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시아(중국 외)

타이완3 - 꽃 피는 陽明山

張萬玉 2009. 8. 14. 13:09

밤새 앓고 났어도 날이 밝으니 거뜬하다.

오늘은 타이완에서의 마지막 날, 양명산을 향해 나섰다.

행운인지 불운인지 하필 오늘 양명산은 벚꽃축제의 첫날을 맞는다고 한다.

 

 

대만역 북3출구로 나가면 양명산 가는 시내버스가 바로 있다(260번)

불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딱 들어맞았다. 늘어선 줄이 끝도 없다. 

반면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역시 옳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대만사람' 구경 하나는 질리게 할 테니... ^^

운 좋게도 내 앞에는 참새같은 아가씨들이, 뒤에는 홍콩에서 놀러온 총각들이 나를 핑게삼아 함께 어울리는 바람에 같이 노닥거리다 보니 한 시간이 후딱 지났다.

버스는 10분 간격으로 계속 오는데 그 정도 기다렸다면 얼마나 줄이 긴지 짐작하실랑가.. 성질 급한 한국사람들 같으면 줄 딱 보고는 그냥 발길 돌렸을 꺼다. ^^ 

 

 

그래도 서서라도 가겠다는 줄과 앉아야만 가겠다는 줄을 구분해서 참 가지런하게도 기다린다. 중국보다는 일본에 가까운 줄서기 질서..... 중국 같으면 이런 줄 옆에 자가용 영업하는 삐끼 줄이 하나 더 생기련만 여긴 호객꾼이 단 한 명도 없다.

 

 

대중교통 이용객이 이 정도로 많다면 자가용도 그 못지 않게 출동했다는 정도는 짐작했어야지. 

스린역 지나니 바로 양명산 가는 산길로 접어드는데, 경치는 좋지만 차가 징그럽게 막힌다. 우리나라 단풍철에 설악산 막히는 정도? 15분이면 갈 길을 한 시간 가까이 걸려서 갔다. 

 

 

 

종점에 내리니 양명산 지구를 도는 셔틀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꼭대기까지 가고 싶은 자가용들이 끝도 없이 올라가니 셔틀버스라고 길 막혀서 어디 타겠나. 원래 계획은 17킬로 떨어진 폭포까지 갔다가 인근에서 온천을 하고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어두울녘에 산을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도무지 엄두를 못내겠다. 

 

 

벚꽃이 아직은 일러 벚꽃축제라는 이름이 좀 무색하지만 산 자체가 깊고 아름다우니 아무러면 어떠냐. 어제의 궂은 날씨는 거짓말처럼 화창한 봄날씨로 변했고 사람들도 꽃처럼 활짝 웃고 있다. 꽃도 아름다운데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람들까지 활짝 피었으니 내 마음도 덩달아 활짝 피어난다.

 

 

 

 

 

 

 

 

 

 

 

 

 

우리나라 헤이리에 있는 예술인마들처럼 이곳에도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예술인 마을이 있다. 

 

입구에 작은 전시장이 있어 들어가보니....흐억! 머리카락 예술품이다!!

착용하고 다니려면 기분이..... 글쎄, 어떨까?

 

 

작업실 치고 저 정도면 근사한 것 같은데.... 빈 집이 많다.

 

 

온천이 유명한 대만에 왔으니 기회대로 온천구경 한번 하리라고 마음은 먹었지만 도무지 틈을 낼 수가 없었는데, 오늘이 대만에서는 마지막 날이고 마침 양명산도 온천지로 유명한 곳이니 꽃구경 한바퀴 마치고는 꼭 온천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온천은 산 꼭대기에 있다 하고(중턱에도 있긴 하지만 그건 '목욕탕') 그 산꼭대기 까지 데려다줄 셔틀버스는 이젠 아예 오지도 않으니....  

 

저렇게라도 좋으니 누가 나 산꼭대기로 좀 안 데려다주려나..  

 

세븐일레븐에서 김밥과 우유를 사가지고 되도록 천천히 우물거리면서 우짜믄 좋을고 궁리를 계속하고 있는데 종점에서 출발하는 버스 창문 유리에 신베이터우(新北投)라고 쓰인 글씨가 보인다.

그렇지!! 꽃구경은 이제 그만 하고 저기로 가자. 저 동네 온천이 유명하다더라.

 

 

그것도 간신히 낑겨 탄 버스련만....  몇 정거장 안 가서 불쑥 내려버린 만옥이..

'林語堂 故家'라는 글씨를 안봤으면 모르되 본 이상 도저히 안 내릴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래 전에 누렇게 바랜 문고판 <생활의 발견>으로 그를 만났을 땐 내가 너무 어려서 그의 이름 석 자 외에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중국살이 후에....그의 작품세계에 심취한 아들의 소개를 통해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에서야 그가 보기 드문 멋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랬기에 그 멋진 분의 흔적에 대한 호기심은, 중국 여행길에서 흔히 만나는 무슨무슨 기념관 문턱을 넘어보는 습관적 행보와는 확실히 다른 강력한 매력으로 나를 잡아끌었던 것이다.    

 

  

 

중국 푸지엔 성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상하이에서 대학을 졸업했고(영문학) 미국과 독일에서 유학한 뒤(언어학) 베이징 대학 교수가 되었는데 루쉰 등과 함께 혁명 운동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뜻이 맞지 않아 저작에만 전념했고, 193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중국의 고전을 번역하거나 중국 문화를 서구에 소개하는 저작물들을 집필하는 데 힘을 쏟았다. 2차대전이 끝나고 대만으로 돌아온 그는 한때 대만에서 고위직을 지내기도 했고 싱가폴에 대학을 설립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생활의 발견'을 추구하며 살아간 사람인 듯하다. 

정치적 입장은 제쳐놓고라도 (그는 대륙 출신이지만 국제적으로 타이완의 지성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시대의 風風雨雨 속에서도 자기가 사랑하는 것들의 가치를 탐색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즐겁게 살다 간 사람이었으니 참 복도 많은 양반이다.

文材뿐 아니라 머리도 좋았던 것 같다. 그의 집에는 그의 육필원고와 그가 집필한 영어사전, 영문법책들도 진열되어 있지만 그가 개발했다는 독특한 타자기와 전동칫솔도 볼 수 있었다.

 

그 명성에 비할 수 없이 소박한 칸살이지만 곳곳에서 文香을 느낄 수 있는 단아한 분위기...

사진을 못 찍게 하는데 너무 아쉬워서 몰래 한장 찍었으나 가까이 찍지 못하니 별 의미가 없다. ㅜ.ㅜ

액자 아래칸에 있는 물건이 그가 개발한 타자기. 

 

임어당 고택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타려니 만원이라 문도 못열겠는지 아예 서지도 않고 지나간다.

몇 대를 보내던 끝에 겨우 지하철역 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스린 역에서 내려 베이터우행 전철로 갈아탔다.

온천이 있는 신베이터우까지는 베이터우에 내려 연장선으로 갈아타고 한 정거장 더 가야 한다.

 

 

휘유... 어렵지도 않은 길을 어렵게도 왔다. 정면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면 온천구역이다. 

 

 

시간 넉넉하면 동네 한바퀴 할 이유가 충분한 아기자기한 마을이지만 이미 해가 기울고 있으니....  

 

타이완 소수민족들의 문화를 소개하는 박물관도 있던데.... 문을 닫고 있다. 아까비~

 

아마도 호텔 딸린 온천.... 아니 온천 딸린 호텔.

 

일본 옷 입고 사진 찍는 아가씨들이 타이베이 시내 곳곳에서 눈에 띄던데 여기서도.... 

 

드뎌 입장료 40NT짜리 대중온천 발견! (호텔에 딸린 온천은 최하 200NT부터 시작한다)

사진 찍지 말라는 표지가 붙어있으면 급히 한 장 찍고는.... "죄송해요, 몰랐어요. 이제 안 찍을께요..' ^^ 

 

 

시설이 어떨까 수질이 어떨까.... 미덥지 않았는데 예상 외로 샤워장과 탈의실이 제대로 있고 수질도 좋고 뜨끈하고... 유황냄새까지 난다. 금상첨화 사용자들 매너도 중국식으로 말하자면 매우 '문화'적이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기우는 석양을 바라보는 맛이라니....

냉온탕 번갈아가며 세 차례 하고 나니 어질어질할 지경이지만 아주 날아가겠다.

 

해가 꼴깍 넘어가는 거 보고 나왔는데 전철역 앞 로터리에 어느새 묵직하게 어둠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