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가는 길(~2014)/재미·취미(쓴 글)

Qook selection 1 - 집에서 쿡! 클났네

張萬玉 2009. 10. 10. 18:05

IP TV와 케이블TV의 전쟁이 몹시 요란한 요즘에..... 

한번 정했다 하면 웬만하면 그냥 두는 게으름뱅이지만, 유선TV의 3년 약정계약 만료를 앞둔 몇 달 전부터 어찌나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는지.... 보통은 '감사합니다' 하고 끊어버리는데 어느날 한번 귀를 열었다가 딱 걸렸다. 가격도 지금 보는 가격의 절반 정도인데 콘텐츠는 훨씬 많고 인터넷 요금과 집 전화까지 묶어서 할인을 해준다네. 그래, 그럼 한번 바꿔볼까?

 

나의 TV 사용 용도는 영화보기가 60% 이상이지만 유선에서 해주는 영화 레파토리가 거의 헐리우드에서 만든 액션이나 수사물이 대부분이라 오히려 모니터 달린 물건 치고는 컴퓨터가 더 가까운 편이었다. 연속극도 거의 안 보고(선덕여왕 딱 하나)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시사다큐나 무슨무슨 스페셜 정도 챙겨 보니 TV가 애물단지라는 친구들 얘기를 그저 흘려들었는데....(내겐 인터넷이 요물단지..... ㅋ)

 

드디어 유선TV와의 약정이 끝나던 날.... IP TV가 내 인생에 들어왔다. 굳이 '내 인생'에 들어왔다고까지 하는 이유는... 암만해도 요넘이 내 애물단지가 될 것 같은 심상찮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처음 비디오를 샀던 1989년, 처음 백수생활에 입문했던 1995년.... 내가 평생 본 영화의 절반은 이 두 해 동안 다 봤을 것이다. 특히 1995년에는 하루에 다섯 편씩 봐치웠다.

그때만 해도 '으뜸과 버금' 등 비디오가게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좋은 비디오들을 앞다투어 소개해주던 시절이라, 비디오에 빠져 사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커녕 좋은 영화를 '감상'하고 열심히 감상문(때로는 건방지게도 '비평!')을 쓰고 친구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나의 사명인 듯 여겼던... 완벽하게 행복한 시절이었지.

 

암만해도 2009년 하반기 역시 지난 두 시기 못지 않는 '영화보기의 高峰시대'가 될 듯하지만, 이제는 늙느라고 그러는지 '감상문 쓰기' 숙제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줬더니.... 분명히 볼 때는 빠져서 본 영화건만 돌아서면  뭘 봤는지 가물가물이다. 암만해도 몇 줄에 불과한 노트라도, 하다못해 영화 제목이라도 적어놔야 그 즐거웠던 기억들을 한조각이나마 잡아둘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독백이 될 지언정 다시 시작하는 영화 수다....

 

2009년 9월 한 달 동안 본 영화(중 기억나는 영화) 메모

 

The Reader(책 읽어주는 남자)

 

 

사실 올해 봄쯤이었나? 개봉관에서 본 영화다.

당시에도 뭐라도 끄적여두지 않으면 못견딜 정도로 가슴이 먹먹했는데, 쿡 TV 개설 기념 시사회 작품으로 선정하여 (남편 보여주려고) 다시 보니.... 역시 첫맛보다 더 진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감동적인 작품으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은 뭐니뭐니해도 시나리오가 던져주는 묵직한 문제의식.

대학 시절에 읽었던 라인홀트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 제목이 딱 떠올랐다.

적어도 자신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세상에서 그녀는 올곧게 살았단 말이다.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도, 그렇다고 안 던질 수도 없는 것이 인간세상의 아이러니.

          

개인과 사회의 윤리의식이 빚어낸 아이러니와 더불어 이 시나리오가 던지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바로 사랑의 타이밍이라는 문제.

그들의 과거는 '말하지 못한 사랑'과 '믿지 못하는 사랑'이었지만 '확인된 사랑' 보다 더 순수하고 더 강하게 서로를 끌어당겼던 순간이었다. 비록 '현실'과 맞닥뜨리면 깨질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은 소년의 일생에 치명적인 흔적을 남겼는데.... 다시 만났을 때 그남자의 사랑은 어떻게 변했나.

나는 아직도 가끔 그 남자의 속내를 헤아려본다. 그의 사랑은 연민으로 변해버린 걸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타이밍, 혹은 '인연'이라는 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영역이다.   

진중한 남자는 그것을 알아버렸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면회에서 그녀는 그것을 읽었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울컥했던 장면이 바로 이 면회 장면이다.  

나는 아직도 가끔 가석방날 목을 맨 그 여자의 속내를 헤아려본다.

갈구하던 것을 놓쳐버린 좌절감이었을까, 부끄러움을 깨달았던 것일까,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고? 

  

 

배우... 물론 훌륭하다. 예쁘다고 할 수 없는 케이트 윈슬렛은 원래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그 소년역을 맡았던 배우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사춘기소년의 서투른 몸짓과 남자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었고 (나는 사춘기에 특히 관심이 많은 탓에 성장영화를 즐겨본다) 미남이 아니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  그 독일인 소년배우의 이름은 데이빗 크로스, 아직도 꽃다운 1990년생이다.

 

아, 갑자기 로버트 드 니로가 문맹자로 나왔던 영화가 생각난다. 1989년경에 본 비디오.

수잔 서랜든이 상대역으로 나오는 그 영화.... 제목이 뭐였더라? 누구와 누구... 뭐 그런 식의 제목이었는데...

그 재밌게 봤던 영화 제목이 생각 안 나다니... 이래서 영화 메모가 필요한가보다. ^^

 

 

미치고 싶을 때

 

 
이 영화는 여주인공 시벨 케길리만 보면 된다.
터키인인 줄 알았더니 국적이 독일이군. 아마 터키계 독일인인 모양이다.
 
 
하긴... 영화 중간에 끼어드는 터키 악사들의 썰렁한 공연도 인상적이다.
(이 공연 때문에 또 보고 싶어지는군... ^^)
 
'미치고 싶을 때' 이 영화를 보면 아마 '죽고 싶어질' 것이다.  
허무의 끝, 애욕의 끝.... 그리고 그 폭풍의 끝을 격렬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보여준다.  
상당히 감각적이었던.... 그래서 餘音이 상당히 오래 갔던 영화.
 
 
스웹트 어웨이

 

이탈리아의 여류 감독이자 공산주의자인 리나 베르트뮬러가 만든 <귀부인과 승무원>을

마돈나의 남편으로 유명한 영국 감독 가이 리치가 리메이크한 영화.

로맨틱하고 다혈질인데다 좌파적 성향이 강한 이탈리아 사람들은 계급 문제를 다루면서도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이 문장은 어느 영화평론가가 쓴 글에서 가져왔는데.. 누구 글인지 모르겠다. ㅜ.ㅜ). 원작이 그렇다 보니

킬링타임용 영화 치고는 고급스럽다. ^^

영화의 무대가 이탈리아에서 그리스로 가는 지중해의 어디쯤이라 풍경을 유심히 봤다.

눈부시게 아름답기는 하더라만.... 내게 그런 휴가는 사흘이면 찍일 듯.  

 

계급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오만한 귀부인의 맹점을 공격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섹스가 곧 권력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가소로운 메시지가 뒷맛을 베렸다. 

게다가 주연을 맡은 마돈나까지 합세해서.... ㅋㅋㅋ 


사랑스런 마누라를 띄워주려고 만든 영화 같은데, 애석하게도 주연을 맡은 마돈나는 내가 봐도 끔찍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는 아카데미 수상식 전날 최악의 영화를 선정해 발표하는 ‘골든 래즈베리 영화제’에서도 7개 부문 노미네이트, 5개 부문을 수상함으로써 마돈나에게 '골든 래즈베리가 사랑한 여자, 마돈나’라는 불명예스러운 닉네임을 안겼다고 한다.  

그래도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지중해의 물빛과 신랄한 유머 때문에 즐거웠으니... 별 세 개 정도 줄까? ^^

 

저녁 준비를 해야 하니 오늘은 여기서 끝...그래도 영화 수다는 짬짬이 계속될 듯.

9월에 본 영화 중 한두 마디라도 남겨놓고 싶은 영화가 아직 아홉 개나 남았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