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易地思之 - 민폐와 인정 사이

張萬玉 2010. 6. 5. 22:54

 

 

# 1

 

중국으로 갈 이삿짐에 실어보낼 것들이 적지 않아 장 보러 가는 길에 망가진 이미지 저장장치를 고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용산 전자상가에 들렀다.

헌데 이미지 저장장치 제조사(새로텍)가 그 사이에 강동구 어딘가로 이사를 갔다네.

혹시나 싶어 자료 복구해주는 업체를 찾아갔더니 아마 A/S 의뢰를 하면 저장장치를 고쳐주거나 새 저장장치로 바꿔주기는 해도

그 안의 자료를 꺼내기는 어려울 거라고 복구의뢰를 하란다.

 

오늘의 화제는 지금부터. 자세한 상담을 위해 기다리면서 목격한 어떤 아줌마 얘기다.

복구완료가 된 자료를 확인하겠다던 이 아줌마, 다른 손님과 상담중이던 직원을 부르더니 파일 요거 요거 요거를 자기 메일로 좀 보내달란다.

직접 하시라고 하니까 할 줄 몰라서 그런다고 간절하게 부탁이다. 손님과 상담 마치고 해드리겠다고 하니 이거 시간 다투는 일이라고 애걸복걸이다.

덩치도 목소리도 큰 아줌마가 급하게 졸라대니 상담중이던 손님마저 그 기에 눌렸는지 직원더러 먼저 해드리라고 한다.

 

다 끝나고 계산을 하는데.... 이건 또 뭔 경우여? 계좌번호를 알려주면 송금하겠단다.

복구한 자료를 찾으러왔으면 돈을 준비해가지고 오는 게 당연한 거지만 혹시 안 가지고 왔더라도 5만5천원이라니 그리 큰 금액도 아닌데....

이 황당한 시추에이션에 직원들은 당황한 듯 서로 쳐다보기만 한다.

야무진 직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카드 없으세요?"

그런데 얘길 계속 들어보니 돈이 당장 없어서 그러는 것 같지도 않다.

그 아줌마가 들고 온 S사의 기계는 보험도 들어있는 건데 얼마 쓰지도 않은 기계가 고장이 나서 쌩돈이 나가게 생겼으니 좀 따져봐야겠다는 것이다.

혹시 보상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쌩돈'을 날리고 싶지 않다는 얘긴가? 남산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더니....

이건 마치 물건 외상으로 사가겠다는 형국인데 가게 점원들은 그 쎈 기에 눌려 아니되옵니다를 몇 번 외치다가 결국 계좌번호를 불러주고 만다.

뒤통수가 좀 간지러웠을 테지만 어쨌든 당당하게 외상물건을 들고 나가는 씩씩한 아줌마.

 

아줌마로서는

메일 보내야 하는 일이 너무나 화급했을 뿐이고.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기계 때문에 졸지에 어마어마한 복구비를 물어야 하는 상황을 쉽게 용납할 수 없었을 뿐이고.... ㅎㅎㅎ 

 

 

# 2

 

중국에서 구하려면 비싼 간장 고추장 미역 등속의 식품과 모자라는 주방용품까지 챙기다 보니 그만 커다란 카트가 감당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위태위태하게 쌓아 간신히 계산대를 통과하긴 했는데 주차장까지 도저히 그 상태로 끌고나갈 수가 없어서 카트를 하나 더 끌고와 두 카트를 만들었는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용산 이마트에는 해, 달, 별이라는 이름이 붙은 주차장이 세 군데 있는데 이마트에서 가까운 주차장은 별 주차장이다.

평소에는 당연히 별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는데 왜 하필 짐도 유난히 많은 오늘 정신을 어디 팔다가 해 주차장에 댔느냐 말이지.

 

해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카트를 밀고 다녀도 이상할 게 없는 별 주차장 구역과는 달리

레스토랑과 웨딩홀, 게다가 용산역으로 이어지는 길로도 이어지는 길이라서 카트를 위태위태하게, 그것도 둘 씩이나 밀고가는 모습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구역인데

그것도 모자라 시각장애자를 위해 박아놓은 요철을 피할 수 없는 통로에서는 완전히 천둥치는 소리를 내니 어찌나 민망하던지....

양쪽으로 막 갈라지려는 카트를 제어하기 위해 직진방향으로 힘있게 밀어대기도 힘들지만 뒤통수에 따갑게 와서 꽂히는 시선을 견뎌내는 게 더 힘들어 삐질삐질...

(아니, 저 아줌마는 카트 끌고 전철 타려고 그러나? 왜 여기까지 카트를 끌고 왔지?)

(시끄러워 죽겠네, 저 아줌마는 도와줄 사람도 없나봐. 저렇게 많이 살 거면서 혼자 오다니...)

(힘 좋네. 역시 아줌마 팔뚝은 굵어. ㅋㅋㅋ)

 

진땀으로 목욕하며 낑낑댄 결과 간신히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그제서야 슬그머니 부애가 나더군.

인정머리없는 세상 같으니라고...같은 방향으로 가는 젊은이들이 그리도 많더만 어째 '제가 하나 밀어드릴까요?" 소리 하는 애 하나 없을까 말이지.

밤늦게 돌아온 아들네미에게 푸념을 했더니 '엄마가 도와달라고 요청했다면 최소한 거절은 안 당했을 텐데..., 엄마가 요청을 안 했지?'

그러더니 하는 말이 '누가 요즘 남의 일에 간섭해요?' 그런다.

요즘은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공연히 편의 봐줬다간 자기가 되려 난처해질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이 적지 않다는 거다.

그리고는 쿠~울하게 덧붙이는 한 마디....'세상이 그러니 최대한 민폐를 안 끼치려고 노력하는 게 제일 좋죠." 

 

아들 말처럼 내가 좀 덜 바빠 보이는 청년을 불러 "카트 좀 조오기 까지만 밀어주시면 안 될까요?" 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아직 그 정도의 인정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청년이 내심 나를 민폐끼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아줌마로 여기지 않으리라고 어찌 장담하겠나.

데이터 복구하는 곳에서 만난 그 아줌마.... 내 눈에도 영 이쁘게 안 보이던데.....

런던에서 들어오던 날도.... 공항에서 공중전화 앞을 깜빡 지나치고 공항버스에 올라타고 말았지.

암만해도 아들넘이 이제나 저제나 기다릴 것 같아서 옆자리에 앉은 청년에게 '휴대폰 잠깐만 쓸 수 없을까요?' 청하고 싶은 것을.. 꿀꺽 참길 정말 잘했다.

안 그래도 전화사기도 많은 요즈음 누가 남더러 전화 빌려달래나그래.

 

자기 입장밖에 모르는 얌체족들도 문제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그리됐든 어찌됐든

뭔가 좀 모자라는 사람에겐 참 살기 팍팍한 세상이다. 늙어가는 나도 어느새 그 대열에 들어서고 있는 것일까.  

여행길에선 도움도 잘 청하고 쩔쩔매는 듯한 사람들 일에도 잘 끼어들던 배짱이 한국땅을 밟자마자 형편없이 쪼그라드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