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시아(중국 외)

미얀마7(파안2) - 카렌족의 설날

張萬玉 2009. 3. 16. 22:08

흥겨운 춤과 노래는 끝을 모르고 계속된다.

경연에 입상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춤 자체에 취한 것 같다.

 

 

동영상이 하나밖에 안 올라가니 좀더 세련된 청소년들 것으로 골라 올렸지만, 꼬마들의 무대도 그냥 지나치기 아까울 정도다. 학령 전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가면 배운 대로 흉내내기 십상인데, 이 동네 아이들은 제법 흥에 취해 춤을 즐길 줄 안다. 

 

 

한 팀 공연이 끝나면 마을의 원로가 참가팀에게 격려금을 전달하며 어깨를 두드려준다. 아름답다.

 

자정이 지나도록 공연이 끝나지 않아 우리는 먼저 숙소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새해를 맞기 위해 정말 밤을 샜나보다. 노랫소리와 함성 소리가 밤새 끊이지 않았다.    

 

 

촘촘히 누으면 백 명도 잘 만한 넓~은 홀에서 네 명이 잤다. 수행원 왈왈이 아줌마가 자기 집 놔두고 우리 곁에서 잤던 거다. 어둠도 가지시 않은 새벽녘에 아이가 흐느끼는 소리가 나길래 일어나보니 새해가 떠오르는 걸 보러나갔는지 엄마는 없고 아이만 엄마 빈자리를 더듬으며 울고 있었다. 얼른 데려와 옆에 누이고 꼭 안아 주니 십 분도 안 돼서 색색 잠이 든다. 말도 안 통하는 우리를 의지하고 잠든 아이는 새끼 고양이처럼 가련하고 부드러웠다.

 

바로 요 녀석이다.  

 

 

 

새해 새아침이 밝았다.

광장에 모인 사람 모두는 아니겠지만 상당수가 광장에서 밤을 새운 듯했다. 

 

 

오늘은 마을 원로들을 모시고 부처님께 기원을 드리는 것으로 새해맞이 의식을 시작한다.

2008년 12월 27일 아침 7시.  

 

 

 

 

 

마을 노인들을 모두 앞자리에 모셨다. 참 보기 좋다.  

 

 

마을의 기원을 풍선에 담아 하늘로 날려보낸다. 아마 저 기원 속에는 카렌족의 독립이 분명히 들어 있을 것이다. 카렌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고리 하나가 '미얀마로부터의 독립'이란 목표라니.  

 

사람들의 고개도 풍선을 따라 돈다. ^^ 

 

이 분이 자기 집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무무 이모의 어머니.

돈만이 기품을 만들어주는 건 아닌 텐데.... 정말 고우시다.

 

어제는 영어 통역이 도와주더니 오늘은 한국어 통역이 우리를 따라다닌다.

 

우리말을 대강 듣기는 하는데 자기만 이해하고(끄떡끄떡) 사람들에게 전하는게 자기 임무라는 건 자주 잊어버리는 아마추어. 게다가 그들의 말을 한국말로 전하는 건 아주 서투르다. 그래도 끝까지 따라다녀준 그 정성이 어디냐. 고맙고 귀엽다.

한국말은 무무처럼 태국의 한국 가정에서 보모일을 하며 배웠다고 했다. 3년 정도 일하면서 돈도 좀 벌었고 거기서 만난 고향총각과 연애를 하다가 아이가 생겨 혼자 고향으로 돌아왔단다. 아이 조금 더 키워놓고 남편 곁으로 가서 다시 돈을 벌 생각이란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는데 글쎄,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가 잘 자라는데 도움이 되는 건지 가슴만 짠하고...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은 통역이 없어도 공통언어가 있기에(신체언어..^^) 먹고 자고 노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잠시 한 때도 아니고 다만 며칠이라도 '대화'를 나눌 상대 없이 산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최소 일주일 정도 지내야 한다면 뒷날 쓸모없어질 말인 줄 알면서도 기를 쓰고 배우겠지.

당시 내가 배운 미얀마 말은 열 마디 정도였는데 지금은 인삿말밖에 생각 안 난다. ^^      

 

광장 옆 사원으로 밥 먹으러 가는 길.

앞줄에 선 세 녀석은 량붸에 머무는 동안 내내 껌딱지처럼 내 곁을 지켰다.(오른쪽에 선 머스마는 무무 동생.)

손은 둘 뿐인데 경쟁자는 세 명... 쟁탈전을 벌이다가 자주 주먹다짐을 벌여 말리느라고 진땀 뺐다.

 

눈치를 보니 온동네 사람들이 사원으로 모이는 듯했다. 동네 사원에서 모두함께 아침을 먹는 것도 새해맞이 행사의 하나 아닐까 싶어서 사람들 뒤로 따라가니 우리더러는 우리를 태워준 군인 아저씨 집으로 오란다.

대접은 고맙지만 이 특별한 행사에 우리가 어찌 빠질쏘냐. 

 

과연...

사원 마당에 꽃이 활짝 피었다.

 

동네 청년들이 서빙을 하고 

 

대식구들을 먹이기 위한 손길들도 바쁘다. 

 

절인 우거지를 넣고 끓인 국물에 팅팅 불은 국수를 말아낸 정말 소박한 한그릇이지만

 

고수풀만 빼놓고 마지막 국물 한방울까지 맛나게 먹었다. 

 

예쁜 언니들, 설겆이를 부탁해!

 

그리고는 식사에 초대해준 군인아저씨 집으로 가서 다시 한 상.. ^^

 

우리 음식과 비슷한 것이 정말 신기했다. 왼쪽 앞의 접시에는 고기 빠진 육개장이, 오른쪽 접시에는 국물없는 식혜가, 뒷쪽 접시에는 간장 안 들어간 약식이.... 모두 설 음식이라고 한다. 

조카딸을 '알고 있다'는 실낱같은 인연 하나 붙들고 찾아온 사람들을 이렇게 극진하게 챙겨주다니....

외국인이라고, 먼 데서 온 사람들이라고는 해도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아침식사를 마친 동네사람들이 이 집으로 모여들었다.

오른쪽에 앉은 아줌마가 서툰 영어로 통역을 자처하여 그런대로 잡담에 끼어들 수 있었다.

이 동네 사람들의 관심사는 현재 미얀마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드라마.... 그 속에 등장하는 한국사회에 관한 것이었다. 한 달에 얼마 정도 버는지, 여자들 피부는 어떻게 그렇게 좋은지... 남북한 관계와 정치에 관한 질문도 나왔지만 통역이 버겁다.

그들은 손가락으로 마을에서 멀지 않은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저 산만 넘으면 태국이란다.

 

모두 일가이면서 이웃인 동네 아줌마들. 

 

 父子有親

 

우리가 이 집을 방문했을 때 집 앞에 군인들로 둘러싸인 찝차 한대가 서 있어 잠깐 긴장했다.

어제 두 차례의 검문을 무사히 통과해놓고 이제 와서 혹시...

허나 기우였다. 아침식사 대접을 받고 돌아가던 정부군 고위직이라는 양반, 우리에게 손까지 흔들어주더군.   

 

살짝 쫄았던 순간이 한 차례 더 있었다.

우리의 잡담에 끼어든 마을 경찰이라는 아저씨, 일단 외국인이 들어왔으니 보고는 해야 한다면서 우리에게 복사하고 돌려줄 테니 여권을 달란다. 어째야 좋을지 몰라 주인아저씨를 쳐다보니 괜찮다고 내주란다. 여권은 현재 우리가 가진 것 중 목숨 다음으로 소중한 것이지만.... 할 수 없이 넘겨줬는데, 마을에 복사기가 없다고 오토바이로 어디까지 나가야 한단다. 도대체 어디까지 갔다왔는지 한 시간도 넘어서야 돌아왔다. 속 좀 탔지.

      

이제 이 아름다운 마을도 떠나가야 할 시간. 

 

파안의 숙소 앞까지  태워다줬다. 환송객이 한 차 가득.... 그 먼 길까지 따라와 환송해줬다.

 

파안은 카렌州(지도에는 Kayin State로 나와 있고 미얀마어로는 커잉州라고 한다)의 州都이니 이곳에서도 카렌족의 설날 행사가 뻑적지근하게 있었던 모양이다.

 

J는 량 붸에서 돌아온 뒤로 계속 '행복하게 산다는 게 뭐지?'를 되뇌인다.

그녀의 화두처럼 '발전'과 대비되는 뉘앙스까지는 아니지만, 나 역시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게 만드는 도리에 관해 량 붸 사람들에게 한수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유기적인 공동체였다. 어린아이들은 듬직한 형들을 보며 자라나고 형들은 마을 학교 선생님이 된 그들의 형으로부터 배우며 그들의 형은 마을 어르신들의 지혜를 물려받고 발전시키며 마을을 지킨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지체처럼 돌보는 따뜻한 마을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고향을 지키며 살고 싶어도 '교육'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는 (촌에 남아 있는 아들이 걱정거리가 되는) 우리네 현실과 비교하면 상당히 부러운 대목이다. 게다가 그노무 '교육'이 다 뭔가... 삼십 넘도록 끝내지지 않는 교육, 인간다운 게 뭔지 깨우쳐주지도 못하는 교육, 심지어 제 밥벌이도 감당 못해주는 교육...

 

 

 

 

부디 새해의 만복이 량붸마을에 넘치기를 기원하며.... 우리는 다시 배낭을 꾸린다.

몇 시간이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내일 해 뜨기 전이면 양곤에 도착하겠지. 오늘 좌석은 뒤로 제낄 수 있을 테니 밤새 틀어주는 스님의 독경소리를 자장가 삼아 푹 잘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