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2 - 프놈펜
캄보디아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있다거나 지나가는 길이라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프놈펜은 여행지로서 그다지 추천할 만한 곳은 아니다. 경치도 그저그렇고 사는 모습도 거기서 거기고(특히 도시의 경우.....)
일단 내가 발을 디딘 곳이면 객관적으로야 어떻든 마음을 쉽게 내주는 편인데도 이상하게 프놈펜에서는 마음문이 닫혀버린 듯 했다. 정들 새 없이 '볼일만 보고 떠날' 자세로 다녀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둘이 다니다 보니 모든 물질적 감정적 필요가 내부적으로 해결되어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 '출장'(?) 모드는 베트남까지 계속되었지만 그래도 베트남에서는 '사람'을 느낄 수 있었는데, 캄보디아의 추억 속에는 뚜렷하게 등장하는 '사람'이 없다. 극성맞은 삐끼 말고는.....
킬링필드(Cheoung Ek Genocidal Center)
유골들을 쌓아놓은 위령탑
킬링필드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크메르 루즈의 집단학살(Genocidal)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3년 7개월에 거쳐 전체 인구 700만 명의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전해진다.
그러나 실제 크메르 루즈의 학살로 사망한 희생자는 30만 명 정도이고, 미군의 마구잡이 폭격으로 희생된 사람들이 80여 만 명, 이후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간 사람들이 80여 만 명이라고 한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 같은 짓을 캄보디아에서도 자행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크메르 루즈의 죄악이 덜어질 수는 없다.
어쨌거나 이 사건은 캄보디아에 쉽게 지울 수 없는 공포와 불신, 무기력, 빈곤을 유산으로 남겼다.
시신을 묻은 흔적이 곳곳에....
무수한 어린이들의 총살을 지켜본 나무. (나무 옆에 뼈들을 모아놓았다)
이념의 광기는 인간을 잡아먹는다.
나무 뿌리 근처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옷들은 이 자리가 대량학살된 시체들이 매몰된 곳임을 알려준다.
직접 유골을 대하는 것보다 더 오싹하다.
이 고요한 호수 속에도 무수한 시신들이 수몰되어 있을 터...
찾는 이도 별로 없이 닭들만 노니는 조용한 곳이지만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은 이곳을 떠도는 망자들의 원한을 뼈가 시리도록 느낄지도 모르겠다.
담장 밖의 농부는 역사의 피비린내를 잊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낫질을 한다.
캄보디아에 와서 처음으로, 포즈 잡아주고 난 뒤 돈 달라고 떼쓰는 아이들을 만났다.
시내 여기저기
프놈펜 시내에서 킬링필드까지는 툭툭으로 30분 밖에 안 걸린다. 시내 들어오니 오전 11시.
가까이에 버스터미널이 있어 여행자들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그랜드 마켓에 잠깐 들렀다가
도보로 국립박물관에 갔다.
전시대랄 것도 없이 빡빡하게 줄 세워놓은 전시실은 기념품 상점 같은 분위기.
그러나 진열된 앙코르 유물들은 대단히 멋졌다. 특히 불상들은 그리스 조각들을 연상케 하는 늠름한 자태...
촬영금지라 사진이 하나도 없다. ㅜ.ㅜ
박물관 중앙에 있는 멋진 연못.
상당히 넓직하게 만들었건만 프놈펜 시내 도로는 늘 혼잡하다.
신호등도 별로 없고 자전거, 사람, 자동차가 어깨를 비비고 다니는 데다 차선 개념도 없어 보인다.
무단횡단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나도 길 한번 건너기가 어찌나 겁나던지... 게다가 인도에까지 무단주차를 해놓아 인도로는 진행을 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없이 질주하는 차량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아찔한 기억.. ^^
캄보디아 시장에서 가오리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냉장시설이 부족하니 생고기가 흔하구나.
봉지에 담는 것은 쌀밥이다. 밥도 있고 반찬도 있고... 이 동네에서 자취하면 정말 편하겠다. ^^
행복한 피자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엠립으로부터 흘러온 톤레삽 강이 유유히 흐른다.
깃발을 보아하니 수도 없는 나라들이 합작하여 하천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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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변에 여행자들을 겨냥한 서양식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다.
J가 예전에 시엠립에서 먹어본 피자가 너무 맛있었다고... 프놈펜에서도 한번 먹어보자고 해서 찾아갔는데....(사진 속의 레스토랑은 아니고... 분위기만 비슷하다. ^^)
간만에 먹어보는 서양음식에 대한 기대로 우리는 한껏 행복한 중이었다(레스토랑 이름도 Happy Restaurant).
종업원 아가씨가 와서 주문을 받고 나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다.
"Do you want to be happy?"
"Of course.."
"How much do you want to be happy?"
"How much? What do you mean?"
"If you want to be happy, We can add extra topping for free. How much, a little? midium...? "
" Wow, we have no reason to pass. I'm ready to have extra hapiness of yours."
피자는 맛있었다. 그러나 뭐 그렇게 이상한 질문으로 강조할 만큼은 아니었다.
뭐가 엑스트라 토핑이라는 거야? ^^
점심을 먹고는 왕궁 구경을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서둘러서 그런지 자꾸 눈꺼풀이 내려앉는 게 그냥 아무데라도 눕고만 싶다. 암만해도 호텔 가서 한숨 자고 나와야겠다고 J 혼자 보내놓고 돌아왔는데....
잠결에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는 데도 비몽사몽 내처 잤다.
깨어 보니 밖이 어둑어둑 저물어가고 옆 침대에서는 J가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내가 두 시에 들어왔는데 어느 새 여섯 시다. J를 흔들어 깨워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왜그렇게 잠이 안 깨는지 완전 비몽사몽이다. J와 나누는 얘기도 마치 꿈속에서처럼 아련하고 내딛는 걸음도 휘청휘청....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모두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상해, 이상해....
이런 상태론 암만해도 실수할 것 같아 방에서 대충 먹자 하고는 과일과 빵을 사가지고 돌아왔는데
어찌나 졸린지 사다놓은 것도 그대로 놔둔 채 다시 잠에 취해버렸다. 일어나 보니 다음날 열 시... @.@
평소엔 아무리 오래 자도 여덟 시간 이상 못 누워있는데, 거의 20시간 가까이 잔 것이다. 방콕 바닷가에서 목감기에 걸렸던 후유증으로 입술도 부르트고 콧속도 다 헐었던 참이라 피곤이 쌓여서 그랬나보다.... 했는데
며칠 후 론리플래닛을 뒤지다가 프놈펜의 식당 소개 항목에서 'Happy Restaurant'의 비밀을 발견했다.
행복하고 싶은가 물어볼 때 그렇다고 대답하면 얹어주는 extra topping이 바로 'ganza'라는 것이다.
Ganza. 이것은 과테말라를 여행할 때 골목에서 호객하는 소년들이 은밀하게 쓰던 말이다. 허허허!
어쨌거나 휴식을 원하는 몸을 푸욱 쉬게 해주었으니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해도 되겠지. ^^
싸돌아다니다 보니 참 별난 경험을 다 한다. 여행 다니며 만난 사람들에게 이 얘길 해주었더니 '동남아시아 지역 곳곳에 행복한 피자집들이 많다'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더군.
아저씨, 피자 드셨어요? ^^
벙깍 호수와 왓 프놈
바탐방에서 프놈펜으로 들어오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던 호수가 궁금했는데 호텔 로비에 굴러다니는 소책자에서 이 호수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오염된 호수를 메꿔버리려는 정부의 재개발계획이 발표되자 호수를 기반으로 먹고사는 주민들이(아마도 환경운동단체들도 함께?)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일대의 집들까지 재개발 계획에 들어 있는지 이주를 거부하고 철거대를 온몸으로 막는 사람들 사진도 실려 있었다.
벙깍 호수 가는 길에 본 특이한 건물. 지붕은 무슬림 사원 같은데 알 수가 있나.
바로 이 동네다.
불단만 없으면 우리나라 재개발지역 동네 골목이나 다름없다.
호수변으로 나가보려 했더니 길이 없어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그냥 아무 집으로든지 들어가보란다.
남의 집인데 무단침입해도 되나? 망설이면서 끝까지 들어가보니 호수다.
호수변에 지어진 집들은 모두 호수 속에 한 다리를 걸치고 지은 집들이었다.
호수에 면한 많은 집들이 호수 전망을 이용해서 guest house나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젠 망했다고...
벙깍 호수에서 왓 프놈으로 가는 길에는 정부기관과 미국 영사관, 고급 주택들이 늘어선 말끔한 거리.
프놈 사원. 언덕이 없는 프놈펜에 유일하게 솟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조각들이 특이하다.
사원 아래층에서는 음식준비에 한창이다. 곁에서 지켜보니 부처님께 바치려고 돈 내고 사는 것 같았는데...
저 많은 음식이 다 팔린단 말인가? 대단한 불심이네....
사원 아래쪽은 숲이 좋은 공원이다.
뻥! 사세요. ^^
헛, 코끼리닷!(아마도 돈 내고 타는?)
여기서도 주몽 짱! (헌데 저 손 모양은 무슨 뜻이지?)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광고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사진에 보이는 淨水활동 같은 것을 비롯하여 (가장 많은) 영어 가르치기, 음식을 사가지고 시골마을 방문하기 등등... '당신의 여행을 더욱 의미있게 해줄' 활동들이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괜한 걱정을 한다. 이 나라의 내일을 위해 도와야 할 것이 영어 가르치기일까? 일회성 자선이 이 나라 사람들에게 '구걸하기'부터 가르치는 건 아닐까?
캄보디아에는 외국 NGO 단체들이 유난히 많은 것 같다. 도움에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려면 감상적인 도움보다는 캄보디아의 내일에 대한 비전을 가진, 사려깊은 활동계획이 필요할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시아누크빌로 간다.
베트남 무비자 체류 15일을 마친 후 방콕으로 돌아가서 귀국 비행기를 타려는 J의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하루가 남는데, 멋대가리 없는 프놈펜에서 빈둥거리느니 좀 바쁘기는 하지만 캄보디아의 또다른 얼굴을 찾아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이틀 후에 목바이 국경을 넘는 호치민 행 버스를 예약해놓고 오후 2시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