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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선배언니가 심장 쪽 혈관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보니 세상에....
그저 레이저로 막힌 혈관이나 뚫는 그런 간단한 수술이 아니었다.
절개선이 목 바로 아래부터 횡경막 근처까지 가로지르고 양쪽으로 의료용 호치켓(스테이플) 팍팍!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복부와 오른쪽 대퇴부까지 바느질 자국이 선명하다.
병명은 대동맥 박리....세 겹으로 둘러싸인 대동맥의 가장 안쪽 혈관이 너덜너덜해졌단다.
갑자기 가슴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곧 가라앉겠지 하고 30분 이상 참다가 결국 직접 차를 몰고 병원엘 갔는데 현깃증에 구토에.... 주차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단다.
가는날이 장날, 아니 일요일이어서 응급실로 갔는데 의사를 부르는 데만도 한 시간 기다려야 했다네. 급히 달려온 의사 말이 피가 1.5리터짜리 콜라병 만큼이나 새어나왔다고, 정말 운 좋은 줄 알라고 했단다. 진짜 까딱하면 선배 얼굴 다시 못볼 뻔했다.
병원에서는 2주 정도 입원해 있으라는데 잠자리 바뀌면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 예민한 언니는 비상시에 119 부를 각오로 닷새 만에 퇴원하고 말았다.
보행이 가능하니 혼자 다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는 치지만 대수술 후라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결혼도 연애도 안 하고 사는 처지니 하다못해 밥수발 들어줄 이도 없다. 딱한 마음에 이삼일 먹을 반찬거리 좀 만들어주고 한주일 뒤에 실밥 뽑으러 갈 때 같이 가주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왔다. 그 약속했던 날이 바로 엊그제.
우선 엑스레이와 심전도, 채혈 등 진단시 필요로 하는 검사들을 받은 뒤 의사를 만나 진단 받고 실밥을 뽑는 일련의 과정들이 퇴원할 때 받은 검진예약서에 적힌 가이드에 따라 착착 진행된다.
세 식구 건강한 덕분에 도무지 병원이라고는 문상이나 병문안으로밖에 안 가본 나.... 그 효율적인 시스템에 내심 놀란다. 물론 곳곳에 진행을 도와줄 만한 사람들이 앉아있긴 하지만 그 넓은 병원에서 검사실을 찾아다니고 그 많은 사람들 속에 제 순서를 잡고 하는 일들이 완전히 자기 책임하에 이루어져야 하니..... 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사람이나 큰 병원이 낯선 사람들이 혼자 온다면 우왕좌왕 어리버리 깨나 하겠다.
또 놀란 것은 언니가 받았다는 '저체온 대동맥 수술' 얘기.
이 수술법은 체온을 18∼20도로 낮추어 심장의 펌프질을 멈추고 인체 여러 장기들의 기능을 쉬게 한 뒤에 시행하는 수술법이라는데, 체온이 30도 정도로 내려가면 심장의 펌프질이 멈춰지고, 20도 이하로 내려가면 뇌의 대사작용도 중지된다고 한다. 혈액순을 정지시킬 수 있는 최대 허용시간은 40분 정도... 그 사이에 체외 순환장치를 정맥과 연결해 피가 정맥과 체외순환장치로만 오간다는데....
그렇게 하면 출혈도 줄이고 수술 성공률도 훨씬 높아진다고 한다. SF 소설 속에서 읽었던 냉동수면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언니는 얼음물 속에서 잠시 죽었다 깨어난 것이다. 아이고,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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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담도암 진단을 받은 분을 가끔 찾아뵙고 있다. 남편이 일했던 상하이 회사의 후임자시다.
어깨쪽에 통증을 느껴 중국에서 진단을 받았을 때는 담낭에 염증이 있다고 했단다. 그래서 수술을 받으려다가 마침 새해 휴가가 목전이라 한국에 다니러온 김에 다시 검사를 받았는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고 해서 3주에 걸친 정밀검사 끝에 결국 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담도암은 워낙 깊은 곳에 숨어 있고 자각증상도 없어서 발견하기도 쉽지 않고 순환계와 관계있는 부위라 치료도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치료율이 낮아도 그 비율 속에 치료된 사람들이 있는 것 아니냐며 꿋꿋하게 치료에 임하고 계시다. 병원측도 요즘 암에 관한 신약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니 최선을 다해보자고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한다. 모쪼록 치유의 기적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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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 가족 세 사람의 병원출입 경력은 손가락으로 꼽아도 될 지경이다.
나 : 출산 때(입원 5일?) / 다리 부러졌을 때(입원 안 했음) / 성대결절 생겼을 때(진료만 받고 말았음)
무릎관절 진료차 한 번(살 빼라는 소리만 듣고 나왔다)
치과치료 2회(각 회 5번씩 정도) / 안과치료 1번 / 그리고 건강검진차 3번
남편 : 대상포진 걸렸을 때(입원 안 했음) / 치과치료 1번
아들 : 두 돌 전에 감기와 설사로 몇 차례 / 다섯 살 때 턱 찢어져서 다섯 바늘 꿰맨 것
포경수술 / 작년에 팔 부러져서 깁스
감기몸살이나 배탈 등으로 약 사먹고 집에서 조리한 경험이 없진 않지만 병원출입은 이게 전부다.
이 정도면 제법 튼튼한 가족이라고 자부해도 되지 않을까? ^^
건강한 신체와 튼튼한 면역체계를 물려주신 양가 부모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주변에도 중병이나 장기질환 앓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당뇨나 고콜레스테롤처럼 두고두고 다스려야 하는 환자 말고는.... 그러다 보니 도무지 병원출입이란 건 딴세상 일로 알고 살아온, 정말 운 좋은 인생이었다. 아니, 인생을 규정하는 키워드인 '生, 老, 病, 死' 중 그 첫번쩨인 生말고는 아는 게 없는 인생초보자였던 거지.
하지만 예감은 하고 있다. 이미 나의 인생은 나머지 세 개의 키워드에 점점 근접해가고 있으며 어느날 갑자기 그것들이 내 삿바를 붙잡고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것을....그들과 씨름하는 지난한 시간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뼈아프게 깨달아가면서야 제대로 철이 들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