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4(치앙마이1) - '아시아 여행의 종착지'
치앙라이부터 치앙마이까지는 3시간 반 걸렸다.
오는 길의 마지막 구간은 중국 항저우 서호 부근의 숲을 생각나게 했다. 정갈하고 깊고....
시내에 가까이 오니 대형 플래카드가 맞아준다.
"Welcome to Chiang Mai - Destination of Asia'
최고 관광지로서의 자부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문구다.
과연 그 호언장담 만큼 나를 매혹할 수 있을지는 좀 오래 지내봐야 알겠지만 일단 첫인상은 마음에 든다.
론리 맵을 보고 버스 터미널에서 게스트하우스가 가까운 줄 알았다. 걸어가려고 호객하는 툭툭을 모두 거절하고 20분 정도 걸어갔는데 도무지 방향잡이가 잘못된 것 같다. 사람들에게 Moon Muang 거리 간다고 하니 모두 만류한다. 걸을 만한 거리가 아니라는 거다.
알고 보니 치앙마이에는 버스 터미널이 두 개 있는데 내가 지도에서 본 것은 숙소거리 부근에 있는 것이고 내린 곳은 Arcade 버스터미널이었다. 땀은 땀대로 흘리고... ㅜ.ㅜ 뒤늦게서야 썽테우 잡아 타고 Moon Muang 거리 Soi(골목) 9에서 내렸다.1
골목으로 들어가 눈에 띄는 집에 200밧짜리 싱글룸이 딱 하나 남았다고 해서 얼른 체크 인 했다.
헌데 이 방을 쓰던 사람이 트레킹 가면서 예약을 해놨기 때문에 내일 방을 빼줘야 한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차피 내일 트레킹 갈 거면 방이 필요없을 꺼고, 1박2일 할 껀지 2박3일 할 껀지 얘기해주면 돌아오는 날짜에 맞춰 방을 잡아놓겠단다.
아니 아저씨, 숨 넘어가겠어요. 나 지금 도착했거든요? 아저씨가 제 일정 다 짜주시려구요?
손님이 어지간히 많은 집인 모양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집 주인이 트레킹 전문가로 이름난 사람이라서 손님들도 거의 트레킹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단다. 그래도 그렇지, 손님들이 무슨 오븐에 들어갈 차례 기다리는 빵 반죽이냐.
게다가 방에 들어가보니 콘센트도 없어서 카메라 밧데리 충전 하려면 방 밖에 설치된 콘센트에 매달아놔햐 하고 방 밖이 바로 사람들 지나다니는 통로라 커튼을 열어둘 수가 없는 것도 불편하다. 내일 아침에 나가서 다른 집에 빈 방 있나 알아봐야겠다.
숙소 안 뜰에 놓인 제단. 무슨 야쿠르트를 저리도 많이 바쳤나? (저 하나 집어먹으면 안 될까용?)
이튿날 일찌감치 아침도 먹을 겸 숙소도 알아볼 겸 골목 안으로 더 들어가니
론리 플래닛에서 봐뒀던 이름이 눈에 띈다. 그레이스 게스트하우스.
2층이라 어제 묵은 숙소처럼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 신경 안 써도 되고, 맨 끝방이라 복도 끝 전망보는 의자도 내 차지.... 창문도 두 군데, 플러그 있고 핫 샤워에 큰 옷걸이까지.... 가격은 같다. 완벽해!
그레이스 하우스 베이커리에서 받은 아침상.
통밀빵도 커피도 과일도 만족스러웠다.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저 딸랑이를 집어들고 흔들면 된다. ^^
당장 짐 옮기고 나서 게스트하우스에서 겸업하고 있는 여행사에 내일 나가는 1일 트레킹을 예약했다(1100밧).
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지만 명성 자자한 치앙마이 코끼리 트레킹을 패스하기는 좀 그렇다는 미련한 아쉬움(언제 다시 오랴, 이 동네 산은 또 어떤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오늘은 빨래나 하고 동네나 한 바퀴 하면서 푹 쉴 예정이었다.
여행자 동네는 치앙마이 시내를 가로지르는 핑 강의 서쪽(어제 내렸던 터미널은 동쪽)에 있는데 사방이 18세기에 지어진 성벽과 수로로 둘러싸인 구역 안에 있어 여행지의 운치를 더해준다.
날씨도 선선하고 거리도 깨끗하고 사람들 친절하고 물가 싸고.... 게다가 근교에 훌륭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으니 최고의 여행지로서 손꼽히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 만큼 여행지의 '낯선' 매력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외국여행자들을 위한 서비스들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어... 굳이 흠을 잡자면 너무 잘 익은 과일 같다고나 할까?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에서 만난 동갑내기 한국 아주머니는 치앙마이에 석 달이나 있었다고 했다.
뭘 하고 지냈는지 물어보니 인근 마을에 있는 명상센터에서 심신수련을 했단다. 치앙마이 시내에도 외국인들이 많지만 좀 떨어진 마을에서 수공예를 배우거나 자원봉사를 하며 지내는 외국인들이 꽤 많단다. 역시 어떤 도시와 제대로 정이 들려면 일정 기간 살면서 조금이나마 그 도시에 포함되는 경험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돌아다니다 기웃거려본 마사지 샵. 최고급 풀코스 마사지가 무려 7000밧이 넘더군.(200달러 정도)
장난 삼아 물어본 건데 꽃차까지 대접해주면서 어찌나 친절하던지 진땀이 줄줄... ㅋㅋ
동네 한 바퀴 나갔다가 예상찮게 꽃 축제 퍼레이드를 만났고....(그 얘긴 다음 포스팅으로....)
퍼레이드 끝난 뒤 숙소로 돌아가려고 올라탄 썽테우에서 도이 수텝에 간다는 프랑스 내외를 만났다.
그리 멀지도 않다길래, 오후에 별로 할 일도 없고.... 친구 따라 강남길 나섰다.
도이 수텝 가는 썽테우는 Soi 9의 막다른 골목에서 북쪽을 향해 나가면 만나는 큰길의 건너편에서 출발한다.
10명이 차면 1인당 60밧씩 받고 가기 때문에 손님이 다 찰 때까지 기다린다.
거리는 17킬로미터.... 오토바이족, 바이크족들이 간간이 눈에 띄는 산길이다. 40분 정도 걸렸다.
프랑스 아줌마는 앉자마자 곯아떨어진다. 퍼레이드 따라다니느라고 고단했던 모양이다.
남편은 시방...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를 찍을 준비중이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아주 좋아죽는다. ㅋㅋ
도이 수텝으로 올라가는 길. 치앙마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올라왔는데 또 올라오란다. ㅜ.ㅜ
경내에서 신발 벗고.... 갑자기 미얀마 양공의 쉐더공 사원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절도 부처님도 비슷하게 생겼고... 아, 미얀마가 그리워지는군.
한쪽에서는 기금(아마도 장학금) 마련을 위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짐작컨대 기금 수혜 당사자들이 직접 모금을 하는 듯...
여기는 사원 옆 왕이 머물렀다는 궁인데 안 들어가고 발 아래로 보이는 근사한 전망만 즐겼다.
이 난간에서 바라보면 치앙마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이날이 치앙마이에서 마지막 밤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떠나기로 한 결정이 좀 갑작스러웠다. 화가 났던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만 미련은 없다.
투어를 하기로 한 날 아침, 9시에 온다던 투어버스가 10시가 되도 안 온다.
보채는 것 같아서 묻지도 않고 책을 읽고 있었는데.... 내가 기다리는 거 모르는 바도 아니련만 아무런 조치도 없다가 결국 내가 묻자 어딘가로 전화를 해보더니.... 인원이 미달되서 캔슬됐단다.(모객은 여기서 하고 조직은 더 큰 여행사에서 하는 모양이다) 아니,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사실 속으로는 잘 됐다 싶기도 했다. 예약을 해놓고도 썩 내키는 기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내일 꼭 갈 수 있도록 주선하겠다는데 됐다고 했다.
갑자기 투어 안 할 꺼면 그만 떠나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방으로 돌아가 짐 싸들고 나왔다.
치앙마이와의 이별은 불현듯, 정말 불현듯 이루어졌지만 치앙마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좋은 감정이 남아 있다.
이런 걸 쿨한 이별이라고 해야 하나..... ㅋㅋㅋ
- 툭툭은 택시의 개념으로 혼자(혹은 일행과) 이용하는 것이고 썽테우는 버스의 개념으로 정해진 노선이 있어서 자기 목적지에 가는 것을 골라 타야 한다. 당연히 요금은 썽테우가 싸다. 외양으로 보면 썽테우는 픽업트럭을 개조한 것이고 툭툭은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개조한 것이라 썽테우가 좀 더 크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은 동남아 다른 나라에서는 이 구별을 모르고도 다녔는데 태국에 와서는 이 구별이 확실히 필요해졌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