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萬玉 2008. 9. 16. 22:30

“최고의 뮤지컬은..?”
2초도 생각 안하고 당연히 ‘Cats’라고 답했는데, 수정해야겠다.
2000년 브로드웨이 캣츠 마지막 공연이 막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 기를 쓰고 봤는데(거기서 세상에서 제일 잘 부른 노래 ‘Memory'를 들었다), 캣츠 다음부터 지금까지 맘마미아 공연을 하고 있었다니... 이구구... 이것까지 보고 왔어야 했다.
‘다시 살아돌아온 ABBA’, 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왜 뮤지컬인가?"
한국 영화가 실미도에서 관객 천만을 바라보게 된 것은 근 10년만의 일이다. 양질전화의 법칙.. 물이 끓기 시작해서 드디어 흘러넘칠 때가 된 거다. 아마도 그때부터 비디오가게가 늘어났던 것같고, 영화를 엄청 많이들 보게 됐다. 나만 그런줄 알았는데, 지내놓고나니 그런 사람들이 꽤나 많았었던 모양이다. 2-3년 전부터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문화가 생기더니, 지금은 TV 드라마 보듯이 영화관에 간다. 이에 뒤질세라 영화관들이 재빨리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근데, 왜 천만명에 이를 정도로 영화관에 가는 건가.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싸기 때문에. 최신 시설 극장에서 7천원으로 2-3시간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거기다 비디오는 500원까지 내려갔으니... 이보다 더 경제적일 수는 없다.

영화 보다가 연극 보러가면, 너무 진지하고 열심인 배우들을 관객 입장에서 배려해줘야 할 것도 같고, 또 너무 조용하고, 쉬지않고 집중해 있어야 하고... 그래서 배우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배우의 연기에 몰두해줘야 한다. 조금만 딴 생각 하면 집중 못하기 때문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편하지 않은 구경이다.

뮤지컬도 그쪽 부류라고 생각했었는데, 명성황후, 캣츠, 레미제라블에 이어 맘마미아 공연에 와서 영화가 주는 서비스 수준을 뛰어넘었다. 생생한 라이브로 들려주는 최고들의 연기가, 무덤덤하고 피곤해서 이미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열정을 천천히 끄집어내준다. 영화관 화면을 통해서가 아닌 살아서 펄떡거리며 뛰는 배우들의 심장소리가 그대로 날아와 꽂히기 때문이다. 가수나 배우들이 왜 나중에 뮤지컬로 가고 싶어들 하는지 그 이유가 이해된다. 아낌없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이 주는 선물은 ‘행복한 감정’이다. 2시간반동안 시선을 꽂아놨던 무대의 막이 내리고나면, 행복한 감정에 둘러싸인다. 이렇게 다시 살아난 열정이 금방 식지는 않을 것같다. "Thank you for the Music"

예.체능 프로그램이 유난히 많은 금란여고에 들어가자마자 7층 꼭대기 강당에서 2,3학년 선배들의 뮤지컬 ‘철부지들’(주제가: "Try to remember")을 공연했는데, 한번 보고난 다음날부터 수업 끝나면 자석에 끌려가듯이 곧장 그리로 달려갔다. 아마 한참동안 중독 상태로 살았던 것같다. 맘마미아 보고 나서 20년도 더 넘은 그때를 옛날 영화 다시 돌려보듯이 볼 수 있었다.

영국에서 뮤지컬 공연 이후 ABBA 노래가 1위에 다시 등극했다는 건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텐데.. 다시 들여다본 ABBA의 가사에서, 인생은 힘들고 어렵고 복잡하지만, 그러나 행복할 수 있다. 꿈을 갖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메시지가 들어온다. 이제는 다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왜 ABBA인가"
내가 ABBA 매니아는 아니었던 것같은데, ABBA 노래 어느곡도 너무나 익숙하다. 하긴 중학생 땐가 ABBA 영화를 본 것같은데, 아마도 공연 실황을 찍은 영화였던 것같다.(왜 보러 갔나 모르겠다) 집에 예전 레코드점 앞에서나 볼 수 있는 엄청 큰 스피커가 달린 전축이 있었는데, ABBA LP판이 비교적 앞쪽에 있기는 했었다.

또 Dancing Queen에 맞춰 찰랑찰랑 치마를 흔들며 춤추면서 빙글빙글 돌던 대학친구도 생생하게 떠오르고,,, ABBA의 멜로디와 리듬은 잊고 지내던 즐거운 날들을 놀랄만큼 생생하게 노래와 함께 연상시켜준다.

어떤 평론가가 ABBA 노래를 ‘결코 쉽지 않은, 어려운 음악’이라고 했다. 노래방에서 ABBA 노래 부르기 정말 어렵다. 들을 때 만만해서 노래해보면 거의 잘못된 선택으로 결론난다. 쉽게 생각해서 그런건지, 모방이 거의 불가능하다. 두 여자의 음색도 화려하지만, 굉장히 파워풀하게 노래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코러스가 절묘하게 결합되면, 목소리는 악기 이상의 효과다.

게시판에 20대로 보이는 친구가 ABBA음악이 트롯 같다고 표현해놨던데... 사실 좀 아슬아슬하긴 하다. 근데 그걸 상쇄시켜주는 건 다양하고 화려한 반주다. 당연히 있었어야 할 것같은 곡에다 목소리, 악기, 그리고 이들 각각이 뿜어내는 최대의 소리를 강약,분리,반복,결합시킨 조화가 환상적이다.

이번 공연에서 음악이 노래를 덮어버린 경우가 한두번 정도 있었는데(게시판 매니아들이 귀신같이 지적), ABBA 노래에서는 완벽하게 조화가 이뤄져 있다. 특히 전주와 도입부는 대부분 솔로 악기의 연주로 시작되는데,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런가 ABBA 노래 어떤 것도 모두 각자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

<도입부에 대한 단상...>
Mamma mia / 똑딱거리는 실로폰소리(맞나?)
Lay all your love on me / 장중해보이는 현악에 이은 테크노음악(이정현이 베낀건가?)
The winner takes it all / 피아노소리가 슬퍼보인다
Fernando / 남미 고원, 스페인풍의 삘릴리..피리소리
Vouslez vous / 몽롱한 무도회장으로..
Gimme, Gimme, Gimme / 현악에 이은 남미 악기소리, 이것도 피리??
One of Us / 이 노래 좋아하는데, 이미 전주에서 모든 걸 암시해준다.
Thank you for the Music / 품위 있는 단호한 전주
Dancing Queen / 이 전주 듣고 춤추고 싶지 않은 사람은 ‘신체감각장애’

POP 곡에 심취해있다가, 가사 확인하고 나면 깨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번안가사로 공연한다고 우려가 많았는데, 일단 합격점은 받은 것같다. 그래서 가사를 프린트해서 다시 들여다봤다. 좀 과장하면 셰익스피어 운율이 연상될 정도로, 단어들이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래서 영국 사람들이 ABBA에 열광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

또 가사의 내용이 인생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절제된 감정을 압축해서 표현해놨다. 아마도 ABBA 노래의 가사가 공감을 불러일으킨 원인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평범하지만 어렵다는 평론가의 얘기가 약간 이해되기도.. ABBA 가사는 청소년들 영어회화, 구문 연습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정확하고 또렷한 발음, 단어 전달력이 초기 양희은 노래를 듣는 듯...

"공연 보고 놀랐는데..."

1. ABBA의 노래와 뮤지컬

70년대 결성한 ABBA그룹이 10년후 해체하고 나서 또 10년도 더 지나서 노래에서 뮤지컬을 뽑아내다니. 그룹활동시 스토리 없는 단상들을 노래했는데, 그걸 교묘하게 끼워맞춰 모양을 만들어냈다. 희한한 재주다. 아마도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뮤지컬 시나리오 쓴 사람이 어지간히 ABBA에 미쳐있었는 모양이다. 100여곡에 가까운 ABBA 노래에 파묻혀 살면서 노래를 짜맞추다가, 어느날 모든 해체돼 있던 노래 조각들이 하나의 형상, 스토리로 완성돼 떠올랐을 때, 그 인간 펄쩍 뛰었겠군. 이런 사람이 매니아.

한국 관객들, 특히 ABBA 매니아들은 이번 공연을 ABBA의 음악과 분리해서 봐야 된다고 그런다. 매니아들이 보면 음악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음악에서 탄생한 뮤지컬을 어떻게 음악에서 분리할 수 있나. 음악에서 가사가 살아나와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이기 때문에 음악이 부차적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음악의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 생산적일 것같은데.. 이놈의 매니아들, 독설만 할 게 아니라 참여해야 한다.

2. 배우들에게 놀라다

도나가 The winner takes it all 부르던 중 노래가 끊기는 줄 알았다. 자기 감정에 사로잡혀서... 캣츠에서 Memory 부르던 여자가 사람으로 안보였었는데, 이 여자도 거기 못지 않다. 이 노래는 ABBA가 부른 것보다 박해미가 부른 게 더 드라마틱하다. 이렇게 잘 부르는 배우들이 있었나, 정신 번쩍 들었다. 대단한 파워의 소유자들이다. 잘 하는 남자배우들이 여자 3인방한테 다 밀려버린다.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배우들은 이 판에 다 모여있군. 경쟁치열한 방송계보다 한 수 위인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대견하고 흐뭇하다. 그것도 100% 라이브로... 우와~~ 2시간반 동안 쉬지 않고 ABBA 노래를.. 그것도 춤추며 연기하며..

3. 무대장치와 조명의 신기원.. 이런건 첨이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시설이 워낙 훌륭하기도 하지만, 시작 전 커튼이 내려와 있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지중해 바닷물을 연상시키는 그랑부르 조명이 전면에 출렁거리는데, 옥색 파스텔톤의 빛이 바다를 연출한다. 중간 휴식 때는 천장, 객석까지 조명이 빙글빙글 돌아서 마치 큰 원통 안에 들어와 있는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조명예술의 승리다.

막이 걷히고난 무대 위는, 무대에 대한 기존관념을 완전히 깨주는 강펀치였다. 무대 중앙에 콜롯세움 식의 휘어진 흰 벽 두개를 제외하고 벽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모두 조명으로만 처리했다. 장치나 소품 하나도 없는 벽은 그대로 바다가 됐다. 그런데도 2시간반 동안 관객이 지중해 어느 섬에 와 있다는 확실한 착각을 갖게 해줄 정도로 조명이 섬 분위기를 훌륭하게 연출해준다.

더군다나 배우 개인에게 별도의 조명을 비추지 않아서 그런지 장면장면의 전체 분위기가 쉬지 않고 계속되는 ABBA의 노래와 함께 흐르듯이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또 한번도 불이 꺼지지 않고 장면이 바뀌는데, 이것도 무대장치 기술 발전의 결과다. 두 개의 벽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걸 보다가, 배우들 옷은 언제 갈아입나 걱정됐다. 1부, 2부가 끊어지지 않고 주~~욱 영화처럼 이어진다. 아니 영화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와 연기하는 것처럼..

4. 공연과 공연장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시설은 내부4층에다 2천석 가까운 수용능력 등 시설 훌륭한 것은 사실이다. 또 이번 제작비가 100억(음향에만 25억) 정도 들었다고 한다. R석(10만원)에서 봤는데도 1층 중간 뒤쪽이다. 너무 비싸다. VIP석은 13만원, S석이 8만원인데 아예 2층이다. 맘마미아 공연하는 팀 중에서 가장 무대가 화려하단다. 공연비 부담도 있었겠고, 또 오페라극장의 시설은 대단히 훌륭했지만, 이 공연은 좀더 무대와 객석이 가까우면 좋겠다.

브로드웨이 캣츠 공연장도 2-300명 정도 공간이었던 것같은데. 거기다 2층은 1층 거의 중반 위치에까지 튀어나와 있어서 배우들을 코앞에서 보는 것같이 생생했다. 이 공연도 그 정도 규모의 공연장에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입장료도 획기적으로 낮춰서..

지금 영화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게 되고, 영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엄청 늘어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일정한 층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뮤지컬도 하나의 산업 분야로 자리잡게 하려면, 이 정도 공연은 장기공연상품으로 개발하고, 어린이들도 이 공연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조기유학 안보내도 될 정도로, 국내에서 일정한 소비.생산층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 공연 때문에 진로를 결정하는 수백,수천명의 장래 도나가 나올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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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절친 사과나무님의 글인데,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