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시아(중국 외)

타이완2 - 태평양이 보이는 금광마을 九份

張萬玉 2009. 8. 11. 22:07

지우펀(九份)은 예정에도 없었던 건 물론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곳이지만 숙소에서 친구가 생기다 보니 함께 하루쯤 어울리자고 해서 가게 됐다. 아침마다 화산시장 2층건물에 있는 콩국집에서 조찬회동을 하던 우리는 타이베이 시내가 아닌 하루거리 관광지로 예류(野柳)와 지우펀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지우펀에 낙점했다.

서두르면 이 두 군데 모두 돌아보고 올 수도 있지만 그날은 우리 모두 '강 약 약' 박자치기에서 약박자 들어가는 날이었던지라 슬슬 갔다가 슬슬 돌아보고 일찌거니 돌아오기로 했던 거다. 

 

지우편은 원래 아홉 가구밖에 살지 않아 먹을 것이든 의복이든 뭐든지 아홉 개로 나눠가졌다(九份)고 해서 붙여진 이름. 그러나 이름 만큼 작던 이 도시는 1920~30년대에 타이완 최대의 금광으로 개발되어 큰 번영을 누린 적이 있었다. 지금은 과거 금광의 명성과 시설들을 활용하여 관광도시로 탈바꿈했고, 대만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를 찍은 이래 옛 집과 좁은 골목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더 큰 유명세를 타고 있다. 작년에 방영된 SBS 드라마 '온에어'도 여기서 찍었다고 한다.

  

 

레이팡(瑞芳) 가는 열차는 많았다. 화롄 갈 때 탔던 기차와는 달리 지하철처럼 생겨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출발시간에 따라 차종, 가격이 다른 거였다. 올 땐 기차역에 도착한 시간에 맞춰 아무 거나 탔는데 화련행과 같은 '제대로 기차'였다. (28원 더 냈다)

(타이베이에서 지우펀으로 직접 가는 버스도 있는데 지하철 시정부역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한 시간 안 걸려 레이팡에 도착, 진과쓰(金瓜石) 행 버스로 갈아타니 바로 산길로 접어드는데...... 

발아래 바다를 두고, 올라온 길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꼬부랑 길을 한참 기어올라간다. 

 

 

대부분 사람들이 내리는 이곳은 영화촬영지와 먹자골목이 있는 수치루(竪崎路)와 지산지에(基山街) 부근.

우리는 금광박물관과 전망대가 있는 종점까지 가기로 했다.

 

 

 

종점은 8부능선쯤 되는 지점. 맞은편 산 꼭대기에 빼곡하게 들어선 집들이 꼭 비둘기집 같다.

 

 

종점 부근 도교사원

 

아이고 깜짝이야! 사원 옆에 자리잡고 앉은 관운장 덩치가 집채 만하다.

 

 

산 꼭대기에 설치된 전망대로 올라가니 바다가 손짓한다. 

 

여기가 타이완에서 유일하게 태평양을 볼 수 있는 곳이라네.

내가 추위를 별로 안 타는 사람인데도 어찌나 추운지 이가 딱딱 부딪치고 손발이 다 오그라들 지경이다.

아무리 남쪽나라라 해도 겨울은 겨울인데.... 따땃한 스웨터 놔두고 봄잠바 하나 걸치고 왔다가 이 고생이다. 

바닷바람도 맵지만 산이 높다 보니 기온 자체가 낮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 구경이고 뭐고 어디 따뜻한 데 들어갈 생각뿐이다. 오들오들 떨며 금광박물관으로 쓔웅~

  

 

일제 치하에서 개발된 금광은 일본이 패퇴한 후 민국 손으로 넘어온 뒤 1960년대까지 운영되었다고 한다.

보통 광산 하면 광부들의 열악한 작업환경부터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곳에 남아 있는 유물들로부터는 그런 흔적을 전혀 볼 수 없다. 주로 케이블카 등을 이용한 채광기술과 광부들의 (상태가 괜찮은) 작업복과 작업도구, 출퇴근표, 신체단련증, 광부 단합대회 사진 등 건강한 근로현장의 분위기를 전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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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광부로 근무했던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아직도 이 마을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좋았던' 시절을 증언하는 인터뷰 동영상도 돌아가고 있었다. 

 

 

저 골짜기 오른쪽 어디쯤에 직접 들어가볼 수 있는 갱도가 있는데.... 너무 추워서 포기했다. 

박물관 아래쪽으로 일본 황태자의 방문에 대비해 숙소로 지었다는 태자궁 등 볼거리가 더 있다는데 패스.

 

올라올 때 사람들이 많이 내리던 세븐일레븐 앞에서 내려 먹자골목인 지산지에로 들어갔다. 

 

먹을거리는 중국 같고 가게 분위기는 일본 같다.

 

쥔장이 가끔 지나다니는 손님들을 위해 라이브를 해주기도 하는 테이크아웃 까페.  

 

지산지에와 수치루가 만나는 길목에 설치된 전망대(차량들 서 있는 곳) 

 

이 전망대에서도 망망대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언덕배기에 층층이 만들어진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들과 가파른 계단길.....

이것이 오늘의 관광도시 지우펀을 있게 한 명물들이다. 

그리 길지도 않은 이 골목에 입점한 찻집과 음식점들이 줄잡아 백 개는 넘는다고 한다.

비정성시와 온 에어 촬영도 이 골목 음식점들 중에서 이루어졌다. 

사진 중앙에 걸린 阿妹찻집은 이 골목에서 차맛 좋기로 이름난 명소로, 차 한 주전자에 200NT부터 시작하는 고급 찻집이다. 

 

오늘 내 길동무가 되어준 두 평범치 않은 여성들

 

사진 왼쪽 :

아홉살짜리 아들을 두고 혼자 여행길에 나선 한국 엄마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너무너무 대만에 오고 싶어서 남편을 졸라 열흘간의 휴가를 얻었는데 함께 사는 시부모님도 염려 말라고 흔쾌히 보내주셨단다. 

아들네미 다 컸다고 믿거라 돌아다니는 내게도 내심 놀랍다는 생각이 드는데.... 결혼하면 붙박이 신세가 당연한 줄 아는 사람들의 눈에 이 당돌한 아줌마의 걸음이 어떻게 비칠까. 혼자 여행다니는 유부녀들.... 확실히 한국에서 화성인 쪽이겠다는 실감이 든다. 나를 보고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 

해외여행은 대만만 세 번째란다. 처음은 가족들과 패키지로 왔었고, 두 번째도 가족과 함께 왔지만 배낭 메고 왔었단다. 그래도 여전히 대만이 그리워서 또 왔다니.... 뭐가 그리 좋더냐고 물어봐도 "그냥요... 그냥 다 좋아요" 하고 웃기만 한다. 어디 멀리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타이베이 시내, 특히 대학가 주변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대학 도서관에 가거나 아기자기한 골목들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진짜 전생에 대만 사람이었나?

 

사진 오른쪽 :

내 건너편 침대를 쓰고 있는 독일친구 우첸. 뮌헨에서 온 프리랜서 문화비평가.

차림새도 무신경할 정도로 수수하고 말수도 적어서 한눈에 고지식하고 고집 센 사람임을 알아볼 수 있다.

성격은 기본적으로 그런 듯한데 막상 사귀어보면 사근사근하고 매너도 좋다. 베지테리언이고 엄청난 짠순이고.... 열 시면 자고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서 명상을 하는....좀 독특한 친구다.

대학에서 예술사를 전공했고 불교미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직업과 관련해서 일본, 중국을 수차례 여행했고 한국에서도 세 달 가까이 살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살던 얘길 들어보니 경상도, 전라도 구석구석 어디 안 가본 데가 없다. 이번에도 한 달 잡고 대만섬을 일주할 계획이란다.

40대 초반쯤으로 봤는데 나보다 겨우 두 살 아래란다. 체력도 젊고 감각도 젊고 마음도 젊고.... 모든 면에서 나랑은 비교할 수도 없이 젊다. (부럽더라.) 처음엔 결혼 안 했다고 하길래 그래서 그렇게 젊구나 했더니만, 얘기중에 열두 살짜리 아들이 등장한다. 아하, 싱글맘이었어? 했더니 그 아들의 아버지인 보이프렌드와 12년째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사실혼 관계이니 결국 결혼생활이지만,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읽히는 그녀의 가족관계는 '구속과 의존'으로 압축되는 한국적인 가족관계와는 사뭇 다른, 독립적이고 우호적인 느낌이다.

그런 성숙한 관계가 자기 삶에 대해 더 책임감을 갖게 하고 청년의 마음을 지킬 수 있게 해주지 않았을까. 

   

 

 

음식점은 즐비하지만 어찌나 비싼지.... 춥기도 하고 점심도 거른 터라 들어가긴 했지만 아무리 머리를 써도 바가지 요금을 피할 길이 없다. 우첸이 안 먹겠다고 해서 한국 아줌마 둘이 2인(커플세트) 700원짜리를 시켰는데 쉐어 안 시킬 테니 그냥 같이 먹자고 아무리 권해도 우첸은 젓가락조차 안 든다. 끝까지 물만 마시더군.

양이 충분해서 결국 남기기까지 했는데도...^^

  

이 칼라... 편집처리 한 거 아니다.

가로등불 불빛이 웬만하길래 플래시 안 켠 채로 찍었더니 환상적인 톤이 나왔다.

 

 

수치루 끝까지 내려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찌나 춥던지 이를 악물어 아귀가 다 아프고 무릎도 안 구부러지고 열까지 난다. 암만해도 몸살이지 싶어 감기약 한 알 삼키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솜이불이 푹 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