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국

09 縱橫四海 3 - 新 上海故事

張萬玉 2009. 7. 9. 14:56

떠나기 전에 신종flu 때문에 좀 걱정을 했다.

병에 걸릴까봐 걱정이 아니라 중국 당국의 '관리' 제스처에 걸려들까봐...

사스가 유행했을 때 그 '철저한 관리'를 경험했지. 우리 회사에서도 광동 출장 다녀온 직원이 격리됐었다.

열도 없는데 단지 그 지역에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자택 격리 명령을 받았다. 헌데 마눌이 집에 못 오게 하는 바람에 회사 직원 숙소에서.... 회사에서 날라다주는 밥 먹으며 일주일을 갇혔었지. ㅎㅎ

 

비행기가 착륙하자 부직포 위생복에 방진마스크와 물안경으로 무장한 의료진들이 들어와 체온 측정 중.

설마 하긴 했지만 우리 앞줄 청년에게서 고열이 감지됐는지 체온계를 다시 입에 물리는 바람에 잠깐 긴장.

다행히 그 청년 체온이 격리기준 고열에 미달됐는지 20분 정도 지체한 후에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마침 한 차례 폭우로 말갛게 세수한 상하이의 하늘은 하나도 아닌 쌍무지개를 띄워 3년 만에 다시 찾은 친구를 환영해주었다. 마치 2010년 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있는 상하이의 표정처럼 느껴졌다.   

 

상하이가 자랑하는 포동 - 롱양루 간 자기부상열차 역사. 달리며 찍었는데도 근사하군.

역시 비 온 뒤의 하늘 덕분이다. 쌍무지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옛정을 찾아...

 

 

도착한 다음날 아침, 예전에 살던 완커부터 찾아가봤다. 옆집 살던 조선생은 이제 구베이로 이사를 갔으니 아는 사람도 없지만 웬지 반겨줄 누군가가 있을 것 같은 터무니없이 정다운 심정을 안고... ㅋㅋ

그리 변한 건 없었다.  날 알아보지는 못하지만 경비 아저씨도 그대로고 헬쓰클럽 아가씨도 그대로고...

우리 떠날 무렵 단지 내 공원 입구에 상가를 짓고 분양을 시작하더니 지금은 모두 성업중이다.

커피숍까지 있네....(단지 내에서 장사가 얼마나 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Art Salon이라니, 아마도 화실 겸 그림 파는 집 같은데.... 아직 문을 안 열었으니 정확히 모르겠다.

그보다 2층 북까페 같은 데가 눈길을 끌었다. 계속 살았으면 저기서 폼 잡는 맛에 중국책들 좀 봤으려나? 

 

여기는 영아 수영장이란다. ㅎㅎㅎ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구명목도리를 두른 1세 미만의 아가들이 허우적거리게 해주고 목욕과 맛사지 서비스까지 해서 1회에 80원 받는다고 했다. (엄마들 얼굴맛사지 값 정도 받는군)

물론 월표를 끊거나 년회원이 되면 더 싸겠지만.... 상해 젊은 부부들 주머니 사정이 정말 괜찮은 모양이다.

심심할 때 한 번씩 드나들던 피부관리실도, 마사지 싼 동네 온 기념으로 한번 들러볼까 했더니 어림도 없다. 지금은 이틀 전에 예약하면 안 될 정도로 성업중이란다.   

 

단지 내 공원에서 아침운동하는 사람들은 두 배는 늘어난 것 같고  호숫가에도 여전히 강태공들이.... ^^  

 

단지 입구엔 버스 종점이 생겼다. 저 버스에 올라타면 이 동네로 이사하기 전에 살던 아파트에 갈 수 있는데..

조선생네 가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 됐지만 그리움을 못이기고 그만 버스에 올라타버렸다.

 

신좡역 남광장 앞 버스종점.

상하이의 변화속도가 빠르다고 하여 어디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는데, 예전에 이미 개발된 도심이나 관광명소 등은 별로 변한 줄 모르겠고,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이런 외곽쪽이 많이 변했다.

가장 큰 변화라면 3개 노선에 불과했던 지하철 노선이 10개로 늘어난 것... 그리고 원래 있던 외환선과 내환선 사이에 중환선이 개통되었다는 거?  

차량은 엄청나게 많아졌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吳中路 일대는 차가 한번 들어갔다 하면 언제 빠져나갈지 장담 못할 지경이 되었다. 전엔 포동공항에서 우중루까지 40분이면 충분했는데 지금은 최소한 1시간 반은 잡아야 한단다.

 

마사지집과 피부관리실도 엄청나게 늘었다.

 

회사가 자리잡을 때까지 가족들은 데려오지 말라는 것을 내가 우겨서 왔었다.

한국에 있는 집 전세 놓고 그걸로  로컬아파트를 산 것까지는 좋았는데, 잘나가는 한국사람 동네와는 거리가 먼 동네라 처음 몇 년간은 좀 구차하고 번거롭게 살았다. 한국식품 구입할 때도 남들처럼 배달도 못 시키고 직접 나서야 했고, 아들도 학년 바뀔 때마다 스쿨버스 노선연장 신청을 별도로 해야 했다. 그래도 중국 서민들의 생활과 밀착하여 산 덕분에 적응도 빨랐고 지금까지도 중국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지 않을까 싶다.   

 

4년쯤 살고 나니 이 외진 골목까지 조선족 식당이 들어왔다(사진 오른쪽). 국적불명이라고 흉을 보긴 했어도 출장 온 한국 직원들 먹여살려준 고마운 곳이었다. 뒤이어 한국사람이 하는 식당도 들어왔다. 헌데....

광화문은 어디 가고 월령각만 남아서 성업중이다.      

 

우리가 살던 동은 외벽 타일이 떨어져 목하 수리중.

 

그때 살던 할머니들도 여전하시네. ^^ 

 

자주 모이던 '멤버'가 사는 포동으로 가는 중인데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원래는 옆집 살던 조선생네 '멤버'들이었는데 나랑은 띠동갑 되는 멤버까지 있는 젊은 그룹이었다.

살림 노하우, 아이들 교육 얘기가 주종을 이루는.... 이를테면 '현모양처 클럽' 같은 모임이라서, 아이도 다 키웠고 살림도 시큰둥한 나같은 쉰멤버는 안 끼워줄 만한데 고맙게도 자주 불러주었다. 덕분에 그 모임에서 돌아올 때는 개과천선.... 늘 새댁 같은 심정이 되곤 했지. ^^

이 날도 조선생 집에서 놀고 있는데 포동 '멤버'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왔다는 소리를 듣더니 당장 멤버들을 소집하겠단다. 아이고, 황송해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하이에서 가장 높은 빌딩(88층)이었던 金茂大廈 옆에 上海環球金融中心(World Finance Center)가 새로 들어서면서 고층빌딩 기록을 갈아치웠다. 104층으로 지은 것이 혹시 대만의 103 빌딩을 경쟁적으로 의식한 게 아닐까? ^^

꼭대기에 뚫린 구멍이 원래는 원 모양이었는데 너무 일본색이 농후하다고 하여 장방형으로 바꿨다. 헌데 아래에서 보면 꼭 병따개 같아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병따개 건물로 불린다고.....^^  

 

ㅎㅎ '쓰러진 우산대' 같은 저 전시물!

오늘 초대한 친구가 이 동네로 이사와 집들이 한다고 불렀을 때 그렇게 길안내를 했댔지. "浦東大道 따라서 '우산대 쓰러진 데'까지 와 좌회전 한 다음에.... '자동차 거꾸로 매달린 데' 나오면 첫번째 사거리에서...." 

파격적인 건축작품이 많은 상하이에서 흔히 듣는 길 안내. ㅎㅎ

 

엄마들 모임은 아이들 모임.... 

아이들 역시 형, 누나, 동생들과 야단법석을 피울 수 있는 모임날을 엄마들 못지 않게 기다리곤 했다.   

내가 떠날 무렵 갓 태어난 쌍둥이들은 벌써 어린이집에 발을 들여놓았고, 초등학생이던 녀석들은 벌써 코밑이 거뭇거뭇해지고 여드름이 한창이다. 세월 참 빠르다. 

엄마들의 중요한 관심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 교육 문제....

중국에 정착한 가정의 아이들은 일찌감치 진로 걱정을 시작한다. 대학을 한국으로 갈 꺼냐, 중국에서 다닐 꺼냐, 미국 등 제3국으로 갈 꺼냐에 따라서 상급학교 진학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쥔장 마님은 살림에 완전히 물이 올랐다. 집안 어느 한 구석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 부지런한 손길...^^ 

 

 

바로 호수 앞에 있는 집이라 베란다 전망이 끝내주는군...  

 

돌아오는 길에 보니 병따개 건물이 밤단장을 했네.

 

新上海故事

 

전형적인 상해깍쟁이인 중국 친구를 만났더니 얼마 전 자기부상열차 노선연장 반대투쟁에 참가했던 무용담을 자랑스레 들려준다. 10년 가까이 상해 살면서 듣도 보도 못한 얘기다.

 

올해 초 상하이 시 정부가 포동 - 롱양루 간 자기부상열차 노선을 항주까지 연장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는데(그것도 예정노선 인근 주민들 눈에 띌까봐 신문 한귀퉁이에 조그맣게), 자기부상열차란 것이 현재의 짧은 구간만 해도 80원(일반 지하철 기본요금 3원)이나 받는, 일반인 이용과는 거리가 먼 시설이니 완전히 전시효과를 노린 발상....  이 친구도 결혼 후 민행구에 27평짜리 집을 샀는데 신문기사를 보고는 눈앞이 캄캄했단다.

시속 300킬로로 달리는 열차의 소음, 진동을 고스란히 견뎌야 할 뿐 아니라 집값마저 폭락할 터이니 노선 예정지역 주민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안이었지. 당장 그날 저녁 아파트 홈페이지에 '주민 여러분, 내일 저녁 식사 후에 인민광장으로 산보하러 갑시다' 하는 공지문이 떴고 성금들이 모였단다.

일체의 정치적인 구호는 배제한, '우리를 살려주세요', '환경을 살립시다' 등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맞춰 입고 노인들이 앞장 서고 아이들과 여자들이 시위대 바깥쪽에 서서 젊은 사람들을 보호하며 롄화루부터 인민광장까지 걸어갔단다. 매일 저녁 열흘간, 그것도 민행구 아파트 주민들로만 구성된 만 명 씩이나..... 

물론 경찰이 막았고 주동자를 색출하기 위해 사진 채증과 탐문수사도 벌였지만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인데 철저하게 '생존권 침해에 대한 저항'임을 표방하는 시위에 대해 크게 어쩌지는 못한 모양이다. 결국 상해 시 정부가 계획을 보류하는 것으로 일단락 됐지만 다시 시도하면 언제라도 뭉칠 자신이 있단다. 

 

내가 아는 상하이 시민들은 대단히 개인주의적이고 책임을 지거나 나서기를 꺼리는 사람들이다. 관에서 주도하는 시위가 아닌 한 절대 끼어들지 않는... 정말 놀랄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친구들에게 이 사건에 대해 물어보니 아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방송에도 신문에도 보도되지 않았다고는 해도 한국 사람들 사는 장녕구 바로 옆 민행구에서 일어난 이런 큰 사건을 모를 수가 있나?

반응은 하나같이 이랬다. "만 명? 에이, 뻥이지 무슨~ "        

 

 

또 하나 깜짝 소식. 롄화루 역 남광장에 완공을 눈앞에 둔 고급 아파트가 쓰러졌다.

아직 입주민이 없어서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신문에 난 사진을 보니 도대체 어떻게 쓰러진 건지 마치 휴식이라도 취하고 있는 양 통째로 얌전하게 누웠다.

 

상하이 젊은이들에게도 취업난은 큰 문제인 듯...

취업박랍회가 열리고 있는 상하이 체육관 앞이다. 

 

한글 라벨을 달고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 만든 것 같지는 않은 가방...

하도 귀여워서 몰래 찰칵. (지하철 안이다.) 

 

우리나라 교보서점 격인 복주로의 上海書城(어, 이름 바꿨나?)

일요일이라 그런지 6층짜리 대형매장이 발들일 틈 없을 정도다. 

나는 아들을 위해 요즘 절믄이들에게 인기 있다는 환상소설을 한권 샀고 남편은 논문에 참고할 책이라고 열다섯 권이나 샀다. 다 보지도 못할 거면서 욕심은....

 

여기 살 때는 중국음식이 지겨웠는데 돌아가 살다 보니 가끔 중국음식이 그리웠다.

제대로 차린 중국음식 실컷 먹고 가리라고 벼르고 왔는데 혼자 돌아다닐 때는 혼자라 대강 먹었고

상해로 돌아오니 한국 친구들 만나면 집으로 부르거나 한국식당에서 대접을 해주어 도무지 중국음식 먹을 겨를이 없었다. 그런 눈치를 챘는지 중국음식점으로 불러내준 친구 내외 덕분에 드디어 제대로 중국음식 구경..

 

이 식당은 싱싱한 해산물의 고장 샤먼 출신의 형제가 차린 舒友라는 식당으로 상당히 이름이 나서 상해에도 몇 군데 분점을 낸 걸로 알고 있다. 상해 살 때 회사 VIP 접대나 한국사람들끼리 회식을 할 때 즐겨 이용하던 곳인데 6~8인 정도 그럴싸하게 먹으려면 2000원 정도 드니 한국이나 비슷한 수준이다.         

 

 

 

 

먹는 데 정신 팔려서 음식 사진은 이거 한 장밖에 안 찍었다. ^^

  

 

마지막 날, 돌아오는 비행기 시간이 늦어서 오전 시간이 남길래 멀리는 못 뛰고 의무쇼핑에 나섰다. 

중국에서 선물로 살 만한 건 술 아니면 차.... 뻔해도 할 수 없다. 좋은 건 너무 비싸고 만만하게 살 만한 건 사다줘도 환영 못 받는다. 그게 중국에 살면서 한국에 다니러 갈 때마다 피할 수 없던 고민이었다.

 

여기는 숙소에서 멀지 않은 九星 차 도매시장.

질 좋은 철관음으로 두 근 사가지고 열두 봉지로 나눠달라고 했더니 일단 체로 쳐서 가루를 걸러내준 다음 

 

어헛, 차 사러는 많이 다녀봤지만 처음 보는 기계다.

위쪽 투입구에 넣고 버튼을 눌러 분배량을 맞춰놓으면 배출구에서 딱딱 정해진 분량만큼 내놓는다.

 

원하는 분량만큼 담은 은박봉투를 늘어놓고 누르면 밀봉 완성.

1회분씩 나눠달라고 했더니 저렇게 갯수가 많다. ㅎㅎ

저 작은 봉투를 원하는 갯수 만큼씩 예쁜 통에 담으면 포장 끝!   

 

포장을 하는 옆에서는 소꿉장난 같은 차 시음회가 한창이다. ㅋㅋ 

 

차 시장에서 나와 인근에 있는 七寶老街 한바퀴...

예전에 일하던 한국학교 옆, 낡은 아파트와 황무지 같은 빈터 밖에 없는 동네였는데 관광거리로 변했다.   

 

원래 흐르던 개천을 정비하고 옛집 모양의 새 집들을 지었다. 오, 훌륭한데?

 

 

 

여기는 七寶老街 근처 올림픽공원.

우리가 이사 오기 1년 전쯤 문을 열었는데, 오밀조밀 꾸며놓은 전형적인 중국 공원과는 사뭇 다른, 탁 트이고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공원이다. 나는 짬 날 때마다 걷는다고 자주 왔었는데 남편은 처음이라 이런 곳도 있었냐며 신기해 한다.     

 

독생자녀를 둔 중국 가정에 알맞게 디자인 된 삼인용 자전거.

뜨거운 햇볕 아래 그 넓은 공원을 걸어서 돌아볼 재간이 없어서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는데 이인용 자전거도 있지만 애들처럼 놀고 싶어서 이 자전거를 빌렸다. ^^ 

 

 

  

 

잘 있어라, 상하이야.

이제 가면 언제 올지 모른다만 다시 만나는 날까지.. 아름다운 故事 많이 만들어놓고 옛친구를 기다려다오.  

 

Thanks to :

분에 넘치게 대접해주신 박부회장님, 심사장님, 권사장님, 金總, 그리고 사모님들... 

일이 잘 진행되도록 성심성의껏 도와준 陳總, 張經理...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잊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 보여준 나선생님, 최선생님, 연택 엄마, 쌍둥이 엄마, 희경씨...

특히 매일 전화해서 혼자 썰렁하게 있지나 않을까 일정 체크까지 해주던 조선생님....

 

이 웬수 잊지 않고 꼭 갚으리다. 모두들 서울 오면 꼭 연락하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