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xico11- Cancun
여전히 낯선 도시지만 그래도 한번 거쳐갔던 나라라 그런지 깐꾼 공항을 나서는 발길이 가뿐하다.
콜롬비아 태양여관의 '맏형님'(그래봐야 나보다도 한참 손아래다. ^^ )이 가르쳐준 대로 공항 나와 왼쪽 끝까지 걸어가니 시내로 들어가는 리무진이 기다리고 있다. 30분 간격으로 출발하고 새벽 두 시까지 운행한단다. 이용이 편리하고 깨끗하고 가격도 착하니 (35페소) 20달러씩 하는 택시를 탈 필요가 전혀 없다.
버스 안에는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가이드들이 태반.... 다들 피곤한지 눈을 감고 늘어져 있다.
바깥이 캄캄하니 확인할 길은 없지만 오른쪽으로 바다를 끼고 달리는 것 같다. 30분 정도 달려 터미널 도착.
역시 '맏형님'께서 꼼꼼하게 그려주신 약도를 들고 그가 묵었다던 숙소를 찾아간다. 터미널에서 5분도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Hostel Mexico가 정식 이름인 모양이지만 내게는 'Weary Traveler'라는 감각적인 별명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 별명과 독특한 심볼마크를 사용하는 호스텔들이 멕시코의 관광도시 곳곳에 있어, 자기네 체인점에서 묵은 여행자들에게는 10% 할인을 해준다.
건물이나 집기는 좀 우중충하지만 침대시트 깨끗하고 공동욕실도 충분하고 아침도 준다.
바로 옆집이 클럽이라 밤새 쿵쿵대는 게 흠이긴 하지만 통로쪽으로 난 철문을 닫아버리면 견딜 만하다.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서 잠깐 머무는 곳이니 가격 저렴하고 잘 자리에 물것만 없으면 합격이지.
하지만 기대를 낮췄더니 의외로 줄거웠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아주 '프렌들리'해서 친구 사귀기에 좋았다.
깜찍한 홍콩 새댁, 캐나다 시골마을의 TV 프로듀서, 상하이에서 온 패기만만한 중국친구들 등등...
친구들과 대형마트(Commerceial America)에서 장을 봐다가(이 매장에서는 현지에서 생산하는 오뚜기 라면이 멕시코인들에게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저녁마다 술상 벌리는 재미에 빠지다 보니 뚤룸 가기 전후로 딱 이틀만 있으려던 원래의 계획이 그만 나흘로 늘어났다.
멕시코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풍성한 음식 때문일 것이다.
La Real Academia del Taco(원조 따꼬 학원.. ^^) 간판이 웃겨서 들어가봤는데, 내가 돌아다니며 먹어본 따꼬 중 최고였다(어쩌면 그때 배가 무지 고팠었는지도... ^^)
터미널에서 호텔존으로 가는 길목이었는데 거리 이름은 모르겠다.
따끈한 치즈, 살살 녹는 고기... 특히 소스맛이 죽음이다. 아보카도... 삐깐떼....
따꼬가 세 개 나오는데(레모네이드 빼고...샐러드는 별도로 주문해야 한다) 38페소였던가? 길에서 파는 따꼬가 하나에 10페소니까(멕시코 시티의 두 배다) 비싼 집은 아니다.
미국 애들 얘기로, 깐꾼은 대학 졸업 무렵에 친구들이랑 왁자하게 놀려고 오는 곳이라 했다.
Hotel Zone(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이 해변을 끼고 있는.... 몇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의 자전거 도로.
왼쪽 숲으로 가려진 쪽이 해변이다.
깐꾼 자체에 가볼 만한 데라고는 호텔 존 뿐인 듯.
그러나 배낭여행자들은 호텔 존의 해변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호텔이나 부자들의 별장들이 점거하고 있어서 그림의 떡이라고, 그래서 깐꾼은 비호감 지역이라고들 했다. 비호감이든 어떻든 이왕 거쳐가는 도시인데...
내려꽂히는 햇살의 공격을 받으며 호텔존 탐사에 나섰다.
숙소에서 호텔존 가는 버스도 있는데 야금야금 걷다 보니 미련하게 한 시간 가까이 걷고 있었다. ㅜ.ㅜ
세계적인 호텔 체인 '홀리데이 인'이다. 생각보다 소박해 보인다.
이런 철조망 앞에 서 있으면 진짜 아름다운 해변은 부자들의 전유물인 듯한 착각을 하게 되지만...
호텔에 묵는 사람들만 해변에 나갈 수 있다는 얘기는 거짓말.
멕시코 해변은 사유화되지 않았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국가의 것이다.
그냥 당당하게 호텔 안으로 들어가 로비를 통해서 해변으로 나가면 된다. 그뿐이다..
이런 데로 들어가도 된다. 바리케이트는 차량을 막는 것이지 사람을 막는 게 아니니까.
걷다 보면 이런 데도 나온다. 물건 실은 트럭이 출입하고 난 뒤 문단속을 안 한 모양.. ^^
일단 들어가기만 해봐라. 꿈속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하늘에는 그 유명한 클럽 '꼬꼬봉고' 홍보현수막을 단 경비행기가 날아다닌다.
여기도 꼬꼬봉고. 얼핏 보면 엘비스가 생환한 줄 알겠다. ㅎㅎ
깐꾼에 이런 리조트나 호화별장만 있는 건 아닌 가보다.
내가 묵고 있던 10달러짜리 누추한 호스텔에서 만난, 멕시코 시티에서 무슨 가게를 하고 있다는 노년의 부부도 해변에 땅을 조금 사놓았는데 여유가 생길 때마다 와서 노후를 보낼 별장을 조금씩 짓고 있다고 했다.
2005년 통계에 따르면 칸쿤 주민은 50만여 명, 관광객 수는 연 40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이 수많은 관광객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매일 190대의 비행기가 착륙하며 140개의 호텔과 380개의 식당에서 손님들의 숙식을 서비스하고 있다.(버스로 출입하는 10불짜리 호스텔 손님들은 아마 통계에 잡히지도 않을 듯).깐꾼은 그런 도시다.
파티광들의 천국, 천혜의 스쿠바 포인트를 찾는 다이버들의 베이스 캠프, 부자들의 럭셔리한 휴양지....
그런 컨셉과는 거리가 멀고 주머니까지 가벼운 내게 깐꾼은... 스쳐지나가는 정거장 정도였다.
그러나 유쾌했던 친구들과의 만남, 그리고 비록 발만 담그고 아쉽게 지나쳐야 했지만 영원히 지울 수 없을 듯한 인근 해변의 환상적인 물빛은 칸쿤마저도 추억의 패키지 안에 함께 묶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