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1(호치민1) - 2000킬로 대장정 출발선에 서다
국경 넘기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겨우 눈꼽만 떼고 나왔다.... ㅠ.ㅜ b
비몽사몽 버스터미널로 갔더니 베트남 번호판을 붙인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아직 해도 다 안 떴는데.... 먹고 살자니 바쁘다.
국경 넘기 직전의 시장. 이 마을 안테나들은 왜 이렇게 유난스러운지?
처독으로 가면 배 타고 국경을 넘는다는데 목바이로 넘어가니 버스 탄 채로 잠깐 배에 실려 메콩강을 건넌다.
4개국어로 표기된 국경마을 간판. 어떤 간판엔 그림언어까지 추가된 5개 언어.. ^^
6시 30분에 프놈펜을 떠난 버스는 9시 30분쯤 베트남 국경 도착했다.
베트남은 출국항공권만 있으면 15일간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다고 들었다. J는 하노이에서 방콕으로 날아갈 테니 상관없지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라오스 국경을 넘을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비자 때문에 항공권부터 먼저 살 수는 없었다. 출국 항공권이 꼭 있어야만 하는 건지도 확실치 않고...
그래서 그냥 부딪쳐보기로 하고 국경까지 왔는데, 입국비 10불과 여권을 내미니 그냥 도장 쾅 찍어준다.
출국항공권 없어도 된다.
대개 국경마을은 선 하나 넘었다 뿐이지 이쪽이나 저쪽이나 비슷하기 마련인데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으로 넘어오니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일단 나무집들이 벽돌집으로 바뀌었고, 넓고 텅 빈 집들이 폭이 좁고 무엇인가로 꽉 차 있는 집으로 바뀌었다. 그 삼층, 사층으로 포개진 좁은 집들은 마치 인형의 집 장난감 세트처럼 알록달록 명랑해 보인다.
올챙이처럼 그려진 간판 글씨들도 약간 혹과 털이 붙긴 했어도 눈에 익은 알파벳으로 바뀌었다.(무슨 뜻인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지만..... ^^)
농경지도 마찬가지. 캄보디아의 들판을 달려다가 보면 노는 땅들과 쓰레기로 범벅이 된 물웅덩이가 여기저기 눈에 띄는데 베트남으로 들어서니 한 치 노는 땅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논밭들이 시야뿐 아니라 마음까지 후련하게 해준다. (이때부터 베트남에 꽂히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흰 나비들이 팔랑팔랑~
두 시간쯤 더 달리니 오토바이 헬멧들이 물결처럼 몰려오기 시작이다.
‘눈뜨고 코베인’ 사연
시내 들어오면서 승객들이 내리기 시작하길래 ‘신 까페?’ ‘신 까페?’를 열심히 외쳐가며 어디서 내려야 할까 조바심을 내다가 잠시 창밖 구경에 한눈을 판 사이에 정작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칠 뻔했다. 허둥지둥 내려서 두리번 두리번.... 방향을 잡고 있는데 대기하고 있던 택시가 ‘신까페’ 가느냐고, 타란다.
신까페가 여기서 가깝다던데? 물으니 걷기엔 멀다고 얼른 타란다. 뒤에서는 빨리 비키라고 빵빵거리고....
평소 같으면 우선 한갓진 데로 물러나 앉아서 물도 한잔 마시고 동서남북부터 가늠해보고... 우리가 가려는 곳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물어보고 했을 텐데.... 깊은 밤에 내린 것도 아니고 벌건 대낮에... 평소처럼 툭툭부터 잡지 않고 택시에, 그것도 처음 만난 택시에 냉큼 올라타다니... 아마 그때 우리가 뭐에 씌었던 모양이다.
차가 조금 막히고.. 했어도 10분도 채 안 걸렸는데 49만동이 나왔다. 헉!
금방 도착했기 때문에 베트남돈이 없다고 하니 친절(!)하게 현금인출기 앞에 세워주어 500만 동을 뽑았는데 (원래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으면 액수 크기에 상관없이 한번 뽑을 때마다 수수료가 나가니 베트남 체류기간 동안 쓸 돈을 미리 예산해서 딱 한번으로 끝내려고 넉넉하게 뽑은 거다), 택시 한 번 타니 1/10이 쑥 빠져나간다. 베트남 물가가 장난 아니라더니 진짜 장난 아니네. 그래도 그렇지, 이게 어캐 된 영문이야?
허나 택시 미터기가 그렇게 말하는데 어쩌겠나. 아뭇소리 못하고 30달러를 뜯기고 말았다.
하루 만에 알게 된 사실. 베트남에서는 미터기를 불법개조한 택시를 조심하라는 거다.
우리가 탄 택시가 그런 택시였다. 그런 택시들은 대개 미터기를 아래쪽에 단다고 한다.
시 외곽에 있는 공항에서부터 신까페까지 들어오는 데 보통 11만 동 정도 한다는데 우리는 시내에서 그 네 배도 넘게 낸 거다. 바보가 따로 없다. 사전에 베트남 정보를 좀 챙겼어도...
더 기가 막힌 사실은.... 우리가 내린 곳에서 신까페까지는 도보로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었는데, 그게 좁은 도로 안쪽 깊숙이 숨어 있어서 보질 못한 거다. 이 창피한 얘길 블러그 말고 어디 가서 하소연하나그래...
그래, 이제 보니 이 공원 앞에서 택시를 탔다. 숙소에서 아침마다 산책하러 나오던 바로 이 공원 앞에서 타가지고 공원을 한 바퀴 비잉 돌아서... ㅜ.ㅜ
시골에서 놀던 촌년들이 서울 왔으면 정신 바짝 차려도 모자랄 텐데 한 달 가까이 돌아다니다 보니 나사가 완전히 풀린 모양이다. 둘이 다니다 보니 믿거라 하고 서로 책임 안 져서 그러나? 도무지 믿기지 않는 사고!
아무튼 내 여행 이력 최초로 뚜렷하게 오점을 남겼으니 이것도 기념이라면 기념이군.
베트남 여정 디자인 완료
이렇게 시작된 베트남 여행이기에 그랬나,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된 15일의 윤곽을 Open Tour Bus System에 맡김으로써 베트남 여행의 앞날을 뻔하게 만들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제와서 생각하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겠다는 미련이 남는다. 나 혼자라면 혹시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하지만 200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최소한 몇몇 도시는 찍어가면서) 2주 이내에 주파하려 한다면 아무리 내가 삐딱선을 타보려고 했어도 크게 바꾸기는 어려웠을 꺼다. 게다가 때는 교통편도 매진되고 숙박비도 두 배로 뛸 구정 기간..... 중국에서 춘절을 지내본 나로서는 중국의 춘절 만큼이나 요란한 베트남의 춘절 대이동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우선 하노이에서 비엔티엔으로 넘어가는 항공권을 예매하기로 했다.
하노이에서 육로로 비엔티엔으로 가려면 왔던 길로 빈까지 되돌아가 거기서 라오스의 락싸오로 넘어갔다가 다시 비엔티엔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모자라는 날짜 중 이틀을 빼먹어야 하니 이것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비자 가능 기간 내로 베트남 일정을 제한한 것이 근본적인 한계.
경험상 큰 여행사가 싼 티켓을 잘 찾기에 여행자들 사이에 소문 짜한 Shin Cafe로 갔더니 노란머리 여행객들로 넘쳐난다. 그래선지 직원들의 상담 태도가 무성의하기 짝이 없다. 200불을 부르길래 다른 시간, 다른 항공편을 알아봐 달라고 주문했더니 제대로 알아보기나 한 건지 대뜸 ‘자리가 없다’ 하고는 Next!
어찌나 얄미운지 두말도 없이 돌아나와 우리 숙소에 딸린 여행사로 갔더니 아이고, 엽렵하기도 하지... 상냥하고 영어도 잘하는 아가씨가 189달러짜리 표를 찾아준다.
참 재주도 좋다. 딱딱 여섯 시간 걸리는 거리마다 관광지를 배치해놓았으니(에이, 설마.... ㅎㅎ)
베트남을 한번 주욱 섭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Open Bus Tour는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
내친 김에 거기서 제안하는 Open Bus Tour를 받아들였다. 달랏 - 나트랑 - 호이안 - 후에를 거쳐 하노이까지 가는 버스 티켓을 단번에 끊는 것이다. 일단 날짜는 예약해두지만 변경할 수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이 티켓을 끊으면 묵는 호텔로 데리러 오고 도착해서는 갈 호텔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버스계약자에게 싸게 준다고도 하고, 설날이 끼어 방 구하기 쉽지 않을 꺼란 얘기에.... 호텔도 그냥 예약해버렸다(종점인 하노이만 빼고). 내친 김에 메콩델타 하루 투어와 구치 땅굴 반일투어까지 예약해버렸다. 이로써 우리는 완벽한 ‘베트남 관광버스’에 몸을 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