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上海通信(新)

상하이 정착, 어제와 오늘

張萬玉 2010. 6. 26. 15:49

어찌어찌 하다 보니 상하이로 옮긴 지 어느 새 열흘이 지났건만 아직도 내 짐이 안 와서 그런지 겉돌고 있는 기분이다.

빨리 정착민이 되려고 이것저것 진행시키고는 있지만 한국에서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되진 않는다. 

모든 게 순서가 있고 그 '순서'를 거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13년 전 처음 정착할 때에 비해 훨씬 순조로운 편이다. 최소한 '약속'에 근거해서 진행되고 그 진행과정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1. 거류비자

 

거류비자를 내려면 신체검사부터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도 대사관 지정 병원에서 받은 결과가 있으면 되지만 나는 상하이(合密路)에서 받았다. 결과는 5일 후에 우편으로 받게 된다.

헌데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단오절 휴가 사흘이 끼어 9일 후인 어제에서야 겨우 받았다.

이제 이런저런 서류(여권, 임시거주증, 남편 회사의 영업집조 및 남편의 취업증)를 챙겨가지고 직접 출입경관리사무소에 가서 비자를 받으면 되는데  

이것도 근무일 기준 5일이 걸린다지만 앞뒤 공휴일 합해서 열흘 정도로 잡고 있으면 마음 편하다.

바쁠 일 없다면서 왜 수속에 걸리는 날짜를 세고 있느냐면... 

7월 1일에 있을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놓치지 않았으면 해서인데 거류증이 나와야 응시할 수 있으니 암만해도 7월 응시는 물건너 간 것 같다.  

 

2. 운전면허증

 

사실 중국 면허는 1997년에 땄다. 

한국 면허증 있으면 필기시험과 적성검사 치면 된다고 해서(지금은 한국 면허 딴 지 3년이 경과하지 않았으면 도로주행 시험을 포함, 완전히 새로 시작해야 한다)

영어 기출문제집을 가지고(당시엔 중국어 완전 초보였으므로) 남편이랑 이삼일 빡세게 공부해갔는데

막상 시험장에서 통역이라고 따라온 녀석들이 답까지 다 알려주는 걸 보고 어찌나 허탈하던지. 

오히려 한국과는 달리 각종 첨단기기를 사용하는 적성검사의 20여 개 코스를 돌면서 혹시 여기서 떨어지는 거 아닌가 걱정했었지.

그렇게 쉽지 않게 딴 운전면허증을 유효기간 만료시 갱신하지 않고 방치해두어 결국 말소시켜버렸으니...

 

사람 일은 모른다. 그때만 해도 내가 중국에서 운전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지.

차 무서운 줄 모르고 마구 달려드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도 그렇고 내 몫의 차량이 생길 거라는 기대도 없었고 택시비도 지금에 비하면 쌌으니까.

게다가 당시 내가 운전하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또 한가지, 오토로 개조하는 비용이 꽤 비쌌던 것 같은데 지금은 기본사양이 되었다.

상해 사람들 소득도 늘긴 했지만 지금은 차값도 많이 내려 너도 나도 차를 몰고 다닌다.

심지어 회사 생산직 직원들 중에도 (중고차이긴 하지만)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이가 있을 정도다. 

이렇게 바뀐 환경에 편승해서 나도 차 한 대 장만할까 생각중이다.

사는 곳이 외지다 보니 볼일 한번 보러 나가려면 대중교통 몇 번씩 갈아타거나 밥값보다 비싼 택시비를 감수해야 하는데 

거기에 귀차니즘까지 합세해버리면 나의 중국생활은 상당히 위축될 게 뻔하다. 이 점이 걱정되는지 남편까지도 적극 권하시는데야 뭐....

 

그래서 운전면허 준비모드로 들어가 있는데... 준비모드라고 해봐야 특별할 게 없다.

왜냐, 지금은 시험지가 (물론 컴퓨터로 친다) 중*영*한 세 가지 버전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감사하게도 교민신문에서 기출문제 한국어 번역본까지 제공해주니 기왕의 운전하던 경험에 의거해 한두번 주욱 읽으면 된다.

바쁠일도 없는 내가 거류증 수속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운전면허증은 왜 급한데? ㅎㅎㅎ

사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 혹은 해도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드는 일을 부지런히 해치우려는 것이다.

급할 것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완전히 중국모드에 젖어드는 것이니 중국의 정착민이 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텐데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다. 왜냐고?

가끔은 사나울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느리게 사는 것을 '꿈'꾸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효율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의 아름다움에 여전히 감탄하고 있다. 특히 중국 땅에 발을 딛게 된 그날부터 더욱....

상하이 통신을 계속 읽어주신다면 나의 이 심정을 아마 충분히 이해하게 되실 거라고 믿는다. ^^

 

3. 집 수리

 

2004년 여름에 새로 꾸며 입주한 집이니 어느새 이 집도 만 여섯 살이 되었다.

건축자재가 부실하고 습기 많은 상하이에서는 5년에 한 번씩 하수구며 마루, 벽 등 손봐줘야 한다는데 세를 내준 분들이 워낙 깨끗하게 쓰셔서

딱 들어섰을 때는 별로 손 볼 데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허나 아무리 곱게 늙었어도 노인은 노인,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구석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길래

이삿짐 받기 전에 소극적인 공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우선 비데....

우리집을 꾸며준 건축업자가 친구 회사 물건이라며 홍보차원에서 무료로 설치해준 녀석인데 http://blog.daum.net/corrymagic/984094

욕실에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은 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수돗물 낭비가 정말 심했을 것 같다.

그냥 떼어버릴까 하던 중에 휴대폰 사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웅진 대리점에 붙들려서 새 것으로 바꿔버렸다.

여기서도 정수기, 연수기, 비데... 한국식으로 영업한다. 렌탈제, 회원제... 등등.

심지어 설치하러 온 직원이 혹시 정수기 살 거면 자기에게 사라고 권하는 것까지 똑같다.

 

모기장

모기장 문틀이 꽉 닫히지 않아 문틀이 휜 줄 알았다. 

모기의 활동이 왕성한 계절이라 급히 서씨 아줌마네 옆집 사는 인테리어 업자를 불렀다.

남편이 공사중이라고 대신 사이즈를 재러 온 젊고 째끄만 사천 아줌마, 같이 일을 하는지 일하는 솜씨가 상당 야무지다.

일단 베란다문을 꼼꼼하게 살피더니 뜻밖의 얘기를 한다. 애초 문설주 설치할 때 바보같이 뒤집어 설치해놔서 그런 거지 문틀은 멀쩡하다는 거다.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당시만 해도 중국업자 기술 못믿어서  한국업자에게 맡겼던 건데... 츠암 나)

생각해보니 원래부터 모기장 닫을 때 잡을 데가 없어서 무리하게 잡아 닫으며 이러다 이쪽 모기장 미어지겠다고 불평했던 생각이 난다. 

꽉 닫히지 않았던 것도 애초부터 그랬던 것 같고..... (그때 왜 고쳐달랠 생각조차 안 했지?)

 

서씨 아줌마가 덧붙여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쉽게 여닫히지 않는 베란다문도 공사하는 김에 같이 해결해버리면 어떠냐고.

째끄만 아줌마가 명쾌하게 진단을 내린다. 그건 문의 바퀴가 망가져서 그런 거고, 그걸 그대로 장기간 사용하다보니 문지방이 다 깎였다고

바퀴를 바꾸더라도 문지방이 저 지경이면 구르지도 않는다고 바꾸려면 문지방까지 바꾸란다. 

에고, 공사가 커지겠는걸.... 했더니 바로 묘안을 내놓는다. 

뒤집힌 문설주의 방향까지 바로잡으려면 전체 문틀을 꺼내야 하니까 그렇게까지 벌이지 말고

모기장 문틀을 제일 바깥쪽에 새로 설치하고, 망가진 베란다 문지방만 바꾸자고, 바꿀 수 있다고....

그렇게 양쪽 베란다 문 진찰을 끝내고 난 뒤 각 방과 욕실에 있는 모기장 상태를 보더니 다 그 모양으로 뒤집혀 있단다.

거의 방 창문을 열어둔 채 모기장은 건드리지도 않고 살아서 도무지 그런 줄도 몰랐다. ㅎㅎㅎ

 

섬세하게 살피고 적절하게 처방을 끝낸 째끄만 아줌마, 견적을 내주는데 가격도 착하게 낸다. 

베란다문 용 모기장 및 틀 2개 / 베란다 문지방 2군데 교체 / 서재 창문 문지방 1군데 교체 / 서재 모기장 및 틀 교환 /

창문 바퀴 10개 교환 / 욕실용 자바라식 모기장 두 개 

그리고 베란다가 있기 때문에 세척을 위한 탈부착이 가능한 안방과 작은방의 모기장에 대해서는 안쪽에 튼튼한 손잡이를 달아줄 테니

닫을 때 안쪽으로 살짝 잡아당겨서 딱 맞게 닫히는지 보고 잘 닫히면 멀쩡한 틀은 놔두고 모기장만 갈으라는, 중국인다운 편법을 내놓는다.

(잠깐.... 근데 서재 쪽 모기장은 왜 새로 설치하라고 했지? 사투리가 심해 집중해서 듣긴 했는데.. 너무 복잡한 처방이라 이자뿟다. ㅋㅋ)

가장 좋은 재료로 해서 (샘플을 보니 샹당 괜찮음) 2,140원 달란다.(36만원 정도). 

한국에서 이렇게 하는 데 얼마나 들지 모르겠지만, 이 동네가 아니고 한국 사람 많이 사는 구베이나 롱바이였다면 아마 3000원 가까이 부르지 않았을까 싶다.

싼 재료밖에 구할 수 없었고 건축경기도 별로 없었던 1997년이었다면 천 원 안쪽으로 끝냈을 일인데.... 물가가 오르긴 많이 올랐다.

재료나 기술이 훨씬 좋아진 것도 사실이고.... 중국, 특히 상하이 사람들의 생활은 이런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습기 받아 코팅이 벗겨진 마루 일부분도 이 째끄만 아줌마의 도움을 받아 교체할 생각이다. 

 

도배

얼핏 깨끗해 보였던 벽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실금이 서서히 벌어지고 있더군.

습기가 많은 상하이에서는 아무리 좋은 재료로 꼼꼼히 칠해봐야 몇 년 못가 칠이 뚝뚝 떨어지기 일쑤니..... 우리 벽과 천장도 손봐줄 때가 되긴 했다.  

우리가 공사를 할 때만 해도 여기 사람들은 도배보다는 칠을 많이 하는 추세였고 업자도 곰팡이 나기 쉽다고 도배보다는 칠 쪽으로 권해서 칠을 했던 건데

보일러를 놓으니 곰팡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지금은 도배들을 많이 한다.  

그럼 우리도 그럼 도배 한번 해보자고 지난주에 발품을 좀 팔아보니... 어찌된 게 한국 업자보다 중국 업자들이 더 비싸게 부른다.

그래도 그 비싼 집에 발길이 이어지는 걸 보면 요즘 상하이 사람들 주머니 사정이 진짜 좋은가보다. 

한국업체에서 수수한 걸로 골라놓고 중국식으로 졸라 10% 정도 깎았다.

이제 열흘(!)만 기다리면 새 집 되겠네. ㅎㅎㅎ

 

소파 구매

입주할 때 새로 장만한 가구들이니 새로 살림 시작해도 당연히 그대로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파가 이 모양이다.

 

 

세상에.... 마치 햇볕에 그을린 피부처럼 얇은 껍질이 벗겨지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루가 한 움큼씩 떨어진다.

살 때 외양은 제법 그럴싸 했는데 그 속에 이런 알 수 없는 재료가 숨어 있을 줄이야....

 

없던 시절에 싼 맛에 끌려 산 거긴 하지만 이렇게 빨리 흉한 몰골을 드러낼 줄 몰랐다.

어떻게든 살려 써보려고 소파 커버 해주는 집을 찾아헤맸지만 해주는 집도 없고,

직물 시장에서 천 떠다가 재봉질 하는 집에 맡기는 번거로움을 자처한다 해도 천 값이 소파값의 2/3에 육박하길래 결국 새로 사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이 가격(8700원, 한국돈 150만 원 가량)이면 웬만한 메이커 소파 장만하고도 남겠는데.... 여기서는 세일 기간이라 40% 할인한 가격이라고 엄청 생색이다.

물질생활의 질이 예전보다 훨씬 높아진 것 같긴 한데 예전만큼 부담없이 지갑 열긴 힘들겠다.

새로 주문한 소파는 25일 후에 도착한다. ㅋㅋㅋ

 

4. 혼자 남은 동네에 마음 붙이기

 

예전에 살 때도 이 동네에 한국 사람이라고는 절친 조선생네 뿐이었다.

그래도 택시로 기본요금 거리에 수혁이네와 쌍둥이네가 살았는데 이제 이 세 집 모두 한국사람들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가버렸다.

지금 롱바이 일대는 예전에 하나 둘씩 자리잡기 시작한 한국 업체들이 번성하여 명실상부 코리아 타운으로 변했다.

각종 음식점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작긴 하지만 '백화점' 이름을 달고 있는 상가부터 시작하여 한국인들 뿐 아니라 중국인들까지 불러들이는 **마트도 두 군데,

주로 중국인들을 겨냥했던 이마트까지 롱바이 인근 지역에서 오픈을 하여 한국상품 매대를 대폭 늘려놓았다.

(덕분에 이전에는 독점적인 가격으로 한국인들을 고민하게 만들던 한국상품점 가격들이 은근히 내려가고 있는 눈치다.)   

병원, 미용실, 싸우나, 인테리어 업체, 애견센터, 건강원까지... 한국인이 경영하는, 혹은 한국인들을 겨냥하여 중국인들이 연 업체들이 없는 업종 빼놓고 다 있다.

학교는 물론 유치원, 각종 학원.... 교회도 열 군데 가까이... 그러다 보니 어린이를 자녀로 둔 내 젊은 친구들이 그쪽으로 이사간 게 무리는 아니다.

    

우리를 환영해주겠다고 모인 자리에서 '이 동네로 이사오라'는 압박성 권유를 엄청나게 받기도 했지만 

이사 온 뒷치닥꺼리 하면서 그 동네 들락거릴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기다 보니 쓰레빠 신고 나가면 서울우유를 살 수 있는 그 동네.... 어찌나 땡기던지.

예전엔 회사 곁을 떠나면 큰일 날 것처럼 딱 자르던 남편조차 '그러고 싶으면 그러든지...' 하며 순순히 나오니 안 될 것도 없어 보이긴 했는데....

며칠 생각 끝에.... 우리 두 내외 살기에 여기만큼 적당한 곳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 이사 생각 접고 집안 구석구석을 손보기 시작한 거다. 

아울러 밤마다 남편과 단지 내 공원을 세 바퀴씩 돌며 상해 시내에서 여기만큼 좋은 산책코스를 갖춘 아파트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중.... ^^

 

한국사람 동네에서 눈을 돌리면 이 동네도 나쁘지 않다.

지난주에 상반기 관리비 결산 결과 남은 돈을 돌려주겠다고 해서 거주민위원회 사무실에 갔다. 이사와서 처음 주민들과 섞이는 자리였다.

담당자인 공산당원 아줌마는 내가 한국사람인 줄 몰랐다가 여권을 보더니 놀라며 말 잘한다고 칭찬 엄청 해줬다. 친구 하자고 짬 날 때 놀러오란다.

얼마나 코드가 맞을지는 몰라도 이렇게 낯을 익히고 인사를 나눈 사람들이 많을수록 이곳 생활이 편안해지겠지.

명도성 사는 친구가 수영하러 오라고 불러도 내가 갈 게 아니라 친구를 이리로 불러야지. (단지 내 구락부에 예전에 없었던 실내수영장이 생겼다!) 

 

솔직이 상하이로 돌아온 마음이 예전 같지는 않다. 10년... 강산과 함께 내 심신도 변한 거다.  

너무 익숙해서 그런지 남들이 비행기 타고 일부러도 보러온다는 엑스포는커녕 시내에도 한번 안 나가봤고

상하이에 온 지가 언젠데 여적 카메라 한번 안 들고나갔다.

차를 사기로 한 결정도 그 이유가 크다. 귀차니즘에 붙들려 방콕생활을 즐기게 될까봐.

사회적 퇴화와 정신적 노화를 막고 중국생활에 활력과 도전정신(!)을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가 뭘까, 적극적으로 탐색해보자고 마음먹는 요즈음이다.