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ba5 - Primero de Mayo(쿠바의 노동절)
쿠바를 떠나기 바로 전날이 사회주의국가의 큰 명절인 노동절이었다.
동네 곳곳에 혁명광장에서 개최될 노동절 행사를 알리는 방이 붙고 TV에서도 죙일 "모입시다!" 하고 외친다.
(쿠바의 TV채널은 세 개 밖에 없다. 아마 고급 호텔에는 외국 방송을 볼 수 있는 위성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프로그램은 교육, 1950년대 영화, 스포츠 중계, 뉴스, 정부의 계몽방송들 뿐이다.)
끌라라에게 내일 같이 행사에 가보자고 했더니 직장이나 학교에 속한 사람들이나 가지, 자긴 안 간단다.
광장 곳곳이 행사준비로 분주하다.
드디어 노동절 아침.
8시에 시작한다는데 아침부터 빨래야 경비 결산이야 공연히 분주하게 굴다가 8시 반에서야 집을 나섰다.
도보로 20분 거리지만 마음이 급해서 인력거를 탔는데 얼마 안 가 차량통제구역이라고 내리란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쏟아져 내려와 더 갈래야 갈 수도 없다.
헉, 기념식 마치고 벌써 내려오는 모양이다.
중국 이민자 3세대, 혹은 4세대들.
올라, 치니따! (아휴, 나 꼬레아나란 말예요!)
기념식은 일찌감치 끝났는지 동상 부근 VIP석은 텅텅 비었다.
체의 인기는 반백년이 지났어도 식을 줄을 모른다.
어제의 용사들은 훈장이란 훈장 모두 달고 나왔다.
오우, 종이 한 장 붙였을 뿐인데....멋지구리!
이 동네 소녀들, 정말 발육 좋다.
터질 듯한 젊음이니 어디라면 어떠리. 그저 모이면 즐겁다.
어우 이뻐! 꽉 깨물어주고 싶은 피부
보고만 있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미소.
올라, 아미가~ 바일라, 바일라!(춤춰, 춤추자구!)
우리 동네 아저씨처럼 푸근한....
아저씨이~~ 왜...?
얼핏 보고는 혹시 망명하는 부모 따라 마이애미로 갔다가 쿠바로 돌아온 그 아이 사진인 줄 알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건 1999년 무렵의 일인 것 같고....
대체 1982년과 1991년에 쿠바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과테말라 사절단이 등장했다. 과테말라에 머물 때 매일 보던 옷이라고.... 어찌나 반갑던지...
베네수엘라 사절단.
베네수엘라가 여행자들에겐 악명 높은 곳이지만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선 위상이 꽤 높은 듯했다.
왼쪽 구석에는 아르헨티나 국기.
니카라구아 사절단은 피델의 뒤를 이은 라울을 지지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나왔다.
이것도 니카라구아 산디니스타의 플래카드. 웬지 우리나라 탈춤 장면을 연상케 한다.
아니, VIP께서 경호원도 없이 직접 단상 아래로 내려와 걸으시다니... ^^
쿠바에서는 군인들이 인민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나보다. 얘야, 너 커서 군인 될꺼니?
지나가던 구경꾼도 기념으로 한장... ^^
행사 진행요원들
청소부 노동조합원들은 트럭을 타고 참가
파장인 줄 알았는데 해산하려면 아직도 먼 모양이다. 계속 쏟아져 내려온다.
사진보다 더 생생하게 현장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으신 분은 클릭!
검색창에서 '쿠바'를 치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유명한 건물(공업성) 사진.
명절을 맞아 국기를 걸어놓으니 평소보다 훨씬 화려하군.
체 게바라 얼굴 밑에 있는 글씨는 세번째 줄 siempre(항상) 빼고는 잘 못알아보겠다.
혁명광장 인근 조형물
혁명광장에서 베다도 쪽으로 걸어가다 만난 멋진 구조물
그리고 거센 바닷바람을 맞아 힘차게 펄럭이는 국기....
깃발 펄럭이는 소리가 어찌나 웅장하던지... 수백만 말들이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랄까...
애국이냐 죽음이냐!
국가의 생존은 이념에 앞선다. 쿠바도 그렇고 당연히 북한도.....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이념과 체제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현재 세계경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입국할 때 앞이 막힌 입국심사대에서 받았던 인상처럼... 출국할 때 역시 쿠바는 내게 독특한 맛을 보여줬다.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맛..... ^^
공항에 가는 길에 어차피 택시를 타야 할 거면 자기 친구 차를 타라고 끌라라가 권하길래 그러라고 했다.
고색창연한 리무진을 끌고 온 그녀의 친구는 쿠바 3인자의 경호원이라고 했다. (근데 근무 안 하고?)
택시비와 똑같이 25쎄우쎄 주면 된다고 해서 타고 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상하게도 공항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서더니 대단히 미안하지만 여기서 내려서 좀 걸어가면 안 되겠느냐고 한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어차피 다 왔는데 아무리 바빠도 몇 바퀴 더 구르면 되는 것을 배낭 진 사람더러 땡볕 속을 걸어가라니...
조금만 더 가달라고 했더니 연신 미안하다면서 사정을 한다. 불쾌했지만 안 가겠다는데 어쩌겠나.
차는 떠나고 나는 걷는데 경비를 서던 경찰이 불러세운다. 당신 여기까지 뭐 타고 왔느냔다.
웬지 느낌이 이상하길래 분위기 파악 하느라고 스페인어를 모르는 척했다. 답답해 하면서 손짓발짓 하던 경찰이 다른 경찰에게 데리고 가서 영어를 좀 해보라고 했지만 이 경찰도 영어가 안 되고... 또 다른 경찰이 오고..
그 사이에 잽싸게 머리를 돌려본 결과....아마도 자가용 영업을 단속하고 있는 듯했다. 나야 상관없지만 클라라나 그 친구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해야 할 텐데...
마침내 영어가 되는 경찰이 왔길래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했다. 숙소 동네 아저씨가 이 근처에 오는 길이라고 해서 얻어타고 왔다는 거짓말로...
자기들도 뻔히 아는 거짓말일 텐데 그러냐면서 보내준다.
어찌 이런 소소한 일까지 콩깍지 팥깍지 검사를 하는지... 어이없다. 낭비도 낭비려니와.. 절대 통제 못한다.
쓰고 남은 60유로를 멕시코 페소로 환전하고 깐꾼발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아쉬우면서도 홀가분하다.
쿠바가 싫어서라기보다는 섬나라에, 그것도 통제된 섬나라에 갇힐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쉽다면 음악의 고향이라는 트리니다드에 가보지 못한 것, 좀더 소박한 농촌에 머물러보지 못한 거지만 어차피 들어올 때부터 안고 온 한계였으니.....흔쾌하게 아쉬움은 접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