스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까사 리지웨이 하나에 목숨걸고 왔는데 방이 없다니....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이 동네에서 날더러 어디로 가라고... ㅜ.ㅜ

이럴 줄 알았으면 과테말라에 있을 때 헌 책방에서 론리 플래닛 센트럴 아메리카편 하나 살껄...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트랜스니까 버스터미널 부근의 싼 숙박시설로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부활절 휴가 전후해서는 호텔들이 꽉 차니 알아보고 가야 한다며 여기저기 통화를 해본다. 이 동네는 기사들이 호텔 삐끼도 하는지 콘솔박스에 호텔 명함이 수북이 쌓여 있다.

서너군데 통화를 하더니 35불이면 되겠냐고 묻는다. 비싸다고 했더니 더 싼 데는 없다고 내리란다.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정말 빈 방이 없는 것 같긴 한데... 밝은날이라면 배낭을 멘 채라도 직접 발품을 팔겠지만.... 아이고, 모르겠다. 하루밤이니까.... 갑시다!

 

15분 정도 달려 도착한 Hotel Sura. 이번 여행 통틀어 가장 비싼 숙소였다..  

가격도 시설도 우리나라 모텔급.

  

 최선은 아니지만 이왕 온 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깨끗하고 안전하고 교통편 가깝고...등등

 

저녁 먹으려고 나오니 거리가 너무 깜깜하다. 게다가 식당도 가게도 눈에 안 띈다. 가로등도 없는 거리를 무작정 헤맬 수도 없고.... 잘하면 저녁 굶겠는데...

다행히 저 멀리 식당 같은 게 보여 가보니 중국식당이었다.

 

산호세 물가 너무 비싸다. 택시비도 호텔비도 나를 놀래키더니... 저 볶음밥 한 접시가 13달러!

바다가 가까워서 그런지 새우가 황송할 정도로 탱탱하긴 했지만...

 

예상치 않은 곳에서 중국사람을 만나니 서툰 스페인어는 물론 익숙한 중국말도 안 나온다. 그래도 고향사람 만난 것처럼 어찌나 반가운지.... 흥분하니까 스페인어와 중국어가 막 엉키고 영어까지 합세해서 더욱 버벅댄다. 한참 그러다 보니 중국어가 돌아오네. ㅎㅎ

배부르게 먹고 주인 아주머니랑 좀 노닥거리다 돌아오니 밥 먹으러 올 때만 해도 막막하던 기분이 싹 가셔버렸다. 서비스로 얻어먹은 공짜콜라 때문이었을까? ^^  

 

동 틀 무렵의 숙소 골목. 알전구가 달린 가로등 앞 건물이 내가 묵었던 호텔이다.

 

티켓 찾아 삼만리

 

새벽에 눈 뜨자마자 transnica로 달려가니 여기는 파나마행 노선이 없다네. 티카버스 터미널 직원이 준 정보라 일말의 의심도 없이 숙소도 이 근처로 잡았는데 뭐야~~ 

근처에 다른 버스터미널(panaline)이 있다고 해서 물어물어 가는데 한 자가용 운전자가 그 터미널에는 파나마 가는 버스가 한 번뿐인데 떠났을 꺼다, 트랜스코파로 가면 파나마 가는 버스 많다면서 자기 차를 타고 가란다. 거기 가서 자리 없으면 어떡할 꺼냐 했더니 자기가 책임진단다.

그럼 표를 손에 넣어야 차비를 지불하겠다고 하고 일단 올라탔는데 아차, 차비 흥정을 안 했군.

뒤늦게 물어보니 10달러나 달란다. 이 동네 물가가 비싸긴 하지만 아침부터 바가지라니....

급할수록 돌아가랬다고... 오늘 못가면 내일 가면 된다. 제발 침착하자, 응? 서두르다 사고 난다구..

 

터미널에 도착하자 아저씨가 먼저 차에서 내리더니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버스 출입구로 들어가 코파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를 하나 데리고 나온다. 나 보는 앞에서 책임지고 파나마행 태워주라고 부탁하더니 이젠 차비 달라고.....

참 별일이다. 표를 사진 않았지만 직원에게까지 부탁했으니 뭐 되겠지?

코파 직원 아저씨는 염려말고 기다리라면서 대합실까지 데려다준다.

 

노란 블라우스 입은 아줌마가 자기 집에 파인애플 나무 많다고 같이 가잔다.

(동네 이름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란다.) 

 

대합실에서 버스 기다리는 아줌마들은 동양에서 온 여자가 궁금한 모양이다. 아줌마들의 질문에 대강 대답은 하지만 내 신경은 온통 딴 데 쏠려 있다. 안절부절 하다 티켓부스에 가서 물어보니 파나마 시티까지 가는 버스엔 자리가 없고 국경까지 가는 표는 있단다. 헉, 설마 코파 직원이 책임지지도 못할 거짓말을?

 

눈으로 열심히 그 직원을 찾고 있으니 불안해 하는 날 봤는지 어떤 버스 앞으로 데리고 가 운전사에게 소개시키면서 8시 20분이 되면 이 차를 타고 차비는 운전사에게 내란다.

반신반의하며 다시 아줌마들 곁으로 돌아가 있는데 이번엔 어떤 청년을 데리고 온다. 

그 버스에 있던 자리가 없어졌다고 이 사람에게서 표를 사란다. 뭐야~ 이랬다 저랬다....

헌데 표를 보니 다비드까지 가는 표다. 파나마 국경 넘어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시골마을.

약속이 틀리지 않냐고 항의하니 거기만 가면 파나마 시티까지 가는 버스 많다고 걱정 안 해도 된단다. 이거야 원.... 말이 왔다갔다 하니 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지. 갈아타는 건 상관없지만 혹시 거기서 버스가 없으면?

모르겠다, 시골마을에서 또 하루 자고 가지 뭐. 내일 못가면 모레 가고.... 모레까지는 상관없으니...

헌데 이 청년이 또 웃긴다. 25달러 달라면서 표를 보여주는데 왕복표다. 

장난하나? 내가 스페인어는 잘 못해도 바보는 아니거든. 

 

우여곡절 끝에 버스에 오르긴 했지만 걱정꺼리가 끊이질 않는다. 다비드 도착시간이 3시 넘을 거라는데 거기서 파나마시티까지는 또 8시간 가야 하니 오늘밤도 낯선 도시에서 숙소 찾아 헤매야 한다.  

에라, 나도 몰라. 오늘 중으로 파나마 땅만 밟자. 다비드가 됐든 파나마시티가 됐든 잘 데 못 찾으면 파출소라도 찾아가야지. 상황 끝! 걱정 끝!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살고 있는가.

 

내 옆에는 좀 나이 들어 뵈는 흑인 아줌마가 앉았는데 일행이 많다. 교회 사람들과 인디헤나 마을에 일주일 동안 선교하러 가는 길이라는데 내게 표를 판 사람은 그 팀의 리더인 모양이다. 미리 표를 사두었는데 가기로 한 사람이 안 왔나본데, 그 바가지를 나한테 씌우려고 했단 말이지. 

어쨌든 모두 나눠먹는 간식을 나한테도 준다. 예수 믿느냐고, 예수 믿으라고.... ㅎㅎ 

 

양파, 마늘 고추 등으로 장식한 산촌의 야채가게. 

 

마음을 내려놓으니 여유가 생기고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코스타리카가 내게 남긴 짧은 인상이 그리 유쾌한 것만은 아니지만 자연 만큼은 멋진 것 같다.

어젯밤 방에 놓인 산호세 인근 지역에 대한 안내문을 보니 화산, 온천, 해안 모두 경관이 빼어나던데.... 나중에라도 기회가 되면 제대로 한번 돌아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오늘 산을 넘어가며 느끼는 코스타리카 역시 (비록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이지만) 멕시코나 과테말라 만큼이나 생생하고 풍부하다. 

 

휴게소. 제일 간단한 식사도 감당 못할 정도로 거하게 나오길래 감자칩과 콜라로 점심 때웠다.

사진 오른쪽 맨 끝에 앉은 줄무늬 남방에 선글라스 쓴 여인이 내 옆자리에 앉은 아줌마.

 

점심 먹고 버스에 오르니 출국신고서를 나눠주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줌마 쓴 걸 보니 61년생이다.

자녀가 7명이란다. 6명이 결혼해서 이미 4살짜리 손자까지 둔 젊은 할머니다. 아이 일곱 키우려면 무지 바빴겠다 하니까 모두 하나님의 축복이란다.

Costa Rica라는 이름은 황금이 많이 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지금은 각종 동물과 숲이 많은 해안국가라는 뜻으로 생각하면 된다면서 나라 자랑이 늘어졌다. 한국에서는 코스타리카를 '까리베의 진주'라고 부른다니까 너무 좋아하며 한국 사람들이 코스타리카를 아느냐고 신기해 한다. '영구 중립국으로 유명하지 않느냐. 나는 그 점이 가장 부럽다. 지금은 그냥 지나가지만 다음에 남편과 다시 오고 싶다'고 했더니 자기 전화번호를 적어주면서 다음에 오면 자기 집으로 초대하겠단다. 말만이라도 고맙다.

 

아침부터 서툰 말 총동원해 기를 쓰고 쫓아다녔더니 진이 빠졌나보다. 교회 사람들의 호기심이 내게 쏠려 있는 게 영 피곤해서 눈 감고 자는 척했다.

문득 레베카 생각이 난다. 발바닥이 깊이 찢어졌는데 그냥 다니길래 내가 질색을 하면서 연고를 주니까 자외선이 제일 좋은 소독이다, 동물도 핥으면서 자연치유한다... 어거지를 쓰면서 치료를 거부. 억지로 후시딘 발라주고 밴드 붙여주니까 '이러면 안 마르는데... 네가 원하니까 내가 참는다'고 투덜대다가 씨익 웃던 귀여운 모습..... ㅎㅎㅎ 지금쯤 벨리즈에 있을까?    

차창 밖에선 굵은 빗방울이 바람에 실려 지나간다. 시원한 흙냄새를 맡으니 허전했던 기분이 한결 낫다. 

 

국경 근처.

산간마을에서 내려오니 열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Terava강을 따라 무성한 정글이 펼쳐지고 코코아, 바나나, 망고 나무가 시원시원힌 자태를 자랑한다. 꽃 색깔도 원색으로 화려하다. 

 

야, 드디어 파나마다!

코스타리카 출입국관리소에서 출국도장 받고 300미터 정도 걸어가면 바로 파나마 출입국관리소. 

입경비를 내는 대신 1달러짜리 인지만 사면 된다.

 

 

이 자가 내게 왕복표를 떠넘기려 했던... ㅎㅎ 처음엔 괘씸했지만 버스 타고 오면서 친해졌다. 

브이질 했다고 놀리지 말 것. 나도 하고 싶어 한 거 아니다 모~

 

다비드까지는 아직도 한 시간 반. 버스 안에서는 선교활동용 풍선공예가 한창이다.

쉬지 않고 웃기는 아저씨 이름은 마이노르. 과테말라에서 내 스페인어 선생님이 마이노르였다고 하니까  잘생긴 남자아기가 태어나면 모두 마이노르라고 이름짓는다고 능청을 떤다.

 

다비드는 조용한 농촌마을. 인디헤나도 자주 눈에 띄길래 여기서 묵어갈까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마땅한 숙박시설이 눈에 띄지 않고.... 그보다도 지금 출발하는 버스가 파나마 시티행 막차라는 얘길 듣고는...  이성을 잃은 나머지 곧장 버스 안으로 점프!  

 

잔돈 찾아 삼만리 

 

파나마 시티까지는 12달러, 내 호주머니에 남은 잔돈은 12달러 70센트. 

잔돈이 필요할 것 같아서 100달러짜리를 냈더니 잔돈 없다고 산티아고 휴게소에서 저녁 먹으면서 바꾸란다.

헌데 산티아고에서도 100달러를 꺼내드니 잔돈이 없단다. 할수없이 식당 옆 매점으로 뛰어갔더니 거기도 잔돈이 없다네. 뷔페식 트레이에 이것저것 담아놓았건만 그걸 먹을 방법이 없다.

아니다, 저녁이 문제가 아니지... 파나마 도착해서 심야택시를 탔다가 큰돈 내놓는 외국여자를 보고 기사가 강도로 돌변하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나는 거다. 잔돈을 구해야 한다, 잔돈을!!

마음 같아선 100달러 거슬러주실 부운~? 방송이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한국 할아버지.... 가 아니고  말을 걸어보니 중국 할아버지였다.

광저우 출신이지만 다행히 보통화를 하신다. 퇴직하고 세계 곳곳을 놀러다니다 이곳에서 목재 베어 수출하는 게 짭짤할 것 같아서 다시 사업을 시작했단다. 사정 얘기를 하고 잔돈이 있으면 좀 바꿔주든지 파나마에 도착하면 시내 들어가시는 길에 나 좀 태워달라고 했더니 잔돈은 없고 아들이 데리러 나올 테니 걱정하지 말란다.

헌데 할아버지는 우리차가 아니고 뒷차 승객이다. 하지만 별로 시간 차이 안 날테니까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출구에서 기다리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파나마 버스터미널이 아주 커서 움직이면 못만날 수도 있으니까 그냥 내린 자리에 서 있으란다. 자기가 찾겠다고.... 휴, 살았다. 난 왜 이리 인복이 많은 거야?

 

가도가도 끝나지 않는 길. 날은 어둡고 시간도 안 가고 초조한 마음 다스리려고 한숨 잘까 했더니 에어컨이 어찌나 빵빵한지 얼어죽을 지경이다. 잔뜩 웅크리고 이를 악물고 네 시간을 견딘 끝에 드디어 터미널 도착.

 

와우, 버스 터미널이 거의 공항터미널 수준이다. 할아버지가 내린 자리에서 꼼짝말고 기다리라고 하신 게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30분을 기다려도 다른 버스는 오지 않는다. 또다른 터미널이 있는 걸까? 

내가 알아서 움직이고 싶었지만 그 할아버지가 혹시 나 때문에 못 움직일까봐 30분을 더 기다렸다.

인적은 끊어지고 12시가 다 되어가는데.... 어쩔 수 없다. information에 가서 돈 바꿀 데 좀 없느냐 했더니 super99로 가란다.

 

엄청 큰 대형매장이지만 이것저것 살 정신이 어디 있나. 배고프고 목 마른 김에 우유 한 통을 들고 나왔더니 10달러 이상 안 사면 거슬러줄 수 없단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그래.

할수없이 빵, 맥주, 과일... 등등을 장바구니에 집어넣는데, 짐을 크게 만들 수 없어 하나씩만 챙기니 10달러까지 갈길이 멀다. 도대체 뭘 사야 단번에 10달러의 장벽을 넘는단 말이냐.

말보로 한 보루가 가뿐히 고민을 해결해줬다. 89달러를 거슬러받는 순간 얼마나 기쁘던지...

그제서야 마음놓고 택시 정거장으로 갔다. 그날밤 내가 지나치게 신경과민이었는지도 모른다. ^^ 

 

싼 호텔로 데려다달라고 하니 이 아저씨도 산호세의 택시기사처럼 여기저기 전화해보고 Hotel Latino로 데려다준다. 여기도 어제 묵었던 곳과 같은 가격 35달러다. 오늘밤도 어제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내가 너무 지쳤다.

맥주 마시고 고양이 세수만 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정말 고달픈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