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xico13 - Isla de Mujeres
이슬라 데 무헤레스(여자들의 섬)로 가는 배는 후아레스 항구(Puerto Huares)에서 출발한다.
버스 터미널 부근 맥도널드 건너편에서 시내버스(6.5페소)를 잠깐 타면 항구에 도착한다.
후아레스 항구를 지키고 있는 등대
배가 떠난다. 좀 거하게 생긴 유람선이다. 무헤레스 섬까지는 이 배로 30분 정도 걸린다(왕복 70페소)
배에서 만난 덴마크 아가씨.
한국 여자애처럼 보이는데, 동족(그것도 나이 많은)을 전혀 의식 안 하고 애인과 키스하는 폼이 너무 자연스러워 미국 국적 아이인 줄 알았다.
나중에 스노클링 하러 가는 배를 기다릴 때 다시 만나게 되어 말을 걸어보니.... 덴마크 입양아란다.
잠깐 동안이라 별 얘기는 나눠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묻던 말이 자꾸 생각났다.
"첫눈에 봐도 내가 한국사람 같아 보이나요?"
쪽빛 바다를 가르며...달려라, 달려!
아쉬워라, 즐기고 말 사이도 없이 벌써 무헤레스 섬의 도크가 나타났다.
유람선 도크 옆에는 요트와 보트가 대기하고 있다.
나는 도크가 좋다. 과테말라 아띠뜰란 호수에서도 도크 사진을 얼마나 찍어댔는지....
어디론가 떠나는 느낌이 좋아서인지..
내리니 여기저기서 스노클링 하라고 잡는데 25달러란다. 깐꾼 여행사에서 예약하면 얼마였더라?
기억이 안 나지만 이렇게 오는 게 분명히 더 쌀 것이다. 서비스야 다 똑같고..
끈질긴 녀석에게 잡혀주었더니 "이제부터 로렌조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이러면서 한 푼도 안 깎아준다. 우쒸!
20분 뒤에 배가 떠나니 그때 보자며 다른 호객을 위해 골프카트를 타고 떠나가는 기름기 반지르르한 녀석.
이슬라 무헤레스는 작은 섬이다. 반나절이면 걸어서 한 바퀴 돌 수 있지 않을까?
골프카트와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돌아다녀도 된다.
헌데 내가 흥정하는 걸 보고 있던 다른 녀석이 다가와 15불에 해주겠단다. 점심 포함하면 20불...
모르겠다, 잔돈푼으로 연명하다 보니 의리고 뭐고 얍삽이가 다 됐다. 나 없으면 또 호객하겠지 뭐.. 오케이!
두번째 호객꾼의 배는 바로 출발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남자 하나와 멕시코 북쪽 도시에서 놀러왔다는 모녀 두 커플, 나까지 모두 여섯 명이다.
I am sailing~ I am sailing~
오, 바닥이 다 들여다보이는 저 투명한 바다 좀 봐라....
(헌데 저 물고기들 속으로 풍덩! 할 생각을 하니 조금씩 겁이 나기 시작한다. ^^)
배 주변에 구명조끼들이 둥둥 떠다니는 걸 보니 우릴 물에 떨어뜨릴 지점에 도착한 모양이다.
드디어 도전의 시간이 왔다. 구명조끼와 수경, 스노클을 내주더니 배에서 내린단다.
해변이 가까운 물에서야 구명조끼 입었겠다, 마구 휘젓고 다니겠지만 5미터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니 어찌나 겁이 나던지... 벌벌 기어내려가 물에 몸을 담그긴 했는데 배에 붙은 사다리를 놓을 수가 없다.
딱 저 폼이 나와줘야 하는데...
요 몰골이다. 멕시코 북쪽에서 온 일행들을 대표해 가장 젊은 아가씨가 용감하게 구명조끼를 입었지만...
결국 포기, 그네들은 보트놀이만 즐겼다.
머리털 나고 스노클은 처음이라, 얼마나 머리를 깊이 쳐박았던지 스노클을 통해 짠물이 쭉 들어온다.
옴마야, 나 이거 안 하고 숨차면 그냥 머리 들을래요.
배에 붙은 부표 매단 줄에 비굴하게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조심조심 바다를 향해 나가본다. 그래도 무섭다.
계속 그러고 있으려니 보트 운전사 겸 가이드가 물로 들어와 자기 어깨를 잡고 따라오란다. 빠져죽을까봐 딱 달라붙어 물을 헤치고 가다 보니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 가끔 머리를 물속에 처박았다 뺐다...
드디어 내게도 물밑세계가 훤히 열렸다. 줄무늬, 형광색 파란색과 노란색이 화려한 스쿨피쉬, 손톱만한 열대어 무리, 생선가게에서 보던 긴따로의 세 배는 되어보이는 적어.... 물고기가 엄청 많다.
내가 자주 머리를 넣는 걸 본 가이드는 이제 내 허리를 잡고 물속 깊이 들어간다. 숨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잠수하다가 호흡이 가빠지면 손을 흔들란다.
와... 마치 숲속 같다.
각종 산호초가 화려하게 흔들리고 맑은 물을 투과하여 들어온 빛은 천지개벽의 징조처럼 신비롭다. 환상이네!
다 좋은데.... 문제는 가이드 녀석의 손길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만질 데 안 만질 데 구별 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안 만져야 할 데만 골라 만지는 것 같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야.... 예민하게 굴지 마라....'
물 속에서 도무지 어째볼 수가 없어 참아 보려고 했지만 이 녀석의 손길은 점점 더 노골적이 되어간다.
이 치욕!! 항의할 건덕지도 안 남기는 지능적인 녀석!!
결국 고맙지만 나 혼자 놀겠다고 빠져나왔는데.. 그러고 나니 신기하게도 바다가 하나도 안 무섭다. 물 속에 거꾸로 처박히는 건 여전히 겁나지만 그것 말고는 가끔 머리를 내밀면서 유유히 한 시간 가까이 물에 떠서 놀았다. 얕은 데 있는 산호초도 만져보고 고기도 쫓아가보고...
그러면서 어느새 얼마나 갔는지 돌아오라는 신호를 받고 보트까지 헤엄쳐 가는데 완전 기진맥진....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다른 산호초에 가서 좀더 하겠냐는데...
배가 점심 먹는 장소로 이동하다가 상어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양식장 앞에서 멈춘다.
상어도 양식장에 있으니 성질 다 죽었다. '상어 안고 사진찍기' 프로그램 진행중.
스티로폴 도시락에 담기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생선요리.
의외로 느무느무 맛있었다. 바다에서 진을 빼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점심을 먹고 해산을 하는데, 사실 나를 끌고 다니며 물에 적응시켜주고 더 많은 곳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생각한다면 가이드에게 팁을 줘야 하겠지. 허나 추행에 가까운 녀석의 소행을 생각하니 눈도 맞추기가 싫었다.
내 속도 모르고 이 녀석 하는 말이, 저녁 다섯시에 마지막 스노클이 있는데 원한다면 공짜로 데려가주겠단다.
속보인다. 내가 미쳤니?
일행과 헤어져 리조트가 줄지어 서 있는 비치 쪽으로 걸어갔다.
오후 세 시... 마지막 배가 일곱 시 너머까지 있다니 해변에서 좀더 놀 생각이다.
이 해변도 멋지지만 나는 뚤룸의 해변이 더 좋았다. 그 현란한 바다 빛깔은 아마 평생 못잊을 것이다.
운좋게 야자나무 그늘 하나를 차지하여 수건 깔고 누워서 '신의 지문'을 다 읽었다.
정말 운도 좋지... 예전에 어디서 빌려 읽다가 다 못 읽은 책인데 깐꾼의 호스텔에서 발견했다.
(뉘신지 몰라도 정말 감사해요!)
호스텔에서 book Change를 한다고는 하지만 직접 당사자들끼리라면 모를까 호스텔 선반에서 읽을 만한 책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여행관련 서적은 좀 있지만). 게다가 한글책이라니!
운 좋게도 레아가 가방 무겁다고 버리길래 아깝다고 챙겨뒀던 게 한 권 있어서, 겨우겨우 50페이지 정도 읽은 애물단지와 그 보물단지를 바꿀 수 있었다.
'살 태우러 왔다가 속 태우고 가시는 분들....' 어디서 주워들은 광고 장면이 뜬금없이 떠오른다. ^^
레스토랑에서 나온 사람들이 호객중.
어푸어푸~
나도 접영이 좀 되는데.... 수영모랑 물안경이 있어야 해. ^^
부럽다. 내게도 저런 점프가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겠는데.... 지금 흉내내다가는 관절 나간다.
쟤네들은 두어 시간째 사진만 찍고 있다.
아기자기한 마을 골목
땅거미가 내리려고 한다. 이제 돌아갈 시간..
돌아와보니 뚤룸에서 룸메이트였던 다까가 와 있다.
일전에 얘기하다가 오늘 오후에 깐꾼에서 투우를 하더라는 얘기를 흘렸는데 그 얘기에 솔깃해서 오늘 아침에 부랴부랴 깐꾼으로 왔단다. 재밌더냐니까 스페인이나 멕시코시티보단 싸다고 엉뚱한 대답.
오늘 중국애들과 일본 애들이 새로 들어와 식당 겸 라운지인 3층을 아시아 애들이 주름잡는다.
다까는 영어를 못하니 스페인어로 해야 하고 중국애들에겐 중국말을 하고 미국 있다 왔다는 떠벌이 일본애에겐 영어로 말하고... 한 공간에서 동시에 이 짓을 하려니 무지 헷갈린다. 갑자기 다까에게 중국말을 하기도 하고 중국애들에게 스페인어를 하기도 하고... 진짜 웃겼다.
중국 커플은 부부인 줄 알았더니 친구 마누라란다. 자기 친구는 럭셔리 여행 아니면 안 한다나? 좀 신기했다.
사실 나도 후배 남편이자 남편 후배인 남자와 페루에서 합류하기로 약속했었다. 일정이 안 맞아 불발로 끝나고 말았지만 남편도 나도 그 문제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허나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팀을 짜가지고 장기여행을 하는 것을 보니 남들 보기에 그게 그리 평범한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남자니 여자니.... 이런 성별은 가끔 좀 확 없어져버렸으면 쓰겄는디...
내 위 침대에 묵던 레게머리 잔뜩 붙인 프랑스 녀석이 짐을 싸는데 세 보따리나 된다고 이것저것 내놓는다.
나는 여행 끝이라 다 필요없고 비누 다 써가니 남았으면 달라니까 존슨즈 베이비 샴푸를 준다.
이거 샴푸잖아 했더니 자기 얼굴을 가리키는데 얼굴에 털이 반이다. ^^
장난삼아 그걸로 세수해봤더니 그런대로 쓸만하네. 다음 여행에서는 이거 가지고 머리감고 세수하고 목욕하고 다 해야겠다. ㅎㅎㅎ
모레 한국행 비행기 탈 일은 아직도 실감이 안 나고, 오히려 내일 후아레스 공항에서 전철 타고 세비야에서 내리는 장면만 자꾸 떠올라 가슴이 설렌다.
기다려라, 멕시코 시티.. 내가 곧 널 익숙하게 밟아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