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나이 오십이 넘도록 매트릭스를 찍고 있다니...

張萬玉 2008. 12. 4. 00:01

북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카가 한달여의 중국 남서부 여행을 마치고 오밤중에 상해로 날아왔다. 

이런저런 얘기로 날 샐 뻔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중국임은 분명한데 나도 어딘가 낯선 곳을 여행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인데 허름한 도미토리에 묵고 있었던 것 같다.

공용샤워실을 사용하고 나서 비상구 같은 곳으로 나왔는데 지금까지 있던 곳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한국의 어느 시골 역 같은 곳인데... 한국 글씨가 붙어 있고....

어쨌든 나는 조카에게 아침밥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꿈에서도 늦게 일어날까봐 걱정이 되었나보다)

서둘러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았는데...

 

내가 어느 길을 빠져나가면 내가 왔던 길이 셔터로 봉쇄된다.

몇 갈래길 앞에 서면 한 길만 빼놓고 또 봉쇄된다. 무언가 음모에 빠진 느낌...

누군가가 나를 미행하고 있는 듯하고...

진땀을 흘리며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니 현대백화점이 눈앞에 버티고 있다.

들어가려니 셔터가 닫히고... 옆으로 난 비상구로 들어가니 전화벨이 울린다..(구식 검정색 전화)

전화를 받으니 내일 몇 시까지 중량천 옆 간판에 꽃을 그린 약국 앞으로 오면

거기 상해로 돌아갈 수 있는 단서가 있을 거라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생략되고 어느새 나는 공중전화박스 앞에 서 있다.

전화벨이 울린다(한국에 공중전화에서 받는 전화 서비스 안 될 텐데...ㅎㅎ)

전화를 받으려고 해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 그래야 상해로 돌아갈 수 있는데... 조카 밥 해줘야 하는데...

상해로 가야 하는데... 모두들 내 실종사실을 모르고 있을 텐데...

 

진땀을 흘리다 깨어 보니 꿈이었다. 전화벨 소리가 나를 깨운 것이다.

바로 매트릭스 아닌가.. 

잠을 깨고도 한동안 꿈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내가 중국에 있는 것이 혹시 가상현실 아닐까. 진짜 내가 있는 곳은 혹시 한국이 아닐까...

 

어릴 때 낮잠 자다 저물녁에 깨어나 땅거미 지는 바깥풍경을 보고 이유없는 슬픔에 잠겨본 적 있으신지...

장난치다 장롱에 숨어 잠들었다가 깨어났을 때라든지...

아무튼 그 비슷한....묘하게 슬픈 느낌의 꿈이었다.

 

중국에서 이렇게 한바탕 벌여놓고 살고 있지만 이것이 진짜 나의 삶일까?

나는 30년 뒤에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오전 내내 몸은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마음은 만화 같은 상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보다.

 

요건 상하이 살 때 썼던 일기고...

오늘 새벽에도 비슷한 꿈을 꾸었다. 몇 가지 빼고는 거의 똑같은 포맷... 역시 검은색 전화를 찾아 헤매는...  

요즘의 관심사를 반영하듯 테러리스트에게 쫓기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내가 꾸는 꿈은 주로 깨고 나서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만화 같은 꿈이지만

가끔 후회의 무게에 묵직하게 눌리는.... 같은 포맷의 꿈을 반복적으로 꾼다.

 

젊었을 때는 늘 시험 치는 꿈을 꾸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험 치다 말고 시험장에서 빠져나온 뒤 시험을 쳤어야 하는데.... 후회하고 애태우는 꿈.

이 꿈을 서른이 넘도록 꾸었다.

(원하던 대학을 못간 데 대한 응어리였던가? 현실에서는 다 해소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참 오래도 갔다) 

 

그 다음으로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꿈은 실종된 남편을 기다리는 꿈.

애태우며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은 이미 집에 돌아와 있다고 한다.

남들은 다 알고 나만 몰랐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온 집안구석을 샅샅이 뒤져보면(집은 어두컴컴한 99칸짜리 한옥이다) 구석진 방에서 남편이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다. 나는 분하고 억울해서 가슴을 치며 운다.   

(이건 아마 장기수배생활자 아내로 살았던 과거의 영향일 것이다)   

 

이제는 헤매는 꿈, 돌아오려고 애쓰는 꿈이다. 오늘로 세 번째다.

인생이란 게 그런 거지 뭐. 애태우며 헤매거나 찾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