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3(호치민3) - 사이공의 낮과 밤
내겐 호치민이라는 이름보다 사이공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했다. 그리고 그 이름들이 같은 지역을 지칭하는 줄 알았다. 헌데 알고 보니 '사이공'은 호치민시 중에서도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4대문 안'에 해당하는 지역을 가리킨다고 한다.
사회주의 베트남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베트남의 수도였던 이 도시는 하노이에게 수도의 지위를 넘겨준 이후에도 여러 면에서 하노이를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노이가 베이징 같다면 호치민은 상하이 같달까. 서양식 '매너'가 몸에 배어 있고 세련된.... 길게 있어 보면 어찌 달라질지 모르겠으나 잠깐 다녀가는 외국인으로서는 하노이보다 호치민이 훨씬 사귀기 쉬운 친구였다.
숙소 2층에서 내려다본 골목.
우리 방 바로 맞은편에 걸린 붉은 별. 베트남의 상징일까?
성탄축하 시기는 이미 지났겠고... 아마도 음력설 맞이 장식으로 달아놓았나보다.
땅값이 비싸서 그런지 국토 모양을 닮아 그런지.. 베트남의 아파트나 빌딩들은 칸살이의 폭이 퍽이나 좁다.
얼핏 가로 4m의 규제가 있다는 얘길 들은 것도 같은데... (확실치 않음)
숙소 건너편 기념품 가게의 벽장식.
단지를 묻는 특이한 장식은 베트남 곳곳에서 꽤 눈에 띄었다.
미얀마나 캄보디아와는 달리 호치민시의 하루는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다.
골목마다 빗자루 들고 청소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상당히 바쁠 하루를 예고한다.
프랑스 식민지의 영향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바게트 빵. 싸고 맛있고....도처에 널렸다.
속에 당근, 오이, 토마토 등 야채와 와 소시지나 닭고기, 혹은 계란후라이를 넣은 뒤 마요네즈를 뿌려준다.
숙소 건너 노점에서 매일 아침으로 이걸 먹었다.
이 집에서는 맨 바게트빵에 계란후라이와 간단한 샐러드를 주는데 1,0000동, 여기에 커피까지 마셔도 1달러가 채 안 된다.
이건 내가 베트남에서 먹어본 쌀국수 중 최고로 꼽는 호텔 바이 사이공의 해물쌀국수.
외국인들 입맛에 맞춘 거라 오리지널 베트남 쌀국수와는 좀 거리가 있다.
내가 무서워하는.... 고기 기름 둥둥 떠있는 쌀국수가 현지인들이 즐겨먹는 쌀국수에 더 가깝다.
우쨌든 쌀국수를 맛있게 먹으려면 시큼한 라임즙과 혀가 얼얼해지는 작은 고추 썬 것을 꼭 넣어야 한다(안 주면 달라고 해서라도...). 날 숙주 비린내를 싫어한다면 국수가 나오자마자 국수 바닥에 깔아 살짝 익혀먹을 것.
우리나라에서 먹을 때는 몰랐는데 여기서 먹어보니 먹고 나면 뱃속에서부터 뜨끈한 기운이 파~악 올라온다.
그 맛에 중독돼서 먹고먹고 또 먹고... ^^
보통 식당에서 한 그릇에 2~3만 동 정도(2달러 내외). 목욕탕 의자 놓고 먹는 노점에서는 더 싸겠지만.... 고기(특히 닭고기)를 가리는 탓에 나는 한번도 시도 안 해봤다.
내가 여행 하는 데 가장 큰 장애요소는 바로 이 '고기 낯가림증'.
클린턴이 식사를 했다는 pho 2008은 숙소 건너편에 있는 공원에서 빈탄시장으로 건너가는 길모퉁이에 있다.
처음 갔던 날, 쌀국수를 각각 한 그릇씩 시키고 반찬 삼아 먹는다고 춘권 한 접시를 시켰는데...
나온 걸 보니 한입 크기로 자른 춘권을 얹은 비빔국수였다. 둘이 국수 세 그릇 먹다가 배 터지는 줄 알았다.
여행자 숙소 동네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빈탄 시장
어둠이 내리니 호치민 시민들이 공원으로 모여든다.
공원 입구 스낵카에서 만난 남매.
전혀 닮지도 않았고 분위기도 완전 다른데... 왜 난 이들을 보고 20년 전에 본 영화 '시클로'를 떠올렸을까.
그날 밤 아들에게 '시클로' 구할 수 있으면 구해보라고 메일을 날렸다.(돌아와서 보니 상당히 '독한' 영화더군. 예전엔 도대체 뭘 봤나 모르겠다. 김기덕류? 사회주의자의 데카당스? 아무튼.... 눈 베렸다. ㅜ.ㅜ)
곳곳에서 제기차기가 한창이다. 배구 토스연습 할 때처럼 둥그렇게 둘러서서 제기를 높이 올려 차서 주고받기를 하는데 발재간들이 보통 아니다. 동영상을 세 개나 찍었는데 너무 어두워서 보여드릴 게 없다.
날씬한 베트남 사람들도 체중이 걱정인가?
이곳도 ‘걷기’ 행렬이 줄을 잇는다. 에어로빅도 한창이고....
연애하는 커플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영어공부에 열심인 아가씨.... 당신의 꿈은 뭔가요?
베트남 채널에서 틀어주는 외화 더빙은 여자 성우 한 사람이 모든 대사를 다 읽는다. 변사처럼.. ㅎㅎㅎ
TV에 KBS World 채널이 나오길래 긴긴밤을 벗해볼까 했더니만... 아버지가 아들의 여자친구에 눈독 들이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막말을 하는 그야말로 ‘막장’드라마가 나온다. 어찌나 민망하던지...
구치땅굴 투어에서 돌아와 예술박물관 간다고 점심도 거른 채 부지런히 걸었는데 아는 사람이 없다.
물어물어 간신히 찾긴 했는데 맞아, 대개 박물관들은 월요일이 휴관일이지..... 이런 정신머리!
발길을 돌려 혁명박물관을 찾아간다고 갔는데... 1층 전시물들을 훑어보니 어째 좀 이상하다. 호치민시의 역사가 나오고 하수도 공사 사진이 나오고... 확인해보니 호치민시 박물관이다. ^^
내가 讀圖는 좀 하는 편인데 지도에 영어명칭이 없고 영어간판 하나 없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긴다. 모르면서도 친절하게 길 가르쳐주는 사람들, 정말 이상해... ㅜ.ㅜ
퇴근 무렵이 되니 오토바이가 대로를 완전 접수.
장애자용 자전거.
전쟁과 고엽제의 후유증 때문인가, 이 나라에는 장애자가 눈에 많이 띈다. 그러나 구걸하는 사람들은 동남아 다른 나라에 비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걸 보면 사회주의 국가는 사회주의 국가인 모양이다.
상큼한 아가씨들이 여드름 치료제 홍보에 나섰다.
굴욕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 다시 대통령궁 쪽으로 줄기차게 걸어가 드디어 혁명박물관 찾긴 했는데
이미 4시가 넘어 문을 닫았다. ㅎㅎ 오늘의 운세는 아마도 삽질인 모양이지만 삽질도 나름 재미있으니 무슨 상관이랴,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거지.
대통령궁 담 끼고 한 바퀴 돌다 보니 극장이 보인다.
상영관 자체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작은 공원 안에 있어서 훨씬 여유 있는 공간으로 느껴진다.
사진은 상영관 옆에 있는 까페. 커피값이 만만치 않은데도 베트남 청춘남녀들로 만석이다.
베트남 꼬마들의 호기심 어린 손길에 몸을 내맡긴 서양 아저씨.
사진엔 단 한 아이가 그의 민머리를 즐기고 있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꼬마들에게 둘러싸여 육탄공세를 당하고 있었다. 20여 분간 미동도 하지 않고 같은 자세로... 아마도 명상 중?
거리 곳곳이 음력설 맞이 꽃단장이 한창이다.
공원마다 가설무대가 세워지고 있는 걸 보면 음력설 기간 동안 엄청나게 축제판을 벌일 모양.
이것도 아마 새해맞이 집 장식에 쓸 벽지 내지 색지인 듯.
상점에서도 팔지만 대목은 대목인지 노점상들이 대거 등장하여 몇십 미터에 하니씩 앉아 팔고 있다.
오토바이 수리점
뉘신지 모르지만, 이 성인도 아오자이를 입으셨네...^^
사이공이 '해방'된 것이 1975년.... 그리고 10여 년 후에 자본주의에 대해 문을 열었으니 사이공에 내린 사회주의의 뿌리는 그리 깊지 않은 것 같다. 사회주의 베트남에서 이렇게 많은 성당들을 만날 줄이야.
사이공에서 내가 걸어 돌아다닌 동네에서만 해도 꽤 큰 성당들을 세 개나 만났고, 특히 호치민시 북쪽 마을을 지나갈 때는 약간 보태 1킬로에 하나씩 성당을 보았다. 가가호호 지붕 위에 성상을 모시고 있는 풍경은 중남미 국가 저리가라 할 정도.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 성당들이 근래 20~30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아마 호치민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선교사업이 이루어졌던 게 아닐까 싶다.
천주교인이 아니라서 모르겠다. 우리 나라 성당에도 있는 풍경일까? 절에서는 봤는데....
짐작컨대 명복을 비는 명패들인 듯.
어느 나라에서나 소녀들은 군것질을 좋아하고 다정하게 붙어앉아 비밀을 만들기 좋아한다. ^^
중국처럼 추리닝에 빨간머플러를 교복으로 채택하고 있는 학교들이 많은가보다.
왼쪽 아이, 그 시절의 나를 보는 듯.... ^^
여자손님이 많은 우리 나라 까페와 대조적으로 베트남에선 노상까페든 제대로 된 까페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거의 남자손님이다. 처음엔 무심히 봤는데 그 사실을 인식하고 보면 확실히 보인다. ^^
한국에 있을 때 베트남 여자들을 두고 '독하다'는 잉간들을 봤는데... 내가 만난 베트남 여성들은 하나같이 부지런하고 똑똑하기만 하던걸. 너무 똑똑해서 제 맘대로 안 됐던 모양이지? ^^
거리나 까페에서 론리 플래닛 등 영어서적을 팔거나 여행자들의 책과 교환하려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무심코 한 장 찍다가 거센 항의를 받았다. 불법카피본들이라 가끔 단속을 당해서 그러는 모양이다.
너무 커서 손에 잡힐 것 같지도 않던 도시가 두 밤 자고 나니 조금씩 감 잡히기 시작한다.
이제 다른 도시들을 거치면서 베트남이란 나라를 좀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겠지.
농경사회의 인간형과 산업사회의 인간형의 차이를 실감하게 해준, 눈길은 상냥하고 손길은 냉랭하고... 그러나 꼭 잡고 있으면 천천히 그 체온을 전해줄 것 같은 베트남의 첫도시 호치민을 뒤로 하고...
우리는 이제 달랏으로 떠난다. 설을 맞아 귀향하는 베트남 인민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