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국내

경북 음식체험 답사기행 보고서 2

張萬玉 2009. 12. 15. 09:19

경주는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와봤지만 녹음기 틀어놓고 춤춘다고 밤 새우다가

아침 일찍 어거지로 석굴암에 끌려갔던 생각 밖에 안 나고...

20여 년 전 후배 결혼식 보러 대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밤늦게 들러 하룻밤 자고 석굴암에 올라가긴 했지.

그러나 너무 오래 전이기도 하고 잠깐 들렀을 뿐이니 경주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

오늘의 요리체험은 11시부터 시작되니 그 전에 함께 불국사를 돌아본다고 하는데

  

 

숙소 콩코드 호텔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보문단지의 밤과 아침

 

불국사도 불국사지만 나는 경주 시내가 더 궁금했다. 어제와 오늘의 터전이 공존하는 도시는 어떤 느낌일까.

시내에 있는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출발하여 월성, 계림, 대릉원, 첨성대, 안압지를 돌아 박물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한 안내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기에 혼자 나가서 그렇게 해볼까 망설였지만.... 경주를 잘 아는 룸메이트가 가이드 없이 돌면 별로라고 말리기도 하고 단체행동에서 이탈하는 것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기에 그냥 불국사로 묻어갔다.    

 

40여 년 전에도 와봤고 사진으로도 무수히 봐왔던 곳이지만 정말 불국사는 우아하고 멋진 절이다.

佛國이라니.... 부처님 나라는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답단 말이지.

 

옆모습이 특히 아름다운 사찰. 왼쪽뺨도 오른쪽 뺨도..... 보고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다보탑은 보수중이었다.

 

내가 즐겨찍는 '내다보기' 풍경 

 

약간 기울어지거나 틀어진 듯한 데가 몇 군데 눈에 띄더라.  

 

 

사진은 정신없이 찍었지만 더 좋은 사진들 많이 보셨을 테니 여기서 생략하고....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러 우리는 다시 보문호수변으로.....

 

 

 

음식맛은 장맛... 목간(이름표)를 달고 있는 항아리들, 보송보송 몸을 말리고 있는 메주와 시래기들이 우리를 맞아준다. 이곳은 신라의 음식을 연구하고 복원하고 전파하는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 라선재'

http://cafe.daum.net/ynksd/IEVk/3 이 주소로 가보시면 자세한 내용이 나와있지만 간략히 소개하자면

신라의 이사금(마립간으로 칭호가 바뀔 때까지 쓰였던 왕의 칭호) 음식을 연구 개발해온 차은정 박사가 전통음식의 산업화와 한국음식의 세계화를 위해 개관한 요리학원이자 홍보관이자 음식점이다.

문헌에서 발췌한 신라시대의 식재료와 메뉴들로 재구성된 요리들이 실습되고 홍보되는데, 지금까지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요 고객이었으나 점점 내국인 관광객들의 체험투어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왕실의 식생활을 묘사한 그림들과 요리기구들이 재현되어 전시되고 있다.

흥미로웠지만 바쁘게 훑어보느라고 정확히 신라시대를 묘사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조차 밥 먹는 장면은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대표 차은정 박사님.

사실 나는 이 학교보다 대표님의 매력에 푹 빠져.... 돌아와 인터넷을 두들겨보니 그녀가 발산하던 강력한 아우라가 이해되었다. 서울세계관광음식박람회 대상 수상, 어느 대학 교수, 무슨무슨 책 발간 등등의 화려한 경력도 경력이지만 가장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식품영양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던 해에 18개월 시한부 암 선고를 받고 자연치료에 인생을 걸게 되었다는 이력이었다.    

 

요리실습에 앞서 신라 이사금요리에 대해 간략한 강의를 하시는데 어찌나 새롭고 재미나던지...

요리보다 강의나 계속 들었으면 싶더라. 

신라 사람들의 식재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요리 식재료와도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신라 사람들은 소를 먹지 않았다네. 동물성 단백질을 어디서 취했을까?

신라의 제삿상은 어땠을까?   

 

강의가 워낙 재미있어 정작 요리실습 시간은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야 했다.

실습종목은 棗卵, 栗卵, 笙卵으로 구성된 디저트. 

다진 대추를 꿀과 물엿 시럽에 졸이고 조물락조물락 메추리알 모양으로 빚어 양 꼭지 부분에 잣을 박는 조란.

삶은 밤을 이겨 꿀 넣고 반죽한 뒤 밤 모양으로 빚고 머리 부분에 계피가루를 묻힌 율란.

생강을 곱게 간 건더기를 꿀과 물엿 시럽에 졸인 뒤 생강 모양으로 빚은 뒤 잣가루를 묻힌 생란.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이사금 밥상 받는 시간..

식당으로 이동하니 드라마 선덕여왕 6인방과 도기와 유기로 구성된 우아한 테이블 세팅이 우리를 맞아준다. 

 

첫 코스는 오리고기와 갖은 약재를 넣고 푹 고은 국물에 쑨 보양죽

(물론 이 바보는 안 먹었다. 오리라잖아.) 

 

오향장육 맛이 나는 냉채요리.

무슨 고기라고 말씀하시던데 사진 찍느라고 못들었다. 

까칠해 보일까봐 다시 묻지도 못하고 밤과 오이만 한점 집고 말았다.

 

와, 드디어 내가 먹을 만한 게 나왔네~~ (늘 먹는 고사리다.. ㅜ.ㅜ )

들깨를 아주 듬뿍 넣었다. 나도 이제 들깨범벅을 해먹을 테다. ㅋㅋ

 

이사금 밥상의 하이라이트라는 魚鹿 구이.

황태에 간장과 들기름을 발라 구운 뒤 양념한 사슴고기를 다지고 찹쌀을 얹어 다시 구운 귀하고 벌난 요리다.

근데도 이 고집쟁이는 안 먹었다. 새콤하고 아삭한 보리물김치만 들이키며 눈요기만 해도 만족이다.

먹은 사람들 얘기로는 고기에 좀 독특한 향이 있다네. 

 

오미자 탕수. 튀김재료는 도라지와... 뭐였더라?

간만에 먹을 수 있는 게 올라와 살피지도 않고 후다닥! 음식체험 답사팀에 정말 안 낄 사람이 꼈다.. ^^

  

대추장아찌, 단호박찜, 자가미식혜, 새송이 장아찌, 전복초를 밑반찬으로 거느린 새알심 든 미역국이 식사로 나왔다. 밥은 큰 도자기 대접에 담겨나와 필요한 사람은 덜어먹도록 한다. 

전채요리들도 큰 접시에 담겨나와 각자 덜어먹도록 서빙하더니... 주 고객이 외국인들이라 그런 모양이다.

 

우리가 만든 조식과 따뜻한 수정과를 마지막으로 임금님 밥상이 끝났는데...  

신선한 맛체험이었다는 평과, 밍밍하고 양이 적다는 평이 엇갈렸다.

고춧가루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이니 어쩌겠나. 확실히 우리의 미각이 자극적인 맛에 쩔어버렸다는 걸 느끼겠다. (아기들 입맛과 비슷한 내겐 괜찮던데... ^^)

 

유기그릇 예쁜 거 처음 알았다.

 

 

식사 후 간담회.

맛체험 하는 곳들을 묶어 한꺼번에 답사했기 때문에 허둥지둥 먹기에만 바빴던 일정 끝이라 그런지

맛체험과 그 지역 특성을 살린 다른 체험을 제대로 묶으면 좋겠다... 산지 중심이라면 수확 후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거나, 역사 중심이라면 그 시대 옷 입고 그 시대 집에서 자고 당시의 역사 강의도 듣고... 그 시대 사람이 되어 그 시대 속으로 푹 빠져서 음식도 만들어 먹고... 그러면 좋지 않겠느냐, 그런 제대로 된 체험여행이 개발되면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참가하려고 할 것이다... 등등의 의견들이 쏟아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