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시아(중국 외)

태국3(치앙라이2) - 푸치파 어드벤처

張萬玉 2009. 7. 28. 13:58

푸치파 간다는 미니버스에 올라탔더니 젊은 태국 애들 다섯 명이 앉아 있다.

반가워서 혹시 푸치파에 일출 보러가느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그럼 나 너희 따라갈래, 하니까 자기들은 치앙 캄에 있는 친구집에서 자고 거기서 출발한단다. 띠용~

어쨌든 걔들 내리는 데서 내리면 되겠지 하고 마음 놓고 앉아 있는데 차비를 걔들은 65밧 받고 나더러는 800밧을 내란다. "왜?" 했더니 종점이 치앙 캄인데 거기서 꼭대기까지 데려다주면 그렇게 받는단다. 아, 이게 바로 한국식당 주인 아주머니가 하시던 말씀이구나. 편도 800밧 씩이나 낼 꺼면 내가 투어를 했지.

나도 그럼 치앙 캄까지만 가겠다고 하니까 거기서는 가는 대중교통이 없단다.

이걸 어쩌나 망설이고 있는데 옆에 탄 태국아저씨가 젊은이들에게 뭐라뭐라 한다.

자기 집이 푸치파인데 푸앙 캄 못 미처 투엉에 오토바이를 세워놨으니 자기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 어떻겠냐고 한다고 아이들이 전해준다. 영어는 거의 못하지만 들을 줄은 아는 모양이다. 

 

혼자 남자 뒤에 타고 외진 산길을?

좀 엄두가 안 나서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잘됐다며 모두 기뻐한다.

이 아저씨 관상을 보니 순박하게는 생겼다. 에라, 이것도 내 복이려니... 하고는 그러자고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푸시파가 투엉에서 30분 정도만 가면 되는 곳인 줄 알았다.

 

 

투엉에서 그 남자를 따라 내린 곳은 큰 병원 앞.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더니 병원 마당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끌고 나온다. 얼마나 먼 길을 가시려는지 기름도 빵빵하게 넣고....

푸치파와 치앙 캄 갈림길에 들어서자 와~ 길이 장난 아니다.

내가 루앙프라방 오는 길에서 멈췄으면 하고 안타까워 했던 바로 그런 길....

처음엔 꽃 피는 시골마을 사이로 얌전하게 달리더니 산길로 접어들자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데 양 옆은 무성한 정글이다. 뱅글뱅글 도는 심산유곡 속으로 계속 들어간다. 1시간 반쯤 달렸다.

얻어타고 달리는 주제가 아니면 세우고 싶을 정도로 발 아래로는 장엄한 산자락이 펼쳐진다.

거의 왔나 싶으면 가고 또 가고....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든다. 설마 순박해뵈고 기운도 별로 없어 보이는 이 아저씨가 날 어디로 납치해가는 건 아니겠지? 여차하면 배낭을 휘둘러서.... ^^

 

불안한 마음은 삼림공원 표지판이 나오면서 겨우 진정됐다.

엔진이 뜨끈하게 달아오를 만큼 가파른 길을 오르니 멀리 게스트하우스들이 보인다. 

도착해서 50밧 더 줬다. 아무리 봐도 처음에 얘기했던 100밧에 올 거리가 아니다.

그 순박한 남정네,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인데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고맙다고 하더니 사진 한 장 찍자고 해볼 새도 없이 달아난다.

 

 

 그 아무것도 없는 골짜기에 게스트하우스가 30여 동이나 있을 줄이야.

그리고 식당 대여섯 군데, 파출소와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다. 파출소에서 제일 가까운 숙소에 짐을 풀었다.

 

 

침대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판때기를 이어 댄 틈새가 몸으로 다 느껴질 정도다. 창도 그냥 나무로 만들어져 창문을 닫으면 대낮에도 한밤중이다. 그래도 이 깊은 산골에 전기와 더운물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디냐.

 

날 저물기 전에 동네 정찰을 나갔다. 남는 게 시간이니 내일 일출을 볼 지점까지 가서 일몰까지 볼 생각으로...

 

 

 

오늘은 운이 좋아 여기까지 왔지만 내일은 또 어떻게 하산을 한다?

아침에 치앙 캄이나 투엉 가는 버스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인포메이션 센터에 갔더니

센터 앞에서는 동네 할머니가 바느질 중이시고 안에서는 꼬마들만 놀고 있다.

에이, 비수기라 해도 설마 아무도 안 오진 않겠지. 적어도 버스에서 만난 애들은 올 테니 어떻게 낑겨서.....

 

 

 

멋진 전망대를 갖춘 건물이 눈에 띄길래 들어가보니 고급스러운 커피숍인데 텅 비었다.

 

 

 

아이스라떼 한잔 시켜가지고 테라스로 나왔다.

방향을 보니 이 커피숍은 석양을 보는 곳인데 해 지기는 아직 이르고...

 

 

삼림공원 쪽으로 올라가니 정상까지 2.5킬로라고 적혀 있다. 왕복 5킬로... 

 

 

땡볕에 급비탈 걸어올라가기가 수월치는 않지만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오가고 내려다 보는 경치가 근사하니 힘든 줄도 모르겠다. 오늘 답사를 했으니 내일 새벽엔 센터에서 운영한다는 미니버스 타고 올라가도 여한이 없겠군.

 

땡볕은 내리쬐도 산 속이라 그리 덥지는 않다.

 

 

캠프장도 있고 화장실, 휴지통 등등이 공원사무소에 의해 잘 관리되고 있다.

 

 

포장도로 끝나는 지점까지 올라가니 난전이 펼쳐져 있고

 

 

(서쪽으로 놓인) 전망대 벤치에 서양 커플 한쌍이 앉아 해지기를 기다리며 사이좋게 간식을 나눠먹고 있다.  

사방은 조용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들이 함께 바라보고 있던 곳. 

 

노점 뒤쪽에 정상으로 올라가는 흙계단이 있다. 끝까지 올라가면

 

지리산 세석 같은 평원이 펼쳐지고.. 

 

 

거대한 짐승의 콧등처럼 생긴 곳이 일출을 보는 포인트. 

 

 

바위에 걸터앉아 넋을 놓는다.

 

  

구름을 물들이는 하늘빛이 얼마나 아련한지...

 

 

 

 

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노을을 가슴에 한 아름 안고 내려왔다. 

 

 

 

 

싸온 김밥 까먹고 났어도 할 일 없는 초저녁... 길이 너무 어두워 멀리도 못 가고 불 켜진 식당 앞만 서성이다가 산에서 본 커플과 마주쳤다. 안 그래도 내일 산 아래로 내려갈 일이 걱정이라 너희 혹시 내일 일출 본 뒤에 어떻게 내려갈 꺼냐고 물었더니 오토바이 타고 내려간단다. 알고 보니 오토바이를 타고 이 치앙라이 서쪽 산악지대 일대를 섭렵하고 있는 중이다.

여자가 입은 옷이 미얀마에서 보던 치마라 아는 척을 했더니 2년 전에 갔었단다.

너무 좋아서 미얀마 말 배워 다시 갈 꺼라고... 이번엔 3주 여행을 위해 태국말을 조금 배워왔단다.

너희 멋지다. 너흰 진짜배기 여행을 하는구나.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혹시 산에 올라가는 미니버스 놓칠까봐 긴장 됐는지 영 잠이 안 온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차가 없어서 걸어가는 꿈을 꾸고는 놀라서 깨었다. 다행히 네 시 반이다.

 

세수하고 나가니 썽테우들이 지나간다. 미니버스가 대기하고 있을 줄 알고 기다리는데 감감 무소식이다.

혹시나 싶어 손을 쳐들어 썽테우를 세웠더니... 아이고, 이게 미니버스란 거였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아직도 깜깜밤중인데 사람들이 제법 많다. 거의가 현지인들이다.

 

 

해는 언제나 뜨려나... 아직도 하늘엔 별이 한 바께쓰인데....

 

 

 

 

골짜기 사이는 신비한 구름 바다... 높은 봉우리들은 다도해에 뜬 섬들 같다. 

 

 

 

 

웬일인지 일출은 기대에 못미쳤으나 구름에 싸인 신비로운 골짜기들과 새로운 태양빛 속에서 장엄하게 태어나는 드넓은 산봉우리들의 모습은 그 아쉬움을 묻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아침해가 솟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지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교회도 안 다니는 사람의 입에서 어릴 때 부르던 찬송가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ㅎㅎㅎ

 

이거 혹시... 언젠가 선거 때 보던 캠페인 복장 같은데?  

 

연주가 이나라 소음을 내며 팁 달라 조르는 꼬마들....

 

흙계단 옆에서도 오늘 장사 시작이다.   

 

이제 아랫세상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치앙라이까지 바로 가는 편이 있으면 동승해보려고 정상 아래 주차장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수작을 부려봤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 대부분이 단체로 치앙 캄에서 썽테우를 전세내어 올라왔다가 돌아가기 때문에...

포기하고 일단 센터까지 내려가니 마침 투엉 가는 썽테우가 출발하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을 태우고 시내 나가는, 말하자면 마을버스 같은 교통수단이었다.   

 

반가운 동행은 있지만 눈인사밖에 할 수 없는 이 벙어리 신세....

어제는 오토바이 뒤꽁무니 타고 오느라고 사진 찍을 엄두도 못 냈는데.... 오늘 올라탄 썽테우 역시 구비구비 사납게 돌아치니 이 아까운 풍경을 그냥 두고 간다.

 

어쩌다 속도가 줄었을 때 황급히 건진 몇 장...

 

 

 

 

 

 

산길을 다 내려와 동네로 들어서자 어떤 집 앞에 세우고 잠깐 기다리라는 시늉을 하는 운전사..

같이 탔던 아줌마는 이미 내렸고, 나 혼자 20분이나 기다렸다.

손님을 자기 집 앞에 세워놓고..... 아침 먹고 나온 게 분명하다. ^^ 

 

투엉 버스 정류장이라고 내려줬는데 어디서 타는지 알 수가 없어서 오토바이 렌트하는 집에 들어가 물어보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될 텐데 뒤에 타라고 한다. 정말 친절한 태국 사람들....

외국인인 줄 한눈에 알아보는 버스 승객들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졸다 깨다 침 닦다.....

내가 정말 여행운은 좋은가보다. 무모하게 떠났지만 경쾌하게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잊지 못할 곳 베스트 5을 꼽으라면 당연히 푸치파를 꼽는 이유는 경치도 아름답긴 했지만

그보다도 안이한 루트에서 벗어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일종의 '도전'을 해본 곳이라 더 그럴 것이다.   

나처럼 운좋게도 적당한 가격에 푸치파까지 데려다주는 교통편을 만날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나 (내려오는 썽테우는 구하기 쉽다) 그래도 누가 치앙라이에 간다면 꼭 권하고 싶은 곳이다. 더 활동적인 분이라면 오토바이를 빌려 푸치파를 중심으로 한 치앙라이 서쪽 산악지대를 누비셔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